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 옆집 할머니가 동네 사람보고 저 집(우리집) 무서운 집이라고 그랬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내가 하고자 한 일이 먹혀들고 있음을 알았다.
옆집은 워낙 남의 땅을 먹는 내력이 있는 집인 데다 예전에 우리집이 아버지고 할아버지고 몇 십년 동안 비실비실하게 구니까 얕잡아보고 우리집 땅에 허락도 받지 않고 집까지 지은 전력이 있다. 30년 전에 지은 옆집에 우리집 땅이 일부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도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10년 전에 내가 집의 동산이나 부동산 상태를 다 점검했을 때 옆집에 들어간 토지에 대한 임대료를 받아내려고 했는데, 그 때 옆집 할머니가 현금으로는 줄 수 있어도 절대로 통장으로는 못 준다며 길길이 뛰어서 임대료 받는 것이 유야무야 되었다. 아마도 옆집 사람들은 20-30년 쯤 뭉개다가 점유취득을 할 작정으로 우리집 땅에 집을 지었을 것이다.
옆집에서 임대료를 내기 시작한 것은 내가 실력을 보여준 다음부터이다. 내가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다음 임대료로 10만 원을 계좌이체하라고 하니 군말없이 어머니 계좌로 10만 원을 보냈다고 한다. 내가 옆집에 말을 안 했지만 임대료를 순순히 내지 않으면 옆집 한구석을 잘라서 펜타곤처럼 집을 오각형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 정도 되었으면 상황 파악을 할 만도 한데, 작년 11월에 옆집 막내 며느리는 자기가 공무원임을 들먹이면서 나에게 다짜고짜 시비를 걸었다. 곧바로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일이 바빠서 미루다가 몇 달 전부터 도청 감사관실에 공무원 품위유지 위반으로 민원을 넣고 있다. 옆집에서 막내 아들이 그 집 대장 노릇을 하며 특히 며느리가 공무원이라고 위세를 떠는 집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며느리에게 정신적 타격을 주면 그 집이 준동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사무관이나 서기관도 멀쩡히 사는 사람이 많은데, 사람 천성 자체가 얼마나 나쁘길래 주무관이 그렇게 까불고 거들먹거리고 지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천성 자체가 나쁨을 보여주는 것이다. 천성은 어디 안 가는 것이라서 천성이 나쁜 것들은 미리 미리 밟아놓아야 한다.
공무원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것을 보면 공무원 생활 30년 했다고 자부심이 대단할 것인데, 정년퇴임 앞두고 시골 동네에서 횡포 부렸다고 감사관실에 여러 번 소환된다고 해보자. 이미 두세 번은 소환되었던 것으로 아는데, 앞으로도 너댓 번은 더 소환될 것이다. 이 사안으로는 감봉이나 정직이 힘들다는 것은 나도 안다. 천성이 어디 안 가니까 그 며느리는 분명히 도청 건설국 안에서도 지랄맞게 굴었을 것인데 새파랗게 어린 신입 공무원 앞에서 감사관실로 불려가는 것을 보여주라고 민원을 넣은 것이다. 내가 애초부터 옆집에 공포심을 심어줄 작정으로 민원을 넣었다. 같은 사안에 대한 같은 내용을 반복하여 민원을 넣으면 해당 부처에서 악성 민원으로 간주하여 답변을 거부할 수 있으므로, 한정된 갑질 및 횡포 사례를 적절히 배분하여 아껴 쓰고 있다.
자식들이 구순 노인네 앞에서 도대체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10년 전 나에게 계좌이체는 절대로 안 되고 현금으로 임대료를 주겠다고 했던 그 노인네가 우리집 보고 무서운 집이라고 한 것을 보니 그게 효과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왜 공포심을 심어주어야 하느냐면, 공포심을 심어주어야 내가 집에 없더라도 우리집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은 직업이 없지만 나중에 직업이 생겨서 다른 지방에서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인데, 그 때 내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산다고 해보자. 옆집 등이 우리집에 해를 끼치려고 할 경우 그에 적절한 대처는 어머니가 나의 악명을 이용하여 시간을 벌고 그 동안 내가 집에 와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악명을 떨치고 위험 요소들을 미리 손 봐두어야 한다.
아침식사 중에 어머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옆집에서 생각해봐도 딱히 별 수는 없을 거고, 기껏해야 나중에 네가 도랑 메운다고 할 때 못 메우게 한다는 거 정도일 거다.” 도랑이 옆집과 우리집 사유지 사이를 흐르는데 내가 도랑에 성토하는 것을 막아서 옆집이 우리집 땅을 먹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반대로 내가 성토하려고 할 때 옆집에서 방해하는 것 이외에는 옆집에서 우리집에 무슨 짓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나는 어머니께 호기롭게 말했다. 백수일수록 호기롭게 말해야 하는 법이다. “제가 옆집 땅을 헐값에 다 살 거니까 제가 자손을 낳는다면 도랑에 성토하고 안 하고는 자손들이 결정할 문제일 겁니다. 그리고 옆집은 절대로 저 집을 제값에 못 팝니다.”
옆집이 우리땅을 뭉개고 앉을 때는 점유취득을 하거나 헐값에 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우리집이야 허구헌날 땅이나 팔아먹었지 땅을 산 적이 없으니 결국은 옆집이 뭉개는 땅까지 팔아야 할 것이고 그 땅은 옆집 말고는 아무도 사려하지 않을 테니 헐값에 살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기 꾀에 자기가 빠져 이제 그 집은 절대로 제 값을 받을 수 없는 집이 되었다.
* 뱀발
나는 어머니께 이런 이야기도 했다. “6.25 같은 전쟁이 다시 나고 인민군이 밀고 내려온다고 해봐요. 옆집 것들이 인민군 편에 서겠어요, 안 서겠어요? 걔네들이 인민재판하고 우리집 땅을 몰수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어머니는 당연히 옆집 사람들이 인민군 편에 설 것이라고 답했다. 나는 어머니께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집은 어떻게 해야겠어요?” 어머니는 답했다. “옆집보다 먼저 인민군한테 붙어야지.”
굳이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하지 않더라도 6.25 때 마을에서 학살이 어느 방식으로 발생하는지 알 수 있는데, 뻑하면 이념 같은 소리나 하면서 관념이 세계를 움직이는 듯 여기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아무 걱정 없이 한가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태평한 소리나 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2023.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