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3

[경제사] Findlay and O’Rourke (2007), Ch 5 “World Trade 1650-1780: The Age of Mercantilism” 요약 정리 (미완성)

     

[ Ronald Findlay and Kevin H. O’Rourke (2007), Power and Plenty: Trade, War, and the World Economy in the Second Millennium (Princeton University Press), pp. 227-310. ]

  

  

  1. Origins of the British Empire: Trade, Plunder, and Settlement

  2. Mercantilism, Commercial Rivalry, and the Anglo-Dutch Wars

  3. Britain, France, and the Dutch Republic

  4. Britain and France: Commercial Expansion and the Second Hundred 

     Years’ War

  5. India: The Disintegration of the Mughal Empire and the Transition to 

     Colonial Rule

  6. Southeast Asia and the End of the Age of Commerce

  7. The Manchu Empire

  8. China’s Overseas Trade

  9. Chinese and Russian Overland Trade

  10. Conclusion

 

 

17세기 중엽-19세기 초 유럽 열강들이 신대륙을 둘러싸고 각축

 

 

노예무역  

총1100만 포르투갈, 영국 등

 

대서양 시스템, 식민지를 원자재 공급지, 모국 제조업품 시장으로 간주, 배타적 경쟁

 

Power and Plenty 독점이윤 추구, zero-sum game 생각. 귀금속 중시

 

 

  1. Origins of the British Empire: Trade, Plunder, and Settlement

  

internal colonialism 1707 UK

1550-1640년 약탈부터(해적), 카리브해 노예 플란테이션, VA, NE 이주 정착은 느림.

 

1655년 스페인에서 자메이카를 뺏음. 

약탈과 밀수의 근거지. 

사탕수수 플렌테이션(수익률 10% 이상)보다 약탈이나 밀수가 고수익.

 

서인도제도와 북미 본토, 특히 NE 상호보완적 경제. VA, MD 담배 SC 쌀, 인디고

 

13 colonies 국제수지 

1768-72년 상품수출 280만 파운드, 무역외 수지 82만,

상품 수입 390만, 노예 20만, 인덴쳐 8만, 경상수지 적자 4만 정도라서 무시할만함

 

 

  2. Mercantilism, Commercial Rivalry, and the Anglo-Dutch Wars

 

네덜란드 

1647-52년 세계무역장악 정점. 

1648년 스페인과 전쟁 종식 → 카리브 무역 적극 참여 

       -> 동남아에 독점력 행사 

       -> 스페인 양모교역 참여. 모직물 생산, 발트해 무역

  

1652-54년 영국-네덜란드 전쟁

시기와 질투에 기인. 도버 앞바다에서 우연히 발발

  

1665-67년 계산되고 준비된 것. 프랑스-네덜란드 연합 

  

1672-74년 프랑스-영국 연합   

전부 결과는 비기는 정도, 타협

 

영국 Merchant Adventurers 등 특정 그룹에 특혜주기보다는 개방

경쟁을 통해 Navigation Act도 특정 해운업자에게 특혜를 주지 않고 네덜란드 해운을 막을 수만 있다면 누구나.

 

즉 영국의 상인 계급 전체의 집단 이득을 추구하도록 의회가 정책을 수행 - ‘근대적’

 

중상주의. 

네덜란드의 particularist 접근보다 우월

북해부터 대서양까지 우위 역전.

 

1640년 영국 수출의 80% 모직물 

1700년 담배, 사탕 재수출이 반이상, Navigation Acts 효과

그동안 영국해군 열 배나 강해짐. 

Royal African Company 설립, 금, 노예수송, 네덜란드와 충돌,

 

동인도회사(EIC) VOC와 충돌, 미국 New Amsterdam 공략 

→ 2차 영국-네덜란드 전쟁

 

 

  3. Britain, France, and the Dutch Republic

 

프랑스의 네덜란드 대응 방식

콜베르는 수입관세 올리고 제3시장에 수출 참여. 

스페인, 미주, 중동에 린네르나 비단 수출, 산업투자, 제당,   

동인도회사, 서인도회사 설립

 

프랑스-네덜란드 관세전쟁

실제 전쟁

영국-네덜란드 전쟁 참여,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더 오래감 1672-1678년

 

명예혁명 1688년 후 영국+네덜란드 vs. 프랑스

 

 

  4. Britain and France: Commercial Expansion and the Second Hundred 

     Years’ War

 

18세기 (1689-1715) 64년간 

영국-프랑스 전쟁 중, 전세계에서.

프랑스 북미진출, 뉴펀드랜드 대구 잡이. 카리브 연안과 상호교역

퀘벡 몬트리올 정주, 모피무역. 

미시시피로 내려가 뉴올리언즈 정착

1722년 루이지아나 

  

이주민은 많지 않았음.

 

전쟁 비용

프랑스보다 영국이 18세기에 1인당 두 배나 많은 세금

나폴레옹 전쟁 때는 세 배 많음.

간접세, 관세가 많음. 세원 안정적. 따라서 싸게 차입도 가능.

영국이 전비조달 수월히 한 듯.

해외 상업보호를 생각하면 큰 비용도 아님. 네덜란드는 더욱 무거운 조세

 

그래도 오랜 전쟁 때문에 모든 교전국 재정위기.

식민지에 중과세하려다(특히 상비군), 또 서부팽창 제한하려다 충돌. 

미국독립선언 - 전쟁. 재정위기 가중. 영국,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짐.

 

- 영국과 프랑스의 교역에 미친 영향 

담배, 사탕 싸지고 교역량 확대. 

아시아의 차(차+설탕) 노동자 근로의욕 고취

모직물 수출확대 → 유럽 대륙, 신대륙.

기타 제조업품 → 신대륙, 유럽대륙 

시장확대속도 빠름.

  

 

영국 수출 확대는 7년 전쟁 승리와 대영제국 시장팽창 효과가 컸음을 보여줌.

 

18세기 프랑스 무역(수출, 수입, 재수출) 더 빨리 성장. 

1인당 절대액은 영국의 1/3도 안 됨

 

영국 - 포르투갈/브라질, 프랑스 - 스페인/중남미 교역 많음. 

전쟁 정치

 

영국-프랑스 무역 패턴 비교

 

 

미국이 독립한 후에도 영국이 프랑스보다 미국과 더 많이 교역

 

 

  5. India: The Disintegration of the Mughal Empire and the Transition to 

     Colonial Rule

 

17세기 말 최대 팽창. 무굴제국 재정위기, 군사기술 변화로 비용 증가. 쇠퇴시작

 

EIC 1750-60년대 Bengal 장악. (1607 Surat 시작) 

17세기 중심 Bombay, Madras, Calcutta 프랑스 1674년 Pondicherry

 

18세기 중엽 영불경쟁 영국의 분명한 승리로, 경쟁→ 독점

인도교역조건 악화. 귀금속 유출

 

1757년 Plassey의 전투 

1764년 Buxar 

1803년 공식적으로 무굴 황제 영국보호 수용

 

- 무굴제국의 경제시스템 

토지세가 근간, 국민소득의 15% 정도(영국 수준)

곡물보다 환금 작물

면화, 사탕수수 재배지에 낮은 세율 적용, 상업화 촉진, 

해외 무역은 관세수입과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은화 수입을 가져옴. 

제국 내의 분업 및 지역별 교역도 활발.

 

곡물잉여 Bengal → 곡물부족 Gujarat.

Bengal 면직 공업 

Gujarat 원면, 

Bengal 생사 

Gujarat 견직 

상호보완 등.

 

토지세를 현금징수 – 도농 간 교역촉진, 

교통 인프라 건설. 

국제무역 - 홍해, 페르샤만, 버마, 샴, 인도네시아 도서지역.

EIC 점차 주도력 가져감.

 

17-18세기 면직 공업 세계적. 

산업혁명 이후에야 영국이 기술적 우위. 

조선, 무기제조 등도 마찬가지

그러나 기본적 기술혁신은 뒤진 듯 

인쇄, 기계시계, 광학기구, 철강, 기계 등. 

낮은 임금 때문인가? 

제국 해체 이후에도 세금을 덜 내서 그런지 지역경제성장 계속

영국식민통치 때문에 경제가 좋아진 것은 아님. 오히려 적대적?

 

EIC 교역 1660-1760년 간 연율 2.2%로 성장. 엄청난

후추, 면직물. 영국 보호주의 자극.

 

그래도 EIC 영국수입품의 절반? 

나머지는 차, 커피, 생사, 인디고, Bengal 조세수입도 상당

중국 차 수입에 아편 이용.

 

EIC 말고 개인사업자 있었음. 

‘Diamond’ Pitt, Elihu Yale

 

1757년 이후 Indian Transfer가 영국 국제수지에 큰 기여. 

Cuenca Esteban 통계 볼 것.

 

 

  6. Southeast Asia and the End of the Age of Commerce

 

VOC 정향, 육두구 독점

군사, 정치적 우위가 반드시 경제적 이윤으로 귀결되지는 않음

비용에 비해 농민과 상인의 생산, 교역 유인이 따라주지 않고 17세기 후반 이후 수요가 포화 상태에 이르기 시작. 

향신료보다 면직물이 더 이로워졌다.

 

- 버마, 시암 등 육지 왕국들은 배후 농지세와 해안 무역독점으로 중국, 일본, 인도 그런대로 좋음.

 

- Batvia 1740년 폭동 수천 중국인 학살. 

18세기 후반 VOC와 자바 쇠퇴. 부패, 비효율, 금융위기

 

- 영국이 어부지리 얻음. EIC가 ‘country trade’에 적극적, Penang 중심

Bengal 면직물, 아편, Malay 주석, 중국 차

 

- 도서지역 교역은 침체. 후추 유럽수출 쇠퇴


   

정향 수출량, 가격 폭락

 

 

동남아의 인도 면직물 수입도 17세기 후반에 반감

 

17세기 말부터 중국 상인들 동남아에서 적극적 활동. 

명과 청의 복건주의자들, 필리핀 제외. 

1755년 중국인 추방.

 

 

  7. The Manchu Empire

 

1644년 명 멸망 이후 중앙아시아는 몽골, 투르크 대신 만주족이 다스림

신장, 티벳

서쪽에서는 무스코 비의 시베리아 팽창 태평양까지.

 

만주족은 유목민이 아니고 목축, 수렵, 농경

청나라. 한족과 통혼하지 않고 기존 제도에 의해 지배. 

고급관직은 만주인, 한인 두 명이 담당.

몽골 원나라보다 더욱 더 중국에 동화됨.

 

 

  8. China’s Overseas Trade

 

대만의 정성공 명 복원세력, 중일 무역, 은 – 비단. 

청나라 해안 봉쇄

 

정씨 가문 제거 후(1683) 유럽 상인들(네덜란드 등) 취항. 

중국 상선 동남아 및 일본, 마닐라 교역. Macao 훨씬 능가. 

1717-27년 무역정지. 

1757년 이후 광동중심교역 공식화. 

1685년부터 중요해진 상인조합 ‘공행’ 해외무역 담당. 

비단, 도자기, 직물보다 차의 중요성 증가. 

영국-중국-인도 삼각무역. 

은과 아편 면직물, 원면(아편 중요성 부인되고 있다.)

 

EIC 차의 선대제 생산으로 공급 확보

대신 중국(광동)은 동남아 쌀수입.

 

시암-중국은 쌀-제조업품 패턴

 

 

  9. Chinese and Russian Overland Trade

 

몽골 제국 쇠망 이후에도 중앙아시아 대상 무역 유지, 그러나 16세기 쇠퇴 및 단절.

 

Cape Route 개발은 큰 요인 아니고 중앙아시아의 정치적 혼란과 불안 때문일 것.

 

청나라 건국 후에도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중앙아시아 평정 위한 원정 많았음.

 

러시아의 시베리아 팽창이 교역기회 제공. 

모피, 양모포, - 차, 비단, 면포, 대황 

 

1640년대 아무르강 조우. 

1689년 넬친스크 조약, 

매년 공식 캐라반 북경왕복

 

1727년 Kiakhta 조약, 국경키 아크타와 매매정에 상설시장 설치. 교역급증, 공무역 또는 사무역에 관세부과 차무역 1800년 광동 2300만 파운드 키아크타 250만 파운드 

 

러시아 시장 고급차, 시베리아 시장 저급차, 광동 중급차 

영국 및 유럽시장, 평균가격 비슷

 

모포수입 18세기 말 키아크타가 광동의 두 배 정도, 모피공급고갈로 모피무역은 축소됨.

 

- 러시아 18세기 말 피터대제, 나중에 캐터린대제 중상주의 정책 

무역 특히 수출드라이브, 항구 건설. St. Petersburg. 

오스만과 타협, 흑해 진출

 

1742-1793년 수출 10배 증가.

 

 

수출구성 중간재 많다. 공업화 정도 가늠케

 

무역상대는 1700년대에는 네덜란드가, 1730-40년대는 영국이 가장 중요. 

선박이 없어 해운은 외국인에 맡김

 

러시아의 수입은 소득분배 불평등을 반영

사치스런 직물, 향신료, 사탕 등 40%

산업원료 원자재 40%

 

무역항 St.Petersburg 가장 중요. 

Riga, Archangel. Astrakhan-카스피해 1556년

 

이란 무역, 생사, 견직물 수입. 

아르메니아 상인들, 원면, 면포, 카펫도 수입, 모피, 모포 수출 

대-이란 무역수지 적자. 

발트해에서 얻은 은 유출..

 

 

  10. Conclusion

 

18세기 중엽과 서기 1000년경의 차이: 신대륙이 국제 경제에 편입.

 

호주에는 1788년부터 영국에서 정착하기 시작. 

서유럽은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발돋움

 

16-18세기 유럽무역 연율 1% 성장. 

서유럽과 중국 GDP 연율 0.4% 성장. 인도 0.2%

 

생산지 가격과 소비지 가격 격차 줄어들지 않았음. 

무역장벽(독점 등) 축소나 운송비 하락(기술진보) 등이 없었던 듯. 

상품구성도 가볍고 비싼 것에 국한. 

DNA, 은, 향신료, 고급직물, 사탕, 담배, 차 


교역         도시화

제국주의 → 경제발전 (권력→부)

중상주의 

  

  

(2019.02.18.)

    

2020/08/12

[외국 가요] 조이버드 (JoyBird)



JoyBird - For Real [LG전자 LG TONE Free 광고 음악]

( www.youtube.com/watch?v=G-BCLVY4BSE )

(2020.07.18.)


[과학철학] Feyerabend (2010), “Preface”(1987) in Against Method 요약 정리 (미완성)

     

[ Paul Feyerabend (2010), “Preface”, Against Method, 4th edition (Verso), pp. xvii-xviii

  Paul Feyerabend (1975), Against Method, 1st edition (New Left Books).

  파울 파이어아벤트, 「서문」, 『방법에 반대한다』 (그린비, 2019), 25-28쪽.  ]

  

  

[p. xvii, 25쪽]

- 임레 라카토스는 1970년 한 파티에서 파이어아벤트에게 제안함.

• “너는 그렇게 희한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왜 그것을 쓰지 않는 거야? 나는 네 이야기에 대한 답변을 쓸게. 우리는 그 전부를 출판하는 거야. 장담하건대 엄청나게 재미있을 거야.”

- 파이어아벤트는 제안을 받고 좋아했고 일을 시작함.

- 파이어아벤트가 초고를 1972년에 완성하여 런던으로 보냈는데 거기서 원고가 매우 불가사의한 상황에서 사라짐.

• 라카토스는 파이어아벤트의 원고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터폴에게 알렸고, 인터폴이 원고를 찾아서 파이어아벤트에게 다시 보내줌.

- 1974년 2월 개정판이 완성된 지 몇 주일 후 라카토슈가 사망함.

- 파이어아벤트는 라카토슈의 답변 없이 공동 작업 중 자신의 부분만 출간함.


[p. xvii, 26쪽]

- 이러한 역사가 이 책의 형식을 설명함.

- 이 책은 체계적인 저작이 아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이며 라카토슈의 특이한 성격(idiosyncrasies)을 보여줌.

• 라카토슈는 합리주의자였고, 따라서 합리주의는 이 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

• 라카토슈가 포퍼를 칭송하다보니 포퍼는 그의 ‘객관성 중요성’보다 자주 등장함.

• 라카토슈는 농담조로 파이어아벤트를 아나키스트라고 불렀고, 파이어아벤트도 아나키스트의 가면을 쓰기를 거부하지 않음.

- 라카토슈는 진지한 반대자들을 농담과 역설 등으로 당황하게 만드는 일을 좋아했고, 파이어아벤트도 때때로 역설적인 문맥에서 씀.

• 예) 1장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무엇이라도 좋다”(anything goes)

• “무엇이라도 좋다”는 파이어아벤트가 주장하는 원리가 아님.

• 파이어아벤트는 어떤 원리들이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연구 상황을 떠나서 ‘원리들’이 생산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음.

• 그것은 역사를 가까이서 살펴본 합리주의자의 겁에 질린 절규임.


[pp. xvii-xviii, 26-27쪽]

- 새로운 판은 『방법에 반대한다』의 부분들과 『자유사회에서의 과학』에서 일부 발췌한 부분을 합친 것.

- 파이어아벤트는 두 가지 논점을 다시 세우고자 함.

• 논점(1): 과학은 스스로의 역량으로 확립될 수 있고, 합리론자들, 세속적인 휴머니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 유사한 종교적 운동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

• 논점(2): 비-과학적인 문화, 절차, 가정은 그 자체로서 세워질 수 있으며, 그것이 대표자들의 바람이라면 그렇게 하도록 허용되어야 함.

- 과학은 이데올로기로부터 보호되어야 하고, 사회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며, 특히 민주주의 사회과학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함.

• 이는 과학자들이 철학 교육으로부터 이득을 얻은 적이 없거나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님.

• 그러한 이득은 교환 당사자들의 자유의사로 수락되어야 함.

• 민주적인 과학제도, 연구 프로그램, 제안들이 대중적인 통제에 종속되어야 하고, 국가와 종교제도 사이에 분리가 있는 것처럼, 국가와 과학 사이의 분리가 있어야 함.

- 과학은 여러 견해 중 하나라고 가르쳐야 하며, 진리와 실재에 다가가는 유일무이한 길이라고 가르치면 안 됨.

• 그것이 재앙으로 인도되기 쉬움을 보여주는 것이 과학의 본성에는 없음.


[p. xviii, 27-28쪽]




(2020.12.23.)

    

2020/08/11

틴베르헨과 틴베르헌



지난 번 <부에나 비스타 저널클럽>에서는 논문을 요약하는 대신 기말보고서 초안을 검토했다. 그 날 검토한 것은 <생물학의 철학> 수업에 제출해야 할 기말보고서 초안이었다. 본문에 ‘Tinbergen’이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발표자가 Tinbergen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분명하지 않아서 한국어 발음을 병기하지 않았다. 발표자가 초안을 읽다가 Tinbergen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물어서 나는 “틴베르헨”이라고 답했다. 이 때 거의 동시에 학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대학원생이 “틴베르헌”이라고 답했다. 그 대학원생은 Tinbergen이 네덜란드 출신이라서 “틴베르헌”이라고 읽는다고 했다. 나는 “틴베르헨”으로 읽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차피 내가 네덜란드어를 아는 것도 아니어서 그런가보다 했다.

내가 하는 틴베르헨은 계량경제학을 만들고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그 틴베르헨도 네덜란드 출신이다.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도 경제학과 생물학을 동시에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네덜란드에는 틴베르헨 씨가 많은가? 두 사람이 종친인가? 구글에서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두 틴베르헨은 형제였다.

형인 얀 틴베르헨(Jan Tinbergen)은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계량경제학을 연구하여 196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국가단위 경기순환을 정량적으로 해석한 최초의 경제학자다. 네덜란드 중앙통계국에서 일하며 계량경제학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고, UN 경제자문위원으로 일하며 주요 국가의 거시 경제에 대한 계량경제학적 분석 모형을 제시했다. 동생인 니콜라스 틴베르헨(Nikolaas Tinbergen)은 동물 행동을 연구하여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2차 대전에 참전하여 전쟁포로가 되기도 했고 종전 후 영국으로 귀화하여 옥스퍼드대학 교수가 되었다.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털없는 원숭이』의 데즈먼드 모리스가 니콜라스 틴베르헨의 제자다. 틴베르헨 형제는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형제 수상자다.

구글 검색 결과를 보면, 경제학 쪽에서는 Tinbergen을 “틴베르헨”으로 표기하는 경향이 있고 생물학 쪽에서는 “틴베르헌”으로 표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구글 번역기는 “틴베르헨”보다는 “틴베르헌”에 가깝게 발음한다.

* 뱀발: 외국인 인명 표기를 할 때는 국립국어원의 <한국어 어문 규범>을 참고하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 링크: [국립국어원] 한국어 어문 규범

( https://kornorms.korean.go.kr/main/main.do )

(2020.06.11.)


2020/08/09

대학원에 진학하는 마음가짐



가끔씩 대학원 입학 문의를 받는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좋을지 묻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한 학기만 다녀보고 도망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지원하세요.”

대학원 진학이 꽤 무거운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물론, 기회비용이 큰 사람에게는 무거운 선택이 될 것이다. 좋은 직장을 다니던 사람이 대학원에 들어가면 수입이 크게 줄어들 뿐만 아니라 경력 단절 때문에 재취업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대학원 진학이 무거운 선택이 될 필요는 없다. 한두 학기 다니다 도망가면 되기 때문이다.

여러 대안 중 나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른 선택보다 대학원 진학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면 대학원에 가고, 그렇지 않다는 것이 뒤늦게라도 드러난다면 매몰 비용이 커지기 전에 빨리 벗어나는 것이 옳다. 사람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다니지 않아도 될 대학원을 다니며 굳이 고통을 감내할 필요는 없다. 군대에서 도망치면 탈영병이 되지만 대학원에서 도망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대학원에는 추노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학원 탈출이 전과처럼 인생 내내 따라다니는 것도 아니다.

교수들의 입장에서는 대학원 진학이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학생에게 무거운 선택이 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대학원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교수 사정이고 학생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생산성 향상과 무관하게 정신 건강만 안 좋아진다. 학위 취득 여부도 장담하지 못하는 학생이 교수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노예가 주인 의식을 가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연한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할지도 의문이다. 어차피 연구의 성패는 지능에 달려 있다. 결연해 죽겠어봤자 머리가 나쁘면 소용없다. 그리고 마음은 쉽게 변한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마음이 변하게 마련이다. 교수가 결연한 마음가짐을 원할 것 같으면, 학생은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척만 하면 되지 정말 그런 마음을 가질 필요까지는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게 뻥인지 아닌지도 가려내지도 못한다.

‘배수진’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배수진을 치고 무슨 일을 해야지 무슨 일이든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배수진이 뭔지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배수진을 친 군대는 대부분은 몰살당했다. 한신의 배수진이 유명한 것은 배수진을 쳤는데도 이겼기 때문이다. 한신의 배수진이 성공한 것은 미숙련 병사들로 배수진을 쳐서 아군이 못 도망가게 하는 동시에 적군을 유인하는 한신의 전략이 성공한 것이지, 배수진에 마법 같은 힘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경우 배수진을 치는 것은 퇴로도 확보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군대다. 이길 전략으로 배수진을 치는 것과 막장 상황이라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히 다른데 사람들은 배수진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대학원 진학에도 적용된다. 다른 일을 충분히 잘 해왔거나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학원에 오는 것과, 취업도 안 되어서 소나기 피하러 원두막에 들어오듯 대학원에 들어오는 것은 다르다. 이는 대학원 와서 인생이 망한 것과 인생이 망해서 대학원에 온 것만큼이나 다르다. 취업 안 되는 김에 대학원에 온 사람이 잘 된 사례는 아직까지 보고된 바가 없다. 내가 알기로, 학문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괜찮은 대안이 있었는데도 굳이 대학원에 온 능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여차하면 도망갈 수 있고 도망가도 되는 사람들이 공부 잘 해서 성공한 것이다. 성공할 사람들이니 대학원에서 도망칠 이유도 없었던 것인데, 사람들은 교수될 사람들이 대학원 다니는 동안 돈 못 번 것만 보고 배수진 같은 소리나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대학원에는 다른 곳에서도 잘 살 사람들이 들어와야 하고, 한두 학기 해보다가 잘 될 것 같으면 계속 다니고 안 될 것 같으면 빨리 도망치면 된다. 물론 대학원에서 이러저러한 자원을 학생에게 투자할 테니 나 또한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식의 최소한의 상도덕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뭔가 숭고하고 종교적인 감정, 결연한 의지, 비-생산적 열정 같은 것까지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나처럼 퇴로도 없고 연구 능력도 없는 사람이 대학원에 와서 곤란을 겪는 것은 딱한 일이기는 하겠으나, 퇴로가 있는 사람까지 어디서 이상한 이야기를 주워듣고 쓸데없는 심적 부담을 겪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대학원 입학 여부나 학위 취득 여부도 불확실한 마당에 대학원 입학지원서에 학위 취득 이후의 계획까지 쓰라는 것만큼이나 불필요하다.

(2020.06.09.)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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