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후 중앙대를 명문대로 만들겠다면서 여러 학과를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을 했다. 이에 항의했던 학생이 무기정학을 당했고, 이 학생이 학생회 선거에 나가자 학교는 선거에 개입을 했다. 결국 이 학생은 자퇴서를 냈다. 대학에는 연구 기능과 교육 기능이 있는데, 두산 재단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목 하에 중앙대의 연구기능을 일정 부분 포기했다.
내가 이번 학기에 듣는 <과학적 추론의 이해> 수업에 과학사-과학철학 협동과정 학생들 외에도 경제학과와 심리학과의 석사과정생도 들어온다. 이들이 들어오는 이유는 모델링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연구에서 모델링이 잘 안 되어서 이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사회과학에서 모델링에 대한 이론적인 기반을 연구하기 위해 이 수업을 듣는다.
어떤 학문이든지 연구 수준이 높아지면 메타적인 연구를 할 필요가 생긴다. 철학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메타적인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사카린 섭취가 방광암 발생의 원인이 된다는 가설이 있다고 하자. 생물학이나 의학 같은 분과학문에서는 둘 사이에 정말 인과관계가 있는지 실험설계를 하고 임의표집을 하고 등등의 과정을 거쳐 결과를 내놓을 것이다. 이 때 메타적인 연구라는 것은 이러한 연구에서 ‘인과적 추론’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묻는 것이다. 그래서 물리학에도 물리학의 철학이 있고, 생물학에도 생물학의 철학이 있고, 경제학에도 경제학의 철학이 있다.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의 연구가 물리학의 주제면서 동시에 철학과 관련된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중앙대에서 철학과를 없앤다는 말은, 이러한 분과학문들의 메타적인 연구를 일정 부분 포기함을 의미한다. 물론 굳이 그런 연구를 안 해도 논문 써서 실적 올리는 데에 큰 지장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앙대에서 자신이 하는 연구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사람은 그러한 연구를 할 때 다른 학교 학생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연구기능을 포기한 명문대는 없다. 연구기능을 포기하고 학부생들의 취업률로만 명문대가 될 수 있을까. 두산 재단이 바라는 중앙대가 그러한 학교인지 모르겠다. 두산 재단은 대학교와 직업학교의 차이를 모르는 모양이다.
(2014.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