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교 일을 하는 글쓰기 수업에는 대학원생 조교 한 명과 학부생 튜터 한 명이 배정된다. 그 튜터가 지금까지 해야 할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업에 나오라고 할 때는 아프다고 안 나오고, 학생 게시물에 댓글을 달라고 해도 댓글 안 달고, 기한 내 면담하라고 하니 기한이 한참 지난 후 면담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튜터를 잡아족칠 수도 없고 족친다고 해서 달라질 상황도 아니어서 해당 수업을 맡은 대학원 선배는 튜터한테 더 이상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업무를 약간 조정해서 내가 아홉 명을 추가로 면담하기로 했다. 선배는 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며 강의할 맛이 안 난다고 했다.
학부생 튜터가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면 강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땅히 없다. 선배는 교수도 아니고, 그 학부생하고는 아예 단과대부터 달라서 누구한테 대신 혼내달라고 할 수도 없다. 기초교육원에 가서 튜터를 자를 수 없냐고 물었더니, 기초교육원에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관련 규정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선배만 이런 일을 처음 당한 게 아니라 기초교육원도 처음 당했던 것이다. 튜터를 자르는 규정이 없어서 해당 튜터는 아무 일도 안 하고도 튜터비를 받아 가게 생겼다.
대학원생 조교 복무협약서를 보면, 조교에게 얼마를 언제까지 입금한다는 내용(제3조)과 조교에게 부당하게 일을 시켰을 때 조교가 관계 부서에 직권 조사 등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제6조)는 있으나 조교가 부당하게 일을 안 했을 때 돈을 못 받게 한다든지 받은 돈을 토해내게 하는 내용은 없다. 조교 업무를 중단하게 하거나(제7조) 조교 자격을 박탈하는 것(제8조)까지는 있으나 이 경우에도 돈을 안 준다는 내용은 없다. 일단 조교가 되면 일을 하든 안 하든 돈은 받게 된다. 학부생 튜터 복무협약서도 조교 복무협약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복무협약서에 명시된 규정은 왜 이리 허술한가? 허술하게 해도 그 동안 아무 문제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규정이 촘촘하다는 것은 그만큼 관련 사고도 많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 같은 나라에 별의별 규정이 많다고 하는데 관료들이 할 일이 없어서 취미 삼아 그러한 규정을 만들었겠는가? 넓은 땅에서 수많은 미친 놈들이 다종다양한 사고를 쳤으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기초교육원도 이번에 학부생에게 쓴맛을 보았으니 다음 학기에는 복무협약서 규정을 개정할 수도 있겠다.
* 뱀발
나는 이런 사례를 게임이론 교과서에서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별의별 경우를 다 만들어 내는 경제학자들이 학부생이 교수에게 배신 전략을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럴 리는 없다. 자기한테 게임이론을 배운 학생들이 자기한테 배신 전략을 쓴다고 생각하니 끔찍해서 혹시라도 학생이 교과서에 나온 사례를 보고 모방할까봐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2024.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