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금) 일을 마치고 기숙사로 갈 때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낮에 옆집 둘째 딸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나보고 언제 집에 오느냐고 하셨다. 우리집 농지를 깔고 지은 옆집 건물을 증여받은 것이 둘째 딸이라, 둘째 딸이 어머니께 전화를 건 것이었다. 어머니에 따르면 옆집 둘째 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 면사무소에서 2월 10일까지 우리집과 합의하든 어쩌든 결정하라고 했다.
- (막내 며느리에게서 연락받은 게 없느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막내며느리에게 연락받은 바 없고 똑같은 번호로 계속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면사무소 전화였다.
- 자기도 벌금을 내겠지만 우리집도 벌금을 내야 한다더라.
- 막내며느리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전혀 모른다.
- (옆집 막내며느리가 나에게 시비 건 날 마침 만난 둘째 딸의 남편에게 “이건 사과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는 것에 대하여) 자기 남편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 내가 둘째 딸의 남편에게 평소에 웃으면서 인사를 잘 해서 내가 원상복구를 요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럴 리가 없는데...”라고 말했다.
- 막내동생이 무슨 일을 했는지도 잘 모른다. 평소에 연락하지 않는다.
- (어머니와 합의하고 싶다는 말에 어머니가 아들과 만나라고 하자) 아들하고만 만나면 좀 그러니 어머니까지 같이 만나고 싶다.
옆집 맏딸도 어머니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어머니가 받은 메시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어머니가) 열심히 생활하시는 모습에 감동하고 있고 마음도 짠하다.
- 들려오는 소식(원상복구 요구)에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주시면 감사하겠다.
- (우리 가족은) 저랑 70년 얼굴을 마주치던 분들이셨다.
- 나의 아버지가 잘 되기를 응원했고 어렵다고 도와 달라고 하면 별소리 없이 도와주었다.(돈을 빌려주었다는 말)
- 어머니가 아버지 대신 돈을 갚아준다고 했을 때도 고마워서 이자는 괜찮다고 했다.
- 지금도 그 마음 그대로 잘 되기만 바랄 뿐이다.
- 한동네에서 무난히 지낼 수 있게 도와달라.
어머니를 통해 옆집 두 딸의 반응을 전달받으니 약간 화가 났다.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지 않나, 남의 땅을 30년 가까이 뭉개고 앉아 있었으면서 일언반구 사과가 없고 대충 인정으로 뭉개려고 하지 않나, 돈 빌려주었다고 생색을 내지 않나, 이건 내가 이전에 만났던 지속가능한 저강도 악행을 꾸준히 사람들의 전형적인 대화 패턴과 비슷했다. 싹싹 빌어도 안 봐줄 텐데, 이따위로 나오니 처음에 생각한 대로 실행하기로 했다.
전화로 목소리를 들으니, 어머니는 옆집이고 그동안 보던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많이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은 뱀을 잡는 것하고 비슷해요. 잡아 죽이든 통에 넣든 풀어 주든 바로 해야지 망설이면 물려요. 복이 화가 된다는 것은 기회를 놓쳐서 일을 망친다는 이야기예요. 이번에 봐주면 다시는 기회가 없어요. 이번에 다 정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옆집 둘째 딸에게 따로 만날 필요 없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간사한 것이 어머니 마음을 약하게 해서 어떻게든 타협을 보려고 하니,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야겠다 싶었다. 옆집 부모와 형제들이 하나 같이 악하며 다들 한통속으로 남의 집을 노린 것도 다 알고 있으니 어머니께 징징거리지 말고 순순히 우리집 농지를 원상복구하라는 내용으로 메시지를 작성했다. 일시적인 감정으로 잘못된 메시지를 보낼까봐, 전송하기 전에 시간을 두고 한두 번 더 검토하기로 했다. 밤늦게 연락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서 아침 9시에 맞추어서 보냈다.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옆집 막내딸은 곧바로 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맥도날드에서 모닝 세트를 먹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옆집 둘째 딸이 그러는데 어차피 나하고는 대화도 안 될 것 같고 오후 4-5시쯤에 철거업자하고 견적 낼 테니 그때 보자고 했다고 한다. 막내며느리하고는 절대로 한통속이 아니고 평소에 연락도 안 한다며 통화기록을 보여달라면 보여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옆집 둘째 딸이 나를 좋게 생각했는데 앞으로 그러지 못할 것 같다나 어쩐다나 하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나를 좋게 생각하기는 뭘 좋게 생각하나? 이것도 지속가능한 저강도 악행을 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대화 패턴과 부합한다.
토요일이고 명절 연휴인데 철거업자를 데려올 수 있나? 나하고 기 싸움 하려고 쇼하는 것 아닌가? 그건 아니었다. 옆집 둘째 딸은 정말로 철거업자를 데려왔다. 자기 친구라고 한다. 철거업자는 나를 아는 척하며 아버지 학교 후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코딱지만 한 촌동네에 중학교 두 개에 고등학교 한 개라서 중고등학교 선・후배 아닌 사람이 없다.
철거하려면 측량부터 해야 한다. 필지의 지목별, 면적별로 가격이 다르기는 한데 우리집 농지를 경계측량하려면 70만 원 내외가 든다. 철거업자가 나에게 “그런데 측량하려면 비용을 공동 부담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물었다. 내가 건물을 지으라고 허락했나? 내가 철거업자에게 “제가 측량비를 왜 내요? 제가 지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라고 말하자 둘째 딸이 서둘러 철거업자에게 “어차피 대화가 안 돼. 그냥 내가 다 낼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아니, 내가 한 것도 아니고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한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하면서 툴툴거렸다.
철거업자는 네이버 지도에 나온 사진을 보면서 대강 견적을 냈다. 다행히 지붕도 안 뜯어내도 될 것 같고, 베란다도 안 뜯어낼 것 같고, 상・하수도도 안 뜯어도 될 것 같고, 수돗가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급습에는 성공했으나 급소를 모두 빗겨나갔다. 나도 네이버 지도에 나온 사진을 보면서 집을 못 허물 것 같아서 약간 걱정했는데, 아무래도 치명타를 못 입힐 것 같다. 어쨌든 우리집 농지 위를 덮은 것은 시멘트든 철골 구조든 다 드러내기로 했다. 옆집 딸이 “언제 철거하면 될까요?”라고 묻는데 화를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 속담에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방긋 웃으면서 “최대한 빨리 해주시면 좋죠”라고 답했다. 옆집 둘째 딸은 알았다고 하고 철거업자인 친구보고 차 한 잔 하자면서 집 안으로 쏙 데려갔다.
어머니는 둘째 딸을 만나기 전까지는 표정이 너무 안 좋았는데 만나고 나서 집에 돌아와서는 활짝 웃으셨다. 옆집 둘째 딸이 옆옆집에서 흙탕물 내려온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쳐서 옆옆집 아주머니가 울었다고 하는데, 나는 집을 부수겠다고 하는데도 옆집 둘째 딸이 꼼짝 못 하니 통쾌하다고 하셨다.
특히나 더 통쾌하다고 하신 부분은 일가의 죄를 모두 열거한 나의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어머니는 옆집 딸이 자기 부모를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할 텐데 너희 부모부터 도둑놈이라고 욕을 했는데도 아무 말도 못 했다며 웃으셨다. 공무원이라고 더럽게 위세를 부리던 막내며느리가 코빼기도 안 보였다고도 하셨다.
(그 전부터 기분이 좋았지만) 어머니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명절을 앞두고 작은 효도를 한 것 같아 기쁘다.
(2025.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