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왕의 목을 치지 못한 역사”라는 문구를 20년 전쯤 보았던 것 같다. 한홍구 교수가 『대한민국사1』에서 그런 말을 했었고, <딴지일보> 같은 데서도 그런 말이 돌았다. 한국 사회의 보수성, 권위주의, 비-민주성의 기원을 논할 때도 그 말을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 한 번도 왕의 목을 치지 못한 역사”의 반대편에는 왕의 목을 친 역사가 있었다. 그게 프랑스다. 프랑스에서 살다 왔다는 사람들이 프랑스는 이게 좋고 저게 좋은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 프랑스와 관련된 것이라고는 에비앙 정도밖에 없는 사람들도 프랑스 타령을 따라하기도 했다.
윤석열의 체포는 더 이상 한국 사람들이 “단 한 번도 왕의 목을 치지 못한 역사” 같은 것에 미련을 품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상징적인 사건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람들은 왕조 시대에 왕의 목을 치지 못했지만, 빨리 빨리의 민족답게 공화국이 수립한 지 10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왕의 목을 치는 것 못지않은 일을 해냈다. 독재자 두 명을 권좌에서 끌어내렸고, 독재자 한 명이 내부자에게 살해당하게 만들었으며, 내란 수괴를 법정에 세웠고, 집권하기 전에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을 퇴임 후 감옥에 보냈고, 비선 실세에게 멍청하게 놀아나던 대통령을 탄핵했고, 내란을 일으킨 현직 대통령을 체포해서 구치소에 넣었다.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안정되고 제도가 정비되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일을 다 해냈다. 온 나라가 난장판이 되고 왕의 목이 날아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나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실패가 인상적인 것은, 실패할 수 없는 쿠데타를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 막았다는 점이다. 비상계엄 발표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국회의사당으로 모여들었고, 군 내에서 영관급 인사들이 상부의 지시를 듣고도 걸리적거리며 쿠데타를 방해했고, 국회의사당에 파견된 군인들도 꼼지락거리면서 태업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치게임 덕에 시간을 벌 수 있었고 국회에서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20년 전의 한국 사람들은 왕의 목을 치는 경험을 하며 신민에서 시민으로 거듭난 경험을 한 유럽 사람들을 부러워했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는 명령에 죽고 살아야 하는 군인들까지도 민주 시민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는 지금 파시스트를 키우고 있다”고 하는 주장하는 대학 교수가 있고, 그 말을 언론사에서 그대로 옮기고 앉아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박정희 때 유년 시절을 보낸 윤석열이나 김용현은 유신 때의 교육을 받아 파시스트가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엄밀히 따지자면 그들이 교육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쿠데타 일으켜서 떵떵거리며 잘 사는 성공 사례들을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그런데 YTN에 인터뷰하러 나온 어떤 교수는 세상이 얼마나 달라진 줄도 모르고 “한국에서 12년 교육을 받으면 과연 민주주의자가 될까요, 파시스트가 될까요?”라고 앵커에게 묻는다. 비상계엄 때 작전에 투입된 군인까지도 눈물을 흘리며 시민들에게 사과하는 장면을 온 국민이 뉴스로 보았다. 한국에서 12년 교육을 받으면 민주주의자가 된다.
<콘서트 7080>도 아니고 제발 철 지난 시절의 이야기 좀 그만하자. 서태지가 <교실이데아> 부르던 시절에 느꼈을 법한 얄팍한 해방감을 다시 느끼고 싶은 50-60대들의 마음은 이제 40대가 된 나도 어느 정도 짐작하겠으나, 새로운 시대에 대한 어떠한 전망도 제시할 수 없다면 뒷전으로 물러앉아서 새로운 세대들을 격려하는 일이나 하는 것이 좋겠다. 사회적인 의사소통을 방해하며 소음이나 발생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한국 사람들은 왕의 목을 쳐본 사람들의 후손들도 못한 일을 이미 해냈다.
* 링크(1): [한겨레] “윤석열 체포 영웅은 경호처 직원”…부당지시 거부 용기에 박수
( 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8006.html )
* 링크(2): [YTN] “우리는 지금 ‘파시스트’를 키우고 있다” 김누리 교수,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다
( www.ytn.co.kr/_ln/0103_202412161046294929 )
(202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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