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5

시골 할머니들이 만든 음식을 먹다가



시골 할머니들이 한 음식이 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놀랍도록 음식을 못 하는 할머니들도 가끔씩 있다. 음식을 먹다가 나도 모르게 ‘이렇게 음식을 하면 며느리가 아니라 아들도 싫어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시어머니가 싸준 음식을 며느리가 버렸다고 해서 무조건 며느리를 욕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고부간에 관한 이야기 중에 시어머니가 명절에 온 며느리한테 두 손 가득 음식을 바리바리 싸주었고 며느리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그 음식을 죄다 버렸는데 그 음식 보따리 속에 100만 원이 들어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이니 20-30년 전부터 돌던 이야기일 것이다. 그 시절의 사람들은 (실제인지 가상인지도 모를) 그 며느리를 욕하느라 며느리가 왜 음식을 버렸는지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며느리 말도 들어보았어야 했다.

시골이라고 하면 마치 본연의 맛 같은 것을 보존하고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몇몇 극소수의 종가는 그럴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시골 사람들은 그렇게 살 수 없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시간 육체 노동을 하기 때문에 요리 같은 데 시간을 많이 쏟을 수가 없다. 밖에서 일하느라 기진맥진하는 사람들이 음식을 잘 만들어봐야 얼마나 정성껏 잘 만들겠는가? 여차하면 조미료를 넣고, 맛이 없다 싶으면 설탕을 넣는다. MSG 같은 것은 일제 시대부터 사용했고, 박정희 때는 새참으로 설탕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환경적인 요소와 별개로, 태어날 때부터 맛 자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간을 더 못 맞추면서 음식을 더 맛없게 만든다.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버렸다는 이야기가 실제 사건이라고 해도, 그것이 단순히 세대 간의 식문화의 차이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시어머니가 못 먹을 음식을 그것도 많이 만들어서 며느리에게 쥐어주었던 것은 아닐까? 시어머니가 초밥 장인이라고 해보자. 초밥 세트를 버릴까? 시댁이 횡성에서 한우 농장을 크게 해서 시댁에 다녀올 때마다 한우 세트를 받아온다고 해보자. “한우도 너무 자주 먹으니까 질리네”라고 하며 한우 세트를 버릴까? 며느리들 중에는 시어머니가 김장을 해준다며 동료 여직원들에게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 본다면, 어머니가 음식을 잘 못하는 데도 단지 어머니가 해준 음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 과연 효도인지, 그런 아들이 과연 효자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하얀 거짓말이 일시적으로 어머니의 기분을 좋게 할 수는 있겠으나, 하얀 거짓말에 기반한 효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아들이 결혼하기 전에 자기 어머니에게 어머니의 요리 솜씨에 일종의 결함이 있음을 미리 알려주었다면, 적어도 음식이 고부 갈등의 불씨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머니가 원래는 아들이 자기 음식을 잘 먹었는데 며느리가 들어온 다음부터 자기가 해준 음식을 안 먹는다고 착각하지 않도록 아들이 자신의 의사를 가정 내에서 분명히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 경우도, 시어머니들이 며느리가 집안에 잘 들어왔어야 한다고 타박하기 전에 애초에 아들을 잘 낳든지 잘 키웠어야 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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