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위기에 처한 것은 학생들이 인문학 전공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인문학 전공을 기피하는 것은 인문학 전공자의 취업률이 다른 학문 전공자의 취업률보다 낮기 때문이다. 인문학 전공자의 취업률이 낮은 것은 기업에서 다른 전공자보다 인문학 전공자를 상대적으로 덜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던 시절에는 사람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대학만 나오면 기업에서 다 데려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기업에서 다른 전공자보다 별다른 이점이 없는 인문학 전공자를 뽑을 이유는 없다.
과거에는 전공과 무관하게 취업이 척척 되었기 때문에 학과가 유지되었다. 학생들이 비-인기학과에 입학해서 배우는 것도 없이 등록금을 척척 내놓고는 알아서 취업을 했기 때문에 학과 유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경제 상황이 바뀌고 나서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 것이 왔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하다.
문제의 본질이 단순한 만큼 대책도 단순하다. 정부에서 부실 대학을 정리하고 예산을 돌려서 학문 후속 세대를 유지할 예산을 지원하면 된다. 하다못해 정부에서 번역 사업만 마음먹고 추진해도 괜찮은 대학의 인문학 전공자는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매우 희한한 접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인문학이 위기에 처한 이유로 (i) 인문학이 현실을 다루지 않는다느니 (ii)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다느니 (iii) 대중과 유리되었다느니 하는 것을 꼽는다. 인문학의 위기의 원인 중 상당 부분은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있으니 자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헛소리인가 보자.
(i) 인문학이 현실을 다루지 않아 위기에 처했다?
도대체 인문학이 다루어야 하는 현실이라는 게 무엇인가. 김어준의 말을 빌려보자. “나는 그 동안 철학을 우습게 보아왔다. 내 삶의 문제를 조금도 해결하지 못하는 철학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냐. 이 생각은 강신주를 만나고 바뀌었다. 강신주가 하는 철학이 진짜 철학이다.” 삶의 문제라는 게 무엇인지 들어보면, 힘들고 어렵고 짜증날 때 기분 좋게 말해달라는 것이다. 그런 거 하라고 철학이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존의 인문학이 외국에서 수입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현실과 괴리되어 힘을 잃었으며, 그래서 ‘한국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존의 인문학이 해결하지 못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이 무엇인가. 막상 그런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그런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면서 “한국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당위만 앞세우니 논의는 공허할 수밖에 없고, 논의가 공허하니 당연히 마땅한 결론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마땅한 결론이 나오지 않으니까 인문학이 현실과 괴리되어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우긴다. 이렇게 무한 반복이다.
(ii) 인문학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않아서 위기에 처했다?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인문학으로 드는 예가 문화 콘텐츠다. 문화 콘텐츠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개소리하고 눈 먼 돈을 벌자는 것이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본 문화 콘텐츠 관련 서적에서는, 혈액형 성격분류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개소리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돈이 되고 이를 이용해보자고 했다. 문화 콘텐츠가 인문학의 살 길이라고 하는 사람들 수준은 대체로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iii) 대중과 유리되어서 위기에 처했다?
인문학의 사회적인 저변이 넓어져야 할 필요는 있다. 이는 인문학 뿐 아니라 자연과학, 사회과학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문학의 위기의 본질은 아니다. 어느 분야든 전문 분야라면 연구 분야가 세분화되어 비-전공자에게 진입 장벽이 생기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개나 소나 아무 말이나 내뱉을 수 있는 수준의 분야라면 전문성이 결여된 분야라는 것이다. 인문학이 대중과 유리되어서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는 인문학 전공자들은 실제로도 자기 전공 분야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관리 안 되는 학교에서 등록금만 갖다바치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불쌍한 사람들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교수들도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사회를 탓하기에 앞서 자성해야 한다면서 인문학이 현실을 다루지 않는다느니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다느니 대중과 유리되었다느니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점이다. 꼭 연구도 안 하고 수업도 제대로 안 하는 교수들이 그런 허황된 소리나 나불거리고, 그런 헛소리는 꼭 언론에 나온다. 그런 교수에게 지도를 받는 멋모르는 학부생들은 맛이 가고, 맛이 간 학부생들은 자기가 보고 들은 대로 헛소리를 전파한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교수나 학생을 보면 사람들이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할 리 없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공허한 소리나 하고 앉았으면 무슨 수로 비-전공자들이 납득하게 만들겠으며 정책결정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201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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