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4

세운상가에서 본 입간판

지난 주말, 학부 후배 결혼식을 앞두고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을지로4가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세운상가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나는 그 날 처음 세운상가에 간 것이었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이어서 약간 놀라웠다. 리모델링했다는 소식만 듣고는 낡은 것이 말끔해졌나 보다 했는데, 그런 정도가 아니라 이국적인 분위기가 났다. 내가 몇 년 전 대만에 갔을 때 느꼈던 그런 분위기였다.

카페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옆에 이상한 입간판이 있었다. 도청기를 파는 가게에서 녹음기, 추적기, 렌즈카드 뿐만 아니라 비아그라와 씨알리스까지 파는 것이 이상해 보였다. 일행들이 몇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어차피 몰래 파는 거니까 몰래 파는 김에 이것저것 다 파는 거 아니냐 등등. 그런데 내가 보기에 여섯 가지를 한 사람이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바로, 비밀요원이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007 영화 말고 옛날에 나온 007 영화를 보면, 비밀요원은 정보 수집, 요인 암살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양기가 쇠할 일도 자주 하니까 다른 장비와 함께 의약품도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해보니까, 연관성 없어 보이는 단어를 여러 개 제시하고, 그 단어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만드는 놀이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놀이를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2022.10.24.)

2022/12/23

수염이 있을 때의 이점

집 근처에서 작업 중인 건설업체의 도움을 받아 밭을 가로질거 묻은 하수관을 캐냈다. 하수관이 밭에 묻혀 있다고 해서 당장 크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수관이 묻혀 있다는 것을 빌미로 어떤 수작이 벌어질 수도 있어서 화근을 없애는 차원에서 파버렸다.

포크래인으로 땅을 파내고 인력으로 잔해를 치우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나도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밭에서 같이 일했다. 한참 일하고 있는데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밭으로 달려온 외국인 노동자가 한참 나하고 같이 일하다가 놀란 듯이 나에게 물었다. “어? 한국 사람이세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네, 제가 밭 주인이에요.” 그 노동자도 환하게 웃으며 손으로 자기 턱과 뺨을 만지며 나에게 물었다. “한국 사람인데 왜 이게(수염) 많아요?” 나는 답했다. “아버지는 더 많아요.”

그 노동자는 어느 나라에서 왔을까? 농업 쪽은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이 많고 건설 쪽은 중앙아시아나 동유럽 쪽 사람들이 많다. 어디서 왔느냐는 물음에 그 노동자는 “키흙키흙”이라고 답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옆에 있던 다른 노동자가 “키르기스스탄이요”라고 답했다.

예전에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장 강성용 교수가 <삼프로TV>에 출연하여 자신이 수염을 기르는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강성용 교수는 파키스탄 출장을 다니면서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수염을 기르면 현지인들과 교류하기 쉬워지고 여러모로 편해진다고 한다. 우선, 이슬람권의 경우 『코란』에 남자들보고 수염을 기르라는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남자와 여자의 구별을 하라는 구별은 있다고 한다. 선지자를 따라서 하는 것이 관행이라 남자들이 수염을 기른다고 한다. 또, 남자들끼리 수염을 기르면 친해지기 쉽다고 한다. 그들이 보기에 동양인은 그들과 체구도 다르고 인상도 달라 여성적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는데, 수염이 있으면 같은 남자라고 인식하게 되고 대화하기 편해진다고 한다.

내가 외국 생활을 해본 적이 있어서 잘 모르기는 하지만, 내가 수염이 많다는 이유로 마치 나를 외국에서 동포를 본 듯이 반가워하는 키르기스스탄 사람을 보니, 강성용 교수의 말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 링크: [삼프로TV] 스리랑카를 사이에 둔 미중전쟁의 배경 [강성용의 남아시아 인사이드 프롤로그-1]

( www.youtube.com/watch?v=lPEbK7En4mU )

(2022.10.23.)

2022/12/22

석면 제거 작업



요새 어떤 건설업체에서 우리집 밭과 인접한 산을 대지로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다. 건설업체에서는 자기네 공사하는 김에 우리집 토지 안에 있는 폐가의 울타리를 철거해주겠다고 했다. 철판을 이어붙인 울타리 사이에는 석면 슬레이트를 여러 개 끼어 있었다. 업체에 전적으로 맡겼다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르고 석면 슬레이트를 깨부술 판이었다. 그렇다고 석면이 몇 판 되지도 않는데 건설업체에서 석면 철거 업체를 부르면 건설업체에서 부담할 비용이 너무 클 것이었다. 어차피 내가 내년에 시청에 요청하여 석면 슬레이트 작업에 필요한 보조금을 받을 것이어서, 일단은 울타리 철거 작업 과정 중 나오는 석면 슬레이트를 폐가 창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아침 7시 30분쯤부터 외국인 노동자들과 폐가의 울타리를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울타리에 덩굴식물과 나무가 엉켜있어서 작업하기 곤란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낫질을 하는데 잘 못해서 내가 덩굴식물 등을 제거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철판 등을 어디로 옮겨야 하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판을 하나씩 떼어내서 나에게 주면 내가 알아서 정리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철판과 플라스틱 등을 따로 쌓아놓았다. 그러면서 석면 슬레이트는 절대로 부수지 말고 그대로 나에게 달라고 했다. 나는 석면 슬레이트를 받아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창고로 옮겼다.

작업이 다 끝나고 나서 어떤 외국인 노동자가 나에게 물었다. “사장님, 그거 비싼 거예요?” 내가 하도 조심스럽게 옮기니까 비싼 거라서 그런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 노동자에게 석면이 얼마나 위험한 물질이며, 그러한 물질을 과거에는 왜 사용했고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등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영어로는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석면이 영어로 무엇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말했다. “It is cheap but very dangerous thing causing lung cencer.”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서 왜 그런 방식으로 영어를 사용했는지 알 것 같았다.

위험한 물질이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운반하는 것을 보고 비싼 것이어서 저런다고 생각하다니.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에 아무리 경고 메시지를 남겨놓아도 1만 년 뒤의 사람들은 보물이 묻힌 곳이라서 그런 표시를 남겼다고 오해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2022.10.22.)


2022/12/21

불매운동에 관한 괜한 걱정

불매운동해서 회사 망하면 관련된 죄 없는 사람들이 피해 본다고 하는 약간 한심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겠으나, 그건 마치,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공부를 한 적 없는 학생이 <수학의 정석> 맨 앞 장을 펴서 집합 단원의 문제를 풀면서 ‘나 공부 너무 잘하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의대 가게 되면 어떡하지? 나 국문과 가고 싶은데’ 하는 망상을 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도대체 그들 중 단합해서 어떤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2022.10.21.)

[외국 가요] 빌리 홀리데이 (Billie Holiday)

Billie Holiday - I’m a fool to want you ( www.youtube.com/watch?v=qA4BXkF8Dfo ) ​ Billie Holiday - Blue Moon ( www.youtube.com/watch?v=y4b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