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rraine Daston and Peter Galison (1992), “The Image of Objectivity”, Representation, No. 40, pp. 81-128. ]
1. The Talismanic Image
2. Truth to Nature
3. Objectivity and Mechanical Reproduction
4. Objectivity Moralized
1. The Talismanic Image
- 이 글에서 대스턴과 갤리슨은 과학적 객관성의 한 형식인 “기계적 객관성(mechanical objectivity)”의 등장과 그 특징을 다룬다. 이들은 과학에서의 객관성을 별개의 여러 가지 요소-관념들이 층위를 이루며 혼합되어 성립된 개념으로 본다. 즉, 이러한 객관성은 여러 가지 다른 형식의 객관성들이 섞여져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이며, 이 중 기계적 객관성은 19세기 중반 이후에 나타난 객관성을 이루는 한 요소이자 또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다.
- 이를 보이는 과정에서 그들은 과학 도감(atlas)의 이미지들에 집중한다. 이는 도감에 실리는 과학적 이미지에 당대의 과학적 객관성이 매우 강하게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도감은 과학적 객관성의 새로운 조류에 대한 ‘선언서’이자 ‘지참인’이었다.
2. Truth to Nature
- 19세기 중반 이후 도판에 나타난 새로운 객관성의 양식을 포착하기 위해, 대스턴과 갤리슨은 먼저 이 시기 이전 도감 제작자들이 도감 제작에 반영했던 다른 관념 및 관행을 제시한다.
- 18세기부터 19세기 중엽까지의 도감 제작자들은 특정한 현상을 선택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자격 있는 도감 제작자의 선택과 판단을 중요시했다.
- 도감 제작자들은 폭넓은 경험과 지식을 통해 개별적인 개체들 이면의 본질과 보편적 진실을 포착해내고 그것을 도감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도감에 그려 넣은 그림은 존재하는 개개의 개체들의 특징을 포괄할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나 개체가 지닐 수 있는 가장 완전하고 훌륭한 이상적인 상, 또는 유사한 대상들을 대표할 수 있는 특징을 담는 상이었다. 이러한 ‘유형’을 결정하는 주체는 도감 제작자였으며, 그들의 주관과 해석은 그 과정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 도감의 이미지는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정받은 도감 제작자의 판단에 의해 개체를 대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들이 ‘자연에 충실함(truth to nature)’라고 표현한 이 시기의 경향이 결코 사실성을 저버린 것이 아니며, 오히려 사실성을 엄밀히 추구하고자 한 결과임을 지적한다. 그들은 외양 변화 배후의 실재를 포착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자연의 사실적 모습에 충실한 태도라고 믿었다.
3. Objectivity and Mechanical Reproduction
- 그러나 저자들에 따르면, 19세기 말에 도감 제작자들은 유형과 전형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데 내재한 주관성을 우려하고 그것을 부정하려 했다. 그들은 해석과 선택, 판단을 배제할 필요가 있는 주관적인 유혹으로 간주했으며 그와 같은 인간의 개입을 과학적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축출하고자 했다.
- 이러한 시도는 먼저 도감에 실릴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에게 향했다. 카메라 옵스큐라나 유리판을 이용하는 등의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방식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도감 제작자들은 화가에 의한 주관적 변형의 여지를 만들지 않으려 했다. 기계적인 방식을 통해 주관으로부터의 해석이나 개입 등을 차단하려는 태도는 곧 과학자 자신에게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 19세기 말 이후 자기 규율(self-discipline)과 극기(self- surveillance), 기계의 이용은 도감의 제작에 깊게 뿌리내렸다. 특히 기계는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해석에 오염되지 않는 영상을 기약해줄 수 있다고 받아들여져 인간의 의지를 보완할 수 있는 도구였다.
4. Objectivity Moralized
- 저자들이 한 가지 강조하는 점은, 이 당시의 ‘기계적 객관성’은 주관의 개입을 저지하는 일을 상의 정확성을 추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이다.
- 사진이 주관성이 개입되지 않은, 기계적 객관성의 상징이 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사진 그 자체는 실제와 완벽히 일치한다는 인정을 완벽히 얻지 못했고, 따라서 객관성에 대한 논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또한 한 장의 사진은 그것 자체로 자연의 수많은 변이를 대변할 수 없었으며, 개개의 사진만을 통해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구별하는 일도 힘든 일이었다. 이로 인해 각각의 사진들의 패턴을 분석하는 능력을 독자에게 요구하는 또 다른 도감을 둘러싼 경향이 등장하기도 했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진은 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자동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개인적 판단을 배제할 수 있다고 여겼다. 기계적 객관성은 핵심은 과학 활동에서 주관을 배제하는 일이었다. 저자들은 자기 규율과 자기 절제에 대한 장기적인 요구가 이와 같은 주관성의 개입을 거부하는 기계적 객관성을 낳았으며, 이 객관성의 한 형식이 그 시대의 덕목(morality)으로 자리매김해 나갔다고 본다.
(2015.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