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1

시의성 있는 연구



과학사 연구자하고 이야기하다가 어쩌다 “시의성 있는 연구”라는 말을 언급하게 되었다. 그 말을 듣고 문득 ‘시의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들 시의성, 시의성 말은 많이 하는데 정작 그 시의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사람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어떤 연구가 시의성 있는 연구라고 한다면, 그것은 해당 연구가 나온 시점이 그 연구의 가치와 유관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코로나19에 대한 아무리 완벽한 연구라고 하더라도 2050년쯤에 나오면 시의성이 있다고 할 것 같지 않다. 코로나19에 대한 논의 요구가 많을 때 코로나19에 관한 논문이 나와 주어야 해당 논문의 가치가 극대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시의성’은 ‘논의 시점과 관련된 시의적절성’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구가 나와야 할 때 나왔다는 식의, 과일로 치면 제철 과일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그러한 적절한 논의 시점이라는 것은 정확히 어떤 논의에 관한 시점인가? 보통은 언론 보도량이 늘어나는 시점과 밀접하다. 언론에서 어떤 주제에 대한 보도량이 증가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언론 보도가 잘 안 나오게 되는 시점까지를 가리킨다. 언론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란, 선구적인 연구라서 학계의 소수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연구도 아니고, 한 분야에서 벌어진 논쟁들을 종합하고 마무리 짓는 연구도 아니다. 사람들이 저게 뭐냐고 묻기 시작하고 기자들도 덩달아 허둥거릴 때부터 사람들의 흥미도 떨어지고 기자들도 새로운 소재를 찾아 더 이상 취재하지 않을 때까지를 가리킨다. 이러한 시기에 사람들에게 뭔가를 설명해주거나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연구를 두고 시의성 있는 연구라고 부르는 것이다.

시의성 있는 연구라는 것은 일단 급박한 사안을 다루는 연구는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든지, 두 나라의 군사적 충돌이 임박했다든지 하는, 시급을 다투는 일에 대해서는 시의성 있는 조치가 있을 뿐이지 시의성 있는 연구는 있을 수 없다. 그러한 문제를 예견하고 해결 방안까지 마련한 연구가 있을 수는 있으나 그런 연구를 시의성 있는 연구라고 부르지 않는다. 셰일가스 추출 기술에 관한 연구처럼, 상용화되기 10년 전에 개발된 기술에 관한 연구도 시의성 있는 연구는 아니다. 그런 것이 있는지 알기나 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 아닌가? 그러니 시의성 있는 연구라는 것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실효적인 해결책에 관한 것도 아니다.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기술에 관한 연구라고 해도, 그런 연구는 좋은 연구나 뛰어난 연구라고 하지 시의성 있는 연구라고 하지는 않는다.

정리하자면, 시의성 있는 연구라고 하는 것은 급박한 사안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급박한 사안과 관련된다고 해도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이 쓸데없이 보채기 시작할 때 남들보다 앞서서 이야기하기 시작해서 유행이 끝나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시의성 있는 연구라고 불리는 것은, 무엇이 연구인지도 모르고 무엇이 연구가 아닌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고 자빠졌을 때 그 사람들을 달래주는 연구이다. 과연, 시의성 있는 연구라고 불리는 것 중에 정상적인 연구가 얼마나 될까?

평범한 연구자라면 연구를 완성하는 데 일정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보다 짧은 시간 안에 연구를 완성하려면 평범한 연구자보다 훨씬 재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평범한 연구자가 시의성 있는 연구를 제대로 완성하려면 어느 시점에 해당 연구가 필요할지 예상하여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연구의 완성 시점과 연구의 필요 시점이 운 좋게 맞아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시의성 있는 연구라는 것은 무엇이 연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찡찡거릴 때 달래는 연구라서,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지, 왜 연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시의성 있는 연구라고 불리는 것이 가치 있는 연구가 되려면, 왜 연구해야 하고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대상에 대하여 (1) 남들보다 짧은 시간에 그럴 법한 연구를 뚝딱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연구자가 재능이 있거나 (2) 연구 능력은 평범하지만 미래 전망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혜안이 있어서 미리 연구를 준비했거나 (3) 연구에 큰 재능도 없고 미래를 내다볼 혜안도 없지만 운이 좋아야 한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는데 자기 연구가 시의성도 있고 가치도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사기꾼일 것이다. (1)에 해당되는 사람도 적고 (2)에 해당되는 사람도 적고 (3)에 해당되는 사람도 적으니, 시의성 있는 연구라고 하는 것들 중 극소수만이 가치 있는 연구일 것이다. 그런데 죄다 자기 연구를 시의성 있는 연구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겠는가?

시의성 있는 연구라고 불리는 것들 중 상당수가 신문이나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사례들을 병렬적으로 이어놓은 다음 유행어 몇 개 뿌려놓거나 하나마나한 소리나 하는 데는 위와 같은 배경이 있을 것이다. 어떠어떠한 사례가 있다는 것까지는 알겠으나 이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해놓은 것이 연구라고 우기려면 무슨 무슨 함축이 있다고 주장해야 할 텐데 쥐뿔이나 그런 함축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대충 얼버무린다. 존재론적인 함축이 있다는 둥, 형이상학적인 함축이 있다는 둥, 윤리성을 보여준다는 둥, 무언가 근본적인 것에 대한 함축이 있는 듯 폼을 잡고는 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논문을 끝낸다. 애초에 어떠한 함축이 있었으면 그러한 함축이 무엇이라고 말했을 것이지, 티저 광고도 아니고 단지 함축이 있다고만 하고 논문을 끝낼 리는 없다. 운만 띄워놓고는 그러한 함축이 무엇인지 아무런 설명하지도 않는 것은, 애초부터 보여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모두 연구자 개인의 문제이겠는가?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소신 있는 미친놈이거나 얼간이거나 타고난 사기꾼이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굳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시의성 있는 연구라고 불리는 것을 해야 하나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전부터 해오던 연구가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진척이 늦더라도 그걸 계속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사람이 적성과 재능에 맞게 살기 마련이니 타고난 사기꾼들이 사기 치는 것까지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만, 정직한 사람들이 연구비 때문에 원하지도 않고 가치도 없는 일을 하게 만들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관이나 단체는 연구비를 시의성 있는 연구에 주로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 뱀발

혹시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봐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 글은 나와 대화한 과학사 전공자를 비꼬려고 쓴 것이 아니라, 대화 중에 나온 이야기를 정리해서 쓴 것이다. 당시 과학사 연구자는 “시의성 있는 연구”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나의 해석을 듣고 배를 잡고 웃었고, 그걸 보면서 나도 내가 한 말을 그냥 농담으로 흘리지 말고 정리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021.04.01.)


2021/05/31

[과학사] H. Brown (1976), “Galileo, the elements, and the tides” 요약 정리 (미완성)

        

[ Harold I. Brown (1976), “Galileo, the elements, and the tides,” SHPS 7, pp. 337-351. ]

  

  

브라운은 갈릴레오의 조수에 관한 논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론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함.

더 나아가 이러한 관련이 갈릴레오의 운동에 대한 이론과 조수에 대한 이론이 모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함.

  

이전 역사가들은 조수의 이론이 갈릴레오 운동 이론과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함.

Clavelin은 『대화』에서 갈릴레오가 둘째 날 주장했던 생각을 넷째 날에는 포기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함.


그러나 브라운은 갈릴레오가 둘째 날과 넷째 날 모두 일관된 주장을 하며, 오히려 조수에 대한 이론이야말로 코페르니쿠스의 견해에 관한 자신의 주장의 정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함.

갈릴레오는 분명히 둘째 날에 자연에서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문제로서 우주에 대한 구조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또 다른 발견으로서 바다의 밀물과 썰물에 관해 언급했음.

그리고 셋째 날, 갈릴레오는 이전에 논의에 대한 목적이 조수를 위한 것이었음을 재차 강조했다는 것

또한 Shea는 갈릴레오가 조수 이론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고 지적했음.

따라서 브라운은 이 논문을 통해 『대화』의 두 중요한 부분, 그의 운동에 대한 이론과 조수에 대한 이론이 일관성이 있었음을 보이고자 함.

또한 이를 통해 갈릴레오 물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이 전제되어 있었음을 강조함.

이것은 갈릴레오가 원소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단순하게 적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구사상을 새로운 사상 속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

 

갈릴레오는 다른 운동적인 속성을 가진 다른 원소들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계속 유지했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속에 여전히 존재했음.

그러나 갈릴레오의 물질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론과 다른 점은 땅과 물에 대해 다른 운동의 속성을 부여했다는 점.

갈릴레오는 땅은 자연스런 원운동을 하면서 각인된 원운동을 보존하며, 물은 자연스런 원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각인된 원운동을 보존하지 않는다고 함.

『대화』에서 공기에 대한 갈릴레오의 실험 역시 이러한 물질론에 대한 것이다. 운동의 속성을 가진 세 번째 요소인 공기는 흙과 물과는 다름.

자연스런 운동도 없고 운동을 보존할 능력도 없음.

그리고 갈릴레오는 이러한 속성을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는 현상으로서 제시한 것.

갈릴레오는 지구의 운동을 증명하기 위해 새 물리학에서 서로 다른 운동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새롭게 정의함.

운동을 보존하는 능력에 따라 자연스러운 운동을 가진 흙, 운동을 보존할 능력은 있지만 자연스러운 운동이 부족한 물, 그리고 양쪽 모두가 부족한 공기

이처럼 갈릴레오는 조수 현상을 이러한 새로운 운동 체계 내에서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제시한 것.

그리고 이러한 갈릴레오의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이는 『대화』를 통해 일관되게 주장됨.

 

  

(2021.05.31.)

    

2021/05/30

[서가명강] 개인의 탄생 - 서울대 철학과 김기현 교수



1강. 나는 죽을 때까지 나를 다 알지 못한다

( www.youtube.com/watch?v=vYy9wGIKwWY )

2강. 우리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 www.youtube.com/watch?v=hFa87SS8msE )

3강. 하나님이 유대인만의 것이 아니라고?

( www.youtube.com/watch?v=-n4U2ubEdP0 )

4강. 중세, 암흑기인가? 성숙기인가?

( www.youtube.com/watch?v=SFC8jCgir04 )

5강. ‘개인’이라는 꽃이 피어나다

( www.youtube.com/watch?v=tBkeD2dXEIM )

6강. 쾌락을 바라보는 철학적 시선들

( www.youtube.com/watch?v=tBW7b07qDV4 )

7강. 인간의 근본을 흔드는 AI의 등장

( www.youtube.com/watch?v=GeT43Y4jLvo )

8강. 지능적인 로봇과 감정적인 로봇 중 어느 것이 더 위험할까?

( www.youtube.com/watch?v=GxsySQd7SUI )

(2021.05.30.)


[외국 가요] 빌리 홀리데이 (Billie Holiday)

Billie Holiday - I’m a fool to want you ( www.youtube.com/watch?v=qA4BXkF8Dfo ) ​ Billie Holiday - Blue Moon ( www.youtube.com/watch?v=y4b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