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1

[경제학의 철학] Hoover (2001), Ch 11 “Causality in Macroeconomics” 요약 정리 (미완성)

    

[ Kevin D. Hoover (2001), Causality in macroeconom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283-286. ]

  

  



p.283  

철학자 흄은 인과에 비관, 거시경제학자 흄은 인과에 낙관

post-Humean 전통은 환원주의, 후버는 이에 반대


p.284 

후버: structure는 인과의 근본개념이며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흄의 실수는 감각경험 없는 connection을 알 수 없다는 것인데, 우리는 감각 경험 없이 아는 것이 많다.

예) 전자


p.284 

두 가지 질문

(1) 분명한 인과적 설명을 하기 위해서, 구조 개념을 적절히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2) 인과성이 거시경제학 분석에 얼마나 적합한가?

두 질문은 연결된다.


p.284 

여기서 연결되는 두 질문

(1) 거시경제학에 관한 인과 구조적 설명이 있을 수 있는가?

(원인과 결과라고 할 만한 거시경제학의 요소가 있는가?)

(2) 어떤 제약이 거시경제학을 인과의 사용 가능한 특성에 놓는가?

  

  

(2015.02.21.)

    

2020/06/30

정◯◯과 괴벨스



글쓰기에서 두 대상을 비교/대조하는 것은 해당 대상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설명하기 위해 두 대상에서 추출한 요소가 해당 설명에서 핵심적이거나 유관한지 여부가 글쓰기의 성패를 좌우한다.

<한겨레> 정◯◯ 기자가 쓴 “윤석열과 히틀러”라는 칼럼을 보자.(원래 제목은 “윤석열과 히틀러”였으나 이후 온라인판에서 “윤석열리스크”로 제목이 바뀌었다) 윤석열과 히틀러는 어떤 점에서 비슷한가? 정◯◯ 기자에 따르면, 윤석열은 2차 대전 독일군이 전격전을 하듯 조국・정경심 교수에 대한 수사를 전격적으로 했고, 독일 육군이 독일 공군의 지원을 받듯 언론의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둘의 공통점은 이게 전부다. 검찰총장을 비판하려면 똑바로 해야지, 이게 정상적인 글인가?

어떤 대상이든 무수히 많은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에, 아무런 고려 없이 두 대상을 고르기만 해도 둘 사이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공통점을 가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두 대상의 유관하지 않은 요소만 놓고 비교/대조하기만 해도 망한 글을 기계적으로 산출할 수 있다.

“정◯◯과 이완용”이라는 글을 쓸 수도 있다. 이완용이 엘리트 코스를 밟았듯이 정◯◯ 기자도 서울대 학부를 나와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정◯◯ 기자가 매국노의 행보를 걷지 않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정◯◯과 김의겸”이라는 글을 쓸 수도 있다. 두 사람 다 기자이고 같은 언론사 소속이었다. 정◯◯ 기자도 소속 조직의 안위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도모한 인물인지 의심할만하다.

“정◯◯과 히틀러”라는 글을 쓸 수도 있다. 히틀러가 독소전쟁에서 헛발질을 하듯 정◯◯ 기자는 지면에서 헛발질을 했다. 히틀러가 총통으로서 나치 독일의 패망을 불러왔듯 정◯◯ 기자가 편집장으로서 <한겨레>의 패망을 불러올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정◯◯과 심영”이라는 글을 쓸 수도 있다. 심영이 학생과 시민을 현혹하는 것처럼 정◯◯은 민주당 지지자들을 현혹하는 글을 쓴다. 심영이 김두한 패에게 당했던 것에서 교훈을 얻어 정◯◯ 기자도 영 좋지 않은 곳에 부상을 입지 않도록 보호대를 착용해야 할 것이다.

“정◯◯과 김대중”이라는 글을 쓸 수도 있다. 여기서 김대중은 대통령이 아니라 조선일보 주필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을 보였지만 언론인으로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못 쓴 글을 악용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수준 이하의 글을 썼지만 지지자들에게 무비판적인 옹호를 받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가만, 이건 맞는 비교/대조인 것 같다.

하여간, 나는 <한겨레>의 “윤석열과 히틀러”을 읽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경향신문>의 “한 달 동안 쳐놀고 재난학교나 만들자”는 칼럼을 읽었을 때와 비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재난학교 칼럼은 신문사가 칼럼진을 섭외하는 과정에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음을 보여주지만, “윤석열과 히틀러”는 신문사 내부에 좋은 글을 구별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음을, 그리고 그 사람이 뭔가 큰 권한을 가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 기자가 그 동안 글쓰기 칼럼을 연재하고 글쓰기 교육 서적도 냈다는 사실이다. 한 신문사에서 글쓰기 칼럼을 맡는 사람의 글이 이 정도라는 것은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문의 위기가 과연 매체 환경 변화에만 기인한 것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링크: [한겨레] 윤석열과 히틀러 / 정혁준

( 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42125.html )

(2020.04.30.)


2020/06/29

접두사 ‘새-’와 ‘신-’의 차이



경제학 교과서를 보면 학파 이름 앞에 ‘새-’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경우가 있고 ‘신-’이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경우가 있다. ‘새-’나 ‘신-’이나 둘 다 새롭다는 뜻인데, 둘의 차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두 접두사는 영어에서 new와 neo의 구분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neo는 ‘신-’으로 번역하고, new는 ‘새-’로 번역한다. 신-고전학파(Neoclassical), 새-고전학파(New classical), 새-케인스학파(New Keynesian economics), 신-케인스학파(Neo-Keynesian economics)라는 번역어는 이러한 구분을 따른다.

‘신천지’에서 ‘새천지’라는 것이 나왔다고 한다. 바이러스 변종처럼 이단도 변종이 생기는 모양이다. BBC 같은 데서는 신천지의 뜻이 New Heaven and Earth라고 해설한다고 하는데, 혹시라도 새천지가 신천지만큼 힘을 얻으면, Neo-Heaven and Earth와 New heaven and Earth로 구분해야 할 것 같다.

(2020.04.29.)


2020/06/28

[외국 가요] 프리템포 (FreeTEMPO)



FreeTEPMO - Sky High

( www.youtube.com/watch?v=M6liO88pir4 )

FreeTEPMO - Immaterial White

( www.youtube.com/watch?v=ISsjyWLIQcA )

(2022.11.29)


내 후배는 왜 심리학과에 진학했을까?



나를 보면 영감이 떠오른다고 해서 나를 ‘뮤즈’라고 부르는 후배가 있다. 대학원을 배경으로 한 각본을 쓴다고 했을 때 설마 정말 쓰겠나 싶었는데, 정말 쓸 생각인 모양이다.

주말에 만났을 때 후배가 내가 다니는 대학원에 대하여 이런저런 것을 물어서 나는 아는 대로 대답했다. ‘과학철학’은 과학이냐 철학이냐, 과학철학에서 과학은 철학의 수식어니까 철학이다, 철학과에 있으면 문과 아니냐, 나 빼놓고 거의 다 이공계 출신이다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 후배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멀쩡히 과학 하던 사람들이 철학을 왜 해요?” 그러게 말이다. 나도 궁금해서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보았었다. 취업 안 되어서 잠시 비바람 피하러 대학원에 온 사람들도 아니고, 좋은 직장을 가려고 하면 갈 수 있고 전문대학원을 가려고 하면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왜 대학원에 왔나. 심지어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왜 대학원에 왔나. 몇 년 간의 현지조사 끝에 도달한 결론은 ‘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별 이유가 없다는 나의 대답에, 후배는 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대학원 가는 데 어떻게 별 이유 없이 가죠? 나도 심리학과 갈 때 『설득의 심리학』을 읽고 갔는데?” 후배는 고등학교 때 『설득의 심리학』을 읽고 심리학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후배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후배는 심리학과를 다녔지만 자신의 마음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후배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볼 때는 네가 그 책 읽고 심리학과 가게 되었다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생각해봐. 네가 네 남편하고 결혼했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둘의 사정은 전혀 모르지만 아마 그런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결혼하는 데도 별 이유가 없는데, 그까짓 책 한 권 읽고 그 과에 가야할 대단한 이유가 생기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나는 결혼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 결혼할 때 어떤 방식의 의사결정이 일어나는지는 모른다. 다만 나름대로의 추론을 해보자면 이렇다. 대부분의 부부들에게 배우자가 꼭 그 남자이거나 그 여자이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로맨틱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외모가 개연성인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부부들은 신랑이든 신부든 둘 다 못 생겼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상대방의 취향이나 성향이 자기와 잘 맞네 어쩌네 해도, 사람 취향이나 성향이 다양해봤자 몇 종류 안 된다. 성향 맞는 것이나 신발 크기 맞는 것이나 크게 다를 리 없다. 동화에서나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가 신데렐라의 발에만 맞는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원하는 조건과 적당히 맞으니까 결혼하는 것이지 무슨 대단한 사연이 있어서 결혼하겠는가. 어차피 이놈 아니면 저놈이랑 결혼하는 것 아닌가. 남들은 경험으로 아는 것을, 나는 이런 식으로 추론해야만 한다는 것이 슬프기는 하다. 하여간 내 말을 듣고 유부녀인 후배는 자기 무릎을 쳤다. “아, 그러네. 심리학과에 갈 이유가 없었네.”

아마도 후배는 고등학생 때 이랬을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에 가기 위해 수시 원서를 써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 가야 하니까 대학에 가는 것이다. 대학에 안 가면 인생이 망할 것 같고, 대학 갈 성적도 되니까 대학에 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갈 것인가. 여기서 고등학생들의 자기기만이 시작된다. 어떤 과를 가야만 하는 이유가 없는 애한테 굳이 어떤 과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오라는 것이다. 애초부터 그딴 이유는 없었는데 억지로 이유를 만들다가 어느덧 정말로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고 믿어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어차피 나이 먹다 보면 때도 묻고 너도 속이고 나도 속이게 되기 마련인데, 굳이 어른들은 어린 학생들한테 통과의례처럼 자기기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마도, 대학 입시에서 수시가 확대되면서 그만큼 이러한 자기기만도 전국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2020.04.28.)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