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면 영감이 떠오른다고 해서 나를 ‘뮤즈’라고 부르는 후배가 있다. 대학원을 배경으로 한 각본을 쓴다고 했을 때 설마 정말 쓰겠나 싶었는데, 정말 쓸 생각인 모양이다.
주말에 만났을 때 후배가 내가 다니는 대학원에 대하여 이런저런 것을 물어서 나는 아는 대로 대답했다. ‘과학철학’은 과학이냐 철학이냐, 과학철학에서 과학은 철학의 수식어니까 철학이다, 철학과에 있으면 문과 아니냐, 나 빼놓고 거의 다 이공계 출신이다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 후배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멀쩡히 과학 하던 사람들이 철학을 왜 해요?” 그러게 말이다. 나도 궁금해서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보았었다. 취업 안 되어서 잠시 비바람 피하러 대학원에 온 사람들도 아니고, 좋은 직장을 가려고 하면 갈 수 있고 전문대학원을 가려고 하면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왜 대학원에 왔나. 심지어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왜 대학원에 왔나. 몇 년 간의 현지조사 끝에 도달한 결론은 ‘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별 이유가 없다는 나의 대답에, 후배는 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대학원 가는 데 어떻게 별 이유 없이 가죠? 나도 심리학과 갈 때 『설득의 심리학』을 읽고 갔는데?” 후배는 고등학교 때 『설득의 심리학』을 읽고 심리학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후배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후배는 심리학과를 다녔지만 자신의 마음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후배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볼 때는 네가 그 책 읽고 심리학과 가게 되었다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생각해봐. 네가 네 남편하고 결혼했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둘의 사정은 전혀 모르지만 아마 그런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결혼하는 데도 별 이유가 없는데, 그까짓 책 한 권 읽고 그 과에 가야할 대단한 이유가 생기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나는 결혼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 결혼할 때 어떤 방식의 의사결정이 일어나는지는 모른다. 다만 나름대로의 추론을 해보자면 이렇다. 대부분의 부부들에게 배우자가 꼭 그 남자이거나 그 여자이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로맨틱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외모가 개연성인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부부들은 신랑이든 신부든 둘 다 못 생겼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상대방의 취향이나 성향이 자기와 잘 맞네 어쩌네 해도, 사람 취향이나 성향이 다양해봤자 몇 종류 안 된다. 성향 맞는 것이나 신발 크기 맞는 것이나 크게 다를 리 없다. 동화에서나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가 신데렐라의 발에만 맞는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원하는 조건과 적당히 맞으니까 결혼하는 것이지 무슨 대단한 사연이 있어서 결혼하겠는가. 어차피 이놈 아니면 저놈이랑 결혼하는 것 아닌가. 남들은 경험으로 아는 것을, 나는 이런 식으로 추론해야만 한다는 것이 슬프기는 하다. 하여간 내 말을 듣고 유부녀인 후배는 자기 무릎을 쳤다. “아, 그러네. 심리학과에 갈 이유가 없었네.”
아마도 후배는 고등학생 때 이랬을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에 가기 위해 수시 원서를 써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 가야 하니까 대학에 가는 것이다. 대학에 안 가면 인생이 망할 것 같고, 대학 갈 성적도 되니까 대학에 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갈 것인가. 여기서 고등학생들의 자기기만이 시작된다. 어떤 과를 가야만 하는 이유가 없는 애한테 굳이 어떤 과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오라는 것이다. 애초부터 그딴 이유는 없었는데 억지로 이유를 만들다가 어느덧 정말로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고 믿어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어차피 나이 먹다 보면 때도 묻고 너도 속이고 나도 속이게 되기 마련인데, 굳이 어른들은 어린 학생들한테 통과의례처럼 자기기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마도, 대학 입시에서 수시가 확대되면서 그만큼 이러한 자기기만도 전국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2020.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