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1

대학원의 카이사르



동료 대학원생이 기말보고서를 어떤 방향으로 쓸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미 자료는 충분히 모아놓았고 읽을 만큼 읽었는데 어떤 방향으로 논지를 구성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럴 법한 방향으로 논지를 구성하려니 이미 선행 연구가 충분히 있고 선행 연구를 피해서 논지를 구성하려니 논지가 전혀 그럴듯하지 않다고 했다. 며칠 고민하던 그 대학원생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님, 결국 그 방향(선행 연구를 피하는 방향)으로 해야겠어요. 루비콘 강을 건너기로 했습니다.” 루비콘 강을 건너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보고서를 완성하면 대학원이 비참해지고 보고서를 완성하지 못하면 네가 파멸하겠구나.”

학기말이라서 나도 뭔가 하고 있기는 있는데 이러다가 내가 파멸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냥 대학원이 비참해졌으면 좋겠다.

(2018.06.21.)


2018/08/20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 공부 못하는 사람이 더 힘들다



사업하는 사람한테 사업하면서 어떨 때 제일 힘드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비슷한 답변을 한다고 한다. 사업이 안 될 때 제일 힘들다는 것이다. 여기서 힘들다는 것은 마음이 안 좋다, 가슴이 답답하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몸이 힘들다는 것이다. 사업이 잘 되면 사업자의 노동량과 노동시간이 늘고 사업이 안 될 때는 그 반대인데, 오히려 사업이 잘 될 때는 힘들 줄 모르고 일하고 사업이 안 될 때 몸이 더 힘들다고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꼭 공부 못했던 어른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까먹고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한테 공부도 못 하는 놈이 뭐 그렇게 힘들어하느냐고 타박했다. 공부를 못하는데도 힘든 것이 아니라 공부를 못 하니까 힘들었던 것이다. 공부 못하는 아이를 둔 부모들 중 일부는 어느 집 아무개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공부를 잘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 자식을 들볶는데, 사실 그 우등생은 공부를 잘 하니까 힘이 나서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대학원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나는 왜 힘든가. 변변하게 하는 것도 없고 보고서도 별 진척이 없는데 왜 힘든가. 공부를 못 하니까 힘든 것이다. 공부가 힘들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데이비드 루이스 이야기를 한다. 데이비드 루이스는 당뇨병으로 고생하면서도 몸에 주사바늘 같은 것을 꽂고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루이스의 일화가 시사하는 바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 아픈 몸으로 연구를 계속한 것도 대단한 것이겠지만, 정말 대단한 점은 아픈 몸으로 연구를 진행할 정도로 연구가 잘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2018.06.20.)


2018/08/19

[일화] 김정운 박사가 독일 대학에서 전임강사를 한 이야기

■ 애플 컴퓨터를 구입하다

- 김정운 박사가 독일에서 석사 논문을 쓸 당시는 컴퓨터가 일반화되지 않았음.

• 일부 학생들이 타자기 대용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수준

• 김정운 박사도 286 컴퓨터를 타자기 대용으로 사용했고, 중요한 자료 정리 작업의 대부분은 수작업(카드를 이용한 자료 정리)으로 했음.

- 김정운 박사는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카드 2천 장을 체계적으로 작성했음.

• 논문을 작성할 때까지는 이 작업이 효과적이었음.

- 문제는 박사 논문의 체계를 세울 때 일어남.

• 석사 논문에 맞게 분류된 카드를 박사 논문 체계에 맞게 재분류하려면 핵심어부터 다시 정의해야 했음.

- 몇 달 동안 카드 2천 장과 씨름을 하던 김정운 박사는 파일메이커(데이터베이스 응용프로그램)를 사용하기 위해서 애플 컴퓨터를 구입함.

• 당시 한국 돈으로 600만원(애플 컴퓨터 400만 원, 프로그램 200만 원)

- 당시 김정운 박사는 주말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200-300만 원을 벌었는데, 아내의 아르바이트 급여까지 털어서 애플 컴퓨터를 구입함.

■ 학교 연구소 정식직원이 되다

- 김정운 박사가 파일메이커 프로그램에 익숙해졌을 때쯤, 지도교수가 운영하는 학교 연구소에서 자료 정리를 위한 보조 인력을 구했음.

- 당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데이터테이스 프로그램을 김정운 박사가 자유롭게 사용하자 지도교수는 김정운 박사를 연구소의 정식직원으로 채용함.

- 김정운 박사는 필요한 자료를 부탁하면 10분 내에 처리가 되도록 하는 자료 관리 체계를 구축했고, 당시 첨단 기자재의 사용방식을 간편한 매뉴얼로 작성했음.

- 그러자 연구소에서 문제가 생기면 김정운 박사를 찾았음.

• 다른 학생들은 지도교수와 면담하려면 한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했는데, 지도교수는 그를 하루에도 몇 번씩 불렀음.

• 지도교수는 연구소의 전체 예산 운영도 김정운 박사에게 맡겼고, 그가 원하면 최신형 노트북 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게 해줌.

■ 독일 대학의 전임강사가 되다

- 박사논문이 끝날 무렵, 교수는 김정운 박사에게 전임강사 제의함.

• 당시 독일 이민법에 따르면 외국인은 박사학위를 받으면 곧바로 독일을 떠나야 했는데, 그를 붙잡기 위해 지도교수는 그를 전임강사로 만들고자 함.

- 독일 대학의 전임강사는 정식 공무원이라서 김정운 박사가 임용되려면 법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지도교수가 이를 해결함.

• 베를린 이민청장이 이 문제 때문에 베를린 자유대학 총장을 고소하기까지 했음.

- 당시 김정운 박사의 독일어 발음이 문제가 되기도 했음.

• 김정운 박사와 전임강사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독일인은 그의 독일어 능력을 문제 삼아 대학본부에 조사를 정식 요청했음.

- 대학 본부의 심의회가 열리기 전날, 지도교수는 그를 자신의 집에 불러서 비디오로 발표하는 것을 찍어가며 발음을 연습시킴.

* 출처: 김정운, 『노는 만큼 성공한다』 (21세기북스, 2005), 113-119쪽.

(2015.07.14.)

2018/08/18

너 요즘에 막노동하냐



학부 선배, 동기와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식사에 반주를 곁들였다.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회사원인 동기가 이렇게 말했다. “와, 너 요즘에 막노동하냐? 무슨 술을 이렇게 먹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응, 곧 기말보고서를 써야 하거든.”

(2018.06.18.)


2018/08/17

[과학사] 피터 메이시아스, “1600~1800년의 과학과 기술상의 변화” 요약 정리 (미완성)

  
[ Peter Mathias (1972), “Who Unbound Prometheus? Science and Technical Change, 1600—1800”
김영식, 『역사 속의 과학』 (창작과비평사, 1983) ]
  
  
과학과 기술, 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한 17-18세기는 과학적 지식과 공업기술이 가지고 있는 관계에 대해 경제사학자와 과학사학자 과학 쪽에 서서 둘 사이의 관계를 일반적으로 고찰하는 학자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의 과학지식과 기술혁신에 있어서 산업혁명까지의 일련의 다면적인 역사적 과정을 하나의 원인과 하나의 변수를 지닌 현상으로서 분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결국 이러한 분석에 있어서는 증거가 다루기 까다롭고 관련된 직접적 간접적 상하관계가 미묘하기 때문에 현상에 기여하는 원인들의 정량화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어떤 한 가지 해담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면에서 확연히 옳다는 것을 지적으로 만족스럽게 입증할 수 없다. 정량화가 되었다고 해서 명확한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기술혁신들의 집단에서 과학적으로 유도된 기술혁신들의 산술적 비율을 나타는 것이 명확한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닌 것이다. 또한 과학의 방법론이나 용어의 정의는 당시의 과학을 분석함에 있어서 문제가 된다. 현재적 관점에서 바라본 17-18세기의 과학에서, 특히 당시의 화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사이 비과학 등에 대해 평가하는데서 발생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과학과 공업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는 주장을 검토하고 그 주장의 한계를 고려한다. 저자가 밝히고 있는 답변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는 그 당시 과학과 공업 간 연관의 예를 찾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이 공업발전에 미친 영향이 다른 요인에 비해 얼마나 상대적으로 중요한가이다.

경제사적 관점에서 보면 과학과 공업 간 연관은 밀접하게 나타난다. 과학자, 산업가, 관료 등 많은 사람들이 17세기 이래 계속해서 그 연관이 중요하며 장려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했으며, 실제로 당시의 과학자들은 그러한 주장에 입각하여 연구를 수행하였다. 과학과 공업 간의 연관은 계속 주장되었으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는 과학자들을 실용적인 일들에 종사시키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프랑스의 아카데미와 마찬가지로 영국의 왕립학회는 실용적 목적에 대한 국가적 지원의 표현이었고, 이는 왕립학회 규약에도 명시되어 있다. 이 외에도 실용적 목적을 가진 단체들이 출현하였으며, 과학을 대중화하고 공업과 농업에서의 실용적 기술을 개선하는 실제적 용도에 과학지식을 응용한다는 구체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일어난 당시의 영국의 경우 과학지식의 수준은 지역에 따라 결코 같지 않았으며, 과학과 산업적 기술혁신의 연관이 가장 밀접했다고 생각되는 화학에 있어서는 특히 더했다. 반면 과학적 지식의 진보는 유럽 전체적인 현상이었다. 프랑스에서는 과학 아카데미를 통한 국가의 후원 등이 있었고, 전반적으로 기술에 있어서의 체계적인 연구는 영국보다 프랑스의 과학자들에 의해 더 많이 행해졌다. 한편 산업화에 관심이 없었으나 긴박한 군사적 필요가 있었던 스웨덴, 러시아, 프러시아와 같은 나라들도 역시 군사적 성공을 위해 필요했던 유용한 기술에 대한 많은 지원이 있었다. 오히려 영국의 경우 많은 협회들이 아마추어적이었으며, 경비를 자체 조달하는 등 실제로 아주 적은 물적 재원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번영하는 실정이었다. 결국 경제적 발전에 있어서는 과학의 발전과 산업의 발전 속도, 기술 혁신은 관계가 적었던 것이며, 벌점과 실용의 기록 역시 발명의 기록과는 현저히 달랐다.

지식과 실행 간의 시간 격차의 문제도 단순히 일대일 대응관계는 아니었다. 발명이 일어난 후 그것을 실제로 생산하는 데는 실험적인 기술을 공업적 생산으로 바꾸고 비영리적인 면에서의 지식의 추구부여 영리성을 그 존재의 조건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의 비용과 문제들이 있는 것이다. 경제사학자들은 기술혁신 전파, 산업에 있어서 기술혁신이 야기한 생산력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기술이 확산기지의 시간 격차 문제가 엄연히 존재한다. 기술적 변화의 양상은 흔히 혁명적인 불연속들과 함께 진화적 변화의 곡선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보면 후자가 더 론 생산성이 누적 발전을 낳을 수는 있지만, 기술혁신의 결정요소들은 따른 경제적 기준일 수도 있다. 순전히 기술적 성격에서 기술혁신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결정요인들이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과학적 지식이 기술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는 출장의 핵심을 깨뜨린다고 할 수는 없다. 응용과학은 먼저 지적 자본의 축적 또는 지식 도서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이룰 정도가 되어야 하고 그 후에야 산업가들이 기술혁신의 응용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 응용에 있어서의 사간의 결정은 산업 볼의 조건 요인에 의해 지대하게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산업에서 얻어진 추진이 얼마나 기술혁신 같은 조건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탄도학 등의 사례에서 과학의 영향을 가장 잘 받는 산업에서조차 기술이 생산성 향상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하기 힘들며 오히려 경험적 요인이 기술발전을 추동하는 역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을 불 수 있다. 그렇다면 외생적 과학의 세계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산업계 내부에서 생겨는 기술혁신의 흐름이 어느 정도로 발전했던가에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서유럽사회는 긴 시간과 넓은 지역에 걸쳐 과학과 기술적 변화 양 쪽에서 한 진보를 일으켰다. 그러나 과학과 산업 간의 연관이 직접적이고 일원적이고 간단히 이루어졌다는 가정에는 의문이 제기될 필요가 있다. 과학의 발전유형이 산업에 있어서 의의 기술혁신 및 발전의 순 서와 항상 들어맞지는 않았기 때문에 과학의 제도적 발전은 문제들을 일으켰고, 영국과 같은 사례에서 산업의 발전과 과학의 발전이 병행하지 않은 사례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당사는 과학적 지식보다 과학적 자세들이 훨씬 널리 퍼지고 확산되어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전통적인 지적 권위에 도전하는 자세, 관찰과 시험, 실험 등에 의한 발전방향의 견정 등은 강화되었다. 이려한 점에서 실험적 과학 분야들의 전통은 17세기의 우주론, 역학 또는 물리학의 발전에 비해서 기술혁신과 더 접한 연관을 가졌다. 

결국 과학의 진보와 기술의 발전은 하나가 단순히 다론 것의 결과로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모두 사회의 특징이었던 것으로 봐야 된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였던 것이다.
  
  
(201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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