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박사인 야마구치 에이이치는 2008년 3월부터 1년 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클레어 홀(Clare Hall)이라는 칼리지에 머물렀다. 클레어 홀에서는 식당에서 도착한 순서대로 앉아 식사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어서, 매번 다른 분야 연구자와 자연스럽게 섞여 식사하게 된다고 한다. 어느 날 에이이치는 우연히 철학과 교수와 저녁을 먹게 되었다.
- 철학과 교수: “혹시 알고 있어요? 내년은 케임브리지 대학 창립 800주년이에요. 여기는 800년 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만든 곳이에요!”
- 에이이치: “그러면 아이작 뉴턴이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한 것은 창립한지 450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네요.”
- 철학과 교수: “맞아요. 그리고 그로부터 166년 후에 찰스 다윈이 클라이스트 칼리지에 입학했지요. 일본에서는 언제 처음 대학이 생겼지요?”
- 에이이치: “법률상 도쿄대학이 가장 오래된 곳인데, 1877년입니다.”
- 철학과 교수: “정말 최근에 생겼네요. 새 학교나 다름없어요.”
철학과 교수는 놀란 듯 “정말 최근에 생겼네요. 새 학교나 다름없어요”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고 한다.
야마구치 에이이치가 철학과 교수와 대화한 후 새삼 깨닫게 된 것은 뉴턴 이전의 케임브리지 대학에는 지금과 같은 과학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은 신학이나 철학을 논하고 젊은이들에게 종교와 철학을 전수하는 곳이었다.
야마구치 에이이치는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일본의 과학과 일본인의 과학적 사고를 진단한다. 신학과 철학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과학이 탄생한 유럽과 달리, 일본은 그러한 과학의 탄생 과정을 외면한 채 외부에서 수입하는 데 급급했고 근대화라는 명목 아래 과학을 ‘도구’로서 받아들였다. 메이지 시대에 과학을 수입하는 과정이 이러했기 때문에 오늘날 일본 과학이 불균형하게 되었고 일본인에게 과학적 정신이 이상하리만치 결여된 것은 아닌가. 그래서 에이이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뉴튼은 신학이나 철학에서 출발하여 자연의 본질을 탐구하는,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 지극히 물리학적인 기초를 탄탄하게 만들었다. [...] 과학, 그 중에서도 물리학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뉴튼처럼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일본인은 지금도 과학을 ‘도구’나 기계‘로 바라보지만, 한 번쯤은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은 과학도들이 한 번쯤 고민해볼 만한 말인 것 같다. 그리고 과학사・과학철학・과학기술학 연구자들이 영업할 때도 쓸 만한 말인 것 같다.
* 참고 문헌
야마구치 에이이치, 『죽기 전에 알아야 할 5가지 물리법칙』, 정윤아 옮김 (반니, 2015), 218-220쪽.
(2018.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