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을 ‘동유럽의 기적’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모르겠다. 폴란드 출신 퀴리 부인보고도 동유럽의 기적이라고 안 하는데 지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그런 별명이 붙은 건가? 그 별명이 동유럽 비하 발언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내가 강신주를 두고 ‘연세대의 기적’이라고 한다면 나는 연세대 사람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욕을 먹을 것인가?
물론 지젝이 논문에서 천재의 면모를 보여주고 대신 가끔씩 취미활동으로 하는 강연이나 기고문에서 약간 나사 풀린 이야기를 하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 전공 분야에서는 천재인데 그 이외 분야에서는 영 의심스러운 말을 하는 사람도 가끔씩 있으니까(가령, 스티븐 호...). 그런데 적어도 언론에 나오는 지젝의 칼럼을 봐서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독해력이 모자라고 무식해서 이런 의심을 품는 건가 싶었는데, 다행히 외국 사람 중에도 지젝을 의심스럽게 보는 사람이 있었다. 줄리언 바지니는 『가짜 논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식이 모호할지는 몰라도, 정당한 이유 없이 상식을 부정하는 건 지적인 척하려는 값싼 술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슬로베니아의 문화 비평가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의 이름을 딴 지주쿠(žižuku)라는 게임을 개발해봤는데, 바로 그런 식으로 지적인 매력을 발산해 볼 수 있는 게임이다. 널리 통용되는 상식을 가져다가 거꾸로 뒤집으면 된다. 짐직 현명해 보이는 역설을 만든다면 금상첨화다. ‘행복해지기 위해 심리학을 활용할수록 더 불행해질 뿐’이라거나 ‘건강한 식습관에 집착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같은 식이다. 논란을 일으켜서 유명세를 타고 싶다면 이런 건 어떨까? ‘반인종차별은 가장 심한 인종 차별인데, 무엇보다 인종을 대상화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직접 만들어보자.(221쪽)
* 참고 문헌
줄리언 바지니, 『가짜 논리』, 강수정 옮김 (한겨레출판, 2011).
(2017.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