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19

[인터뷰] 유인태 의원 – 컷오프 직후 인터뷰 (2017.02.)

- 국회에서 하고 싶었으나 못 이룬 일은.

“분권형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이다. [...] 양당제의 폐해는 지역주의 말고도 양극단으로 원심력이 작용한다는 데 있다. 중도 보수, 중도 진보가 극우・극좌의 눈치를 보게 된다. [...] 사사건건 모든 걸 대립하고 에너지를 거기만 쏟으니 정치 혐오·반(反)정치 문화로 이어지고.”

- 정치가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국회는 이해관계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300명 대표들이 모여서 타협하라고 만든 곳이지, 40% 지지를 가지고 과반 의석을 얻었다고 해서 100의 권력을 행사하려는 게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은 아니다. [...] 타협하라고 만든 게 국회인데 타협해 봐라. 양극단에 있는 쪽에서 누더기가 됐네, 지조가 있네 없네 한다. 우리도 (열린우리당 시절) 과반일 때 국가보안법 등을 마음대로 폐지하려던 우를 범했다. 지금도 모든 법안이나 정책이나 우리의 의견이 6대 4 정도로만 반영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1988~90년 (평민당) 김원기 원내총무 시절 정권(민정당)의 김윤환 원내총무와 협상을 통해 5공 청산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 백담사 보내고, 다 의회가 결정해 냈던 거 아닌가. 타협의 정치를 해서. 그 과정에 정치인들은 상당히 신뢰를 받았다.”

- 정치 후배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어디 좀 국립묘지 같은 데 가도 초선이면 지가 알아서 뒷줄에 서고. 그때 어떻게든지 기를 쓰고 앞줄에 서 보겠다는 애들이 있다. 대개 그런 애들이 떠. 그런 애들이 SNS를 잘해. 그게 당을 천박하게 만들고 사고를 친다. 5000만 공동체를 놓고 고민하려고 하면 염치도 알고 예의도 있고, 사고도 남을 좀 더 배려하는 마음도 있어야 한다.”

- 그런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이 되라는 거죠.”

* 출처: [중앙일보] “더민주, 환부든 아니든 도려내야 할 상황”

( http://news.joins.com/article/19634473 )

(2017.02.19.)

2017/02/17

지도교수의 매력

     

협동과정에서 송년회를 했다. 아직 입학하지는 않았지만 다음 학기 신입생이라 송년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술자리에서 지도교수님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들이 물어봐서 나는 의사소통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지도교수님은 제자들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는다. 보통 “이 것은 이런 측면도 있고 저런 측면도 있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당사자의 의사가 중요하지 않겠나 싶네만은...”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자신의 면담 결과를 해석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선생님과 별 문제 없이 의사소통한다. 선생님께 나는 “이 일은 이런 측면도 있고 저런 측면도 있어서 A안과 B안과 C안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A안이 최선일 수도 있겠지만 B안과 C안도 고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네”라고 하신다. 그러면 그 다음 면담 때 선생님은 “지난 번에 B안으로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맞는 건가?”라고 하시고 나는 “네, B안으로 처리했습니다”라고 한다.
  
의사소통 이야기만 했어야 했는데 나는 괜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사람들 앞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사람들한테 내 지도교수님이 매력이 있지 않으냐, 고양이 같은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고양이는 깨끗한 곳에서 조용히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잡으려고 하면 어디론가 사라져서 잡을 수 없지만 언제 왔는지 옆에 와서 스치듯 비비고 지나간다. 어디 있나 보면 높은 곳에 올라가서 혼자서 어딘가를 바라보는데 앉아 있던 곳을 다시 보면 또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다, 아무 소리도 안 내고 한참 가만히 앉아있는데, 어쩌다 울면 크게 울지도 않고 들릴 듯 말 듯 하게 가만히 소리를 낸다, 가만히 고양이를 보면 신비롭지 않느냐.” 그러면서 화천이와 새끼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내 말에 사람들이 의외로 격렬하게 반응했다. 어떤 과학사 선생님은 “세상에, 짚신도 짝이 있다더니!”라며 놀라워하셨다. 그 동안 내 지도교수님의 제자들과 이야기를 해봤지만 나 같은 이야기를 한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는 것이었다. 과학기술학 전공자 중 한 분은 지도교수를 이렇게 시적으로 묘사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제가 인문대 출신이어서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2016.12.17.)
    

2017/02/16

미래 인문학



나는 과학도 모르고 철학도 모르면서 과학철학을 전공하겠다고 대학원을 왔다. 과학철학 하겠다고 대학원 오는 사람은 대체로 철학을 잘 몰라도 과학을 잘 알든가, 과학을 잘 몰라도 철학을 잘 알든가, 둘 다 잘 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대학원에 오는 미친놈은 나 말고는 못 봤다. 나는 왜 그랬나? 여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대학원 와서 불벼락을 맞고 회심하여 지금은 새 삶을 살고 있지만(이를 두고 “아카데미즘의 승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대학교 때만 해도 나는 진중권처럼 이상한 놈들이나 대충 욕하면서 편하게 먹고 살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개나 소가 욕을 해서는 아무도 들을 체를 안 해준다. 똑같은 말이라도 권위가 실리면 사람들은 멋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권위는 학위에서 온다. 그렇게 대학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항상 그렇듯이 재앙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대학원에 지원하려면 자기소개서를 써내야 했는데 자기소개서 항목 중에 대학원에서 무엇을 전공할지 밝히라는 부분이 있었다. 대학원에서 다 가르쳐주는 게 아니었다니, 나는 학부 때 배운 것도 없고 공부한 것도 없는데 대학원 들어갈 때 전공을 정해야 한다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학부 동기한테 물어보았다. 내 상황이 하도 막장이라 답이 안 나왔다.

답이 안 나오자 나는 여느 때처럼 동기한테 실없는 소리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 날도 미친놈들 흉내를 냈다. 그 날 한 것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에 ‘철학’을 붙이는 놀이였다. 개도 철학, 소도 철학, 다 철학, 그러면서 놀고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내가 ‘경제 철학’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그 동기는 이렇게 말했다. “듣자 듣자 하니 못 들어주겠네. 미친놈아, 경제 철학이 어디 있어?” 사실, 나도 별다른 생각 없이 막 지껄인 것이었다. 그런데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경제 철학이라는 것이 정말 있었고 과학철학의 한 분과라고 했다. 그 때 나는 결심했다. “그래, 경제 철학이다.” 동기가 옆에서 말렸다. “미친놈아 적당히 좀 해. 네가 교수면 경제 철학 한다고 하는 놈을 받아주겠냐? 딱 봐도 정신 나간 소리인 것 같은데?”, “그래? 그러면 그냥 과학철학 한다고 하지 뭐.” 그렇게 나는 과학철학 전공자가 되었다. 그리고 석사 논문을 경제학에서의 과학적 실재론에 관련해서 썼다. 사례로 국제경제학의 중력 모형도 나온다.

얼마 전에 내가 다녔던 학부에서 ‘미래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다룬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래 인문학? 그러면 역사학은 과거 인문학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홍보자료를 보니 아무 사물에나 ‘철학’을 붙이면서 미친놈들 흉내 내던 학부 때가 기억나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저 사람들은 여전히 재미있게 사는구나 싶었다.








(2016.12.16.)


2017/02/15

재승박덕



동료 대학원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재승박덕”이라는 단어를 썼다. 동료 대학원생이 물었다.

- 대학원생: “그런데 재승박덕이 무슨 말이죠?”

- 나: “재주가 뛰어나지만 덕이 없다는 말입니다.”

- 대학원생: “덕이 무슨 뜻이죠? 탁월함 같은 건가요?”

한문을 잘 모르더라도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덕’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강 어떠한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동료 대학원생은 중세철학 전공자다. 고대철학이나 중세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점부터 덕을 德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arete의 번역어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 나: “여기서 덕은 arete가 아니고 동아시아적 맥락의 덕이죠.”

- 대학원생: “아, 도덕적 탁월성이네요!”

고대철학 선생님이나 중세철학 선생님들 중에는 한국어를 사용하기는 하는데 어순만 한국어인 분들이 있다고 한다. 그 선생님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한국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의 번역어라는 것이다. 일종의 파일 덮어쓰기와 비슷하다.

이러한 덮어쓰기 때문에 수업 중에 학부생들이 혼란에 빠지는 일도 있다. 선생님들은 나름대로 쉽게 설명하려고 덕, 지혜, 사랑, 용기 같은 단어가 일상생활에서 어떠한 뜻으로 사용되는지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런데도 학생들이 혼란에 빠지는 이유는, 그 일상생활이 21세기 한국인의 일상생활이 아니라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인의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2016.12.15.)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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