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14

화천이도 어미가 되니



화천이한테 밥을 주면 화천이 새끼들이 빼앗아 먹는다. 고양이 마릿수만큼 밥그릇을 놓았고 똑같은 사료를 똑같은 양으로 주는데도 화천이 새끼들은 화천이 밥을 빼앗아 먹는다.

눈노란놈과 눈파란놈은 자기 밥그릇에서 자기 밥을 몇 입 먹다가 다 먹지도 않고 화천이 밥그릇에 머리를 들이민다. 화천이는 눈노란놈과 눈파란놈이 자기 밥을 빼앗아 먹는 것을 멀건이 보기만 한다. 어차피 밥그릇은 세 개니까 화천이 새끼들이 화천이 밥을 먹는 동안 화천이가 새끼들 밥을 먹으면 되는데, 화천이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밥을 먹는 새끼들을 보기만 한다. 화천이 새끼들은 화천이 밥을 다 먹고 나서 자기 밥그릇에 있는 사료를 마저 먹는다. 새끼들이 하도 화천이 밥을 빼앗아 먹으니까, 어머니는 고양이 밥을 줄 때 화천이 옆에 붙어서 화천이 새끼들이 화천이 밥을 못 먹게 지킨다.

화천이는 어려서 어른 고양이들이 있거나 말거나 제 마음대로였다. 이제는 화천이가 새끼들 눈치를 본다. 크게 울지도 않는다. 현관문을 열면 화천이의 두 새끼들이 “아-아앙 우아-앙” 하고 시끄럽게 울면 화천이는 구석에서 “에-에옹” 하고 조용히 운다. 화천이도 어미가 되어서 그런 것인가?

지난 주말에도 화천이는 새끼들이 자기 밥을 빼앗아 먹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한참 가만히 있다가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검은 털에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두더지 한 마리를 잡아왔다.

(2016.12.14.)


2017/02/13

저작 구상 - 과학 입문서, 철학 입문서



한국에서 과학 교양서적이라고 하면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라서, 과학에 관심이 있지만 공부할 엄두를 못 내는 문과생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 고등학교 문과 수준에서 시작해서 하나씩 읽고 소화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대 학부생 1, 2학년 수준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런 책을 쓰게 된다면 책 제목을 『과학의 쓴맛』이라고 붙일 것이다.

이과생을 위한 철학책이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이과생들이 하는 작업에서 시작해서 철학적 논의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책이다. 내가 그런 책을 쓰게 된다면 책 제목을 『철학의 쓴맛』이라고 붙일 것이다.

(2016.12.13.)


2017/02/12

어린 왕자



동료 대학원생이 자기가 읽고 있던 책을 나에게 읽어주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라면서 나에게 읽어준 것이다. 동료 대학원생이 나에게 읽어준 것은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었다.


내가 B-612호 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면서 이처럼 번호까지 정확하게 밝히는 이유는 어른들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하니까요. 새로 사귄 친구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어른들은 정말 중요한 것은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 친구는 목소리가 어떤지, 어떤 놀이를 좋아하는지, 나비 채집을 하는지 등은 전혀 묻지 않습니다. 그 애는 몇 살인지, 형제는 몇 명인지, 몸무게는 얼마인지, 그 애 아버지는 돈을 얼마나 버는지 등만 묻습니다. 그런 것을 통해서만 그 친구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가에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 위에 비둘기가 나는 예쁜 붉은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전혀 상상하지 못합니다. 어른들에게 ‘10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해야만 ‘야, 그거 굉장한 집이겠구나!’ 하고 감탄합니다.


어린 왕자 같은 사람이었다. 동료 대학원생은 모든 사람이 각자 고유의 개성을 가진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어린 왕자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동료 대학원생은 이미 서른 살을 훌쩍 넘기지 않았는가? 나는 동료 대학원생에게 대강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하나하나 그렇게 개성 넘치고 특색 있게 보이는 건 아직 아이가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고 범주화하는 데도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몇몇 부류로 충분히 나눌 수 있고 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도 다 비슷비슷하다. 그리고 그 부류에 속하게 하는 여러 요인은 상당 부분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숫자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대강은 말해준다고 믿는다.”

이렇게 말해도 어린 왕자 같은 동료 대학원생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린 왕자도 쉽게 이해할 만한 예를 들었다.


- 아이: “엄마, 저 친구를 하나 사귀었어요.”

- 엄마: “그래? 잘 됐구나. 그 친구는 취미가 뭐래?”

- 아이: “승마래요.”



(2016.12.12.)


2017/02/11

EBS 드라마 <내 여친은 지식인>에 대한 감상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EBS 드라마 <내 여친은 지식인>을 연애와 인문학을 접목한 참신한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도대체 뭐가 참신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대학을 배경으로 한 EBS식 청소년 드라마에, 요즈음 하도 개나 소나 인문학 가지고 염병들을 하니까 인문학 냄새 풍긴 것 같은데 어떤 점에서 참신하다는 것인가.
  
드라마의 대강의 내용은, 공대생인 남자 주인공이 인문대생인 여자 주인공과 연애하며 인문학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 아니랄까봐 주인공들은 일단 연애부터 한다. 인문대생인 여자 주인공은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항상 심각하고 재미없게 이야기하고, 남자 주인공은 상식이 없다는 이유로 여자 주인공한테 주눅 들어 있다.
  
여자 주인공이 아는 것은 자기 전공과 관련된 것이고 따지고 보면 그다지 전문적인 내용도 아니다. 전공 관련 내용이 상식 정도로 치부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그 학문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자 주인공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공대생 앞에서 그렇게 젠체하고,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 앞에서 “너는 맥스웰 방정식도 모르는 게 어디서 까부냐?”고 말 한 마디도 못 하고 무식하다고 무시나 받는다.
  
드라마는 남자 주인공이 상식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지방대 다니다 간신히 편입한 공대생으로 설정했다. 인문학 같은 데 관심 없는 공대생 정도로만 설정했어도 충분한데, 남자 주인공이 무식하다는 설정을 하려고 굳이 지방대 출신 편입생으로 만들었다. 나는 편입한 적도 없는 데도 기분이 불쾌했다.
   
무식해서 애인에게 구박받던 남자 주인공은 유식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지하철>(지금, 철학을 하자)이라는 인문학 스터디 모임에 가입한다. 20대가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동아리 이름이 너무 구리다. 50대 아저씨들의 건배사 같다. 스터디 모임의 회원들도 역시나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재수 없는 말투로 심각하게 이야기한다. 쥐뿔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나불대기나 좋아하는 겉멋 들고 멍청한 인문대생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잘 표현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나도 모르게 ‘문송합니다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내가 사장이어도 인문대생 안 뽑겠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철학과 대학원을 다니는 내가 그런 생각이 할 정도였으니, 인문학과 먼 사람들이 그런 장면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철학과에 다른 과보다 미친 놈 비율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은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대부분은 정상인이거나 정상인처럼 산다. 그런데 언론에서 철학 전공자는 대부분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나온다. 누구 머리에서 이런 기획이 나오는지 모르지만, 웬만하면 그런 짓을 안 했으면 좋겠다. 유행을 타서 그랬는지, 아니면 자기 전공에 남다른 애착이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이상한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인문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졸업한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부 때 배운 게 아무리 좋았어도 직장에서 이상한 문과생 티를 내지 말고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혼자 간직하고 제발 얌전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 링크: 
  
[EBS] 내 여친은 지식인 - 1화. 뭐가 진짜, 뭐가 가짜?
  
[EBS] 내 여친은 지식인 - 2화. 둘 사이의 거리
  
[EBS] 내 여친은 지식인 - 3화. 진정한 사랑이 자라나는 곳은?
  
  
(2016.12.11.)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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