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에는 심심하면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죽이는 교육이고 그래서 노벨상을 못 탄다는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20년 전에도 언론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지금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도 항상 똑같다. 외국처럼 토론 수업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장하석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리학을 사랑하고 공부하겠다고 대학에 갔는데 학교에서 받은 물리학의 이미지는 달랐다. 물리학 시간에 알고 싶은 게 있어 질문하면 그건 철학적 문제인데 그런 생각을 안 해도 되고 문제만 풀라고 얘기한다. 미국의 최고 학교인데도 그랬다. 4년 동안 그런 얘기 듣다가 화가 났다. [...] 어떻게 보면 강훈련을 시키는 학교이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칼텍은 과학의 신병훈련소라고 불리는 학교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정통적인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한국 언론은 한국 학생들은 입시 때문에 학습 자체에 관한 흥미가 떨어지는데 외국 학생들은 배우는 것 자체를 재미있어 한다고 보도한다. 그런데 장하석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미국, 영국에서 창의력 기르는 교육 한다고 해도 생각같이 쉽게 되지는 않는다. 외국에서도 과학 교육 지겨워하는 학생 많다. 왜냐면 선생이 아무리 훌륭하고 재미있게 가르친다고 해도 물리학 같으면 공식 배워서 숫자 대입해 문제 푸는 것이 기본이다. 생물학과 화학에서 외울 것은 외워야 하고.”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할 것도 아니다. 언론에서는 중국과 일본은 한국과 교육 문화가 비슷하다고 하는데 이미 노벨상을 여러 번 탔다. 한국 교육이 주입식이라서 노벨상을 못 받는 거면 왜 중국과 일본은 노벨상을 받았겠는가.
노벨상은 연예대상 같은 것이 아니어서 올해 연구 잘 한다고 내년에 받는 상이 아니다. 올해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그건 20-30년 전에 한 연구로 받는 거다. 존 내쉬 같은 사람들은 1950년에 쓴 박사논문으로 199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으니 노벨상 받는 데에 40년 넘게 걸린 셈이다. 한국 언론은 20-30년 전에 한국에서 어떤 연구를 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왜 노벨상을 언제 받느냐고 아우성인가?
한국 학계의 연구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학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당분간은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힘들 것이다. 노벨상을 받을만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올해 내놓아도 그 것으로 노벨상을 받는 것은 20-30년 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국 언론은 앞으로 최소 20-30년 간 기사거리나 방송 소재가 없을 때마다 별다른 분석 없이 “한국은 노벨상을 왜 못 받나. 이게 다 창의성을 갉아먹는 주입식 교육 때문이다”라고 하며 안달복달할 수 있다.
달리 생각해본다면, 주입식 교육이 정말로 비판 능력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매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 기간마다 언론에서 개소리를 내보내도 아무 문제가 안 생기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언론에서 쉽게 분량 때우려고 그러는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고, 그런 뻔한 개소리를 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며 노벨상 타령을 따라하는 것은 비판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 뱀발: 한국 학계의 연구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학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은 철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인문학이 죽어서 20년보다 연구가 퇴보했다고 개뻥친다.
* 링크: [중앙일보] “쓸데없다는 판단 너무 일찍 하지 마라, 누군가엔 쓸 데 있어” / 배영대의 지성과 산책
( http://news.joins.com/article/20645840 )
(201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