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잘 나간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그에게 “문화 권력”이라는 수식어가 들러붙는다. “권력”이라는 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을 말하는데 “문화 권력”이라고 불리는 건 그냥 그 사람이 요새 잘 나간다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용옥도 문화 권력인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었지만 그가 누린 권력이라고는 욕 많이 먹고 통나무 출판사의 수입을 올렸다는 것뿐이다. 강신주도 문화 권력인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들리지만 그가 누리는 권력은 강연 섭외 많이 들어오고 책 많이 팔린다는 것뿐이다.
<ㅍㅍㅅㅅ>에 실린 “평론가 리뷰. 이동진 편”은 평론가 이동진을 비평하는 글이다. 이 글은 한국의 다양성 영화가 “이동진이 소개하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나뉘며 그래서 “한국에서 소개되는 다양성 영화는 다양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동진이 배급사도 아니고 CJ도 아닌데 이게 무슨 말인가. 이동진은 일개 평론가다.
설정부터 허구적이니 결론 부분에서는 결국 그 밑천을 드러내고 만다.
이동진을 비평한다고 글을 시작해놓고 “따라쟁이들 적당히들 따라하셔” 이러고 끝난다.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바꿔보자. “아직 서예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추사체를 흉내 내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추사체를 비평한다고 해놓고 “나는 추사체를 싫어하지 않으며 추사체의 인기도 싫어하지 않으나 개나 소나 따라 쓰는 건 문제다”라고 한다고 해보자.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비평이라고 하지 않는다.
글의 다른 부분을 봐도 하나 같이 이상하고 말이 안 된다.
“우아한 지식인을 대변하는 이동진의 모순”이라는 소제목을 달았지만 이동진이 우아한 지식인을 대변하는 것도 나오지 않고 이동진의 모순도 나오지 않는다. 비평자는 이동진이 “기본적으로 아주 우아하고 점잖은 영화취향을 가진 평론가”라면서 이동진이 영화에 대한 저속한 질문을 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평론한다고 비평한다. 별 게 다 불만이다.
비평자는 “쭉쭉빵빵 누나들의 비키니 몸매에 대해 말하”며 히히덕거리는 것이나 영화에서 “그 할아버지랑 그 여자애랑 잤다는 건가?” 따위의 질문이나 하는 것을 영화 평론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평론가 지망생이라는 사람들이나 평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쓰는 글 중 대부분은 수준 이하인데, 이는 글에 넣어야 할 부분과 빼야 할 부분을 구분하지 못하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뒤죽박죽으로 마구잡이로 쓰기 때문이다. 쭉쭉빵빵 누나들의 비키니 몸매나 할아버지와 여자애가 잔 것이 해당 영화를 비평하는 데 그렇게 중요한 부분인가?
이동진은 2011년 연말결산에서 외화 1위로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를, 국내영화 1위로 홍상수의 <북촌방향>을 선정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웬만큼 공인된 외국의 아트하우스 영화들에는 거의 항상 호평을 쏟아내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동진의 추종자들이 원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노예 12년>을 칭찬하고 <300: 제국의 부활>을 비판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 필요성을 증명하는 것, 자신들을 일종의 방어선으로 생각하는 것. 그런데 그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혹은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미 평가가 끝난 것처럼 보이는 영화들에(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와 <300>의 후속편에 대한 미학적 평가라니. 이보다 더 따분할 수 없다) 대한 확인사살이야 말로 (이동진이 에 대한 평에서 쓴 것처럼) “철지난 돌림노래처럼 다가온다.” 2013년 흥행 5위를 기록한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돌풍을 “우리까지 휩쓸릴 필요 없는 이상한 열풍”(이동진과 세트로 묶이는 김태훈의 말이다. 이 말을 내뱉고 난 뒤, 뭔가 우쭐했던 그의 표정을 혐오한다)이라 말하는 것보다 더 꼰대스럽고 오만한 태도가 또 있을까.
<악마를 보았다>에 대한 평이 그나마 귀엽게 봐줄 수 있을 만한 수준이었다면, 그의 인문학적 오만함이 심히 거슬릴 정도의 글도 있다. 본인이 극찬하는 영화에 대한 글에서 그런 느낌을 받곤 하는데, 특히 <박쥐>나 <안티크라이스트>, <토리노의 말> 같은 영화에 대해서는 본인의 전공인 종교학, 도상학과 결부시켜 마치 본인이 감독이라도 된 양 자신의 지성과 소양을 뽐내가면서 영화를 방어하는데-- 영화를 방어하기 위함인지 자신의 소양을 뽐내기 위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건 오만하거나 위압감이 드는 수준을 넘어 어떻게 글을 진행시켜야 될지 몰라서 어마어마한 무리수와 과장을 잔뜩 실어 담고 있는 인상이었다.이웃 블로거 홍준호님은 황진미, 심영섭 평론가를 두고 “자신이 의사의 능력이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 평론을 쓰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비교를 강조하기 위해 이 멋진 구절을 빌려와 다소 비틀고 싶다. 가끔 어떤 영화 앞에서 이동진은 본인이 서울대 종교학을 나왔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 평론을 쓰는 것 같다.
비평자는 이동진의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은 채 “이동진은 본인이 서울대 종교학을 나왔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 평론을 쓰는 것 같다”고 한다. 이런 저질 문장만 봐도 비평자가 적절한 비평 능력을 가진 사람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동진에 대한 비평만 봐서는 뭐가 잘못되었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비평자가 이동진을 안 좋아한다는 것뿐이다. 비평자가 이동진의 비평을 안 좋아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적절한 비판점은 단 한 가지도 제시하지 않았다.
글 내내 어떠한 근거나 출처도 제시하지 않고 “이러저러한 기분이 든다”, “이러저러한 인상을 받는다”면서 자기 인상이나 죽 늘어놓고는 “이동진이 아저씨 유머를 그만둘 때까지 이동진을 까겠다”고 한다. 비평자는 자신이 이동진을 까는 행위가 뭔가 영향력을 발휘할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그 정도 수준의 글을 써서 이동진이 꿈쩍이나 하겠나 싶다.
* 링크: [ㅍㅍㅅㅅ] 평론가 리뷰. 이동진 편
( http://ppss.kr/archives/35389 )
(2014.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