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초혼 연령이 점점 높아지는 것과 관련하여, 과거에는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애 낳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과거의 초혼 연령이 대체로 지금보다 낮았던 것은 맞지만 모든 시기 모든 지역에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16세기 잉글랜드의 경우 만혼이 만연했다.
박지향 교수의 『영국사』에 따르면, 16세기 엘리자베스 시대 잉글랜드의 평균 결혼 연령은 남자는 28세, 여자는 26세였고, 인구의 10-20%는 평생 미혼 상태로 남았다고 한다.(297쪽) 20세기 중후반 한국인의 평균 결혼 연령보다 16세기 잉글랜드인의 결혼 연령이 높았던 것이다.
16세기 잉글랜드 사람들의 초혼 연령이 높았던 것은 먹고 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1540년 이후 물가가 크게 상승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는데, 신대륙에서 에스파냐로의 금은의 유입, 헨리 8세의 사치와 전쟁 비용, 그리고 인구 증가가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었다.(296쪽) 잉글랜드 인구는 1377년 250만 명, 1540년 300만 명, 1603년에는 410만 명을 넘어섰는데, 생산력보다 인구가 더 빨리 증가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가 없었다.(295쪽) 여기에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인클로저 운동도 사회 혼란을 가중시켰고, 인플레이션을 따라잡고 토지 획득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지주들이 지대를 올리면서 농민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당시 비교적 형편이 나은 귀족들의 평균 초혼 연령이 평민의 평균 초혼 연령보다 낮았으며, 인플레이션이 완화되자 초혼 연령이 전반적으로 낮아졌다는 점이다. 16세기 잉글랜드의 사례만 보아도, 젊은 세대의 정신머리가 썩어먹거나 주제 파악 못하고 쓸데없이 눈이 높아서 초혼 연령이 높아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6세기 잉글랜드의 사례를 오늘날 한국 사례에 적용해본다면, 한국인의 초혼 연령을 낮추기 위해서는 먹고 사는 것이 나아지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정부의 한 고위공무원은 혼자 사는 사람한테 싱글세를 매기겠다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 결혼을 못 하는 판국에 세금까지 매기면 살라는 것인가, 죽으라는 것인가? 1인 가구 세금 부과는 가처분 소득을 줄여서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악화시킬 것인데, 어쨌거나 그러한 세금 부과는 농담이라고 한다.
* 뱀발: 헨리 8세의 왕위를 이은 엘리자베스는, 즉위 초에 화폐 가치를 제자리로 되돌려 인플레이션율을 완화하려고 했다. 이 때 활약한 사람이 재정고문인 토마스 그레샴이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의 그 그레샴이다.
* 참고 문헌
박지향, 『영국사: 보수와 개혁의 드라마』 (까치, 2007).
(201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