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욱・이상욱 외, 『뉴턴과 아인슈타인: 우리가 몰랐던 천재들의 창조성』, 창작과비평사, 2004. ]
1장. 뉴턴과 아인슈타인, 신화를 넘어 창조성으로
2장. 뉴턴, 풍차와 흑사병 그리고 ‘기적의 해’
3장. 프리즘으로 세상을 읽다
4장. 사과에서 만유인력까지
5장. 아인슈타인, 영재였나 둔재였나
5.1. ‘천재’의 성적
5.2. 끈질긴 능청꾸러기
5.3. 숨 막히던 김나지움 시절
5.4.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5.5. 대학생 아인슈타인
6장. 빛과 시계 맞추기
6.1. 고독한 천재 아인슈타인?
6.2. 세기 전환기의 전자기학
6.3. 1897년 아라우, 최초의 착상
6.4. 에테르에 대한 의심
6.5. 베른의 특허국에서
6.6. 시계 맞추기
6.7. 특수상대성이론, 탄생하다
6.8. 특수상대성이론과 창조성
7장.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가장 행복한 생각
7.1. 세 번째 사람이 누구죠?
7.2. 상대성 속의 절대성
7.3. 쉬운 ‘특수’와 골치 아픈 ‘일반’
7.4. 내 생애에서 가장 운 좋은 착상
7.5. 침묵 속의 진전, 회전원판과 4차원
7.6. 피타고라스 정리를 넘었지만
7.7. 대실패에서 대성공으로
7.8. 일반상대성이론과 창조성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연보
8장. 천재만이 창조적인가
8.1. 과학적 창조성과 예술적 창조성
8.2. 귀납법 : 과학자의 수가 중요하다?
8.3. 가설연역법 : 창조성은 수수께끼 심리작용?
8.4. 수렴적 사고와 과학적 창조성
8.5. 천재성과 과학적 창조성
5장. 아인슈타인, 영재였나 둔재였나
5.1. ‘천재’의 성적
5.2. 끈질긴 능청꾸러기
5.3. 숨 막히던 김나지움 시절
130
9년제 루이트폴트 김나지움(Luitpold Gymnasium)
1921년 폐교
아인슈타인은 라틴어에서 최소 2는 받았고, 6학년(한국의 중3) 때는 1을 받음.
(성적은 4등급으로 나뉘고 1이 가장 높은 성적)
그리스어에서는 학기별로 1-2(1과 2의 중간) 또는 2-3
수학에서는 1이나 2를 받았고, 5학년 이후에는 1을 받음.
5.4.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5.5. 대학생 아인슈타인
140
1896년 10월, 입학 허용 연령보다 한 살 어린 나이로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연방공과대학에 입학함.
6장. 빛과 시계 맞추기
6.1. 고독한 천재 아인슈타인?
149-150
- 1905년 스위스 베른 특허군의 3등심사관인 청년 아인슈타인이 쓴 논문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관하여」
- 특수상대성이론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전자기학 연구와 관계됨.
• 아인슈타인은 당시의 전자기학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1905년 논문을 완성할 때까지 8년간 동료들과 토론함.
6.2. 세기 전환기의 전자기학
151-
- 1888년 독일의 헤르츠는 전자기파, 즉 전파(라디오파)를 발견함.
- 당시 전파 발견은 전자기학뿐만 아니라 물리학 전반에 충격을 준 사건
- 19세기 초 물리학자들은 세상에는 보통 물질과 여러 가지 에테르가 있다고 생각했음.
- 에테르: 무게가 없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간을 가득 채우는 특별한 물질
- 19세기 초에는 빛 에테르, 전기 에테르, 자기 에테르, 열 에테르 등의 운동이 각각 빛, 전기, 자기, 열 현상을 일으킨다고 생각했음.
152
- 빛의 파동설: 빛 에테르의 진동이 빛이라는 주장
- 열역학에서는 분자를 둘러싼 열 에테르의 소용돌이 운동이 열
• 온도가 높을수록 분자를 둘러싼 소용돌이의 회전속도가 빨라지고, 이로 인한 원심력의 증가로 소용돌이가 더 커지게 됨.
• 소용돌이들은 서로 밀어내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온도가 올라가면 분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서 부피가 커지는 현상을 설명함.
- 전기나 자기 에테르의 운동에 관해서는 많은 주장이 있었음.
152-
- 1830년대 들어 에테르의 종류가 줄어들기 시작함.
- 이 무렵 전기와 자기가 관련이 깊다는 것이 확실해짐.
• 전류가 흐르는 전선 주변에서 나침반의 방향이 바뀌는 현상(전자석의 원리)와 전선 주변에서 자석을 움직이면 전선에 전류가 흐르는 현상(발전기의 원리)이 발견됨.
• 전기 현상이 자기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자기 현상이 전기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음이 분명해짐.
- 물리학자들은 전기 에테르와 자기 에테르는 같은 것이라고 가정
• 전기와 자기, 그리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를 ‘전자기학’이라고 부름.
- 전기 에테르와 자기 에테르는 전자기 에테르로 합쳐짐.
153
- 1850년 이후에는 열이 분자 자체의 운동에너지라는 것이 알려짐.
• 열이 분자를 둘러싼 열 에테르의 운동이라고 믿던 물리학자들이 점차 사라짐.
- 1860년대 무렵에는 물질, 빛 에테르, 전자기 에테르라는 세 종류의 물질이 있다고 생각함.
- 그러나 전자기 에테르의 성질은 어떠한지, 여러 전기・자기 현상이 전자기 에테르의 어떤 운동에 의해 생기는지에 대한 정설은 여전히 없었음.
153
- 1860년대 후반 영국 물리학자 맥스웰이 전자기 에테르 이론을 주장함.
- 맥스웰은 자신의 전자기 이론에 근거하여 전자기 에테르의 파동을 전자기파라고 예언함.
• 여러 물질의 전기적 성질과 자기적 성질에 대한 측정값에서 전자기파의 속도를 추정
• 맥스웰이 얻은 전자기파의 속도는 빛의 속도와 거의 비슷했음.
• 이 점에 착안하여 맥스웰은 빛도 전자기파일 것이라고 주장함.
153-
맥스웰 이론 이외의 전자기 이론
- 독일의 전자기 이론들은 전자기 힘과 전자기 위치에너지에 근거해서 현상을 설명함. 전자기파를 인정하지 않음.
- 1880년대 중반, 독일 물리학계의 대부인 헬름홀츠는 수제자인 헤르츠에게 어떤 전자기 이론이 타당한지 검증하는 실험을 해보라고 함.
• 그러한 실험을 하던 중 헤르츠가 전파를 발견함.
- 전자기파를 예측한 전자기 이론은 맥스웰 이론뿐이었기 때문에, 헤르츠의 전파 발견은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이 옳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짐.
- 헤르츠가 발견한 전파는 빛처럼 굴절과 회절을 일으키고 속도도 빛과 차이가 없었음.
- 그래서 대부분의 유럽 물리학자들은 전파의 발견을 통해 빛도 전자기파이고 빛 에테르와 전자기 에테르는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확신했음.
- 헤르츠의 발견으로, 세상에는 보통 물질과 전자기 에테르, 이렇게 두 종류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됨.
154
- 맥스웰 이론이 입증되면서 예전부터 알려진 사실들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됨.
- 그 중 하나가 빛 에테르에 대한 보통 물질의 운동이 일으키는 효과를 측정할 수 없다는 것
- 1887년 미국 물리학자 마이켈슨은 지구 공전방향의 광속과 그 지각방향의 광속이 얼마나 다른지 측정함.
• 지구가 빛 에테르를 헤치며 움직인다면 두 방향의 광속이 약간 달라야 함.
• 실험 결과 광속에는 아무 차이가 없었음.
- 1851년 프랑스 피조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물속에서 빛의 속도를 측정함.
• 에테르가 있다면 광속이 달라야 하는데, 광속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음.
155
- 네덜란드 이론물리학자 로렌츠는 맥스웰 이론을 이용하여 마이켈슨의 실험결과를 설명하려고 함. 1892년 로렌츠 수축가설을 발표
• 로렌츠 수축가설: 움직이는 물체는 전자기적 상호작용 때문에 그 운동 방향으로 약간 수축한다는 것
- 1884년 맥스웰의 추종자인 영국의 톰슨은, 전자기 에테르 속을 빠르게 운동하는 전하를 띤 입자는 그 질량이 늘어나는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발표함.
• 당시는 맥스웰 이론이 여러 경쟁 이론 중 하나였기 때문에 톰슨의 계산 결과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전파의 발견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짐.
155-
- 19세기 말에는 전하를 띠는 기본적인 물질 입자를 ‘전자’라고 보는 물리학자들이 늘어남.
- 이들은 지구상의 물체는 언제나 전자기 에테르 속을 빠르게 헤쳐 나가므로, 물질에 포함된 전자의 질량은 톰슨의 계산이 보여준 것처럼 실제 질량보다 커 보일 것으로 생각함.
- 물리학자들 중 일부는 물질의 질량이라는 것 자체도 원래 질량이 없는 전자가 전자기 에테르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생기는 겉보기 현상에 불과할 수 있다고 추정함.
- 이 추정이 맞다면, 광속의 차이가 검출되지 않는 수수께끼는 물질을 구성하는 전자와 에테르의 복잡한 상호작용 탓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질량과 중력도 맥스웰 전자기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임.
- 그렇게 되면, 모든 물리 현상을 단 하나의 이론(전자기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임.
156
- 전자 이론: 전자 개념과 전자기 이론에 근거하여 모든 물리 현상을 설명하려는 이론
- 1900년을 전후하여 전자 이론에 힘을 실어주는 발견들이 등장함.
- 톰슨은 1897년부터 2-3년 간 실험을 거듭하여 모든 보통 물질들 속에는 음전하를 띤 아주 작고 가벼운 입자가 공통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함.
• 톰슨은 이를 단지 ‘입자’라고 불렀지만, 다른 물리학자들은 전자라고 생각함.(오늘날의 전자임.)
- 1900년에는 방사선들 중 베타선이 고속으로 날아가는 전자들의 흐름이라는 사실이 밝혀짐.
• 아주 빠른 경우 베타선의 전자는 광속의 1/3에 달하므로, 베타선에 대한 실험을 통하여 전자의 질량이 외견상 증가하는 현상이 확인됨.
- 전자기 이론을 모든 물리학의 근본으로 삼으려는 전자 이론이 대세가 됨.
156-
- 전자 이론의 선두 주자는 네덜란드의 로렌츠와 독일의 아브라함
- 아브라함: 전자는 단단한 공과 같은 것으로 언제나 공 모양을 유지한다는 이론
- 로렌츠: 정지 상태의 전자는 공 모양이지만 운동할 때는 럭비공 모향으로 찌그러진다는 이론(1904년)
- 1904년과 1905년에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각각 운동하는 전자는 찌그러지지만 부피는 언제나 똑같다는 이론도 나옴.
- 베타선에서 나타나는 전자의 질량 증가를 측정한 실험 결과들은 아브라함의 이론이 예측한 것과 대체로 부합함.
• 실험에서 오차도 컸고, 로렌츠나 다른 사람들의 예측치와 크게 차이나지 않았음.
• 물리학자들이 배타선 전자의 질량 증가를 더 정밀하게 측정하는 여러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음.
- 그 무렵 아인슈타인의 논문이 출판된 것임.
6.3. 1897년 아라우, 최초의 착상
157
- 아인슈타인은, 졸업시험 겸 스위스연방공과대학 입학시험을 위해 물리학 교과서를 공부하다가 맥스웰의 이론과 갈릴레오 이래 상대운동의 원리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함.
• 훗날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아리우에서 처음 깨달은 것임.
157-
- 아인슈타인이 공부하던 교과서는 상대운동의 원리와 관성의 원리를 기초로 물체의 운동 법칙을 설명함.
• 여기서 말하는 상대성은 17세기 초반에 갈릴레오가 제시하고 데카르트를 거쳐 뉴튼 역학에 정착된 생각임. ‘갈릴레오 상대성’이라고 부르는 것.
- 사례(1): 갈릴레오 초속 30m, 날릴레오 초속 40m, 달릴레오 초속 50m로 직선 이동
• 세 사람 중 누가 보든 갈릴레오와 달릴레오의 속도 차이는 초속 20m
- 사례(2): 날릴레오가 자기 차 안에서 1kg인 물체를 1N의 힘으로 1초 동안 마찰 없는 평면에서 앞쪽으로 밀었다고 하자.
• 날릴레오: 물체가 1초 동안 0.5m 전진. 그 속도는 초속 0m이었다가 1초 후에 초속 1m가 됨.
• 갈릴레오: 물체의 속도가 초속 10m였다가 1초 후에 초속 11m가 됨.
• 달릴레오: 물체의 속도가 초속 -10m였다가 1초 후에 초속 –9m가 됨.
• 물체의 질량이 1kg인 것을 갈릴레오와 달릴레오가 알면, 두 사람 모두 F=ma를 이용하여 날릴레오가 물체를 민 힘의 크기가 1N임을 계산할 수 있음.
- 운동의 상대성은, 등속직선운동하는 관찰자들이 측정한 관찰값들은 다르더라도 그 수 사이에 성립하는 상관관계(물리법칙)는 동일하다는 뜻.
- 갈릴레오 변환식: a가 얻은 수치들 사이의 상관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b가 얻은 수치들로 바꾸는 규칙
- 갈릴레오 상대성: 관찰자가 어떤 속도로 직선등속운동 하면서 관찰하는지에 따라 관찰값들이 달라지지만, 그 관찰값들 사이의 관계(물리 법칙)는 달라지지 않고, 느린 관찰자의 관찰값에 간단한 덧뺄셈(갈릴레오 변환식)을 적용하면 빠른 관찰자의 관찰값이 나온다는 것
160-
- 1949년 아인슈타인은 아리우에서 갈릴레오의 상대운동의 원리와 맥스웰 전자기 이론 사이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회고함.
• “내가 빛과 같은 속도로 운동하면서 빛을 바라본다면, 나는 빛을 제자리에서 (진동하기만 하는) 전자기장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험이나 맥스웰 방정식으로 미루어볼 때 그런 현상은 없다. 빛의 속도로 운동하는 관찰자의 시점에서도 모든 현상이 지상에 정지해 있는 관찰자가 보는 것과 같은 법칙에 따라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직관적으로 분명해 보였다. 왜냐하면 (갈릴레오의 상대운동의 원리에 따르면) 빛의 속도로 운동하는 관찰자는 자신이 아주 빠른 등속운동을 한다는 것을 알거나 판단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 빛은 널리 퍼져나가는 에테르의 파동이므로 빛을 똑같은 속도로 따라가며 관찰하면 제자리에서 흔들리는 에테르의 진동운동이 보여야 함.
- 그러나 그런 현상은 관찰된 적이 없음. 이는 맥스웰 이론에 위배됨.
- 소년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의 근본 전제인 상대운동의 원리와 전자기 이론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함.
6.4. 에테르에 대한 의심
163-
- 대학 시절 아인슈타인은 당시의 전자기 이론에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굳혀감.
• 푀플과 마하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임.
- 뉴튼의 절대시공간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을 비판하는 마하의 태도에 감명받음.
- 푀플의 『맥스웰의 전기이론 입문』
• 푀플은 라이프치히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1892년부터 같은 대학에서 농기구에 관한 강의를 맡은 공학자
• 별 재미를 못 느끼는 강의를 해야 하는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책을 쓰기 시작함.
• 1894년 『맥스웰의 전기이론 입문』을 출판함. 푀플이 사망한 뒤에는 아브라함 등의 공저로 개정판이 계속 나와서 1924년까지 10만 부 이상 팔림.
• 맥스웰 책은 너무 어려웠고, 헤르츠나 로렌츠의 저작은 최신 연구성과와 전문적인 응용에 중점
• 푀플의 책은 간명하고 핵심적으로 설명
164-165
- 푀플 책의 제5부 제목은 ‘움직이는 도체의 전기역학’
• ‘도체’ 대신 ‘물체’를 넣고 끝에 ‘대하여’를 붙이면 아인슈타인 논문의 제목이 됨.
- 푀플 책의 제5부 첫 장
• “상대운동에 대한 운동학의 법칙을 사용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멈춰있는 전기회로 속으로 자석이 움직이거나, 자석이 멈춰있을 때 전기회로가 움직이는 것이 똑같은 현상이라는 생각이 선험적으로 확립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 이는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논문의 서론에서 기존 전자기 이론의 중대한 결함이라고 지적한 문제
- 아인슈타인은 발전기의 예를 들면서 자석이 멈춰있고 전기회로가 움직이는 경우와 멈춘 전기회로 속에서 자석이 움직이는 경우를 구별하는 것이 상대운동의 원리와 모순된다고 주장함.
• 이 문제는 헤르츠나 로렌츠의 책 같은 고급 교과서에는 등장하지 않고 푀플의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음.
165
- 아인슈타인은 푀플의 설명을 비판적으로 소화함.
- 푀플은 맥스웰 이론을 간명하게 설명하기 위해 절대운동 개념을 도입하고, 절대운동은 “그 물체와 무관하게 멀리 있는 에테르에 대해 물체가 행하는 운동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함.
- 아인슈타인은 푀플의 주장을 뒤집어 에테르 개념에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임.
• 푀플의 설명대로 에테르와 절대운동 개념이 밀접한 관계라면, 절대운동은 상대운동의 원리를 모순되므로 에테르 개념은 운동의 상대성과 모순됨.
165-
- 아인슈타인이 대학 4학년이 되던 1899년 9월경 에테르 개념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굳힌 것으로 보임.
- 이유(1): 개념 근거가 모호
- 이유(2): 빛을 포함한 전자기파의 속도가 변하는 현상이 관찰되지 않음.
• 전자 이론의 대가인 빌헬름 빈은 빛을 포함한 전자기파들의 속도가 변하는 것을 검출하지 못한 열세 가지 실험을 정리하고 소개하는 논문을 발표함. 아인슈타인은 이 논문을 감명 깊게 읽음.
-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마이켈슨-몰리 실험은 아인슈타인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음.
• 1851년 피조의 실험이 아인슈타인에게 더 큰 인상을 남김.
167
- 아인슈타인이 깊이 탐구할 수 있었던 것은 연방공과대학 최종 졸업시험을 통과하는 것 외에는 다른 부담이 없어서였음.
• 친구인 그로스만의 노트를 빌려서 공부한 덕분에 1900년 8월 졸업시험을 통과함.
■ 아인슈타인이 겪은 어려움 [167-168쪽]
- 아인슈타인이 얼마나 지독하게 전자기학 문제에 빠져있었는지는 졸업 이후 겪은 어려움에 잘 드러남.
- 연방공과대학 졸업자로서 자동으로 고등학교 교사 자격을 획득했지만 한동안 실업자였음.
- 베버 교수와의 관계가 너무 나빠져서 1900년 졸업자 중 아인슈타인만 조교가 되지 못함.
- 1901년에는 베버 교수에게서 박사학위 받는 것을 포기함.
- 그 무렵 『물리학 연보』의 편집인인 드루데에게 은근히 취직을 부탁했다가 냉담한 답장을 받음.
- 1901년 5월부터 고등학교 임시교사로 전전하면서, 취리히대학 물리학과에 논문을 제출해서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준비함.
• 1901년 11월 첫 번째 박사학위 청구 논문에서 기차분자운동론을 다루면서 볼츠만을 너무 과격하게 비판했다는 평을 받고, 이를 자진철회함.
6.5. 베른의 특허국에서
169
- 1902년 봄, 절친한 친구인 베쏘 집안의 연줄로 베른에 있는 스위스연방 특허국에 채용됨.
• 1902년 6월 특허국 3등심사관 임시직에 채용됨.
• 1904년 9월 정규직으로 전환
• 1906년 4월 2등심사관으로 승진
- 아인슈타인은 특허국에서 근무하는 동료들과 ‘올림피아 아카데미’라는 모임을 만들어 토론을 즐김.
- 1903년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리치와 결혼함.
6.6. 시계 맞추기
170-
- 1904년 말에서 1905년 초,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진공 중에서 항상 일정하다고 확신함. 그러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님.
• 갈릴레오 상대성을 광속 문제에 적용하면, 정지한 관측자와 운동하는 관측자가 빛의 속도를 서로 다르게 관측해야 하기 때문.
- 로렌츠가 1904년에 제안한 로렌츠 변환식을 사용하면, 광속이 언제나 일정하게 관측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으나, 당시 아인슈타인은 로렌츠 변환식을 몰랐음.
• 로렌츠 변환식은 고속으로 움직이는 두 전하 사이에 전자기력이 작용할 때 적용되는 변환식이었을 뿐 전하가 전혀 없는 물체들 사이에는 적용할 수 없었음.
• 아인슈타인이 로렌츠 변환식을 알고 있었더라도, 그것을 물리 법칙의 상대성 문제에 곧바로 적용할 수는 없었을 것임.
171-172
- 아리우에서 떠올린 착상은 1905년 봄에 그 형태가 뚜렷해짐.
- 갈릴레오 상대성과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사실 사이에 모순이 있는 것은 분명했으나, 둘 중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음.
•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거듭된 실험을 통해 새롭게 확립된 사실
• 갈릴레오 상대성은 무수한 경험을 통해 물리학의 원리로 자리잡은 것
- 문제를 해결한 결정적인 계기는, 정지한 사람이 관측한 시간과 움직이는 사람이 관측한 시간이 똑같다는 생각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것
• 앞서 언급한 날릴레오와 갈릴레오는 자신들이 측정한 1초가 똑같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172-174
- 1905년 무렵 스위스 특허국에 자주 제출되던 특허들 중에는 열차 시간표를 정확히 맞추기 위해 멀리 떨어진 기차역의 시계들이 정확히 같은 시간을 가리키게 하는 방법에 관한 것들이 많았음.
• 베른역의 시계가 1시를 가리키는 순간 취리히역의 시계도 1시를 가리키는지 아닌지는 베른역의 시계만으로는 알 수 없음.
• 베른역의 시계가 1시를 가리키는 순간 취리히역으로 신호를 보내고, 신호를 받은 취리히역에서 그곳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을 베른역으로 보내는 방법을 취해야 함.
• 베른역의 신호가 취리히역의 시계로 1시 1초에 취리히역에 도착하고, 취리히역에서 보내는 답신이 1시 2초에 베른역에 도착하면, 신호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나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나 같을 테니, 두 역의 시계가 동시에 1시를 가리켰다고 확인할 수 있음.
- 아인슈타인은 베쏘와 대화하다가 “결국 시간은 시계로 측정되는 것”에 생각이 미침.
- 정지한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과 움직이는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는지 여부를 판정하려면 두 사람이 지닌 시계를 맞추어야 함.
- 두 역의 거리는 변하지 않지만, 정지한 사람과 움직이는 사람의 거리는 계속 변함.
- 정지한 좌표계와 움직이는 좌표계 사이에서 ‘동시’를 판정하는 일은, 두 좌표계 사이의 거리가 계속 변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함.
- 아인슈타인은 동시성 개념에 문제가 있다면 상대운동의 원리를 지키기 위해 사용할 변환식은 갈릴레오 변환식이 아니라 다른 변환식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림.
6.7. 특수상대성이론, 탄생하다
176
- 베쏘와 대화한 지 5주 만에 논문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관하여」가 완성됨.
- 논문 서두에서 전자기 유도(발전기의 원리)의 패러독스를 언급
•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전자기 이론을 맥스웰 이론에서 상대성의 원리(등속직선운동을 해도 똑같은 물리 법칙이 적용됨)와 광속불변의 원리를 이용하여 만들 수 있다고 선언함.
176-177
- 논문 제1부에서 두 지점의 시각이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을 제시
- 가정(1): 한 시점의 시간은 시계로 측정된다고 정의. 수평으로 놓인 막대기의 양 끝에 시계가 놓였다고 가정.
• 양 끝으로 빛을 신호로 주고받으면서 두 역의 시계들을 맞추면, 막대기 양 끝에 놓인 시계가 항상 같은 시각을 가리키게 할 수 있음.
- 가정(2): 막대기가 일정한 속도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경우
• 막대기의 왼쪽 끝에 매달려서 막대기와 같이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볼 때, 왼쪽 끝에서 출발한 빛이 오른쪽 끝의 시계에 도달하는 시간과 거기서 반사된 빛이 왼쪽 끝으로 되돌아오는 시간이 같으면 양 끝에 달린 시계는 같은 시각을 가리키는 것.
• 광속불변의 원리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일 때나 정지해 있을 때나 빛의 속도는 일정하므로, 이렇게 시계를 맞추면 막대기가 정지해 있을 때 시계를 맞추는 것과 마찬가지임.
• 그런데 정지해 있는 사람이 관측할 때는 막대기의 왼쪽에서 출발하여 오른쪽 끝까지 빛이 나아간 거리는 막대기가 이동한 거리만큼 늘어나고, 되돌아올 때는 다시 막대기가 이동한 거리만큼 줄어든 셈이 됨.
• 두 지점의 시계를 맞추려면 빛이 오른쪽으로 간 거리와 왼쪽으로 돌아온 거리가 같아야 하는데, 정지해 있는 관찰자에게는 그렇지 않음.
• 따라서 막대기에 매달려 움직이는 사람이 보기에 막대기 양 끝에 달린 시계들이 같은 시각을 가리키게 조정하는 일은, 정지해 있는 관찰자가 보기에 두 시계가 다른 시각을 가리키게 만드는 일이 됨.
- ‘동시’라는 것이 막대기의 속도로 운동하는 관찰자와 정지해 있는 관찰자 사이에 다르게 정의됨. 즉, 시간은 운동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운동에 의존함.
• 비슷한 추론 과정을 거치면, 거리(또는 길이)도 운동에 의존함.
178
- 다음 문제는 정지해 있는 사람이 관측하는 거리・시간이 막대기와 같이 움직이는 사람이 관측한 거리・시간과 어떤 관계에 관한 문제
- 아인슈타인은 간단한 수학을 사용하여 정지해 있는 사람이 관측한 거리・시간과 운동하는 사람이 관측한 거리・시간 사이의 수학적 관계식을 유도함.
• 이 관계식은 로렌츠가 1904년에 유도한 로렌츠 수축에 대한 관계식과 똑같음.
- 아인슈타인의 식과 로렌츠의 식과의 차이는 그것의 물리적 의미에 있음.
• 로렌츠는 운동하는 좌표와 정지한 좌표에서 시간이 달라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달라지는 시간을 (물리적 실재가 아닌) 단지 수학적인 가상적 시간을 간주함.
• 아인슈타인은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이라고 생각함.
• 로렌츠의 수식은 전자와 에테르가 상호작용하는 경우에만 의미 있는 것
•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전자나 에테르가 있든 없든 모든 물리 현상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이론
178
- 논문의 제2부는, 제1부에서 얻어낸 관계식을 이용하여 전기장과 자기장이 움직이는 기차 안과 정지해 있는 기차 밖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유도하고, 여기에 맞추어 맥스웰 방정식・전자기장 속에서 움직이는 전하의 운동 방정식 형태를 논의함.
- 도플러 효과, 빛이 거울에 미치는 압력, 로렌츠의 전기역학 등 여러 문제를 새로운 방정식을 이용하여 풂.
178-179
- 막스 플랑크의 반응
- 처음 얼마 동안 아인슈타인의 논문은 격찬을 받으면서도 로렌츠 이론의 개랑형인 새로운 전자 이론으로 여겨짐.
• 1907년 민코프스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기하학적으로 재해석하여 4차원 시공간 개념으로 제시함.
• 1912년 빌헬름 빈
180
- 1908년 이루어진 베타선 전자의 질량 증가에 대한 새로운 실험은 로렌츠와 아인슈타인이 각각 유도한 수식이 옳고, 아브라함의 전자 이론이 틀렸음을 증명함.
플랑크와 그의 제자들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여러 물리 현상에 적용하는 후속 연구를 발표하면서 아인슈타인 이론이 전자 이론과 다르다는 점이 널리 인식되기 시작함.
- 한때 로렌츠-아인슈타인 이론으로 불리던 이론이 ‘특수 상대성 이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됨.
6.8. 특수상대성이론과 창조성
7장.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가장 행복한 생각
7.1. 세 번째 사람이 누구죠?
7.2. 상대성 속의 절대성
196-198
- 물리학자들이 어떤 물리적 성질을 연구한 끝에 그 성질이 상대적임을 밝혔다면, 이는 그 성질들(을 측정한 수치들) 사이에 성립하는 절대적인 법칙을 찾았다는 것임.
• 물리학에서 ‘상대성’이라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법칙의 ‘절대성’을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가짐.
- 갈릴레오 이래 물리학자들이 거론한 ‘운동의 상대성’은 운동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규칙이 있다는 것(운동 법칙이 언제 어디서나 똑같다는 것)을 뜻함.
- 운동 법칙의 절대성은 운동 방정식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남.
• 형식불변(form-invariant): 방정식의 꼴이 변하지 않는 것
- 갈릴레오 상대성은 물체의 운동만을 대상으로 함.
-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물체의 운동과 전자기 현상을 모두 대상으로 함.
• (관찰자가 측정하는) 시간과 거리 등이 상대화됨.
• 상대성 이론은 상대적인 시간, 거리 등 관측값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절대적인 관계에 대한 이론을 줄인 말
• 몇몇 수학자들은 ‘불변성 원리’라고 부르자고 제안함.
7.3. 쉬운 ‘특수’와 골치 아픈 ‘일반’
198-199
- 특수 상대성 이론은 관찰자가 일정한 속도로 직선 운동하는 경우를 대상으로 함.
- 관찰자가 등속 직선 운동하면, 관찰자가 관성운동을 한다고 함.
• 관성운동 할 때는 속도가 변하지 않으므로 가속도가 0
• 거꾸로 가속도가 0이면 관성운동
- 관성운동 여부를 따지는 기준은 가속도가 0인지 아닌지 뿐이며, 속도의 크기는 상관없음.
• 관성계: 관성운동 하는 관찰자를 기준으로 설정한 좌표계
- 특수 상대성 원리: 물리 법칙은 모든 관성계에서 똑같은 꼴로 표현된다.
- 한 관성계에서 관찰한 물리량 값에서 다른 관성계에서 측정한 물리량 값을 계산할 수 있는 절대적인 규칙이 있는데, 그 규칙의 핵심이 ‘로렌츠 변환’임.
199-201
- 현실적으로 관성계를 엄격하게 실현하는 것은 까다로움.
•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느렸다 빨랐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면, 관찰자를 기준으로 한 좌표계는 관성계가 아님.
• 그러나 물리 법칙은 동일함.
- 일반 상대성 원리: 물리 법칙은 (관성계만이 아닌) 모든 좌표계에서 똑같은 꼴로 표현됨.
- 겉보기 힘: 가속운동(운동 방향이 바뀌는 것도 가속임)할 때 가속의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힘
• 겉보기 힘은 관성 운동 할 때는 나타나지 않음.
- 일반 상대성 원리를 적용하려면 가속 운동 할 때 나타나는 겉보기 힘도 함께 다루어야 함.
- 이러한 복잡성을 다루기 위해 아인슈타인이 고안한 것이 ‘동등성 원리’(등가 원리, Equivalence Principle)
• 아인슈타인은 가속도 때문에 생기는 겉보기 힘의 효과와 중력의 효과가 똑같은 것이라고 봄.
- 동등성 원리: 가속되는 좌표계가 만들어내는 효과는 중력이 만들어내는 효과와 구별되지 않음.
• 앞으로 가속될 때 나타나는 효과는 뒤에서 끌어당기는 중력의 효과와 같음.
7.4. 내 생애에서 가장 운 좋은 착상
201-
- 1907년 베른의 특허국 심사관이던 아인슈타인은, 『방사성과 전자학 연보』라는 신생 학술지의 청탁으로 특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논문을 쓰다가, 중력 문제에 대해 특수 상대성 이론을 성공적으로 적용한 논문이 없음을 깨달았음.
• 이 때는 특수 상대성과 일반 상대성의 구분은 없던 시기
- 특수 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거리, 속도 문제에 대하여 언제나 적용되어야 하는 보편적인 이론이므로, 중력 문제도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음.
• 중력장 안에서 다른 모든 물체와 다르게 떨어지는 단 하나의 물체만 있더라도, 관찰자는 자신이 중력장 안에 있고 그 속에서 낙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 그러나 그런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관찰자는 자신이 중력장 안에서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수단이 없음.
• 관찰자는 자기 상태가 정지 상태이며, 자기 주변에 중력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음.
7.5. 침묵 속의 진전, 회전원판과 4차원
204-206
- 1907년부터 1911년 6월까지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대한 논문을 전혀 발표하지 않았음.
- 아인슈타인은 프라하로 가기 전인 1909년 무렵, 회전원판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함.
- 반지름이 a인 회전목마가 있다고 하자.
• 회전목마의 둘레는 a・π
- 회전목마가 일정한 회전수로 돌아간다고 하자.
• 회전운동은 등속운동은 아니지만 아주 짧은 등속직선운동들이 순간순간 일어난다고 볼 수도 있음.
- 회전 상태에서 원주율값이 달라짐.
- 해석(1)
•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회전목마의 둘레에서는 회전운동과 짧은 등속직선운동들의 차이가 더 작아짐.
• 회전목마 둘레에 붙어서 둘레를 측정하면 특수 상대론적 효과 때문에 운동 방향의 길이가 짧아지므로, 정지한 상태에서 측정한 둘레보다 조금 더 작은 측정값이 나옴.
• 같은 상황에서 회전목마의 중심에서 둘레까지의 길이(반지름)를 측정하면 그 길이는 운동 방향과 직각이므로 아무 변화 없이 a임.
• 회전 상태에서 반지름은 변화가 없지만 원둘레는 짧아짐. 원주율값이 달라진다는 뜻.
- 해석(2)
• 회전 운동도 가속 운동이므로, 가속 운동을 하면 원주율값이 달라짐.
• 동등성 원리에 따라 가속 운동의 효과와 중력의 효과는 같음.
• 그러므로, 중력의 영향을 받으면 원주율값이 달라짐.
- 아인슈타인이 단순한 낙하운동이 아닌 새로운 사례를 찾은 것은 분명한 진전이었음.
206-207
- 또 다른 진전은 아인슈타인이 민코프스키의 4차원 개념을 수학적 도구로 받아들인 것
- 민코프스키는 로렌츠 이론과 아인슈타인 이론의 물리적 의미보다는 수학적 형식에 관심을 가짐.
• 공간좌표축 x, y, z와 시간좌표축 t가 서로 직각인 새로운 좌표축을 설정하면, 로렌츠와 아인슈타인이 각기 다른 물리학적 전제에서 유도한 변환식이 자연스럽게 도출됨.
• 공간 3차원과 시간 1차원을 모으면 4차원 시간-공간(space-time)이 된다는 개념은 민코프스키에게서 비롯된 것
- 처음에 아인슈타인은 민코프스키의 작업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음.
- 수학자 출신 이론물리학자인 좀머펠트가 민코프스키 방식이 지닌 장점을 잘 보여주는 논문을 쓰자, 아인슈타인은 수학적 도구로써 민코프스키 4차원 개념이 지닌 장점을 인정하게 됨.
• 오늘날 대학에서는 민코프스키-좀머펠트 방식에 따라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배움.
207
- 1911년 아인슈타인은 프라하대학의 정교수로 부임한 뒤 다시 중력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함.
- 논문 「빛의 진행에 중력이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에서 태양의 중력 때문에 별빛이 0.83초(1초는 1/60분, 1분은 1/60도) 정도 휜다고 예측함.
• 이 당시 아인슈타인이 예측은 했지만, 일반적인 이론 체계를 제시할 수는 없었음.
• 0.83초도 틀린 예측임. 1915년 제대로 얻은 1.6초의 절반임.
7.6. 피타고라스 정리를 넘었지만
208
- 1912년 가을, 아인슈타인은 모교인 스위스연방공과대학에 부임함.
- 대학 시절 절친인 그로스만은 이미 1907년부터 기하학 교수로 재직 중.
- 그로스만과 함께 한 것은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됨.
208
가우스의 기하학 이론
비-유클리드 기하학
208-
-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원주율값이 3.14...가 아님을 착안
- 아인슈타인이 이를 그로스만에게 말하자, 그로스만은 수학자 리만과 리치 등이 연구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아인슈타인의 문제에 적합한 기하학이라고 대답함.
- 이때부터 아인슈타인과 그로스만은 관성계들 사이에서만 적용되는 특수 상대성 이론을 언제나 적용될 수 있도록 일반화하는 작업을 시작함.
209-210
- 아인슈타인과 그로스만의 공동 연구는 ‘텐서’라고 부르는 거리함수를 중심으로 전개됨.
-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용하여 두 점 사이의 거리를 구함.
- 곡면에서는 피타고라스 공식이 성립하지 않음.
- 굽은 곡선이라고 하더라도 아주 작은 부분만 보면 직선처럼 볼 수 있기 때문에, 곡선의 작은 부분의 길이를 나타내는 공식을 찾을 수 있음.
s² = f(x, y)・x²+g(x, y)・y²+2h(x, y)・x・y
- f(x, y), g(x, y), h(x, y)가 구체적으로 어떤 함수여야 하는지는 두 점이 놓인 곡면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짐.
• 이 세 함수를 ‘거리함수’라고 하고, 이 셋을 통틀어 ‘거리함수텐서’(metric tensor)라고 부름.
- 공이나 말안장 같은 곡면은 두 개의 좌표값으로 한 점의 위치를 나타낼 수 있는 2차원 곡면이므로 거리함수 세 개만 결정하면 됨.
- 민코프스키-좀머펠트의 제안과 같이 4차원 시공을 생각한다면, 거리함수 열 개를 결정해야 함.
- 리만과 리치의 기하학은 이러한 텐서를 사용하여 전개한 기하학임.
211
- 아인슈타인이 어려워한 문제는 거리함수텐서를 결정하기 위한 방정식을 찾는 일
- 아인슈타인이 취리히에 도착한 후 1913년까지 작성한 ‘취리히 노트’라는 96쪽짜리 노트
- 네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이론을 찾고 있었음.
• 요건(1): 중력의 효과와 좌표계의 가속이 나타내는 효과는 같아야 함.(동등성 원리)
• 요건(2): 물리법칙을 나타내는 방정식은 어떤 좌표계를 쓰는지와 무관하게 똑같은 형태로 나타나야 함.(물리학적으로는 일반 상대성 원리, 수학적으로는 일반 공변성)
• 요건(3): 새로운 이론은 고전적으로 잘 알려진 과거의 이론을 특수 사례로 포함해야 함.
• 요건(4): 에너지 보존 법칙과 운동량 보전 법칙을 위배하면 안 됨.
212
- 1913년 초, 아인슈타인과 그로스만은 공동 논문을 출간함.
- 애초 의도와는 달리 요건(2)를 제대로 만족하지 못했음.
7.7. 대실패에서 대성공으로
213-
- 그로스만과의 공동 연구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플랑크가 취리히로 찾아와서 아인슈타인에게 세 직위를 동시에 맡아달라고 제안함.
• 직위(1): 베를린의 프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회원(특별급여가 지급됨)
• 직위(2): 베를린대학의 정교수직(강의할 권리는 있지만 강의할 의무는 없음)
• 직위(3): 카이저 빌헬름 협회 산하의 물리연구소 소장직(잡무 없고 연구만 전념할 수 있는 자리)
- 1914년 3월 말 아인슈타인은 취리히를 떠나 베를린으로 감.
213-
- 베를린에 정착하면서 아인슈타인은 부인 마리치와 별거함.
- 독신자 아파트에 들어가게 됨.
- 두 번째 부인이 될 엘자 뢰벤탈을 만남.
214
- 플랑크를 비롯한 베를린의 동료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이 매달리던 중력 연구가 감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함.
- 1914년 10월, 아인슈타인은 베를린에 온 지 반년 만에 중력에 관한 논문을 발표함.
• 그 논문은 수학적으로 미숙했고, 논문에서 전개한 물리적 논변도 틀린 것이었음.
• 당시 아인슈타인의 논문이 오류투성이인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중에 그 오류를 처음 눈치챈 사람은 아인슈타인 자신이었음.
214-
- 아인슈타인은 1915년 6월에 한 강연을 통해 1914년 10월 논문의 오류를 깨달음.
• 아인슈타인은 힐버트의 초청으로 괴팅겐대학에서 두 시간씩 여섯 차례에 걸쳐 상대성 이론과 중력 이론을 강연함.
• 수학자 힐버트는 민코프스키의 친구이며 클라인의 제자
• 아직 논문의 문제점을 눈치채지 못한 아인슈타인은 힐버트에게 자신의 논리를 납득시키려고 함.
• 힐버트에게는 중력 이론의 물리를 배우는 기회였고, 아인슈타인에게는 논리와 수학을 단련하는 기회였음.
• 아인슈타인은 “기쁘게도 힐버트와 클라인을 완전히 설득했다”며 즐거워함.
• 힐버트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논리를 가다듬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논문의 오류를 깨달을 수 있었음.
- 1915년 11월 7일자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저는 4주 전에 그전까지의 제 증명 방법이 모두 틀렸음을 깨달았습니다”라고 씀.
- 아인슈타인은 11월 4일 일반 공변성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방정식을 쓰기 시작함.
- 힐버트도 11월 들어 1914년 10월 논문의 결함을 깨닫고 아인슈타인과 편지를 교환함.
215-
- 1914년 11월 18일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중력 이론의 두 가지 예측 결과를 발표함.
• 태양 중력에 의한 빛의 휘어짐은 이전에 자신이 계산한 것의 두 배로 고침.
• 수성의 근일점의 세차운동은 한 세기에 45±5″임을 유도함.
- 1915년 11월 25일 프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물리학-수학 분과에서 ‘취리히 노트’에서 설정한 네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중력장 방정식」이라는 논문을 발표함.
(힐버트가 며칠 먼저 수학적으로 동일한 논문을 투고했지만, 그 논문은 출판이 늦어져서 앙니슈타인이 먼저 발표한 것으로 봄.)
- 1916년 봄 「일반 상대성 이론의 기초」라는 논문이 『물리학 연보』에서 출판되어 일반 상대성 이론이 확립됨.
7.8. 일반상대성이론과 창조성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연보
8장. 천재만이 창조적인가
8.1. 과학적 창조성과 예술적 창조성
8.2. 귀납법 : 과학자의 수가 중요하다?
8.3. 가설연역법 : 창조성은 수수께끼 심리작용?
8.4. 수렴적 사고와 과학적 창조성
8.5. 천재성과 과학적 창조성
(2025.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