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rwood Russell Hanson (1958), Patterns of Discovery: An Inquiry into the Conceptual Foundations of Scien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31-49.
노우드 러셀 핸슨, 「2장. 사실」, 『과학적 발견의 패턴: 과학의 개념적 기초에 대한 탐구』, 송진웅・조숙경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7), 61-9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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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성질은 무엇인가?
‘The sun is round’는 사실을 말함.
“The sun rounds”에는 활동이 제시되어 있음.
‘the round sun’을 본 사람은 ‘the sun rounding’을 보는가?
‘The sun rounds’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태양이 끊임없이 구의 형태를 이루려고 스스로를 재배열한다고 볼 것임.
그런 사람이 “The sun rounds”라고만 말할 수 있다면, 태양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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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기어오를 때의 행동과 분노할 때의 행동이 개념적으로 구분될 수 있다면, 그러한 구분은 당연히 언어에서도 나타나야 함. 언어에서 그러한 구분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러한 구분은 결코 개념적으로 가능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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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되는 물체에 대한 개념의 논리적 구조는 아래 1~13에 나타난 구조와 동일하다.
1. 𝑎 = (𝑣-𝑣₀)/𝑡 정의
2. 𝑣 = 𝑣₀+𝑎𝑡 1로부터
3. 𝑣 = 𝑠/𝑡 또는 𝑠 = 𝑣𝑡 평균 속도의 정의로부터
4. 𝑣 = (𝑣₀+𝑣)/2 속도의 균일한 변화
5. 𝑣 = ½(𝑣₀+𝑣₀+𝑎𝑡) = 𝑣₀+½𝑡 2를 통해서
6. ∴ 𝑠 = 𝑣𝑡 = (𝑣₀+½𝑎𝑡)𝑡 5로부터
7. 또는 𝑠 = 𝑣₀𝑡+½𝑎𝑡² 2와 6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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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학적 개념들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이러한 표기법으로 나타나야 함.
개념의 변화 없이 근본적인 변화가 행해질 수 없음.
개념과 언어의 이러한 ‘연결’은 모든 물리학에서 근본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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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약간, 많이’ 등으로 숫자를 세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자.
그들에게는 세인트존스 대학교에 첨탑이 네 개 있다는 것은 표현될 수 없는 사실일 것임.
이다. [...] 그러나
다음과 같이 반발이 있을 수 있다.
- 가능한 반박: “이것은 그들의 언어가 부족함을 드러내준다. [...] 모든 사람들이 ‘하나, 둘, 셋, 약간, 많이’만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더라도 케임브릿지 대학교의 건축물을 언급할 수 있는 언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세인트존스 대학교의 교회가 첨탑을 네 개 가지고 있다’를 포함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런 반론은 모든 언어에 해당한다. 세인트존스 대학교에 관한 무수한 것들이 영어로 표현되지 못하듯이 가속도에 관한 많은 측면들이 위에서 언급한 대수학에서 빠져 있지 않을까?
결국 우리는 특정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사물에 관한 개념을 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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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세계가 다를 수 있다는 진부한 추론이 아님.
동일한 세계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서로 다르게 구성될 수도 있다는 것.
우리는 이 세계를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사실은 사실을 진술하는 언어의 논리적 형태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든 형상화될 것임.
이러한 논리적 형태들은 하나의 ‘틀’을 제공하며, 이 틀을 통해 세상은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화될 것임.
71-
우리는 위에서 언급된 표기법으로 표현되는 가속도에 익숙함.
갈릴레오 이전의 사람들은 이러한 아이디어들을 가질 수 있었을까?
𝑥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없이도 𝑥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을 수 있으나, 여전히 이것은 적어도 가장 엄격한 종류의 실제적인 한계점임.
이것은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가 아님.
이것은 자연철학자들의 사고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이며 또한 현대 물리학 이론—인식하기 어려운 것은 때때로 인식하기 불가능한 언어로 형식화되는—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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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