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2

폐가 리모델링과 농지법



요새 언론에서 시골에서 폐가를 리모델링해서 사용하는 사례가 자주 나온다. 폐가를 리모델링하는 것이 새로 건물을 짓는 것보다 친환경적이고 지방 살리기에도 도움이 된다고들 하는데, 그리고 그게 틀린 말도 아니기는 한데, 그게 폐가를 리모델링하는 주된 이유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아무 시골 동네나 찾아서 그 동네의 지적도를 떼어보자. 필지가 반듯반듯하게 정돈된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은 정돈되지 않고 어지러워 보일 것이다. 땅 모양은 다 제각각이고 길은 삐뚤빼뚤하고 지목은 임야인데 벼가 자라고 국유지에 집이 있고 사유지에 길이 있다. 내가 사는 동네만 해도 그렇다. 집 한 채에 지목이 다른 서너 필지가 끼어 있는 집들이 종종 있다. 어떤 집은 대지+답+임야로 되어 있고, 어떤 집은 대지+전+임야+잡종지로 되어 있다. 새로 조성한 농업 단지 같은 곳이 아니라 옛날부터 사람들이 적당히 모여 살아온 시골 동네에는 그런 일이 흔하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농지에 지은 집이다. 농지에 집을 지으면 농지법 위반이다. 그러나 옛날부터 그 집에서 살았고 그 땅이 자기 소유라면 별문제 없이 지낼 수 있다. 농지법이 해당 법률 제정 이전에 농지에 지은 건물까지 소급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집에서 살던 사람이 죽고 그 사람의 자손은 외지에 사는 경우다. 집을 처분하려니 집이 낡아서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고, 집을 부수고 땅만 팔려고 하니 농지라서 헐값으로 팔아야 하고, 집을 안 부수면 어차피 널린 게 농지인 동네에서 철거비까지 부담하며 농지를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 집을 부수고 새로 개발행위허가를 받아 새로 건물을 짓고 농지를 대지로 형질변경을 하려니 경제성이 안 맞는다. 요새 시골에 늘어나고 있다는 폐가가 그런 종류의 것이다. 버리기는 아깝고 쓰려니 못 쓰겠고 일단 가지고만 있으니 폐가가 되는 것이다.

해당 농지를 대지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해당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신축하는 방법이 있다. 폐가를 철거하고 개발행위허가를 새로 받아서 건물 지으려면, 전기, 상하수도, 가스, 진입로 등을 다 새로 해야 하고, 행정절차를 하나하나 다 밟아야 하고, 설계부터 시공까지 돈이 꽤 든다. 어떻게 해서 건물을 새로 짓고 준공 승인까지 받았다고 해도 쪼그라드는 시골 동네에 굳이 비싼 돈 주고 새 집으로 이사올 사람도 마땅치 않다. 농지에서 대지로 형질변경이 가능하다고 해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농지법이다. 해당 건물을 지은 시기가 1988년 이전이냐 이후가 핵심이다. 농지법은 1973년에 제정되고 1988년에 개정되었다. 농지법에 따르면, 1988년 이후 허가받지 않고 농지에 지은 건축물은 모두 불법 건축물이며, 건축물을 지은 지 아무리 오래되었다고 해도 건축물을 근거로 하여 대지로 지목변경할 수 없으나, 1988년 이전에 지은 건축물 중 생계 목적으로 지었고 현재까지 사용하는 건축물에 한하여 대지로 지목변경할 수 있다. 여기에 착안하여, 폐가를 이용하여 농지를 대지로 지목변경 할 수 있다. 1988년 이전에 지었으나 현재는 폐가가 된 건물을 리모델링한다고 해보자. 그렇게 건물을 살려놓으면 그 건물을 근거로 하여 농지를 대지로 바꿀 수 있다. 1988년 이전에 지은 건축물이 건물이 허물어지지 않고 있더라도 사용되지 않는 폐가 상태라면 지목변경이 안 된다. 반드시 사용 중인 건물이어야 한다.

폐가가 있는 농지를 소유한 외지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이다. 개발행위허가를 받아 건축물을 새로 짓거나, 아무 것도 손 안 대고 주변의 농지 가격 또는 그 이하로 팔거나, 폐가를 수리하거나 개조한 다음 농지를 대지로 지목변경한 뒤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세 번째 선택지가 가장 경제적으로 보이겠지만 건축업자도 아닌 일반인이 기존 직장을 유지하면서 폐가를 고치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은 두 번째 선택지를 고르게 되어 있다.

폐가를 개조해서 멀쩡한 건물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일반인 기준으로 어려운 작업이지 건축업자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뼈대만 살아 있으면 벽을 새로 만들고(박정희 때 만든 시멘트는 밀도가 낮아서 부수기도 쉽다), 바닥에 보일러 깔고, 지붕에는 개량기와를 설치하면 된다. 배수로나 진입로가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기존의 배수로나 진입로를 이용하면 되고, 정 안 되면 배수로는 관행적 수로라고 하고 진입로도 관행적 도로라고 해서 비비면 행정관청에서 봐준다. 그것도 싫으면 개조해서 카페 한다고 해놓으면 된다.

폐가를 사람이 살만한 건물로 바꾸고 행정관청의 승인을 받아 지목을 농지에서 대지로 바꾸면 그 순간 공시지가가 세 배가 된다. 언론에서는 집이 낡았다는 것만 강조하는데 핵심은 지목이다.

이러한 것의 연장선에서 연예인들이 시골살이를 볼 수도 있다. 예전에 어떤 연예인이 제주도에 가서 농사를 짓고 농작물을 팔다가 작은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해당 연예인은 자기가 직접 키운 콩을 마을 직거래 장터에서 팔 때 농약을 주지 않았다며 “유기농 콩”이라고 이름붙였다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조사를 받았다. 그 연예인이 고작 콩 몇 kg 팔면서 유기농이라고 하든 말든 무슨 큰일이 나겠는가? 핵심은 그 연예인이 농산물 인증제도를 지켰느냐 여부가 아니라, 왜 자기가 농사를 짓는다고 동네방네 광고를 하고 다녔느냐는 데 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콩을 이웃 주민들하고 나누어 먹어도 되고 동료 연예인들한테 선물해도 되는데 왜 굳이 그렇게 했을까? 친환경의 가치를 나누고 싶어서? 콩은 생명력이 강해서 농약을 주지 않아도 웬만하면 잘 자란다. 몬산토도 아니고 그까짓 얼마 되지도 않는 콩을 얻자고 농약을 주면서 키우겠는가?

헌법 121조에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농사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 법률적인 의미(농지법 시행령 3조)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농업인)이 되려면 “1천 제곱미터 이상의 농지에서 농작물 또는 다년생 식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거나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거나 “농업경영을 통한 농산물의 연간 판매액이 120만 원 이상”이기만 해도 된다. 농지 취득 시 취득세 감면, 양도세 감면, 농지전용부담금 면제 같은 것까지는 모르겠는데, 해당 지역의 농지를 구입하기만 했어도 경제적 이득이 꽤 되었을 것이다. 내가 듣기로, 그 연예인이 그 동네에 살기 시작할 때는 평당 5만 원이었는데 토지를 매각할 때는 100만 원이 넘어갔다고 한다.

* 뱀발

유튜브 채널인 <가로세로연구소>에서 제주살이를 하던 해당 연예인을 좌파 연예인으로 지목하며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라고 비난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해당 연예인이 채식한다고 하지만 한우 홍보대사를 할 정도로 돈을 밝힌다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부동산 관련 의혹은 거의 다루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직원 동원해서 토지대장만 발급받아도 의혹제기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하지 않았을까? 당시 강용석이 부동산 유료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농지 관련 투자 방법을 무료로 밝히고 싶지는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2025.01.22.)


2025/03/18

홍준표 찍은 척하고 다닐 걸 그랬나



며칠 전에 같이 학부를 다닌 사람들을 만났다. 현재 통역사를 하는 학부 후배는 자기가 쓴 글을 어떤 사람에게 보여주었더니 “페미니즘 활동가를 하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나는 정반대의 경험을 겪었다. 몇 년 전 대학원에서 건너 건너로 들은 이야기인데 페미니즘 운동을 한다고 하는 사람 중 일부가 내가 2017년 대선 때 홍준표를 찍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회운동과 관련된 학부 선배는 그 말을 전한 사람에게 내가 뭐라고 말했느냐고 물었다. 그 때 내가 한 말은 “그 정도로 재능이 없으면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홍준표를 찍었을 것으로 추론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누구냐고 거듭 물어보았지만 말을 안 해주었다), 공동체 내에서 피아식별도 못할 정도로 감각이 없다는 것은 해당 분야에 재능이 없다는 것이다. 교육을 잘 받아봐야 애초에 재능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그런 말을 한 사람은 그럴 법한 조직에서 교육이나 훈련을 받았을 것 같지도 않다. 교육이나 훈련을 받았다면 본인 재능의 한계를 절감하고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해진 절차가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업무 분담도 체계적으로 되지도 않을 것이고, 예상가능한 범위 내의 비상사태에 관한 시나리오와 대응 매뉴얼도 없을 텐데, 피아식별도 못할 정도로 재능 없는 사람이 날씨처럼 항상 바뀌는 정세 속에서 어떻게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요새 들어 드는 생각인데, 그냥 홍준표 찍은 척하고 다녔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랬다면 대학원 내에서 나의 사회적 평판 같은 것이 약간 안 좋아졌겠지만, 그래도 대학원 생활이 약간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2025.01.18.)


2025/03/16

군인들까지 민주 시민이 된 나라에서 웬 파시스트 타령인가?



“단 한 번도 왕의 목을 치지 못한 역사”라는 문구를 20년 전쯤 보았던 것 같다. 한홍구 교수가 『대한민국사1』에서 그런 말을 했었고, <딴지일보> 같은 데서도 그런 말이 돌았다. 한국 사회의 보수성, 권위주의, 비-민주성의 기원을 논할 때도 그 말을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 한 번도 왕의 목을 치지 못한 역사”의 반대편에는 왕의 목을 친 역사가 있었다. 그게 프랑스다. 프랑스에서 살다 왔다는 사람들이 프랑스는 이게 좋고 저게 좋은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 프랑스와 관련된 것이라고는 에비앙 정도밖에 없는 사람들도 프랑스 타령을 따라하기도 했다.

윤석열의 체포는 더 이상 한국 사람들이 “단 한 번도 왕의 목을 치지 못한 역사” 같은 것에 미련을 품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상징적인 사건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람들은 왕조 시대에 왕의 목을 치지 못했지만, 빨리 빨리의 민족답게 공화국이 수립한 지 10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왕의 목을 치는 것 못지않은 일을 해냈다. 독재자 두 명을 권좌에서 끌어내렸고, 독재자 한 명이 내부자에게 살해당하게 만들었으며, 내란 수괴를 법정에 세웠고, 집권하기 전에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을 퇴임 후 감옥에 보냈고, 비선 실세에게 멍청하게 놀아나던 대통령을 탄핵했고, 내란을 일으킨 현직 대통령을 체포해서 구치소에 넣었다.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안정되고 제도가 정비되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일을 다 해냈다. 온 나라가 난장판이 되고 왕의 목이 날아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나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실패가 인상적인 것은, 실패할 수 없는 쿠데타를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 막았다는 점이다. 비상계엄 발표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국회의사당으로 모여들었고, 군 내에서 영관급 인사들이 상부의 지시를 듣고도 걸리적거리며 쿠데타를 방해했고, 국회의사당에 파견된 군인들도 꼼지락거리면서 태업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치게임 덕에 시간을 벌 수 있었고 국회에서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20년 전의 한국 사람들은 왕의 목을 치는 경험을 하며 신민에서 시민으로 거듭난 경험을 한 유럽 사람들을 부러워했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는 명령에 죽고 살아야 하는 군인들까지도 민주 시민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는 지금 파시스트를 키우고 있다”고 하는 주장하는 대학 교수가 있고, 그 말을 언론사에서 그대로 옮기고 앉아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박정희 때 유년 시절을 보낸 윤석열이나 김용현은 유신 때의 교육을 받아 파시스트가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엄밀히 따지자면 그들이 교육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쿠데타 일으켜서 떵떵거리며 잘 사는 성공 사례들을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그런데 YTN에 인터뷰하러 나온 어떤 교수는 세상이 얼마나 달라진 줄도 모르고 “한국에서 12년 교육을 받으면 과연 민주주의자가 될까요, 파시스트가 될까요?”라고 앵커에게 묻는다. 비상계엄 때 작전에 투입된 군인까지도 눈물을 흘리며 시민들에게 사과하는 장면을 온 국민이 뉴스로 보았다. 한국에서 12년 교육을 받으면 민주주의자가 된다.

<콘서트 7080>도 아니고 제발 철 지난 시절의 이야기 좀 그만하자. 서태지가 <교실이데아> 부르던 시절에 느꼈을 법한 얄팍한 해방감을 다시 느끼고 싶은 50-60대들의 마음은 이제 40대가 된 나도 어느 정도 짐작하겠으나, 새로운 시대에 대한 어떠한 전망도 제시할 수 없다면 뒷전으로 물러앉아서 새로운 세대들을 격려하는 일이나 하는 것이 좋겠다. 사회적인 의사소통을 방해하며 소음이나 발생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한국 사람들은 왕의 목을 쳐본 사람들의 후손들도 못한 일을 이미 해냈다.

* 링크(1): [한겨레] “윤석열 체포 영웅은 경호처 직원”…부당지시 거부 용기에 박수

( 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8006.html )

* 링크(2): [YTN] “우리는 지금 ‘파시스트’를 키우고 있다” 김누리 교수,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다

( www.ytn.co.kr/_ln/0103_202412161046294929 )

(2025.01.16.)


[프라임 LEET] 2026학년도 대비 LEET 전국모의고사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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