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19

고등학생들에게 소개한 플라톤 『국가』



지난 주 토요일, 고등학생들한테 플라톤 『국가』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했다. 강의 자료는 대충 이런 식이다.









(2016.06.20.)


2016/08/18

종로 통인시장 해장국집



고등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종로 통인시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별 생각 없이 틀어간 해장국집은 국밥 마스터 청계 이명박 선생이 다녀간 곳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다. 원래 나는 경복궁역 근처 <봉피양>에서 물냉면을 먹을 생각이었다. 버스에서 딴 생각하다가 한 정거장 먼저 내린 건데 이런 뜻밖의 횡재를 하다니.






5천원을 내고 돼지국밥을 먹었다. 곱창이 약간 들어가 고소한 맛이 났다. 곱창을 잘못 처리하면 비릴 수 있는데 비리지 않고 고소했다. 역시 국밥 마스터는 아무 음식점에서 먹지 않는 모양이다. 나중에 그 근처에서 밥 먹을 일이 있으면 그 가게에서 먹을 생각이다.



(2016.06.18.)


2016/08/17

[자기계발] 성공했지만 불행한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 첫 번째 습관 -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만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세상에 승자와 패자만 존재한다고 생각함.

인생을 생존 경쟁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가하게 마음의 평안이나 행복을 이야기할 시간이 없음.

■ 두 번째 습관 – 절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며, 통제력 상실은 배신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함.

다른 사람이 선의를 베풀어도 그 선의에 감동하기보다는 배후의 의도를 읽어내려고 함.

■ 세 번째 습관 – 빈 시간이나 빈 공간을 두려워한다

이들은 빈 시간을 지루하거나 괴로워한다. 어색한 침묵이 있는 것을 싫어해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 함.

어느 모임이든 자신의 자리가 정해져야 편함.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의 모임에는 항상 탁자에 이름표가 있음.

■ 네 번째 습관 – 주의집중 장애에 시달린다

주의집중은 수많은 정보 자극 중에서 중요한 자극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임.

이들은 모든 일을 성공과 관련하여 생각할 뿐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함.

이는 우울증과 같은 정서 장애와 관련됨.

■ 다섯 번째 습관 – 현재보다 과거와 미래에 산다

이들은 이미 실수한 것과 아직 이루지 못한 것에 집착함.

걱정하는 것의 대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거나 걱정해도 소용없는 것임.

어느 곳에도 진정한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정신적 공황 상태가 지속되면 술이나 약물에 의존하기 쉽게 됨.

■ 여섯 번째 습관 –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마음이 편하다

이들은 같은 시간에 가능한 여러 가지 일을 해야 남보다 앞서 갈 수 있다고 여김.

쉬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함.

인간의 인지 능력은 연습을 통해 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정서는 그렇게 될 수 없음.

이는 장례식과 결혼식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동시에 열리는 것과 비슷함.

■ 일곱 번째 습관 – 자기관리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한다

이들은 자기 관리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함.

이들의 관심은 다이어트, 처세술, 외모와 매너 관리에 집중된다. 자신의 스트레스까지 통제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을 모두 통제하려고 함.

이렇듯 엄청난 권력 충동에 시달리지만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 항상 좌절함.

* 참고: 김정운, 『노는 만큼 성공한다』 (21세기북스, 2005), 226-231쪽.

(2015.07.14.)

2016/08/16

고전에서 배우는 빈정거리기 기술 - 플라톤 『국가』 편

     

플라톤 『국가』 1권에서 소크라테스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고 하는 트라시마코스를 논박하여 쩔쩔 매게 만든다. 플라톤은 트라시마코스가 난처해하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트라시마코스는 이 모든 것에 동의하기는 했으나, 지금 내가 말하듯 쉽게 동의한 것은 아니고 질질 끌려가다가 가까스로, 그것도 엄청나게 땀까지 뻘뻘 흘리다 동의했었네. 하긴 여름이기도 했으니까.”(『국가』 1권 350c)

(2016.06.16.)

2016/08/14

인문학 대중화에 대한 부당한 비판들



최진기가 케이블에서 강의를 잘못해서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다. 사실 자체를 틀리게 말했으니 욕먹어 마땅하기는 하다. 그런데 인문학에 대해 뭔가 단단히 잘못 아는 사람들이 틀린 근거를 들어 최진기를 비판하기도 하는 것 같다. 심지어 인문학을 단순명료하게 강의했다는 것으로 욕하기도 한다.


“인문학이 학원 강의와 다른 점은 그것이 명쾌함과 단순함을 거부한다는 데 있다. [...]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철학이든, 인문학 분야의 지식은 공부하면 할수록 명쾌해지는 게 아니라 더 모호해지고 더 복잡해지기만 한다. 인문학이 탐구하는 대상인 ‘인간’ 자체가 바로 그런 존재이고, 그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바로 그런 공간이기 때문이다. [...] 대중인문학은 이 혼돈을 제거한 채로 춤추는 별에만 집중하는 엔터테인먼트이다. 인문학은 혼돈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사유 행위일 때만 의미가 있다.”(문강형준, <광대의 인문학>)


“소위 인문학적 소양이란 치열한 ‘왜’로부터 출발한다. ‘왜’를 묻는다는 것은 비판적 사유와 분석을 필요로 한다. 근대를 지난 현대 인문학의 다양한 분야들을 아우르는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질문은 해답보다 심오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문학적 사유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간결함과 명쾌함이 아닌, 불확실성과 모호성이다. 인문학적 사유는 이전의 익숙한 이해세계를 뒤흔드는 내면적 불편함을 경험하게 한다. 한국의 대중매체에서 소비되고 있는 인문학의 상품화가 결정적으로 놓치고 있는 점이다.”(강남순, <인문학의 상품화, 그 위험한 유혹>)


공부할수록 더 어렵고 복잡해지는 것은 모든 학문의 특성이지 인문학이 인간을 다루어서가 그런 것이 아니다. 입문이나 개론 때는 최소한만 배우지만 갈수록 고려해야 할 요소가 증가한다. <경제학원론>에서 수요-공급 곡선만 배운 신입생은 최저임금제가 실업률을 높이니 없애야 한다고 믿지만 <노동경제학>을 배우면서 경제 현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과대나 공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들었다.

“인문학은 혼돈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사유 행위일 때만 의미가 있다”느니 “인문학적 사유는 이전의 익숙한 이해세계를 뒤흔드는 내면적 불편함을 경험하게 한다”느니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학문은 뒤섞이고 모호한 것을 명료하고 정돈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혼돈이나 내면의 불편함이 어떤 학문의 가치라면 그딴 학문은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혼돈을 즐기고 싶으면 왜 굳이 어렵게 학문을 하는가? 자취방을 답 안 나오게 어질러 놓고 침대에 앉아 아무 것도 손대지 말고 천천히 방을 응시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학부 때를 돌이켜보면 본인이 뒤죽박죽으로 가르치는 것을 오히려 자랑삼아 말하는 교수도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들한테 아무 설명 없이 원전 번역서만 읽혀놓고 “읽어왔으면 질문을 해라. 왜 질문을 안 하냐?”고 닦달하던 교수도 있었고, “나는 매년 같은 텍스트를 읽으면서 일부러 텍스트의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교수도 있었다. 그 분들한테 미안한 말이지만 교육의 측면에서만 보면 최악의 방식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모호하고 혼란스럽게 가르치면 그 수업은 망한다.

모든 것을 한 번에 가르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교육과정에서 교육 내용을 어쩔 수 없이 왜곡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사칙연산도 못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한테 음수 개념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5 빼기 7”의 답은 –2가 아니라 “없다”고 가르친다. 수학적으로는 틀리지만 그렇게 해야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중학교에서 이차방정식 가르칠 때 판별식이 0보다 작으면 근이 허수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근이 없다”고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중등교육의 문제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인문학만은 초보자가 혼돈과 불편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어디 화끈하게 인문정신을 맛보라면서 혼돈과 모호의 구렁텅이에 초심자를 밀어 넣으면, 대부분은 그 다음 단계로 못 넘어가고 그 수렁텅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책을 덮는다. 요행히 책을 안 덮어 봐야 개멋이나 부리고 헛소리나 하는 무식쟁이가 된다. 처음에 단순명료하게 가르치고 수준을 높여가며 약간씩 교정하는 것이 더 낫다.

대안은 교양 강의를 보급형과 고급형으로 나눠서 제공하는 것이다. 시청률에 민감한 지상파나 케이블에서는 사교육 강사를 쓰고 시청률 상관없는 교육방송 같은 데는 훌륭한 연구자를 쓰면 된다. 이러면 시청자들은 자기 수준에 맞게 방송을 찾아서 볼 수 있다. 단, 후자의 경우 몇 번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작정하고 장기 편성해야 한다. <노자와 21세기>도 20회 정도까지는 사람들이 방송이 있는 줄도 모르다가 이후에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로마사 천년을 100회 분량으로 하든지 춘추전국시대를 200회 분량으로 하는 편성도 괜찮을 것 같다. 아재 개그도 계속 듣다 보면 정신 놓고 실실 웃게 되듯, 노잼 강의도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고정 시청자가 생길 수 있다.

사교육 업자들의 강의 질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전문가들의 감수를 받으면 된다. 사실, 나는 최진기가 전문가 감수를 안 받은 게 더 신기하다. 방송국에 전문가 감수를 요구했다면 방송국은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해당 분야 교수에게 접근했을 것이다. 업자는 전문가와 쉽게 교류하고 그 비용은 방송국이 부담한다. 사업할 때 아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던데 교수들은 다들 출신이 좋으니 사업에 필요한 다른 사람한테 접근할 때도 도움이 될 거다. 그런데 최진기는 왜 그렇게 안 했을까? 사업이 잘 되어서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나?

* 링크(1): [한겨레] 광대의 인문학 / 문강형준

( www.hani.co.kr/arti/opinion/column/747690.html )

* 링크(2): [경향신문] 인문학의 상품화, 그 위험한 유혹 / 강남순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132106005 )

(2016.06.14.)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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