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4

기존의 흄관을 재활용하여 배수로를 정비하기

내가 작년 봄에 농로를 살펴보다가 땅의 모양을 보고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삽으로 파보았더니 흄관이 묻혀있었다. 예전에 있었던 배수로였는데 아버지가 나무를 심는다고 배수로를 잘못 팔 때 흙에 묻혔던 모양이다. 배수로가 있어야 할 곳에 배수로가 없으니 배수가 더 안 좋아지고 지반이 침하되어 내 눈에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한씨네 집에서 하수를 내보내던 하수관이 밭에 묻혀 있었는데, 한씨네 집은 10년 넘게 빈 집인 데다 내가 해당 하수관을 이용할 일은 없고 다른 사람이 악용할 가능성이 있어서 근처 공사 현장에서 작업하던 건설업체의 도움을 받아 이중관으로 된 하수관을 포크레인으로 모두 파냈다. 문제는 흄관이었다. 흄관이 땅에 묻힌 사실도 모르고 매화나무를 심었는 데다 흄관을 활용할지 제거할지 결정하려면 흄관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 몇 개가 어느 방향으로 묻혀있는지 알아야 했다. 인부들은 내가 고용한 사람도 아니고 주변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나를 도와주러 온 것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을 해달라고 할 수 없었다. 결국 내가 흄관 주변의 흙을 삽으로 파기 시작했다.

묻혀있는 흄관은 한 개였다. 배수관으로 쓰기에는 길이가 짧았다. 그렇다고 파내서 없애자니 비용도 비용이고 매화나무도 캐서 옮겼다가 다시 심어야 했다. 어차피 흄관이 묻힌 자리에 배수로를 만들어야 해서 흄관을 활용하여 배수로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흄관 안에 이중관을 넣어서 길이를 연장하면 되겠다 싶었다.

흙을 파낸 자리에 빗물이 고여서 빗물을 퍼냈더니 땅에서 물이 솟았다. 흄관을 우회하는 작은 배수로를 만들어 물을 빼낸 뒤 이중관을 끼워넣을 곳에서도 흙을 파냈다. 이중관이 흄관에 안 들어갔다. 분명히 흄관의 내경에 맞게 300mm짜리 이중관을 샀는데 왜 흄관에 안 들어가는 것인가? 지난 번에 배수로를 팔 때와 같은 일이 벌어져 있었다. 이전에도 이중관을 묻었는데 밭둑에 불을 지르다 이중관이 타버려서 무너졌던 것이다. 그러면 흙을 파내고 잔해를 모두 걷어낸 후 배수로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번에도 아버지는 대충 뭉갰던 것이다. 지난 번 배수관은 새로 파기는 팠는데 잔해 위에 대충 새 배수관을 묻었고 이번 배수관은 아예 손을 안 댔다. 배수관 출구는 흙이 무너졌고 배수관 입구는 얼결에 흙으로 파묻어버려 10년 전에 배수관이 사라졌던 것을 내가 생고생을 하며 다시 파냈다. 지난 번에는 그나마 마른 땅에서 잔해를 파내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진흙에서 잔해를 파내는 것이라 훨씬 힘들었다.

잔해를 다 파내니 흄관에 이중관이 쑥 들어갔다. 흄관과 이중관 위에 흙을 덮는데 흙이 모자랐다. 뒤란을 정비하면서 흙을 파낼 일이 있어서 일단 놔두기로 했다. 파낸 흙을 흄관과 이중관 위에 덮기로 한 것이다. 이전에 철거한 배수관을 재활용하여 배수관의 입구와 출구의 흙이 덜 파이도록 했다. 여기까지가 작년 10월의 일이다. 이후 흙을 파낼 일이 있을 때마다 빈 곳에 채워 넣었고 배수로가 완성되었다.

(2023.05.04.)

2023/07/02

어렸을 적 유치원에서 들었던 동화

일주일에 한 번씩 이화여대 근처에 있는 <가야가야>라는 라면집에서 일본 라면을 먹는다. <가야가야>라는 집을 알게 된 것은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을 통해서였다. 백종원이 방송에서 해당 라면집을 극찬했다는 것을 <근황올림픽>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된 후 언제 기회가 되면 가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라면 하나 먹으러 이화여대까지 가기에 거리가 멀어서 안 가다가, 이번 학기에 이화여대에서 청강하는 대학원 수업이 하나 있어서 청강하러 갈 때마다 점심 때 <가야가야>에서 라면을 먹고 있다.

일본 라면을 먹으면서 문득 일곱 살 때 유치원에서 들었던 동화가 기억났다. 일본 라면을 먹기 시작한 게 몇 년 전인데 신기하게 <가야가야>에서 라면을 먹었을 때 그 동화가 기억났다. 어렸을 때 기억이 별로 없는데도 거의 30년 만에 떠오른 것이다. 동화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어느 라면집이 있었다. 라면이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라 사람들이 구름처럼 와서 라면을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토끼가 와서 라면을 시키더니 한 입만 먹고 가게 문을 나가는 것이었다. 가게 주인은 이상해서 토끼가 남긴 라면을 먹어보았다. 라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 다음 날에도 토끼가 와서 라면을 한 입만 먹고 가게를 나갔다. 한참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토끼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라면 가게 주인이 한적한 오솔길을 걷는데 한 구석에 포장마차가 있었다. 포장마차에서 라면을 파는 것을 보고 라면 가게 주인은 라면 맛이 궁금해서 한 그릇 사 먹었다. 놀랍게도 자기가 만든 라면과 똑같은 맛이었다. 포장마차의 주인은 라면 가게에서 한 입만 먹고 나가던 토끼였다. 배부르게 먹으면 라면의 맛을 기억하지 못해서 한 입만 먹고 가게를 나갔던 것이었다.

30년 전 일곱 살이었던 나로서는 아마 동화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라면이 거기서 거기지 특별히 맛있는 라면집이 있다는 게 무엇이며, 라면 맛이 왜 포장은 안 되는 것일까? 거기에 대해 선생님이 명확한 부연설명을 했던 것 같지는 않다. 동화에 나오는 라면은 진라면이나 신라면이 아니라 일본 라면이었을 것인데, 그 때는 일본 라면집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더군다나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이어서 유치원 선생님도 그게 일본 라면인 줄 몰랐을 것이다. 아마도 해당 동화는 일본 동화를 번역한 것이었을 텐데 당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대망』이라고 해서 해적판이 돌던 때라 유치원 선생님도 그게 일본 동화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2023.05.02.)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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