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0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목민심서』 강의 아르바이트



몇 주 전, 내가 다니는 학교의 평생교육원에서 연락이 왔다. 고등학생 대상으로 5회 동안 『목민심서』 강의를 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목민심서』를 고등학생한테 가르친다고? 듣자마자 느낌이 왔다. ‘아, 어느 학교 교사가 또 프로그램을 잘못 짰구나.’ 내가 일정을 보고 답변하겠다고 하니, 평생교육원에서는 강의 시작 날짜가 촉박해서 빨리 결정하면 좋겠다고 했다. 언제 시작이냐고 하니 다음 주라고 했다.

사실, 나한테 『목민심서』 강의 아르바이트가 들어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목민심서』를 가지고 고등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우선순위가 한문학과, 정치학과(동양사상 쪽), 사학과(한국사 쪽) 정도 될 것이다. 동양철학만 해도 『목민심서』를 읽을 일이 거의 없을 것이므로 우선순위에서 멀 텐데, 심지어 내 전공은 서양철학이다. 그런데도 나에게 아르바이트 제안이 왔다. 이는 내 앞 순번의 사람들이 해당 아르바이트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는 것이다. 강의 시작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다. 촉박하다는 것은 앞 순번의 사람들이 계속 거절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이다.

내가 해당 분야 전공자도 아니지만, 해당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었다. 고등학생들 대상으로 하는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강의를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남긴다면 절대로 하지 않겠지만, 학생들의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기 때문에, 약간 틀리더라도 아무 문제가 안 생길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강의를 전공자도 안 하고 나도 안 하면, 결국은 정약용의 애민 정신 같은 소리나 하는 사람들이 『목민심서』를 가르칠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하는 것이 맞다. 예전에 제안받았던 것처럼, 미래의 과학기사가 어떻게 바뀔지 고등학생에게 강의해달라는, 거의 사기 수준의 부탁을 받는다면, 나는 강의하러 가기 전에 천사소녀 네티처럼 “주님, 제가 사기꾼이 되는 것을 허락해주세요” 하고 기도해야 하겠지만(그래서 그 아르바이트는 정중히 거절했다), 『목민심서』는 그 정도는 아니므로 하기로 했다.

강의 시작 하기 전에 『목민심서』 관련 논문도 찾기도 했는데, 다른 할 일도 많고 강사료를 그렇게 많이 받는 것도 아니어서 근로 의욕이 그렇게 샘솟지 않았다. 결국은 첫날에 그냥 애드립으로 두 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 없이 수업이 진행되어서 2회부터 5회까지는 별도의 자료 없이 『목민심서』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만 가지고 수업을 진행했다. 역시나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읽다가 학생들이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하나 설명하는 데 10-15분씩 소요되니 수업 전에 특별히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가령, 『목민심서』에 표류선 조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 그걸 수령이 왜 해야 하는지, 조사 기록이 왜 비변사로 가는지, 그걸 오늘날 경제사 연구자들이 어떻게 활용하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다산이 보낸 편지에 조괄이 나오면, 중국 전국시대를 설명한다. 그러면 시간이 잘 간다. 다산의 둘째 아들이 닭을 키운다는 소식을 듣고 『계경』(鷄經)을 지어보라고 권하는 부분도 나온다. 그러면 경(經)이 무엇인지, 경사자집(經史子集)이 무엇인지, 닭 키우는 것 가지고 경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당시 경에 대한 개념이 이전과는 달라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청대 고증학하고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를 해도 10-15분은 금방 간다. 그렇게 설명하고 나서 보니, 그 다음 장에 격물(格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 격물에 대해 한참 설명한다.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가 『대학』(大學)에 나오는 8조목인데, 다산이 말하는 격물하고 주희가 말한 격물이 같은 거냐 아니냐, 왕수인은 왜 대나무를 째려봤냐, 이런 이야기를 한참 하면 또 10-15분이 간다. 그렇게 편지 한두 통 하는 데 한 시간이 지나간다.

이렇게 5회를 끝내고 나서 평생교육원에서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고등학교에서 글쓰기 강의를 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날짜가 촉박하다고 했다. 내가 연락받은 것은 금요일 오후였는데 강의 시작은 그 다음 주 수요일이었다. 어쨌든 하기로 하고 월요일에 해당 고등학교의 선생님과 통화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고등학생들 대상으로 강의 경험이 많다고 평생교육원에서 소개해주셨어요.”, “아, 네... 그런데 그렇게 강의를 많이 한 건 아닌데...”, “선생님께서 고등학생들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도 많이 하셨고...” 나는 고등학교에서 글쓰기 강의를 해본 적이 없었다. “지난 번에 ◯◯고에서도 글쓰기 강의를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고등학교였다.

나는 내가 교육과 사기의 중간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사기는 평생교육원에서 쳤던 것인가. 사기가 아니라 서류상 착오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

(2021.11.10.)


2022/01/09

전화기 표시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철학박사와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철학박사는 요즈음 학생들이 단어를 잘 모른다며 걱정했다. 학생들이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도 모른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는 속담 중 상당수는 어른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때 읽은 속담풀이집을 통해 익힌 것 같은데, 요즈음 초등학생들은 그런 것을 읽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그런데 대화하다 보니 철학박사도 부뚜막과 관련된 속담은 알지만 부뚜막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사실, 나도 부뚜막을 보지는 못했는데 그거 부엌 비슷한 거 아니야?” 약간 다르다. 부뚜막은 솥을 걸 수 있도록 아궁이 위에 흙과 돌을 쌓아 만든 턱을 말한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어렸을 때 집에 부뚜막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어휘력 부족은, 책을 통해서 충분히 익힐 수 있었으나 익히지 못한 것과 경험 자체를 못 해서 익힐 기회가 없었던 것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개념어 같은 것 자체가 부족하면 의사소통이나 정보 전달에 문제가 생기므로 이 부분은 우려할 만하다. 그러나 부뚜막처럼 경험하지 못해서 모르는 것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핵 전쟁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현재 부뚜막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미래에도 부뚜막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몰라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고 같은 데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가끔 경험하지 못했을 만한 것(가령, 천공카드)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신기한 학생들을 보기도 하는데, 시간이 더 지나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부뚜막을 안다는 것은 외고 학생이 천공카드 제작법이나 사용법을 아는 것만큼 신기한 일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10대나 20대가 전화기 표시(☎)를 보고 그게 왜 전화기를 나타내느냐고 묻는 것도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들은 수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전화기를 본 적도 없다. 시대가 변한 것뿐이고 세대가 다른 것뿐이며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그런데 왠지 가슴 한구석에 찜찜한 느낌이 남는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정서적인 측면을 공유하기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가령, 내가 방에서 015B의 <텅빈 거리에서>를 혼자 듣고 있다고 하자. 미래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나의 아들이나 딸은 무슨 노래를 듣고 있느냐고 나에게 묻을지도 모른다. 만일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눈물을 흘리며 말해도/아무도 대답하지 않고/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이라는 가사를 듣는다면, 나의 아들이나 딸은 아마도 멀뚱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런데 동전을 왜 쥐고 있죠?” 나는 그 질문에 대하여, 마치 박종현 역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주석처럼, 그 동전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 링크: 015B - 텅빈 거리에서

( www.youtube.com/watch?v=YG8lUuorwCQ )

(2021.11.09.)


2022/01/08

[과학사] Peterson (2011), Ch 13 “The Oration” 요약 정리 (미완성)

    
[ Mark A. Peterson (2011), Galileo’s Muse: Renaissance Mathematics and the Art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pp. 272-291. ]
  
  
  1. The Oratio as a Galilean Work
  2. The Geometry of the Senses
  3. The Conditions of Civilization
  4. The Generality of Mathematics
  5. Education and Philosophy
  6. Intellectual Pleasure
  7. Proportion
  
  
1627년 8월, 갈릴레오는 케플러에게 17년 만에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추신에서 갈릴레오는 “니콜로 아지운티의 연설(oration)을 동봉하며 케플러의 취향에 맞을 것”이라고 했다. 니콜로 아지운티(Niccolò Aggiunti)는 피사의 수학교수였다. 아지운티의 <수학을 찬양하는 연설>(Oration in Praise of Mathematics)는 교수가 부임할 때 해야 하는 것이었고 작은 책으로 출간되었다. 갈릴레오는 그 책이 케플러의 취향에 맞을 것이라고 했는데 정작 그 책은 천문학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어떻게 된 것인가.
  
1627년에 수학을 찬양하고 천문학을 뺀 것은 비-관습적인 것이 아니라 전례가 없던 것이었다. 연설자가 수학을 통해 의미한 것은 무엇인가.

“누가 수학을 폄하하는가? 나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고 답한다. 공허하고 이상한 찬양은 찬양이 아니라 폄하이다. [...] 수학적 기예의 본질을 탑의 높이나 땅의 넓이를 측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기하학자 행세하는 사람들이 있다. [...]”
  
아지운티의 연설문은 30쪽이 넘었고 내용도 급진적이었다. 우리가 수학적 물리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1627년에 존재하지 않았다. 연설자가 든 주요한 예들은 기예(arts)에서 유래했고 마치 아지운티가 그러한 기예에 숙련자인 것 같았다. 이 연설은 르네상스 시대의 수학 교수가 쓴 것 같지 않았고 정확히 갈릴레오가 쓴 것 같았다.


  1. The Oratio as a Galilean Work
  
니콜로 아지운티는 갈릴레오의 추종자였다. 갈릴레오의 학생들 중 갈릴레오와 가장 가까웠고 갈릴레오의 태도나 발상을 흡수하고 따라했다. 피터슨은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생각한다. 갈릴레오는 수학에 대한 특정한 철학적 견해를 출판하고 싶었으나 비판받고 싶지는 않았고 그래서 Oratio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어로 쓰고 아지운티가 라틴어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피렐리가 쓴 서문에 따르면 아지운티가 제공한 연설문은 최종 출판된 것보다 많이 짧았고 간략했고 출판된 버전에는 누군가 추가 작업을 했다. 시암폴리가 1627년 7월 10일자로 갈릴레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피렐리가 시암폴리의 집에 온 것을 기술하는 부분이 있다. 모두들 갈릴레오의 소식을 기다리며 그 소식은 그의 건강과 그들이 참여하는 작업인 <두 가지 주요 세계관에 관한 대화>의 진전에 대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 집단에는 갈릴레오의 옛 학생이자 아지운티의 전임 교수였던 베네데티가 속했다. 그 편지에 따르면 아지운티와 그의 연설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 집단은 만장일치로 다음과 같은 요청을 했다; (1) 갈릴레이가 곧바로 그들이 끝낸 작업의 일부분을 즐겨야 한다는 것 (2) 그의 친구들이 <대화>를 끝내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것들은 연설이 아지운티의 것이 아니라 갈릴레오의 것이라고 할 때만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그 집단은 갈릴레오의 작업을 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그의 후배나 제자들의 공적 연설을 마치 그 사람의 것인 것처럼 썼다. 마리오 귀두치(Mario Guiducci)가 1618년 플로렌틴 아카데미에서 혜성에 관한 강연을 했을 때 그 강연문은 귀두치의 것이 아니라 갈릴레오의 것이었다. 갈릴레오가 1623년 책 『시금자』(The Assayer)에서 말했듯 그의 발견에 대한 공격에 지쳤기 때문이다. 귀두치의 이름은 그러한 공격을 줄였고, 아지운티의 연설도 비평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여러 가지 가설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연설문에 갈릴레오가 관련되기는 했지만 그 역할은 숨겼다는 것이다. 갈릴레이의 동료들이 시암폴리의 집에서 모였고 Oratio를 출판하기까지 몇 주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했다는 것은 피렐리가 로마로 원고를 보내기 전에 출판 준비를 했음을 시사한다. 1627년 8월 14일 피렐리는 로마에서 그 책에 대한 헌사를 썼고 8월 28일에 갈릴레오는 플로렌스에서 그 책의 복사본을 케플러에게 보냈다. 이는 갈릴레오가 복사본이 도착하기를 기다린 듯 도착하자마자 보냈다.
  
Oratio는 케플러의 취향이 아니었으나 갈릴레오는 케플러를 자유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해서 케플러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마치 케플러가 몇 년 전에 갈릴레오에게 <우주의 신비>(Mysterium Cosmographicum)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처럼 갈릴레오도 케플러에게 보낸 것이다.


  2. The Geometry of the Senses
  
Oratio에서 갈릴레오 식 사고는 초반부터 등장한다. 연설자는 수학적 중요성에 대한 정통적이지 않은 사례를 제시한다. 

“[...] 기하학적 탐구보다 날카로운 지성에 더 적합한 것은 없다. [...] 운동, 색, 수, 모양을 제외하고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것을 알고자 한다면, 마음의 작동이 그것들에 완전히 수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온전히 탐구할 수 있는 것은 기하학뿐이다.”

갈릴레오의 이전 입장과 약간 다른 점은 <시금자>에서 색이 물리적 속성들의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금자>에서 갈릴레오는 외적 현상과 그에 대한 우리의 내적 표상을 구분하는 선을 어디서 도출하는지 연구한다. Oratio는 기하학과 감각 자료를 연관 짓는다. 시각이 본질적으로 기하학에 의해 지배받음을 믿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모든 감각이 다소 기하학적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는 시각에 대한 기하학적 이론으로부터 일반화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가정에 대한 급진적인 질문은 같은 시기에 데카르트도 했다.


  3. The Conditions of Civilization
  
인류를 들판에서 더 문명화된 사회로 이끈 것은 수학자인가 건축가인가. Oratio는 단순히 건물 건축의 역사가 아니라 이웃, 마을, 도시, 상업과 선박건조의 발전에서 수학의 이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문명화된 사회의 역학적 장치들을 열거하고 아르키메데스의 나사와 방어무기, 크테시비우스(Ctesibius), 크테시포니스(Ctesiphonis) 같이 덜 익숙한 헬레니즘 시대 발명가도 언급한다. 이들은 수력을 이용하여 바퀴를 돌리고 시간을 알리는 기계를 만들었다. 연설자에 따르면, 산수는 사업에서 공정한 거래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도시를 다스리고 사람들 사이의 정의를 세우는 데 수학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연설자는 회화처럼 영혼을 즐겁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회화는 관점의 수학이라는 것이 연설자의 주장이다. Oratio는 분위기, 무지개, 별의 반짝임에 대한 광학적 효과를 기술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천구의 분명한 크기를 이해하려고 관심을 기울인 대상이다. 연설자는 현미경도 언급한다.

“[...] 과거에는 이러한 생물들(작은 동물)이 우리의 무딘 시각을 벗어났다. [...] 그러나 최근에 현미경의 도움으로 우리는 매우 날카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어떠한 작은 생물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어떠한 곤충이 날든 땅에 살든, 갈고리처럼 생기거나 둘로 나뉜 발, 털 같은 작은 다리, 가위 같은 입, 다양한 색깔의 날개, 그물 모양의 눈 등 곤충들의 전체 외양을 볼 수 있다. [...] 이러한 즐거움은 비-일상적이고 미묘하며 신성한 질적인 것으로 가득한 것이다.”

연설자는 갈릴레오의 현미경에 큰 호기심을 보인다. 갈릴레오의 현미경에 대한 대중적인 열광은 망원경에 대한 열광과 같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충격적인 발견이 아니었고 다른 한편으로 망원경을 만드는 것보다 현미경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연설자는 다른 많은 수학적 기예를 언급하는데 특히 음악을 강조한다. 연설자는 도리안, 리디안, 이오니안 등 음계의 영향에 대하여 자세히 말하고,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강력하고 깊은 영향을 주는지 기술한다. <고대와 근대 음악에 관한 대화>에서 빈센초 갈릴레이가 로마식 음악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는 것과 연관시킬 수 있다. 수학은 물을 관리하는 데 유용하며 여기에는 정원에 장식용 분수를 설계하는 것도 포함되며 이는 헬레니즘적 경이의 사례로 포함된다.


  4. The Generality of Mathematics

  
연설자는 우리에게 수학이 얼마나 필요한지, 유용한지, 기쁘게 하는지 떠올리게 하지만 이런 것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갈릴레이의 논변 형태이다.

“수학은 삼각형, 원, 기타 도형에 관한 것으로만 보이지만, 나는 [...] 올바른 논증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악과 회화의 사례가 등장함] 수학자들은 자신들의 결론이 가하학과 산수에서 완전한 논증을 구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정신을 향상시키고, 지성을 연습하고 정신력을 날카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에 대한 기예의 은유와 별개로, 갈릴레오의 흔적을 보여주는 힌트가 있다. 그것은 수학을 실험 상황 같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덜 친숙한 것이다.


  5. Education and Philosophy
  
연설자는 교육에 관한 확고한 의견을 가졌다. 그것은 갈릴레오가 자신의 학생들에게 자주 말한 종류의 것이다.

“모든 고대 철학자들은 산수를 하지 않은 사람이 철학 공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 오늘날 젊은 사람들은 수학 대신 논리적 말다툼(logical quibble)을 배운다. 그들은 그러한 것들이 마치 장식품이라도 되는 듯 기회만 나면 사용한다. [...] 그러나 연단에서 떠드는 소년들이 이해하는 것은 자신이 류트가 소리내는 것 이상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젊은 수학 교수가 철학 학부에 매우 직설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지 궁금할 만한 대목이다.
  
연설자는 철학적 수학(philosophical mathematics)과 세속적 물리학(earthly physics)에 대한 프톨레마이오스의 구분에 반대한다.

“모든 세속적인 대상들은 [...] 신이 최고의 기하학자(Archgeometer)임을 주장한다. 별들의 운동, 지구의 균형, [...] 나무의 줄기와 가지에서부터 잎맥을 통하여 잎에 수부이 전달되는 것, 물고기, 새, 파충류가 수영하고 나는 것 등이 그렇다. [...]”


  6. Intellectual Pleasure
  
수학에 대한 연설자의 개념은 다른 방식으로 독특하다. 수학에 대한 지적인 즐거움을 강조했는데 성적 즐거움을 포함한 다른 모든 즐거움을 앞선다고 한다. 이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발견하여 신에게 감사하여 황소 100마리를 희생시킨 피타고라스와 비교할 수 있다.
  
연설자는 수학이 전적으로 인간적인 것이고, 그 보상은 추상적으로 고결한 것이라기보다는 즉각적인 것이고, 우주의 선함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뛰어남, 창조성, 정확성과 명확성을 구분하는 능력에 관한 것이고, 그러한 즐거움은 힘든 지적 노고 후의 성공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7. Proportion
  
Oratio가 결론에 이르기까지 당시 청중들은 수학과 관련된 모호한 생각만 가졌을 것이다. 연설의 주요 주제인 기예와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수학적 방법은 어느 대학에서도 수학 커리큘럼에 포함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 팽배한 철학은 학자 청중들에게 세속적인 것들은 수학적일 수 없다고 가르쳤다.
  
다른 한편으로 연설자는 얼마나 많은 수학 이론이 이미 세속적인 것에 관한 것이며 앞으로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연설자가 천문학을 무시한 것은 천문학이 수학과 무관해서가 아니라 천문학에서 수학과 관련된 쟁점이 발생하지 않아서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천구가 수학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잘 작동하는 수학적 물리학을 설명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것은 연설자가 모든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수학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Oratio에서 연설자가 기술한 특정한 실행이나 발명을 넘어서는 일반적인 접근이다. 이는 수학으로 어떠한 통합적인 방법으로 그러한 현상들을 포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그러한 현상을 통합한다는 생각의 바탕에는 모든 기예에서 중심이 되는 개념이고 비율(propor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갈릴레오의 포물선 법칙은 낙하체의 수직낙하 속도와 낙하시간의 비율을 포함한다. 갈릴레오는 이러한 비율(proportionality)을 현상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실험은 이러한 공식에서 역할을 하는데 그 역할은 더 큰 비율을 도입하는 것이다. 시간 그 자체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물의 흐름이나 추 등을 이용하여 시간에 대한 비율에 관한 것을 측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속도에 대한 실험적 결정은 덜 명확하지만 갈릴레오는 속도를 고정된 시간에 대한 거리의 비율이라고 생각했다. 갈릴레오는 시간이나 속도 같은 것들이 더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수학적 진술로 변형할 수 있다고 보았다.
  
갈릴레오의 모든 발견은 비율 개념을 창조적으로 사용하여 가능했고 그러한 발견은 기하학에서 유래한다. 기하학적 추론과 실험에 근거한 비율인 것이다. 모든 기예의 중심인 비율 개념은 갈릴레오의 작업에서 새로운 중요성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상치 못한 비율의 존재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실험 오류 때문에 자연에서 비율을 문자 그대로 발견할 수 없었다. 기하학적 추론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나 잘 구성된 실험으로 성립할 수 있는 것에는 숨은 비율이 있다는 것이 갈릴레오의 메타-이론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다른 대상들의 짝이 같은 비율을 가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 문제에 대한 정교한 해결책은 19세기가 되어서야 등장한다. 핵심은 유클리드 <원론> 5권 정의5이다. 갈릴레오도 정의5의 중요성을 알았다. 갈릴레오에게 시금석이 된 지렛대의 법칙에 대한 아르키메데스의 증명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 증명은 유리수의 비율에 관한 것, 두 번째 증명은 무리수의 비율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 실수에서 유리수와 무리수를 통합하는 이론이 있어서 우리는 갈릴레오 시대에 느꼈던 비율 개념의 거부감을 느끼지 않지만 그것은 갈릴레오가 암묵적으로 제안한 것의 연장선에 있다. 비율에 관하여, 이는 수학적 물리학의 핵심에 남아있다.
  
  
(201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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