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월요일부터 동네 창고부지 조성공사를 위한 성토 작업이 재개되었다. 덤프트럭이 몇 대씩 와서 골재를 들이붓고 가는 식이었는데 공사 규모에 비해 들이붓는 골재량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동네에서는 난리가 났다. 들이부은 골재가 죄다 시커먼색이었고 기름 냄새 같은 악취가 심하게 났기 때문이다.
내가 멀리서 봐도 창고부지에 온통 시커먼 게 뒤덮이기는 했다. 마치 아스팔트를 깔아놓은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재생골재 중에 폐-아스팔트로 만든 것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건축폐기물을 열처리하여 골재로 쓰는 것이 있는데 이를 ‘재생골재’라고 부른다. 재생골재에는 콘크리트를 분쇄한 뒤 열처리를 하는 것이 있고 아스팔트를 분쇄한 뒤 열처리하는 것이 있다. 내가 관련 규정은 잘 모르지만 건축물을 지을 때 일정 비율로 재생골재를 써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시커먼 것을 보면서 아마도 저것은 아스팔트에 열처리를 한 것이고 그래서 냄새가 심하게 나겠지만 성분 검사를 하면 기준치 이하로 나오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어쨌든 동네에서 난리가 나고 관련 공무원이 뛰쳐오면 그와 관련하여 민원을 몇 개 작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네에서 민원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중에 서울에 다녀온 사이, 창고부지는 시커먼색에서 흙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업체에서 멀쩡한 흙을 쏟아붓고 넓게 펴서 원래부터 멀쩡한 흙으로 성토 작업한 것처럼 덮어놓았다. 나름대로 위장한 셈이다. 그러는 동안 동네에서 아버지가 여러 사람을 만나더니 9월 6일(월) 오전 10시에 마을 주민과 시청 공무원과 공사 업체 직원이 면담하는 자리가 잡혔다. 이 자리에는 지역구 국회의원 보좌관도 참석하기로 했다.
나는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폐-아스팔트로 만든 재생골재를 매립한 뒤에 흙을 펴발랐다는 것은 무엇인가? 업체 측에서는 마을 주민의 항의에 대해 어떤 변명을 내놓을 것인가? 뻔했다. 재생골재 매립은 규정을 따른 것이며, 냄새는 나지만 기준치 이하라서 문제가 없으며, 그 위에 흙을 덮은 것은 미관이나 냄새 등 동네 주민의 안위를 위해서이며, 앞으로 마을 주민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신경써서 잘 하겠다, 이렇게 크게 네 가지 측면에서 방어하면, 실제로야 어떠하든 간에 업체가 적당히 방어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미리 준비할 것은 없었고, 대충 상황을 보다가 허점이 보이면 그걸로 민원을 작성할 생각이었다.
9월 6일(월)이 되었다. 창고부지에 사람들이 모였다. 그동안 공사업체 직원들만 보았는데 창고 소유주가 처음으로 현장에 나왔다. 시청에서는 환경과와 허가민원2과 직원들도 현장에 나왔고 국회의원 보좌관은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마을 주민들이 제각각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기름 냄새가 심하게 난다, 우리집은 돈이 없어서 상수도도 못하고 지하수 먹고 사는데 이게 뭐냐, 왜 멀쩡한 농로를 없애서 농사도 못 짓게 만드느냐 등등. 그동안 나는 인쇄해온 자료를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조용히 넘기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난장판이 난 와중에 허가민원2과 직원은 나에게 먼저 와서 인사하고 어떤 사안인지를 물었다. 아마도 공무원은 내가 주민들을 꼬셔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여 물어본 것 같은데, 나는 지난 번 민원과는 별개라고 답했다. 허가민원2과 직원은 민원을 보낼 때 전자민원 말고 우편으로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민원을 안 보내본 사람들은 격식을 갖추는 것이 더 좋은 줄 아는데, 민원은 추천서가 아니기 때문에 격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속도와 접근성이 중요하다. 전자민원이 우편민원보다 약발이 더 빠르고 더 좋다. 전자민원으로 보내면 경우에 따라서 24시간 이내에 담당 부서에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허가민원2과 직원은 민원 약발을 떨어뜨리고 싶어서 우편으로 민원을 보내달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난장판이 난 것을 보면서 민원을 어떻게 써야 정당하게 여러 부서를 괴롭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런데 업체 측에서 뜻밖의 대답을 했다. 재생골재 같은 것을 아예 쓰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시작부터 내 예상과 어긋나기 시작했다. 속으로 ‘뭐지? 어쩌려고 저렇게 대답하지?’ 하고 생각했다. 업체 측에서는 그렇게 기름 냄새가 심하게 났다면 흙으로 덮었다고 한들 냄새가 날 수밖에 없는데 지금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어느 부분을 파고들어야 할지 감을 잡았다. 개뻥을 쳐도 사실을 70%쯤 깔아놓고 핵심적인 뻥을 군데군데 숨겨놓는 법인데, 업체는 아예 처음부터 발뺌하니 아무 데나 쑤셔도 정당한 민원이 될 것이었다. 그 때 어떤 동네 할머니가 이렇게 외쳤다. “내가 지난 주에 우리집에서 봤는데 저녁 때 몰래 와서 이상한 걸 파묻더라고!”
동네 할머니에 따르면, 9월 2일(목) 오후 6시 30분 쯤에 덤프트럭이 아닌 작은 트럭을 타고 세 명이 와서 이상한 것을 땅에 파묻었다고 한다. 무엇을 파묻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동네 할머니의 말을 듣고 나는 업체 사장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사장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우리는 5시까지밖에 일을 안 해요.”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업체에서 한 게 아니면 누가 한 거예요?” 사장은 답했다. “다른 사람이 와서 묻었나 본데. 우리는 그 시간에 일을 안 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러면 사장님도 피해자네요? 경찰에 고발해야겠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업체 사장도 돌아가는 길에 경찰에 고발해야겠다고 했다. 허가민원2과 소속 공무원은 업체 사장에게 “사장님이 한 게 아니더라도 관리 소흘에 대한 책임은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체 사장이 고발한다 어쩐다고 해도 실제로 고발할 리는 없으므로 나와 어머니와 동네 할머니는 고발하러 경찰서에 갔다. 경찰서에서 알게 된 것은, 이러한 사안일 때는 주민이 직접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의 담당 부서에 민원을 넣어서 시청에서 고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고발할 수도 있겠으나 관련 법률을 모르기 때문에 시청에서 고발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에 돌아와서 민원을 넣기로 했고, 마을 주민이 9월 2일(목) 저녁에 찍은 사진을 뒤늦게 받아보았다. 그런데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수준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재생골재 매립 작업이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진 속에서는 덤프트럭이 아닌 1톤 트럭으로 싣고 온 하얀 포대에서 어떤 시커먼 물질을 꺼내 창고부지 한가운데에 매립하는 것이었다. 덤프트럭이 아닌 1톤 트럭에 그런 것을 실어왔다는 것은, 재생골재보다 훨씬 독성이 강한 물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마을 주민은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몰라서 낮부터 하던 일을 밤에도 하더라는 식으로 말한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관련 민원을 두 개 작성하여 보냈다. 아마도 한 건은 내일 오전에 도청에서 민원을 확인하고 시청으로 보낼 것이고, 다른 한 건은 오전에 한국농어촌공사를 찍고 오후에 지역 지사로 내려보낼 것이다.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시골은 눈을 떠도 코를 베어가는 곳이다.
(2021.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