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6

[한문] 천자문 (14/14)

   


118. 毛施淑姿 工顰姸笑

모장(毛嬙)과 서시(西施)의 정숙한 자태는, 교묘히 찡그리고 곱게 웃어도 아름다웠다.

모장은 월왕 구천(句踐)의 애인이고 서시는 오왕 부차의 애첩. 둘 다 미모가 워낙 출중하여 사람들은 서시가 아파서 찡그린 모습을 보고도 서시가 하는 대로하면 모두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고 흉내 내었다고 함

毛(털 모)  施(베풀 시)  淑(맑을 숙)  姿(맵시(모양)자)
工(교묘할(장인) 공)  顰(찡그릴 빈)  姸(고울 연)  笑(웃을 소)


119. 年矢每催 曦暉朗耀

세월은 화살처럼 쉼 없이 재촉하여 흘러가지만, 태양은 언제나 유유히 빛난다.

年(해 년)  矢(살 시)  每(매양 매)  催(재촉할 최)
曦(햇빛 희)  暉(빛 휘)  朗(밝을 랑)  耀(빛날 요)


120. 璇璣懸斡 晦魄環照

혼천의 매달려 돌아가듯, 그믐달은 보름이 되면 밝게 비춘다.

- 璇璣: 북두칠성의 첫째별에서 넷째별까지(국자 모양에서 자루 부분에 해당되는 별)를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천문 관측을 위해 고안한 천체 모형을 가리킴.
* 선기를 옥으로 장식해서 선기옥형(璇璣玉衡)으로 부르는데, 후한 때 장형이 이를 더 개량하여 만든 것이 혼천의(渾天儀).

璇(아름다운옥 선)  璣(구슬 기)  懸(매달 현)  斡(돌 알)
晦(그믐 회)  魄(달빛(넋) 백)  環(돌(고리) 환)  照(비칠 조)


121. 指薪修祐 永綏吉劭

육신은 결국 없어지지만 명인(名人)들의 ‘이름’은 전하여 영원하다.

- 指薪修祐: 『장자』 「양생주」편의 “손가락이 장작 지피는 일을 다하더라도 불은 전달되어서 꺼질 줄을 모른다”(指窮於爲薪, 火傳也, 不知其盡也)를 다시 쓴 것. 여기서 ‘신(薪)’을 육체를, ‘화(火)’는 정신을 비유한 것으로 몸은 결국 없어지지만 정신은 후세에 전달된다고 풀이하는 것이 보통이다.

指(가리킬 지)  薪(섶나무 신)  修(닦을 수)  祐(도울 우)
永(길 영)  綏(편안할 수)  吉(길할 길)  劭(아름다울 소)


122. 矩步引領 俯仰廊廟

절도 있게 걷고 옷깃을 단정히 여미며, 조정 일을 심사숙고하여 처리한다.

- 矩步: 자로 잰 듯 법도에 딱 맞는 걸음걸이의 자태
- 引領: 옷깃을 단정하게 여미는 일
- 俯仰: 원래 의미는 ‘머리를 숙여 내려다보고 머리를 들어 올려다 보다’이다.
- 廊廟: 대전 주위의 부속 건물을 뜻하지만, 간접적으로는 조정을 가리킨다.
  
矩(법 구)  步(걸음 보)  引(끌 인)  領(목 령)
俯(구부릴 부)  仰(우러를 앙)  廊(복도 낭)  廟(사당 묘)


123. 束帶矜莊 徘徊瞻眺

의관을 갖추고 의연한 자세를 하고서, 여유롭게 걸으며 여기 저기 바라본다.

束(묶을 속)  帶(띠 대)  矜(자랑할 긍)  莊(장중할 장)
徘(노닐 배)  徊(노닐 회)  瞻(쳐다볼 첨)  眺(바라볼 조)


124. 孤陋寡聞 愚蒙等誚

학식이 천박하고 견문이 좁으면, 어리석은 자와 똑같이 꾸짖는다.

- 孤陋寡聞: 『예기』 「학기」의 “홀로 배우기만 하고 벗이 없으면 학식이 얕고 좁으며 견문이 모자라게 된다”(獨學而無友, 則孤陋而寡問)를 다시 쓴 것.

孤(외로울 고)  陋(좁을 루)  寡(적을 과)  聞(들을 문)
愚(어리석을 우)  蒙(어릴 몽)  等(무리 등)  誚(꾸짖을 초)


125. 謂語助者 焉哉乎也

이른바 어조사(語助辭)라는 것은 언(焉)・재(哉)・호(乎)・야(也)다.

謂(이를 위)  語(말씀 어)  助(도울 조)  者(놈 자)
焉(어조사 언)  哉(어조사 재)  乎(어조사 호)  也(어조사 야)
   
  
* 참고 문헌
  
김근, 『욕망하는 천자문』 (삼인, 2003)
박성복, 『천자문풀이』 (대구대학교출판부, 2012)
한정주, 『천자문 인문학』 (다산초당, 2016)
  
  
(2019.12.15.)
       

2020/02/05

돌 화폐 섬 이야기에 관한 철학 전공자들의 반응

   
동료 대학원생들에게 돌을 화폐로 사용하는 섬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비트코인과 관련한 철학적 함축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내가 아는 한 그에 대한 유의미한 철학적 논의는 없다는 취지로 돌 화폐 섬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밀턴 프리드먼은 『Money Mischief』(1992)의 1장에서 돌 화폐 섬 이야기를 소개한다. 돌 화폐 섬 이야기가 처음 소개된 것은 인류학자 윌리엄 헨리 퍼니스 3세가 1910년에 출간한 『돌화폐 섬』(The Island of Stone Money)이며 프리드먼은 이를 소개한 것이다.
  
마이크로네시아에 있는 캐롤라인 군도의 서쪽 끝에는 얩(Yap)이라는 섬이 있다. 이 섬에서는 금속 물질이 생산되지 않아서 돌을 돈으로 사용한다. 돌돈은 섬에서 400마일 떨어진 섬에서 나오는 석회석으로 만든다. 돌돈의 특징 중 하나는 돈의 주인이 돈에 소유주를 나타내는 별도의 표시를 하지 않더라도 공동체의 인정만 받으면 그 돈에 대한 소유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돌돈을 싣고 오던 배가 뒤집혀서 돈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 돌의 크기, 가치, 소유주를 인정하면 그 돈의 구매력은 유지된다. 얩 섬을 스페인에게서 사들인 독일 정부는 돌돈의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여 도로를 보수하기도 했다. 섬 주민들이 도로 보수 명령을 듣지 않자 독일 정부는 집마다 관리를 보내서 돌돈에 정부 소유를 의미하는 검은 십자 표시를 했다. 한순간에 재산을 잃은 주민들은 섬을 관통하는 도로를 보수했고, 공사가 끝난 후 정부 관리들이 돌돈의 십자 표시를 지우자 주민들은 예전처럼 살 수 있었다.
  
프리드먼이 얩 섬의 이야기 다음에 소개하는 이야기는 1930년대 미국의 이야기다. 프랑스은행은 금본위제에서 미국이 기존 가격(금 1온스당 20.67달러)을 유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여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맡긴 달러 자산을 대부분 금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바꾼 금을 굳이 프랑스로 가져갈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프랑스은행은 그 금을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보관하도록 했다. 연방준비은행 직원은 금 저장실에서 프랑스은행이 달러 자산을 팔고 받게 된 금을 별도의 서랍에 넣고 그 서랍에 프랑스 자산이라는 표시를 붙였다. 그러자, 미국의 금 보유고가 감소했다고 난리가 났고 이는 미국 금융공황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프리드먼은 두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어떤 것의 외양이 어떻든지 간에 그것에 관한 사람들의 믿음이 확고하다면 그것은 금융 측면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이다. 얩 섬에서 바다 밑에 가라앉은 돌돈의 소유자들이 윤택한 생활을 하는 것이나 금본위제 하에서 금을 지하 보관실에 넣어놓고 금태환 화폐를 가지고 경제생활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으며, 독일 정부에서 돌돈에 검은 십자 표시를 해서 섬에 난리가 난 것이나 연방준비은행 지하실 한쪽에 있던 금이 다른 쪽으로 간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프리드먼은 책의 서문에 “화폐 현상을 다룰 때 돈의 겉모습이 얼마나 오류를 유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얩 섬의 이야기를 소개한다고 썼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에는 기존의 경제 현상에 없었던 어떤 새로운 요소가 있는가? 암반을 뚫고 금속을 채굴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채굴한다는 것 빼고, 새로운 이론이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할 어떤 새로운 점이 비트코인과 관련하여 있는가? 그런 점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할 텐데, 애초부터 그런 것이 없으니 개소리꾼들이 비트코인이 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은행과 화폐 시스템에 대한 기술적 테러라는 둥, 공허한 수식어나 덧붙인 것은 아닌지.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은 동료 대학원생들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오, 신기하다! 그거 어떤 철학자의 논문에 나와요? 누구의 사고 실험이에요?” 나는 분명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태평양에 있는 섬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이 모두 사고 실험인 줄 알았던 것이다. 문학 애호가들은 조금만 그럴듯하면 지어낸 이야기도 마치 실제 세계에서 벌어진 일인 것처럼 여기는데, 철학 전공자들은 실제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어도 신기한 구석이 있으면 누구의 사고 실험이냐고 묻는다. 전 지도교수님의 말씀처럼, 철학 하는 사람들한테는 약간씩 독특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2019.12.05.)
    

2020/02/04

[생물학의 철학] Okasha (2004), “The “averaging fallacy” and the levels of selection” 요약 정리 (미완성)

   
[ Samir Okasha (2004), “The “averaging fallacy” and the levels of selection”, Biology and Philosophy 19: 167-184. ]
  
  
  1. Introduction
  2. Multi-level selection, the evolution of altruism and the averaging fallacy
  3. Genic selectionism and heterozygote superiority
  4. How to compare the two averaging arguments
  5. A possible reconciliation
  6. Conclusion
  
  

  1. Introduction

167
소버&윌슨(1998)의 주장: 선택 과정은 순전히 개체수준의 선택에 의해 일어난다. 그래서 평균의 오류를 피함으로써, 생물학에서의 집단 선택과 이타주의에 대한 논쟁을 해결할 수 있다.

167-168
평균의 오류가 일어나는 과정
개체군은 두 유형의 개체를 포함하는 수많은 하부 집단으로 나뉘고, 그 안에서 그 개체들의 비율은 변화한다.
두 개체-유형들의 적응도는 모든 집단에서의 각 유형의 적응을 평균내서 계산된다.
개체군 전체에서 가장 적응을 잘한 개체-유형은 각 하부 집단에서 덜 적응할 수 있지만 해당 개체-유형이 번성하는 집단들은 그 개체-유형이 드문 집단보다 더 적응을 잘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개체-유형은 집단선택과 개체선택 모두의 대상이다.
각 집단에서 개체선택은 집단에 반대되는 일을 하지만, 이는 다른 집단의 생산성에 의해 대응된다.(??)
모든 집단에 걸친 적응도를 평균 내는 것은 선택 과정의 다층적 수준을 모호하게 한다.

168
소버와 윌슨은 


이 논문의 목적
두 “averaging” 논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구조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그 둘이 양립 불가능함을 증명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
여기서 초점은 소버의 비일관성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해 보이는 두 논문의 논리적 관계를 명확히 보이는 것
마지막 장에서 두 논증이 화해하는 가능한 방법을 제안
인과적 과정으로서의 유전자 선택과 진화를 살피는 유용한 관점으로서의 유전자 선택을 구분한다면, 우리는 두 논증을 다른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비일관성은 제거된다.


  2. Multi-level selection, the evolution of altruism and the averaging fallacy

■ 이타주의자 진화의 모형 [pp. 169-170]
- S: 이기주의자, A; 이타주의자
- 무성생식
- 이기주의자는 이기주의자를 낳고, 이타주의자는 이타주의자를 낳는다
- 개체군은 수많은 하위집단으로 나뉘고, 각 집단에서 이타주의자의 비율은 다르다.
- 개체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일생을 보내고 적응에 영향을 주는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 생식이 일어난 후에 개체들은 즉시 죽는다. 그러면 각 집단은 흩어지고 그 후손들은 전체 개체군에 섞인다. 
- 그 다음 새 집단이 형성되고 주기는 반복된다.

개체의 적응은 그것이 이기주의자냐 이타주의냐에 의존하고, 또한 그것이 속한 집단에 의존한다. 
개체의 집단에서 이타주의자의 비율이 높을수록, 그 개체의 적응도 높다.
어느 집단에서든, 이기주의 개체는 이타주의 개체보다 더 적응을 잘한다.

적응도 함수
Wᴀ(x) = 1-c+b(x-1)
Wₛ(x) = 1+bx

Wᴀ(x): 이타주의자를 x개 포함하는 집단에서 한 이타주의자의 적응도
Wₛ(x): 이타주의자를 x개 포함하는 집단에서 한 이기주의자의 적응도
각 개체는 적응도 1을 기준선으로 가진다.
c; 이타적으로 행동할 때의 적응 비용 (c>0)
b: 각 집단에서 이타주의자로부터 받는 적응 이익 (b>0)

170
이와 비슷하게, 크기 N인 개체군이 동일한 크기 n으로 나뉘는 것을 가정

WG(x) = xWᴀ(x) + (n-x)Wₛ(x)
      = x[b(n-1) - c] + n

WG(x): 이타주의자를 x개 포함하는 집단의 적응도

b와 c가 상수이므로 집단 적응도는 그 집단의 이타주의자 비율에 대한 직선 함수
b > c/(n-1)은 이타주의자가 진화하기 위한 필요조건

[] (pp.170-171)
이타주의자의 평균 적응도를 계산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타주의자를 포함하는 개체군에서의 전반적인 집단-유형을 평균 내고, 각 집단-유형의 빈도와 각 집단-유형 안에서의 이타주의자의 비율에 의해 비교한다.


f(i): 전체 개체군에서, 이타주의자 i개와 이기주의자 (n-i)를 포함하는 집단의 빈도


171

Wᴀ(x) = 1-c+b(x-1)
집단에서 


  3. Genic selectionism and heterozygote superiority
  4. How to compare the two averaging arguments
  5. A possible reconciliation
  6. Conclusion


  
  
(2014.10.21.)
    

2020/02/03

글쓰기 지도에서 기획서 검토의 이점

   
학부 글쓰기 수업 조교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어떤 글의 기획서를 검토하는 일은 그 글의 초고나 완성본을 첨삭하는 일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글쓰기 지도 방식이라는 점이다. 기획서 검토에는 초고나 완성본 첨삭에는 없는 몇 가지 이점이 있다. 학생들이 글의 구조에 대해 생각해보기 좋다. 글 쓰는 실력이 는다는 것은 글의 구조를 뜯어고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기획서 단계에서 글을 검토하면, 학생은 글의 구조에 대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그 결과물들을 비교해볼 수 있다. 글의 뼈대만 있는 상태이므로 부분적으로 고치기도 쉽고 글의 배열을 바꾸기도 쉽고 전면적으로 개편하기도 쉽고 아예 새로 시작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조교도 일하기 좋아서 첨삭할 때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잡아줄 수 있다.
  
거의 다 써놓은 글을 첨삭하면 이러한 이점이 다 사라진다. 조교는 조교대로 힘만 들고 학생은 학생대로 배울 것이 별로 없다. 이미 다 써놓은 글을 고쳐서 좋은 글이 되려면 이미 초고 상태가 웬만큼 좋아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학생만 글이 늘고 일정 수준 미만의 학생은 글이 전혀 안 느는, 일종의 부익부 빈익빈이 글쓰기에서도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초고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서 좋은 글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초고나 완성본을 뜯어고치다 사실상 글을 새로 써주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학생은 글쓰기를 배우기 어렵다. 학생은 자기 글이 철저하게 망했다는 것과 그 폐허 속에서 처음 보는 글이 생겨났다는 신기한 경험을 할 뿐이다. 이렇게 할 거면 학생이 쓴 글을 첨삭할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남이 잘 써놓은 글을 읽고 뜯어본 다음 글의 구조를 공부하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조교가 학생의 글을 그렇게 다 뜯어고치는 경우도 드물다. 할 일은 많고 받는 돈은 적고 효과도 없는 일을 쓸데없이 열심히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글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하거나 새로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조교는 학생의 글을 힘들여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힘내라는 말을 남기고 낮은 점수를 준다.
  
글을 못 쓰고 있는 학생에게 “일단 뭐라고 써가지고 오라”는 말을 한다면 “초고 분량의 글을 써오라는 것이 아니라 일단 무언가를 적으면서 생각을 정리한 다음 계획서로 간추려서 오라”는 말을 꼭 덧붙여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학생이 오해해서 초고 분량으로 무언가를 잔뜩 써가지고 오면 학생은 배운 것 없이 힘들고 조교는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해서 괴롭기만 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2019.12.03.)
    

2020/02/02

밥그릇을 빼앗긴 화천이와 털복숭이

   
고양이마다 의사표현 하는 방식이 다르다. 화천이는 배가 고프면 “야-옹” 하는 소리를 낸다. 화천이의 새끼인 털복숭이는 현관문을 두드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을 두드린다기보다는 긁으려다 두드리게 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현관문 밖에서 나는 소리만 들으면 두 고양이 중 누가 배가 고픈지를 알 수 있다.
  
“야-옹” 하는 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서 고양이 밥그릇에 고양이밥을 담았다. 잠시 후 또 다시 “야-옹” 하는 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 사이에 밥을 다 먹었나, 밥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놀자고 나를 부른 것이었나, 싶어서 현관문을 열었다. 화천이가 낳은 새끼들이 밥그릇에 달라붙어서 사료를 먹고 있었다. 밥을 먹고 싶은데 먹지 못하니까 다 큰 고양이들이 나를 부른 것이었다.
  
평소 털복숭이는 화천이 밥을 빼앗아 먹기를 즐겨했다. 자기 밥을 빨리 먹고 화천이 밥그릇에 머리를 들이밀기도 했고, 자기 밥도 다 먹기도 전에 화천이 밥그릇에 앞발을 넣기도 했다. 그랬던 털복숭이도 화천이 새끼들을 자기 밥그릇에 달라붙자 새끼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나를 부른 것이다.
  
사료를 먹던 화천이 새끼들 중 몇 마리가 배가 부른지 밥그릇에서 떨어져나갔다. 그러자 자기 밥그릇을 되찾은 털복숭이는 다시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어미인 화천이는 새끼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밥그릇 근처에서 눈을 질끈 감고 기다렸다.
  
  
  
  
  
  
  
  
  
(2019.12.02.)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