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8

[과학철학] Snyder (1994), “Is Evidence Historical?” 요약 정리 (미완성)

   
[ Laura J. Snyder (1994), “Is Evidence Historical?”, in Peter Achinstein and Laura J. Snyder (eds.), Scientific Methods: Conceptual and Historical Problems (Malabar, Fla.: Krieger Publishing Company, 1994), 95-117. ]


  1. The Preference for Prediction
    1.1. The “No coincidence” Argument
    1.2. The Falsification Argument
    1.3. The Positive-Relevance Argument
  2. The Case for Explanation
  3. The Concept of Evidence
  4. Scientific Evidence and the Historical Thesis

  
■ 서론
- 예측과 설명
• “예측”(prediction): 일상적 용법은 미래의 사건을 지시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알려지지 않은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술(correct statement).
• 예) 공룡 멸종 원인에 대한 예측
• “설명”(explanation): 이미 참이라고 알려진 사실과 관련됨.
- 증거가 설명에 있는지 예측에 있는지에 관한 논쟁은 이론이 제안된 시점과 상대적으로 증거가 참이라고 언제 알려졌는지와 관련됨.
• 이론 T가 제안되었을 때 정보 e가 이미 알려졌고 T는 e를 설명한다면, e는 “오래된 증거”
• T가 e를 함축하지만 T가 제안되었을 때 e가 알려지지 않았다면, e는 “새로운 증거”
- 스나이더의 주장은, 두 입장은 유지되기 힘들다는 것. 왜냐하면 이론 창안에 상대적으로 e가 참이라고 알려진 시점은 증거로서의 지위와 유관하지 않기 때문임.
• 증거에 관한 “역사 논제”(historical thesis)를 거부함.
• 증거는 예측에 있는 만큼 설명에도 있다는 것.

■ 예측주의
- “우연 불가” 논변 (휴웰)
• 예측 성공에 대한 최선의 설명은 예측에 사용된 이론이 참이라는 것.
• 그리고 “최선의” 설명이므로 “옳은”(correct) 설명이라는 것.
• 예측과 사건의 일치에 관한 다른 가능한 논리적 설명은 하지 않음.
- 반증 논변 (포퍼)
• 예측만 증거로 간주됨. 예측만이 어떤 이론의 “잠재적 반증자”이기 때문.
• 어떤 이론이 알려진 사실들을 설명한다면, 이 정보는 그 이론의 잠재적 반증자가 될 수 없음. 왜냐하면 설명된 사실이 참이라고 이미 알려졌기 때문임.
• 그러나 어떤 이론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예측하고 그 예측이 관찰로 검증가능하다면, 그것은 잠재적 반증자로서 기능함.
- 긍정적 유관성 논변 (베이지안)
• e는 h의 증거이다 iff p(h/e) > p(h)
• e는 h의 증거이다 iff e가 주어졌을 때의 h의 확률이 h만 있을 때의 확률보다 높다.
• Bayes’ theorem: p(h/e) = [p(h)×p(e/h)]/p(e)
• 정의상, 알려진 사실은 확률이 1. 즉, p(e)=1. 
• p(e)=1이라면, h는 e와 일치하므로(h가 e를 설명하므로), p(e/h)=1
• 그러므로 베이지안 정리를 사용하면, p(h/e) = p(h)
• 즉, e가 h가 설명하는 알려진 사실일 때, e는 h가 참일 확률을 높이지 않음.
• 증거에 관한 긍정적 유관성 견해에서, 알려진 사실에 관한 설명은 어떤 이론에 관한 증거로 간주되지 않음.

■ 설명주의의 사례
- 과학사학자 스테판 브러쉬(Stephen Brush)는 증거가 “새로울 것”을 요구하는 모든 견해에 반대하는 논증을 함.
• 예측은 어떤 이론에 대한 “믿을만한” 증거일 수 없다는 것.
• 알려진 사실들에 대한 설명만이 과학 이론에 관한 증거로서 간주될 수 있다는 것.
• 브러쉬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포함한 사례들을 제시함.
- 성공한 예측은, 다른 이론들이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기 전까지, 어떤 이론에 관한 좋은 증거나 “믿을만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함.
• 스나이더는 이를 브러쉬 견해의 “동등한 기회” 요건이라고 부름.
• “빛의 굴절은 대안 이론들이 실패하기 전까지 아인슈타인 이론에 관한 믿을만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함.
• 빛의 굴절에 관한 최초의 보고가 나온 지 10년이 지나서야 그 현상이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관한 증거라고 그럴 듯하게 주장될 수 있었음.

■ 역사 논제
- 예측이 증거라는 견해와 설명이 증거라는 견해 모두 “역사 논제”에 동의함.
• 역사 논제는, 증거에 관한 그럴듯한 이론에서, h의 창안에 상대적으로 e가 알려진 시점은 e가 h의 증거인지 여부에 유관하다는 입장.
- 예측주의자의 입장
• e는 h가 제안된 시점에는 참임이 알려지지 않고 h가 제안된 이후에 발견되었을 때만, e는 h에 대한 증거
- 브러쉬의 견해
• e는 h가 제안되기 전에 참임이 알려져야만 e가 h에 대한 증거
- 일반적인 역사 논제를 따르는 다른 견해
• e가 참이라고 알려진 시점은 e가 얼마나 h를 입증하느냐와 유관하다.
• 예) 휴웰의 견해

■ 증거 개념
- 증거는 e가 h가 참임을 믿을 근거를 제공하는 것.
- 근거에 관한 구분
• 구분(1): 주관적(personal) or 비-주관적(impersonal)
• 구분(2): 객관적(objective) or 비-객관적(nonobjective)
- 근거에 관한 주관적 입장
• 사실적(factual): 개인 P가 근거 e 때문에 h를 믿을 때만 e는 P가 h를 믿는 사실적 근거
• 규범적: P가 e 때문에 h를 믿든지 안 믿든지 P가 h를 믿을 근거를 e가 제공할 때만, e는 P가 h를 믿는 규범적인 근거
- 스나이더는 과학에서 증거는 비-주관적 의미로 사용된다고 함.
• 비-주관적 의미의 증거 개념에 대한 철학적 설명에는 객관적(objective) 입장과 비-객관적(nonobjective)가 있음.
- 증거의 객관적 개념의 일반 조건(Objective Concept of Evidence): e가 h에 관한 증거인지 여부는 e, h 등에 관한 누군가의 믿음이나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e가 h에 관한 증거라면, 어떤 사람이 아는 것이나 믿는 것과 무관하다.
• 카르납, 헴펠, 글리모어, 애친슈타인 등
• 특정한 객관적 이론의 조건이 충족된다면, e는 모든 사람에게 증거가 되고, 그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e는 증거가 되지 않음.
• 그래서 객관적 이론은 과학자들이 이론 선택에 관한 논쟁과 증거적 주장을 평가할 때 비-주관적 개념으로서 증거를 옹호함.
- 역사 논제의 저자들은 역사 논제가 객관적 증거 이론과 양립불가능한 논제임을 인지하지 못함.
• 객관적 견해에서, e가 h의 고안과 상대적으로 알려진 시점은 e가 h에 관한 증거인지와 유관할 수 없음.
•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 논제를 받아들이려면, 증거에 관한 비-객관적 견해와 양립가능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견해가 증거의 비-주관적 견해를 포착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함.
- 증거에 관한 비-객관적 개념(Nonobjective Concept of Evidence): 시점 t에 e가 h에 관한 증거인지 여부는 누군가(특정인이거나 특정 집단)가 t에 e, h 등을 알거나 믿는 것에 의존한다.
• 주관적 베이즈주의와 전문가 상대적 개념
- “주관적 베이즈주의”(subjective Bayesianism)
• 개인 P에게 e는 h에 관한 증거 iff 
(i) e는 h에 관한 P의 믿음의 정도를 증가시킨다
(ii) e가 주어졌을 때 h를 믿는 정도는 P가 가지는 믿음들의 확률적으로 일관된 집합(coherent set)의 부분이다.
- 주관적 베이즈주의에 관한 스나이더의 비판: 주관적 베이즈주의가 과학에서 쓰이는 증거 개념을 포착하지 못한다고 봄.
• 주관적 베이즈주의는 증거의 비-주관적 개념을 부정함.
• 믿음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다른 두 사람은 같은 증거가 주어졌을 때 특정 가설에 관한 믿음의 정도가 크게 다를 수 있다.
• 예) 홍역에 관한 의사와 할머니의 판단 차이
- 전문가 상대적 견해
• “전문가 상대적” 개념(“Expert-relative” Concept): e는 시점 t에 h에 관한 증거이다 iff t에 “전문가들”에게 알려진 정보체 b가 있고 b가 주어졌을 때 e는 h를 믿을 근거이다.
• 현재 과학 지식 체계의 내용을 성립시키는 “과학 전문가들”이라는 개념에 호소
• 이 개념의 중요한 측면은 “지식체”(body of knowledge)가 과학 전문가들이 수용하는 비-논쟁적 사실들에 있다는 것.
• 이는 일시적인 개념(temporal concept)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용된 지식이라고 간주되는 것은 변화함.
• 이 개념은 과학에서 주어진 시점의 증거의 비-주관적 본성을 포착할 수 있지만, 증거에 관한 객관적 개념과 달리, 전문가 상대적 견해는 역사 논제와 양립불가능함.

■ 결론
- 역사 논제가 과학에서 증거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포착하는 어떠한 증거 이론과도 양립불가능함을 논증.
- 설명과 예측의 논쟁에 관한 두 입장들은 유지될 수 없음.


(2020.01.21.)

2019/09/17

교양프로그램의 산업혁명 발생 원인 진단

    
30년 전에 나온 동양과학사 책 중에 김영식 선생님이 편역한 『중국 전통문화와 과학』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동양과학사 논문 중 전통과학사에 대한 고전적인 논문을 번역하여 엮은 것이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김영식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국 전통문화의 여러 분야 중에서 과학만큼 일반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등한시 된 분야는 드물다. 그러나 이해의 결여와 무지에도 불구하고 중국 전통과학 전반에 관한 아주 단순화된 생각이나 인상적 언급들은 수없이 많았다. 일반사람들만이 아니라 중국에 관심을 지닌 과학자・철학자들, 그리고 중국학 학자들까지도 중국의 과학이 ‘앞서 있었다’거나 ‘뒤져 있었다’는 등의 말을 서슴지 않고 해댔고, 심지어는 중국에 과학이 ‘있었다’거나 ‘없었다’는,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이었냐 하는 얘기들까지 자주 거론되었다. 물론 때로는 아주 흥미 있는 관찰이나 심오한 통찰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구체적 세부사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얻어지기에 앞서서 나타난 같은 생각과 느낌들은 대부분의 경우 왜곡됨과 부정확함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당초 이 같은 일이 생겨난 것은 중국 전통과학에 대한 이해와 연구의 부족, 보잘 것 없는 수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중국 전통과학의 구체적 세부사실에 대한 깊은 이해는 어디에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20년 정도를 통해 상황은 상당히 변해서 중국 전통과학의 여러 분야와 측면들을 학문적으로 깊이 있게 다룬 연구결과가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 그러나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된 어느 정도 수준의 연구업적들에 담긴 내용은 일반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중국 전통과학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는 아직도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단순화된 생각이나 인상적인 느낌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상태이다. 그리고 중국학 학자들 중에도 과학에 무관심한 사람은 이런 점에서 일반사람들에 비해 더 나을 것이 없는 경우도 있다.(3-4쪽)
  
이 책이 한국에 나온 것은 1986년이고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은 그로부터 20여 년 전에 영어로 출판된 것이다. 그러든가 말든가, 그 책이 출판된 지 15년 가량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KBS1TV 교양 프로그램에 127일 간 e-mail을 주고받던 동양철학 교수와 서양철학 교수가 나와서 동아시아에 과학이 있었네 없었네 논쟁을 하는 벌이곤 했다. 그로부터 다시 15년 가량 지난 지금, 방송에서 동아시아에 과학이 있었네 없었네 하며 대놓고 막 나가지는 않지만, 여전히 미진한 구석이 적지 않다. 한국의 교양프로그램은 한국에서 30년 전에 출판된 전공 서적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 참고 자료: 김영식 편역, 『중국 전통문화와 과학』, (창작과비평사, 1986),
  
  
(2019.07.17.)
   

2019/09/15

인천 차이나타운 초한지 벽화거리

   
인천 차이나타운에 초한지 벽화거리가 있다. 초한지 내용을 벽화로 만들어놓은 것인데 어디서 본 듯한 그림이 몇 개 있다. 내용은 고대 중국에 가깝고 형식은 현대 중국에 가까운 것 같다.
  
  
   
  
  
  
   
  
  
(2019.07.15.)
    

2019/09/13

2019/09/12

소논문을 고등학교에서 지도할 수 있을까

   
아르바이트로 간 고등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어떤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그 뭐죠? 사람들이 농구공 주고받는데 고릴라 지나가는 거 모르는 거. 그걸 무슨 현상이라고 하죠?” 투명 고릴라 실험은 선택적 인지의 대표적인 실험 중 하나다. 나는 그 학생이 교양서적을 읽고 궁금한 것이 있어서 물어보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학생은 학교 수업에서 투명 고릴라 실험을 가지고 발표한다고 했다. 선택적 인지는 인지심리학에서 나오는 것일 텐데 고등학교에서 정규 수업 시간에 그걸 왜 발표하는가? 학생은 답했다. “생물 시간에 발표를 해야 하는데 저는 문과라서 생물학에 대해 아는 것도 없구요, 생각난 게 투명 고릴라 실험이라서 그걸 발표하려구요.”, “발표 주제가 뭔데?”, “자유예요.”, “가이드라인 같은 것은 없어?”, “없어요.”, “선생님이 지도하거나 첨삭하거나 그런 것도 없어?”, “없어요.” 학생이 알아서 뭔가 해오면 교사는 그걸 보고 뭔가를 학생부 같은 데 기록하고 그뿐이라는 것이다. 학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는 이런 걸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옆에 있던 학생은 천문학에 대해 발표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물어보았다. “천문학 책 아는 거 있어?”, “없어요.”, “천문대 갈 수 있는 곳 알아?”, “몰라요.”, “망원경이라도 있어?”, “없어요.” 그 학생도 이렇게 말했다. “저도 이런 걸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웃겨서 나는 한참 웃었다. 한참 웃고 나서 그 학생에게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천문학 발표야? 그 정도면 자연철학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사실, 고대 그리스에서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학생들은 자기가 왜 발표를 해야 하는지, 무엇을 발표를 해야 하는지 모른다. 다만 학생부에 뭔가를 적어야 한다는 것은 안다. 그런 발표를 시키는 교사도 학생들에게 무엇을 시켜야 할지 모를 것이다. 학생부에 뭔가를 적지 않으면 학생들이 대학 가는 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알 것이다.
  
교실 벽에는 <대학 학과별 추천도서>라는 표가 있었다. 학과별 추천도서명과 저자명이 있고 옆에는 난이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신소재공학과 추천도서 중에는 길리스피의 『객관성의 칼날』도 있는데 난이도가 ‘중’으로 되어있다. 같은 과 추천도서인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는 난이도가 ‘상’이다. 『객관성의 칼날』은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보다 훨씬 어려운 책이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추천도서를 선정한 사람은 자기가 무슨 책을 추천하는지도 모르면서 추천도서 목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학생들은 그 목록에 나온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 그렇지만 독후감을 쓴다고 한들 누구 하나 그 학생들의 글을 고쳐주지 않을 것이다.
  
   
  
정책을 만들 때, 의도는 좋았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에서 입시 위주로 교육을 하면 창의성도 안 생기고 인성도 나빠진다는데,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하고 토론하고 고민해서 결과물을 만들면 뭔가 좋아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건 없다. 학생들은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렇다고 지도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교사는 자기 일 하기도 바쁘다. 그렇다고 관련 인력을 채용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잘해봐야, 방과후학교나 특강 형태로 외부 인력의 도움을 받는 것밖에 없는데 그것도 서울이나 몇 개 대도시 정도에서나 가능할까 말까 한 일이고 지방 중소 도시나 시골 같은 데는 그런 인력을 데려올 방법이 없다. 그리고 외부 인력이라고 해도 누가 믿을만한 사람이고 누가 아닌지 알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영재고 같은 곳이면 모르겠지만, 일반고는 물론이고 웬만한 자립형 사립고에서도 소논문 같은 것과 관련하여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사교육에서 그런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인데, 내가 관련 시장 상황을 모르니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런 쪽 관련 사교육에서 정말 괜찮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 때의 격차는 수능 문제 몇 개 맞고 틀리고의 차이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수능 사교육은 표준화된 대량 생산이 가능하지만 이런 쪽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웬만큼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서비스 공급량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괜찮은 연구자인데 불운하여 교수는 안 되고 시간강사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요즈음 추세대로라면 멀지 않은 미래에 돈 있는 부모 중에 불운한 연구자한테 자식 교육을 맡기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입시 과목은 학원이나 다른 강사한테 맡기고 불운한 연구자한테는 보모 역할 겸 해서 아이들하고 놀아주라고 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자란 아이들 중에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고전이나 논문을 읽는 아이들이 나타날 것이다. 옛날 유럽 귀족들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때, 어떤 집에서는 이지성 책을 읽은 부모가 자식 손 잡고 교보문고에 가서 읽을 수도 없는 고전을 사와서는 공책에 받아쓰라고 시킬 것이다.
  
돈 있는 집이나 돈 없는 집이나 이지성 책 읽고 고전 필사하는 것보다는 둘 중 한 쪽이라도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이 좋은 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게 무엇을 함축하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9.07.12.)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