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서울대에서 어떤 학생이 A+를 받는지가 화제가 된 적 있다. 어떤 교육학 박사가 한 연구 때문이다. 그 연구자는 서울대에서 어떤 학생들이 학점을 잘 받는지 연구하려고 두 학기 연속 평점 4.0 이상인 학생들을 인터뷰했고, 응답자들 중 상당수가 학점을 잘 받기 위해 창의성을 포기했다는 답변을 했기 때문이다. 응답자들 중에는 성적을 잘 받으려고 교수가 수업 중 농담한 것까지 토씨 하나 안 빼놓고 필기해서 외운다는 사람도 있었고 답안지에 창의성을 드러냈더니 오히려 학점이 안 좋았다고 답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 연구는 여러모로 수상하다. 이공계나 경제학과의 전공과목에서는 아무리 수업 내용을 완벽하게 외워도 문제를 못 풀면 학점이 망하게 된다. 철학과도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경우, 수업 필기만 외워가지고는 학점이 망할 수밖에 없다. 전공 수업인데 수업 필기 외워서 학점을 잘 받을 정도라면, 그건 적당히 말로 쌈싸먹는 학과라는 것이다. 그런 학과에서 창의성이 그렇게 중요한가. 예습 없이 수업에 들어가서 필기를 외워서 학점이 잘 나왔다는 것은 수업에서 요구하는 학습량 자체가 적었다는 것이다. 그건 딱히 배울 것도 없고 생각할 것도 없는 과목에서 암기 경쟁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교육학 연구는 해당 수업의 학습량이 많아서 학생들이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반대로 주장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창의적 사고 능력 향상 여부에 대해 옳은 평가를 했는지도 의문이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창의성이라는 것은 천재의 광기 비슷한 것이라서, 정말 창의적인 것을 보고 창의적이라고 하는 건지 밑도 끝도 없이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것을 보고 창의적이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응답자들의 인터뷰만 봐도 그렇다. 어떤 인문대생은 대학에서는 고등학교 때와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서 수업시간에 교수의 말을 받아적기보다는 자기 생각을 드러내려 했다가 1학년 때 형편없는 학점을 받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창의력이야 만점이었겠죠. 근데 실제 학점은 완전히 참혹했어요.” 그런데 그 학생이 생각한 창의력이 정말 창의력이기는 했을까. 미술대학 학생은 아예 이렇게 말한다. “창의력이란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창조하는 거잖아요. 그게 저한테는 너무 어렵더라고요. [...] 창의력이 뛰어난 애들은 수용하는 게 좀 약해요. 그래서 학점이 안 좋아요.” 미술학도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창의력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창조하는 것은 신이 하는 일이지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니다.
당시 언론은 온갖 호들갑을 떨면서 마치 교수들이 손 놓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여러 가지 방안을 시도하고 그 결과를 분석한다. 다만 대외비라서 공개를 안 하거나, 대외비는 아닌데 진행 중이어서 공개를 안 하거나, 공개했는데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어서 기사거리가 안 된 것뿐이다.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야 언론에서 장사가 된다.
몇 년 전 자연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몇몇 선생님들의 대화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선생님들의 공통된 의견은, 학점만 가지고는 학생들의 연구 능력을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학생들 중에는 (i) 창의성도 좋고 학점도 높은 뛰어난 학생도 있고, (ii)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도전적인 과제를 선택해서 학점이 망하는 학생도 있고, (iii) 전문대학원을 가거나 취업을 잘 하려고 학점을 관리하는 학생도 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iii)보다는 (ii)를 택하기를 원한다. 실제 대학원에 오는 학생들 중에 학부 학점은 엉망인데 대학원에서 다른 학생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심지어 수학과에서도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원에 가지 않을 학생이 굳이 (ii)의 길을 갈 이유는 없다.
(iii)의 길을 가기로 하는 학생은, 아예 작정하고 전공 수업은 최소한만 듣고 그것도 학습 부담이 적고 학점 잘 주는 과목 위주로 수강하고 나머지는 모두 교양 과목만 듣는다. 이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과에서 정말 중요한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정해서 학생들이 강제로 듣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과에서 각 교수들이 자기 과목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며 다툼을 벌이게 된다. 과의 모든 과목이 필수 과목으로 만들 수 없으니 어느 과목도 필수 과목이 안 되는 선에서 타협하게 된다. 학점을 A, B, C로 차등하지 않고 P/F로만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면 A만큼 공부할 학생들이 C만큼 공부하고 Pass로 처리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전문대학원이나 취업 시장에서 학점을 안 보는 방법이 있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경제학과 학생에는 취업의 길이 있고 대학원의 길이 있다. 어느 과목을 수강했는지만 봐도 그 학생이 취업을 염두에 두고 성적에 거품을 냈는지, 대학원에 가려고 사투를 벌였는지 알 수 있다. 이공계에서도 대부분 그러한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자기 과 성적표를 볼 때나 그런 게 보이지 남의 학과 성적표를 볼 때는 그런 게 안 보인다는 것이다. 약학전문대학원에서 기계공학과 학생의 수강 내역을 보고 무슨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학점과 PEET 말고 무엇을 더 보아야 학생의 역량을 측정할 수 있을까.
자연대 선생님들의 결론은 학점이 안 좋은 학생들 중에도 잠재력 있는 학생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그런 학생들을 알아볼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정상적인 발상이다. 창의성 좋은 순서대로 학점을 매길 방법을 찾는 창의성 대장 같은 발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점이 안 좋은 학생 중에 잠재력 있는 학생을 어떻게 찾아낼지 고민하는 것이 훨씬 상식적이다. 백번 양보해서, 학점에 학생의 창의성이 반영되는 날이 온다고 치자. 그러면 학점을 보면서 ‘아, 이 학생은 4.1만큼 창의적이고 저 학생은 3.7만큼 창의적이군’ 하고 판단할 것인가? 무슨 베지터인가?
나는 이번 학기에도 학부 수업을 듣는다. 이제는 내가 학부를 다니기나 한 건지, 내가 학부를 다녔다고 남들에게 말해도 되는 건지 의심이 든다. 이번에 청강하는 경제학과 학부 수업은 150명 정원에 열다섯 명이 듣는다. 경제학과 수업은 웬만하면 거의 100명씩 듣는데 이 수업은 철학과 학부 수업보다도 수강생이 적다. 왜 그런가. 시키는 건 많고 학점은 잘 안 주기 때문이다. 다른 수업이라고 만만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 선생님이 대학원 진학을 염두하고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오면 머신러닝해야 한다면서 이것저것 가르치고 진도가 막 나간다. 그런데도 열다섯 명이나 듣는 것이다.
지난 시간 수업 시작하기 전에 그 선생님은 어떤 문구를 화면에 띄웠다. 어느 미국 교수가 한 말이라고 한다.
“If you decided you don’t have to get A’s, you can learn an enormous amount in college.”
(당신이 A 받는 것만 포기한다면, 대학에서 어마어마한 것을 배울 수 있다.)
내가 미국 대학을 안 다녀봐서 그쪽 사정을 잘 모르지만, 교수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미국에서도 학점만으로는 학생의 역량을 충분히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전을 좀 해봐. 학점 그렇게 안 중요해. 사람이 실력이 있어야지. 하버드에서 학위 받아도 실력 없으면 바로 쫓겨나서 애들 과외나 하고 사는 거야. 학점 안 중요해. 물론, 나는 학점 잘 안 줄 거야.”
(2019.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