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외고 학생들에게서 메일 한 통을 받았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무슨 프로젝트에서 황순원을 연구하고 있는데 조언을 해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은 황순원 『소나기』의 주요 장면을 UCC로 제작할 준비를 하며 황순원에 대한 여러 자료를 수집하다가 내가 블로그에 쓴 <황순원 문학에 대한 양자론적 해석>이라는 글을 읽고 연락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황순원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다만 망상을 써놓은 수준의 글이 정식 학술 논문으로 나와서 미친놈들 다 죽어라 하는 취지로 글을 쓴 것일 뿐이다.
학생들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나한테까지 연락을 했을까? 대학은 가야겠고, 헛짓거리 몇 개 한다고 대학을 가는 건 아니지만 남들만큼 헛짓거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 하니 황순원 문학 가지고 UCC를 만든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UCC라니. 나는 노무현 정권 이후로 UCC라는 말을 못 들어본 것 같다. 분명히 나보다 나이 많은 교사나 업체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 학생들이 필요 이상으로 공부하는 것이 문제라면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잘 쉬고 운동 좀 하고 고기 많이 먹고 미륵사지 같은 데 가서 석양 좀 보게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미친놈들이 제도를 설계했는지 학생들에게 헛짓거리를 시켜서 학습 시간을 빼앗는 방식으로 학습 부담을 줄이고 있다. 그런데 이딴 식으로 헛짓거리를 시키면 학습 부담은 그대로이고 헛짓거리 부담만 늘어나는 건 아닌가? 이상한 입시제도 때문에 이래저래 학생들이 고생한다.
(2018.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