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담 중에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하다”라는 말이 있다. 태도가 분명하지 않음을 비꼬는 말이다. 이 속담이 언제 생겼는지 정확한 연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한국에 ‘폭탄주’라는 개념이 들어오기 전에 생긴 말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8.10.30.)
한국 속담 중에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하다”라는 말이 있다. 태도가 분명하지 않음을 비꼬는 말이다. 이 속담이 언제 생겼는지 정확한 연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한국에 ‘폭탄주’라는 개념이 들어오기 전에 생긴 말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8.10.30.)
욕망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내가 보기에 욕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컬투쇼>에 나오는 똥 사연 정도인 것 같다. 왜 사연남은 동굴 안에서 바지를 내렸는가? 똥을 싸려는 욕망 때문이다. 욕망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는 이 정도가 적절하다. 그런데 세상만사를 욕망으로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고, 정말 많이 배운 사람들 중에도 그런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왜 똥 사연 같은 소리를 진지하게 하는가.
우선, 욕망 타령이 얼마나 똥 같은 소리인지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욕망으로 세상만사를 설명하는 것 중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도 경제 현상일 것이다. 요즈음 주가가 심상치 않은데 언젠가 금융위기가 다시 온다면 이게 다 욕망 때문에 벌어졌다면서 설레발치며 돌아다닐 사람들이 분명히 나올 것이다. 금융위기마다 그것이 다 욕망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설치고 다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다음 번 금융위기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A라는 마을에 4억 원짜리 집 한 채가 있다고 치자. 돈에 눈이 뒤집힌 놈들이 몰려들어서 그 집을 8억 원까지 만들어놨다가 거품이 꺼지는 바람이 집값이 4억 원으로 떨어졌다고 한다면, 이 경우는 욕망이 문제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르게 만들 수도 있다. B라는 마을에는 모두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만 있다. 4억 짜리 집 주인은 집을 4억 1천만 원에 처분하고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수도원에 들어가서 살았다. 4억 1천만 원에 그 집을 산 사람은 4억 2천만 원에 집을 팔면서 1천만 원을 고아원에 기부했다. 4억 2천만 원에 집을 산 사람은 4억 3천만 원에 집을 팔면서 1천만 원을 자식 학비에 썼다. 이렇게 8억 원까지 집값이 올라갔다가 4억 원으로 떨어지면서 동네가 치명타를 입었다고 하자. 두 마을의 주택 가격 하락은 다른 현상인가? 아니다. 둘은 같은 종류의 현상이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욕망 같은 것을 설명항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떤 이점을 지니는가? 전혀 이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욕망과 관련된다. 그래서 욕망 같은 소리를 하면 어떤 현상이든 다 걸려들게 되어 있다. 살려는 욕망, 먹으려는 욕망, 자려는 욕망, 싸려는 욕망, 많이 아는 체 하고 싶은 욕망 등 어떻게든 이 중에 하나에는 걸려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인간이 하는 행위 중에 욕망과 무관한 것을 찾아보자. 불수의적 움직임이 아닌 이상 욕망과 무관한 행위는 거의 없다. 그래서 ‘욕망’이라는 마법의 단어만 쓰면 어떤 사안이든 끼어들어서 한두 마리 해도 되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욕망 가지고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어떤 건물이 무너진 이유를 물었을 때 중력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과 비슷하다. 중력 때문에 건물이 무너진다는 것을 누가 모르나? 건물 붕괴의 원인을 물을 때는, 어떤 놈이 철근을 빼먹어서 건물이 무너진 건지, 원래 설계했던 대로 하면 안 무너질 건데 설계 변경을 해서 무너진 건지, 지진이 일어났는데 내진 설계가 안 되어서 무너진 건지, 폭격을 맞아서 무너진 건지를 묻는 것이다. 건물 붕괴 원인이 중력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아무 내용 없는 말을 하는 것이다.
중력 때문에 건물이 무너졌다고 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점이 있다. 건축공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도 뭔가 통찰력 있는 한 마디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고, 그딴 소리를 듣는 사람도 역학 문제 단 한 개도 안 풀고도 건축에 대해 뭔가 심오하고 본질적인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욕망으로 금융 위기를 진단하는 사람도 비슷할 것이다. 『맨큐의 경제학』 한 번 펴보지 않고도 경제 위기를 진단하는 사람이 되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는가.
(2018.10.29.)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에 참여한 과학기술학 선생님과 저녁식사를 할 자리가 있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두고 위원들의 의견이 내인설과 외인설로 나뉘자 위원회에서는 과학철학자를 모셔오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양측 모두 그 의견에 찬성했지만 어찌어찌하다가 실행되지 않았고 결국 두 가지 결론을 모두 담은 종합보고서가 나오게 되었다. 한국에 리처드 파인만 같은 학자가 있었으면 합의된 결론을 도출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양측에서 나왔다고 한다.
파인만은 챌린저호 폭발사고 조사위원회에 참여했다. 청문회에서 챌린저호의 폭발 원인이 고체추진로켓의 설계 결함임을 설명할 때, 파인만은 고무링이 낮은 온도에서 탄성을 잃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얼음물에 고무링을 넣었고, 그 장면은 미국에 생중계되었다. 파인만의 직관적인 설명은 권위 있는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나는 옆에 있던 과학사 전공자한테 “파인만 같은 사람이 위원회에 참여했으면 과학철학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을 텐데...”라고 조그맣게 말했다. 파인만이 “새에게 조류학이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과학자에게도 과학철학이 도움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사실 파인만이 언제 어디서 그런 말을 했는지 출처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평소 파인만의 태도로 보았을 때 그러한 말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다.
과학사 전공자는 과학철학자인 장하석 선생님의 말을 인용했다. “과학자에게 과학철학이 도움이 안 된다면 과학사는 더 도움이 안 된다. 과학철학이 현재 살아있는 새들을 연구하는 조류학자라면 과학사는 고생물학자이기 때문이다.”
과학철학 선생님을 모셔오려고 했다는 과학기술학 선생님 앞에서, 과학철학 하는 사람 불러봐야 소용없다는 과학철학 전공자와 과학사는 더 쓸모없다는 과학사 전공자가 누가 누가 더 쓸모없는지 경쟁을 벌였다. 그 때 동양과학사 선생님이 이렇게 물어보셨다. “과학정책은 어떤가요?” 과학정책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과학정책은 새총으로 새를 쏩니다.”
여기서 새총으로 새를 쏜다는 것은 중의적인 의미다. 하나는 날아가는 새를 새총으로 쏘아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새를 새총에 담아서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 중에는 과학정책에 우호적인 사람이 많으며, 적어도 과학정책 하는 사람을 적으로는 만들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깔려있다고 한다.
(2018.10.26.)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본받자고 말했을 때 많은 한국 사람들은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잘 모른다면서 비웃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 상당수는 유럽 교육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끄덕이며 유럽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언급했을 때는 나름대로 분석한 것을 토대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냥 한 나라의 대통령도 아니고 미국의 대통령인데 <오늘의 유머> 같은 것을 보고 밑도 끝도 없이 한국 교육을 언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한국 고등학생의 마음을 오바마가 알았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믿을 만한 분석을 토대로 하여 한국 교육을 언급했을 것이다. 분명히 전문가들이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보고서로 제출했을 것이며 오바마는 분석 자료에 기반한 토의를 거친 다음에야 한국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유럽 교육 타령을 하는 사람들은 무슨 자료에 근거하여 유럽 교육을 본받자고 주장하는 것인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프랑스 교수가 어느 학교에 방문한 적이 있다. 과학기술학 전공자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그 프랑스 교수는 프랑스 교육을 있는 대로 욕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왜 프랑스 교육을 본받자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럽 교육을 칭송하는 사람들 중에 프랑스에서 자기 자식을 그랑제콜에 보내려다 실패한 사람 말고, 파리에서 택시 운전 하던 사람 말고, 방문교수나 교환교수 같은 걸로 가서 물 몇 모금 먹고 온 사람 말고, 유럽 교육에 대해 믿을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201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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