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말은 『효경』(孝經)의 제1장인 개종명의(開宗明義)장에 나온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몸과 머리털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이를 훼손하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요,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드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도의 끝마침이다.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
자기 이름을 후세에 드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왜 효도인가? 자식이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지 왜 그것만으로는 만족 못 하고 자기 이름까지 드날려주어야 하는가? 고대인들도 다들 약간씩 관심종자여서 그런 것은 아닌가?
역사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관심종자 중 하나는 항우다. 어떤 사람이 함양을 점령한 항우에게 관중은 산이 험하고 강이 있고 네 관문이 있고 땅이 기름지니 도읍 삼아 패업을 이룰 만하다고 충고했다. 이에 관심종자 항우는 이렇게 말했다. “부귀해져서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니는 것과 같으니, 누가 그것을 알아주겠는가?”(『사기』 「항우본기」)
지금도 시골에 가면 동네 여기저기에 개인이나 소모임에서 매달아 놓은 현수막을 흔히 볼 수 있다. 누구네 집 자식이 어느 대학을 갔다더라, 박사가 됐다더라, 고시에 붙었다더라 하는 내용이다. 흔히 배너 광고라고 하면 인터넷 창에서 보는 작은 광고를 생각하는데, 시골에서는 도로변에 진짜 현수막을 달아서 자랑한다. 동네가 좁아서 한두 다리만 건너도 다 연결되는데도 그런다. 도시 사람들 중 일부는 시골 사람이라고 하면 때 묻지 않은 욕심 없고 순박한 사람을 상상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시골에서 살다 보면 인간의 정체되지 않은 욕망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관찰할 수 있다.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의 차이는 그러한 욕망이 더 세련되게 드러나느냐 덜 세련되게 드러나느냐 정도다.
나는 시골 사람들이 그러하듯 고대인이나 중세인도 그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인터넷이 없었을 뿐이지 다들 인정 욕구가 들끓고 공동체에서 자랑하거나 관심받으려고 애썼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현대 문명이 인간을 이상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실제로는 별 볼 일 없이 살면서도 마치 잘 살고 있는 듯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데서 자랑하고 뽐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원래부터 그런 동물이라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018.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