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8

관심종자의 기원?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말은 『효경』(孝經)의 제1장인 개종명의(開宗明義)장에 나온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몸과 머리털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이를 훼손하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요,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드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도의 끝마침이다.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

자기 이름을 후세에 드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왜 효도인가? 자식이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지 왜 그것만으로는 만족 못 하고 자기 이름까지 드날려주어야 하는가? 고대인들도 다들 약간씩 관심종자여서 그런 것은 아닌가?

역사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관심종자 중 하나는 항우다. 어떤 사람이 함양을 점령한 항우에게 관중은 산이 험하고 강이 있고 네 관문이 있고 땅이 기름지니 도읍 삼아 패업을 이룰 만하다고 충고했다. 이에 관심종자 항우는 이렇게 말했다. “부귀해져서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니는 것과 같으니, 누가 그것을 알아주겠는가?”(『사기』 「항우본기」)

지금도 시골에 가면 동네 여기저기에 개인이나 소모임에서 매달아 놓은 현수막을 흔히 볼 수 있다. 누구네 집 자식이 어느 대학을 갔다더라, 박사가 됐다더라, 고시에 붙었다더라 하는 내용이다. 흔히 배너 광고라고 하면 인터넷 창에서 보는 작은 광고를 생각하는데, 시골에서는 도로변에 진짜 현수막을 달아서 자랑한다. 동네가 좁아서 한두 다리만 건너도 다 연결되는데도 그런다. 도시 사람들 중 일부는 시골 사람이라고 하면 때 묻지 않은 욕심 없고 순박한 사람을 상상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시골에서 살다 보면 인간의 정체되지 않은 욕망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관찰할 수 있다.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의 차이는 그러한 욕망이 더 세련되게 드러나느냐 덜 세련되게 드러나느냐 정도다.

나는 시골 사람들이 그러하듯 고대인이나 중세인도 그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인터넷이 없었을 뿐이지 다들 인정 욕구가 들끓고 공동체에서 자랑하거나 관심받으려고 애썼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현대 문명이 인간을 이상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실제로는 별 볼 일 없이 살면서도 마치 잘 살고 있는 듯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데서 자랑하고 뽐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원래부터 그런 동물이라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018.09.28.)

2018/11/26

싸가지란 무엇인가



갈비를 먹고 갈비뼈가 남았다. 원래는 옆집 개한테 갈비뼈를 주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집 개한테 주기로 했다. 옆집 개들은 먹을 것을 받아먹을 때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가 다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적대적으로 짖는다. 아무리 개라고 해도 이렇게 싸가지가 없으면 먹을 것을 줄 마음이 안 난다. 나는 갈비뼈를 싸들고 동네에서 외진 곳에 사는 개한테 갔다.

동네 한구석에 건설 현장에서 쓰는 중장비를 주차하는 곳이 있고 거기에 개 두 마리가 묶여있다. 내가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고 해도 추석 연휴에 먹을 것을 들고 가는데 개 입장에서 반갑지 않을까 싶었다. 적어도 옆집 개처럼 먹을 거 다 받아먹고 싸가지 없게 짖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틀렸다.

까만 개와 하얀 개가 있었다. 멀리서 봐서 몰랐는데 까만 개는 암컷이었고 새끼도 세 마리나 있었다. 갈비뼈를 주면 킁킁거리면서 와서 갈비뼈를 받아가고 안 주어도 멀뚱히 보기만 했다. 그런데 하얀 개는 달랐다. 갈비뼈를 먹을 때는 얌전히 있다가 다 먹고 나면 무섭게 짖었다. 갈비뼈 하나를 더 주면 얌전히 먹고 다 먹으면 또 짖었다. 싸가지 없는 개였다. 까만 개가 낳은 새끼들하고 좀 놀려고 하는데, 옆에서 하얀 개는 갈비뼈를 다 먹고는 더 달라는 건지 시끄럽게 짖었다. 안 짖어도 알아서 주려고 했는데, 참 싸가지 없는 개였다. 가볍게 던져주는 갈비뼈가 땅에 닿기 전에도 입으로 받아먹기도 했다. 싸가지는 없지만 운동신경은 좋은 개였다.

싸가지란 무엇인가.










(2018.09.26.)


2018/11/24

고양이란 무엇인가



추석에 화천이가 묻는다. “고양이란 무엇인가?”





* 링크: [경향신문]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 김영민 교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9211922005 )

(2018.09.24.)


2018/11/22

추석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명절에 배려 없이 안부를 묻는 어른들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곤혹스러워한다는 보도가 명절 때마다 나온다. 솔직히 나는 의심스럽다. 정말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의 질문 공세에 그 정도로 압박감을 심하게 느낄까? 휴일에 혼자 쉬든지 애인을 만나든지 또래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데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 싫어서 괜히 엄살 부리는 것은 아닌가? 친하지도 않은 노인네들을 만나는 것이 싫다고 대놓고 말하면 야무진 패륜아처럼 보일 테니까 어른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피해자로 위장하는 것은 아닌가?

어른들이 쓸데없이 안부를 묻는다고 해서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거나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평소에 자주 만나지도 않던 사람들이니 귓등으로 듣고 건성건성 대답하면 된다. 취업 언제 할 거냐, 결혼 언제 할 거냐고 물으면 예정일을 말하든지, 예정에 없다고 하든지, 모른다고 하면 된다. 엄살떨지 말자. 고작 그런 것으로 압박감을 느껴 죽겠으면 회사에서 압박 면접 받다가 구급차 타고 실려 갈 건가?

어른들의 물음에 성의 있게 답변할 필요도 없다. 어른들이 손아랫사람들의 미래가 정말 궁금해서 그렇게 묻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취업이나 결혼이 걱정되면 그 전에 무슨 조치를 취하든지 지원을 해주었겠지 1년에 이틀 정도만 걱정하는 척을 했겠는가? 어른들도 그렇게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니 적당히 대충 대답해 주면 그들도 대충 듣고 말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향후 진로를 물으면서 어른들끼리는 미래에 관한 것을 잘 묻지 않는다. 왜 그런가? 간단하다. 어른들에게 장밋빛 미래 같은 것이 없음을 서로 잘 알기 때문이다. 볼 장을 다 봤는데 무슨 진로이며 미래이며 계획인가? 젊은 사람들에게는 취업의 기회가 있다. 어른들은 은퇴하고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연애하거나 결혼할 가능성이 있다. 어른들이 새로운 이성을 만나려면 황혼 이혼이나 사별, 잘 해봐야 불륜 정도밖에 없다. 어른들이 잘못 연애하면 비참한 노년을 맞이하게 된다.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본다는 것은 그래도 그들에게는 미래의 가능성이 약간이라도 있음을 보여준다.

명절에 어른들이 결혼이나 취업 언제 할 거냐고 물으면 압박감 느낀다고 엄살떨지 말고 ‘아, 나는 그래도 미래가 있구나. 저 사람들은 그런 게 없는데’ 하고 좋게좋게 생각하면 된다. 어른들 말씀대로 세상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2018.09.22.)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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