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4

[과학철학] Achinstein (2000), “Why Philosophical Theories of Evidence Are (and Ought To Be) Ignored” 요약 정리 (미완성)

[ Peter Achinstein (2000), “Why Philosophical Theories of Evidence Are (and Ought To Be) Ignored”, Philosophy of Science 67, Supplement, pp. S180-S192. ]

1. 증거에 대한 불일치 (Disagreements About Evidence)

2. 약한 증거 가정 (The Weakness Assumption)

3. 선험적 가정 (The A Priori Assumption)

4. 선험론자의 대응 (An A Priorist Response)

5. 결론 (Conclusion)

[p. S180]

- 과학자들이 객관적인 증거에 대한 표준 이론을 무시하고 무시해야 하는 두 이유

(1) 과학자들은 어떠한 가설을 믿어야 할 좋은 이유를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이론은 너무 약한 증거 개념을 제시한다.

(2) 대체로 증거에 근거한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경험적 탐구가 필요하지만, 표준 이론은 증거 관계를 선험적인 것으로 본다.

1. 증거에 대한 불일치 (Disagreements About Evidence)

[p. S180]

- 과학자들은 어떠한 사실이 특정한 가설이 참인지, 참이라면 얼마나 강한 증거인지에 대해 종종 의견이 불일치함.

- 애친슈타인이 염두에 둔 경우: 어떠한 사실이 관찰되었거나 어떠한 실험결과를 얻었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인정하고, 문제가 되는 가설의 의미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하지만, 관찰된 사실이나 실험 결과가 가설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는지, 증거를 제공할 경우 그 증거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3)

두 사례 – 첫 번째 사례

1883년 하인리히 헤르츠는 음극선(cathode ray)이 전기적으로 대전되는지에 대한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다. 음극선에서 전류를 분리시킴.

음극(cathode)에서 양극(anode)으로 흐르는 전류

[p. S182]

과학철학자들이 증거 이론을 발전시키는 이유

(1) 증거 입증(confirming evidence)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기 위해서

(2) 증거를 둘러싼 과학자들의 논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p. S182]

하지만 과학자들은 증거에 대한 철학이론을 무시한다. 그 이유는?

철학자들이 증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이지만 의심스러운 가정 때문이다.

[pp. S183-S184]

- 애친슈타인은 이러한 증거 개념이 너무 약하다고 함.

- 과학자들이 그들 이론에 대한 증거를 원하는 이유, 그리고 h에 대한 증거가 주는 것

: 증거는 h를 믿을 좋은 이유를 제공한다.

반드시 결정적인 것이나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일 필요는 없고 좋은 것이면 됨.

예) 생체조직 절편검사(biopsy)가 환자의 종양이 악성이라는 증거를 구서한다면, 환자가 암에 걸렸다고 믿을 좋은 근거가 된다. 반대로 최근 며칠 간 배가 아프다고 의사를 찾아갔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암에 걸렸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예) 승강기에 타는 것을 승강기 사고를 당할 확률을 높이지만 사고를 당할 증거가 되지 못함.

2. 약한 증거 가정 (The Weakness Assumption)

3. 선험적 가정 (The A Priori Assumption)

[p. S187]

두 번째 가정은 증거 관계(evidential relation)는 선험적이라는 것이다. 즉, e가 h의 증거가 되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로 강한지가 선험적 추정(a priori calculation)에 의해 결정된다는 가정이다.

[p. S187]

철학 이론을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 카르납: 증거에 대하여 확률을 높이는(increase-in-probability) 개념과 높은 확률 개념을 포괄한다. 하지만 확률 관계는 전적으로 선험적이다.

- 가설연역적 방법: e에 대한 h의 확률은 “언어 체계”(linguistic framework)의 법칙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h가 e를 함축하느냐 여부가 선험적이기 때문에, 증거에 대한 h-d 관점은 증거 관계를 선험적으로 만든다.

- 헴펠의 만족 기준과 글리모어의 구두띠 기준: e가 h에 대한 증거인지 선험적으로 추정하는 개념들을 산출한다.

선험적 가정이 문제가 되는 이유 [p. S187]

- 톰슨 사례에서 선험적 근거가 아닌 경험적 근거와 가정을 바탕으로 반박

- 북경 원인: 새로운 발견이라고 하는 경험적 근거

[p. S188]

모든 증거 진술이 경험적인 것은 아님. 충분한 정도, 적어도 옳은 종류의 정보는 e는 h에 대한 증거(e is evidence that h)라는 증거 진술로 되어있음.

예) 복권 1천장 중 샘이 950장을 가지고 있다면, 샘이 당첨될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것을 거짓으로 만드는 경험적인 사실은 없다.

[p. S188]

“e는 h에 대한 증거다”(e is evidence that h)라는 형태의 증거진술의 참이 e 이외의 경험적인 사실들에 의존한다면, 그 진술은 경험적으로 불완전하다(empirically incomplete).

이 글을 시작할 때 나왔던 두 사례는 경험적으로 불완전하다. 두 증거 주장은 이후의 경험적인 진술에 의해 거짓이 되었다.

미리 보는 결론

증거 주장이 선험적이지 않고 경험적이라면, e가 h에 대한 증거인지, 그리고 그 증거가 얼마나 강한지 판단하는 사람은 철학자가 아니라 과학자일 것이다. 이는 증거 주장들 사이에 불일치가 있을 때 과학자가 증거에 대한 철학이론에 의지하지 않는 이유이고 이유이어야 할 것이다.

4. 선험론자의 대응 (An A Priorist Response)

[p. S188]

- 카르납은 증거와 정당화 되는 믿음 사이에 중요한 관계가 있으며 그 관계는 “전체 증거의 요건(requirement of total evidence)”이라고 함.

e가 h의 근거이거나 h를 r 정도로 입증하고, e가 어떤 것의 (유관한) 전체적인 (유관한) 경험적 지식을 나타낸다면, e에 근거하여 h를 믿는 것이 정당화되거나, e에 근거하여 r 정도로 h를 믿는 것이 정당화된다.

카르납의 주장 [pp. S188-S189]

- e가 누군가 참이라고 알고 있는 경험적 명제들의 전체 집합이라면, 그 사람이 e에 근거하여 h를 r 정도로 믿는 것이 정당화되는지 여부는 선험적인 문제임.

- 어떤 사람이 h를 믿는 것이 정당화되는지 여부는 오직 그 사람이 참으로 알고 있는 것에 의존함.

- 선험적인 계산에 의해서, 어떠한 더 많은 경험적 명제(이전 지식에 포함되지 않는)를 믿는 것이 정당화되는지를 결정할 수 있음.

[p. S189]

(1) 누군가 참으로 아는 모든 것을 모으거나, 유관한 모든 것을 모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2) 내가 아는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나의 위치일 때 알 수 있거나 알아야 하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예) 총소리가 났고 누군가 쓰러졌는데 쓰러진 사람에 상처가 없는 경우, 겁먹은 행인이라면 쓰러진 사람이 총에 맞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지만 탐정은 그렇지 않다.

[pp. S190-191]

- 이와 대조적으로, 과학자들이 원하는 증거는 어떤 것을 믿을 수 있는 좋은 근거이지 카르납식의 정당화가 아님.

- “좋은 근거”(good reason)라는 개념은 특정한 상황이나 개인에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임.

예) 기압계의 변화는 날씨 변화를 믿는 좋은 근거이다. 누군가 복권 1000장 중에 950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복권에 당첨될 것이라는 좋은 근거다.

- 헤르츠의 훈련, 지능, 능력은 그가 실험에서 얻은 결과에서 음극선이 전기적으로 중성이라고 믿을 좋은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헤르츠의 실험이 있은 지 14년 후에 톰슨이 시험을 할 때 14년 전 헤르츠의 상황을 고려하여 선험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경험적으로 음극선이 음성이라고 결정했다.

5. 결론 (Conclusion)

[p. S191]

- 과학자들이 객관적인 증거에 관한 전형적인 철학이론을 무시하고 또한 무시해야 하는 이유

(1) 너무 약한 증거 개념을 제공한다.

(2) 증거 관계를 전적으로 선험적인 것으로 만드는 개념을 제공한다.

- 하지만, 과학자들은 증거 진술이 참인지 여부를 선험적인 근거 뿐 아니라 경험적인 탐구를 통해 발견하려고 함.

- 어떤 사실들은 선험적인 계산(a priori calculation)으로 증명되지 않더라도 어떤 가설을 믿을 좋은 근거가 됨.

[pp. S191-S192]

증거 개념은 경험적이며 견고(robust)하다.

경험적인 이유

- e가 h에 대한 증거인지 여부에 대한 질문은 경험적인 질문이다.

견고한 이유 두 가지

- 약하지 않고 강하다.

- 특수한 인식적인 상황에 의존해야만 하는 개념보다 어떤 것을 믿을 좋은 이유를 제공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증거 개념이 경험적이고 견고하다면, 과학자들이 이 개념에 흥미를 가질 것이다.

(2018.05.26.)

2018/05/13

영어 띄어쓰기의 사례



띄어쓰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God is nowhere”/“God is now here”와 “Dream is nowhere”/“Dream is now here”를 보니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는 너무 억지로 지어낸 것처럼 보인다.

(2018.03.13.)


2018/05/12

작은 결함이 보여주는 것



사소해 보이는 작은 부분이 어떤 것의 많은 부분이나 중요한 부분을 드러내기도 한다.

며칠 전, 책 읽는 법에 관한 자기계발서를 훑어본 적이 있다. 대대장님 정신 교육처럼 공허하고 따분한 헛소리로만 채워놓은 상당수의 자기계발서와 달리, 그 책의 저자는 사람들에게 뭔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책은 그런 좋은 의도와 별개로, 책 읽기에 도움이 될 만한지 의심스러운 책이었다. 책에서 아무데나 짚어도 석연치 않은 문장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변한다는 사실뿐이다”라고 했다. 30대만 되어도 머리가 나빠져서 공부가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말자. 뇌과학이 증명하듯이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변한다.’ (16쪽)


뇌 가소성을 설명하기 위해 헤라클레이토스가 나올 필요가 없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론이 뇌 과학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도 아니고 뇌 과학이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론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다. 여기서는 단지 뇌가 변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맥락과 무관하게 헤라클레이토스의 멋있는 말만 따온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우리 모두가 하나씩 들고 다니는 ‘뇌’를 중심으로 독서에 대해서 논할 것이다. 독서라는 판도라 상자를 최신 뇌과학, 심리학, 행동경제학이라는 재료로 떠받치고, 스토리와 인문학이라는 날개를 달아 독자의 품으로 날려 보내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21쪽)


뇌를 굳이 “우리 모두가 하나씩 들고 다니는” 것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뇌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다른 시각을 제시하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썼다면 모르겠지만, 책에서는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독서를 “판도라 상자”로 비유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독서가 어떠한 행위인지 분석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괜히 열어서 낭패를 본 경우와 연결할 수 없다. 판도라의 상자 대신, 그동안 감춰진 비밀을 드러낸다는 다른 표현을 찾아서 사용했어야 했다.

몇 쪽 읽지 않았는데 이런 문장이나 표현이 튀어나오면 책을 살 생각이 사라진다. 작가라는 사람이 왜 글을 그 정도밖에 못 쓰는지, 저자가 다른 사람에게 책 읽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인지, 그런 내용이 책에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더 확실한 사례는 <아트앤스터디>의 진중권 강연에서 볼 수 있다. 진중권은 영화 <디워>를 비판하면서 미적 정보량을 언급했다. 예술작품의 미적 정보량은 엔트로피와 네그 엔트로피와 관련된다. 시나리오가 너무 복잡하면 파악이 안 되고 플롯이 너무 단순하면 재미가 없다. 진중권은 이와 관련지어서 대중문화는 질서도가 강하고 아방가르드 같은 것은 복잡성이 강한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 활동을 무질서 상태에서 질서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엔트로피는 미적 정보가 높은 것이고 네그 엔트로피는 의미 정보가 높은 것이다. 진중권은 서예를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예를 들 수 있냐 하면, 서예를 할 때 정자체를 쓰게 되죠. 그러면 의미 정보가 큰 겁니다. 금방 알아볼 수 있죠. 그런데 여러분, 해서라는 거 보셨어요? 거의 글자체를 못 알아보겠죠? 그건 미적 정보가 큰 겁니다. 예술적으로는 뭐가 더 아름다워요? 해서는 예술입니다. 그런데 정서는 뭐예요? 예술은 아니라는 거죠. 다른 것을 지향한다는 거죠. 스칼라가 다 있습니다. 서예의 서체들도 엔트로피와 네그 엔트로피의 관계가 다 달라요.”


다 틀린 내용이다. 우리가 아는 반듯반듯한 글자체는 해서이고, 정서는 해서의 다른 이름이다. 해서를 약간 흘려 쓴 것이 행서이고 그보다 많이 흘려 쓴 것이 초서이다. 진중권은 해서를 정서라고 맞게 불렀지만 초서를 해서라고 불렀다. 진중권은 서예 서체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진중권은 서예 필체를 해서와 초서를 가지고 엔트로피와 네그 엔트로피의 예를 들었는데 이는 적절한 예가 아니다. 못 알아보는 사람들 눈에는 초서가 아방가르드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초서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해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만큼 초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예술적인 목적 때문에 못 알아보게 쓴 것이 아니다. 진중권은 해서가 예술이 아니라 다른 목적(정보 전달)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 또한 틀린 말이다. 그렇다면 한호(한석봉)의 글씨나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에 걸린 이광사의 글씨는 무엇인가.

진중권이 서예를 언급한 것은 30초밖에 안 되지만 이것만으로도 진중권이 서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진중권은 서양 미학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서예를 좀 모른다고 하여 전공자로서의 능력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사례들이 시사하는 바는, 눈에 보이는 작은 결함은 잘 안 보이는 더 큰 결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작은 결함을 고치려면 그것과 관련된 큰 결함을 고쳐야 한다. 흔히들 큰 결함을 고치는 데는 큰 노력이 들고, 작은 결함을 고치는 데는 작은 노력이 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작은 결함이라는 것이 큰 결함을 고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큰 노력을 들여도 실력이 쉽게 늘지 않고 사소한 개선에 머무르는 것은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자질구레한 것까지 다 신경 쓰라는 말이 아니라 큰 결함이 없을 때만 작은 결함까지 잡아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 링크: [아트앤스터디] 진중권의 디워 비판

( www.youtube.com/watch?v=_MxNLfc2Myo )

* 뱀발

이건희가 쓴 『Samsung Rising』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고 한다. 내가 그 책을 직접 읽은 것은 아니고 다른 책에 있는 것을 옮겨온 것이다.


일반 제트기는 마하 0.9 정도로 음속보다 약간 느린 아음속인 것으로 안다. 전투기처럼 음속 2배의 초음속으로 날려면 엔진의 힘이 2배만 있으면 될 것으로 아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비행기 재료공학, 기초물리, 화학 등 모든 원리와 소재가 바뀌어야 초음속 제트기가 될 수 있다. 마하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2018.03.12.)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