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를 연구하는 선생님하고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그 선생님은 다윈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다윈의 비글호 항해 루트를 따라서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이 안 맞아서 성사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셨다. 보통, 어떤 것을 기념하는 것은 50주년이나 100주년을 단위로 이루어지는데 다윈이 『종의 기원』을 정확히 50살에 썼기 때문에 『종의 기원』 출판 150주년 기념은 다윈 탄생 200주년과 겹친다. 그러니까 다윈 탄생 기념이든 『종의 기원』 출판 기념이든 50년 뒤의 일이다. 선생님은 50년 뒤에 누군가 비글호 항해 루트를 따라 여행하는 기획을 한다고 해도 본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아쉬워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있다가 그 선생님께 수줍게 한마디 했다.
“선생님, 어차피 구실은 만들기 나름이니 다른 구실을 붙여서 기획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가령, 다윈 비글호 탑승 200주년 기념이라든가...”, “오, 이 친구 감이 있는데?”
다윈이 비글호에 탑승한 것은 1831년 12월 27일이고, 비글호 탑승 200주년은 2031년이다.
(2017.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