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최종 득표율은 문재인(민주당) 41.1%, 홍준표(자유한국당) 24.0%, 안철수(국민의당) 21.4%, 유승민(바른정당) 6.8%, 심상정(정의당) 6.2%이다.
수십만 명이 촛불을 들고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 실세들이 구속되는 난리통에도 투표자의 4분의 1은 홍준표를 찍었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박근혜 탄핵을 반대한 사람이 그 정도는 되었으니 그들이 홍준표를 찍었을 것이다. 고정 지지자들의 표가 갈 곳을 간 것뿐이다. 오히려 나는 홍준표를 찍은 사람이 24%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한국사회가 좋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1987년과 2016년을 비교해보자. 6월 항쟁이 나고 12월에 대통령 선거를 했는데 노태우가 36.7%를 받았다. 그 때 김종필이 8.1%를 받았으니 김종필이 출마하지 않았다면 노태우의 득표율이 40%를 넘겼을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홍준표의 득표율은 24.0%이며 유승민이 받은 표를 합쳐봐야 30% 남짓이다. 한 세대 동안 10% 가량 줄어든 셈이다.
혁명적인 변화를 원하는 사람에게 한 세대 동안 10% 변한 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런데 혁명 정부를 세울 것도 아니고, 좋든 싫든 대의 민주제에 따라 결국은 선거해서 대표자 뽑을 것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10% 변했다는 것은 꽤 큰 변화다. 10%면 정치 지형이 바뀐다.
1997년에는 김대중-김종필 단일화하고 이인제가 신한국당 탈당해서 난리치고 이회창 아들 병역 비리 의혹이 터지고 대통령 선거 직전에 IMF 구제금융 받았는데도 김대중이 40.3%를 받고 이회창이 38.7%를 받아 가까스로 김대중이 이겼다. 2002년에는 노무현이 정몽준하고 단일화했다가 깨지고 별 난리를 거쳐서 48.9%를 얻었다. 그 때도 이회창과의 차이는 2%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둘로 쪼개지고 5자 구도로 선거가 진행되었는데도 민주당이 단일화 같은 거 안 하고도 안정적으로 41.1%를 받았다.
정의당이 6.2%나 얻은 것도 큰 성과다. 최근 30년 동안 진보 정당이 그렇게 많은 표를 받은 적이 없다. 1997년에 국민승리21의 권영길은 이회창-김대중-이인제가 하는 토론회에 끼지도 못하고 군소후보 토론회에 나왔다. 그 때는 권영길이 허경영과 같은 급이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진보 정당을 그 정도로 의식한 것도 내 기억으로는 이번 선거가 처음이다. 이번 선거에서 막판에 민주당 우상호 공동선대위원장이 이상한 말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진보 정당의 득표율을 의식했음을 보여준다.
달라진 정치 지형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홍준표다. 홍준표가 막말을 많이 했다고 논란이 되었지만, 예전 선거와 비교한다면 귀여운 수준이다. 부끄러워서 지지한다고 하지도 못하고 숨어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이 홍준표의 막말이다. 더 이상 박근혜처럼 방긋 웃으면서 옛날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방법도 통하지 않고 우리가 남이냐는 지역 감정도 안 통한다(물론 주요 대선 후보 다섯 명 중 두 명이 대구 경북 출신이고 두 명이 부산 경남 출신인 이유도 있겠지만). 홍준표가 토론회에서 동성애를 언급했다는 것은 북풍이나 사상 검증 같은 기존 재료가 건 더 이상 안 통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정치 성향은 잘 안 바뀌지만 사람은 언젠가 어떻게든 죽는다. 아무리 조직이 촘촘해도 재생산되지 않는 조직은 결국 없어진다. 자유한국당이 20대와 30대 지지층을 넓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당장 망하지는 않겠지만 현상 유지하기도 힘들 것이고, 결국 민주당은 인적 자원을 포함한 자원을 자유한국당보다 더 많이 점유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두 당이 엎치락뒤치락하더라도 결국 자유한국당은 자민련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나는 홍준표를 찍은 사람이 24%밖에 안 된다는 것이 희망적인 징표라고 본다.
(2017.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