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4

대학원생 워크샵 뒤풀이



지난 주 금요일, 대학원에서 하는 <영미철학 대학원생 워크샵>에 갔다. 한동안 안 가다 오랜만에 갔다. 논문도 통과되어 급한 일도 처리되었으니 이제 다른 사람들이 하는 연구도 보러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워크샵 끝나고 선생님은 뒤풀이로 맥주 한 잔 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나는 원래 워크샵 끝나고 길거리에서 일곱 알에 2천 원 하는 문어빵을 사서 자취방에서 혼자 맥주를 마실 생각이었다. 순순히 뒤풀이에 따라갔다. 선생님을 포함하여 열 명 정도가 맥주집에 갔다.

사람들은 그날 워크샵 주제인 피터 행크스의 명제 이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아는 행크스는 톰 행크스밖에 없어서 구석에서 조용히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어떤 대학원생이 내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보았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놀라서 “선생님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돼!” 하면서 제지했지만 이미 선생님은 “◯◯◯씨가 페이스북에 어떤 글을 쓰는데요?”라면서 궁금해 하셨다.

나는 내가 페이스북에 쓰는 글이 그리 부끄러운 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료들이 내 글을 읽고 재미있어 하는 것과 그러한 사실을 선생님이 아는 것은 다른 일이다. 남들이 3년이면 쓰는 석사 논문을 나는 4년 넘게 걸려서 썼고, 그렇게 쓴 논문이 그다지 훌륭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에이스도 아닌데, 이런 내가 개그 글이나 쓰고 앉았다는 것이 선생님께 알려지는 건 쑥스러운 일이다. 국내 등재지에 논문 한 편이라도 싣고 나서 그러한 사실이 알려졌다면 덜 쑥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선생님께 해명했다. 내가 살면서 즐거울 일이 많지 않아 술을 마시거나 개그 글을 쓰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즐거울 일 없는 대학원생들이 그런 글을 재미있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대학원생들이 선생님께 내가 쓴 글을 하나씩 소개했다. 심지어 페이스북도 안 하는 대학원생은 블로그에 내가 쓴 글을 본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그 블로그는 내 블로그가 맞다. 페이스북은 게시글을 정리하기 힘들어서 쓴 지 한 달 이상 지난 글은 블로그에 옮기거나 지운다. 그 대학원생은 그 블로그를 본 것이다.

블로그에 게시한 내 글을 읽은 선생님은 활짝 웃으며 김창완처럼 따뜻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 ◯◯◯씨, 정말 재능 있군요!”

선생님은 석사 논문 심사 위원 중 한 명이었다. 재능 있다는 말을 논문 심사장에서 들었어야 했는데.

(2016.11.14.)


2017/01/11

[과학철학] Cartwright (1999), Ch 4 “Aristotelian natures and the modern experimental method” 요약 정리 (미완성)

     

[ Nancy Cartwright (1999), The Dappled World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77-103. ]
  
    
  1. Beyond regularity
  2. Historical background
  3. Natures and the analytic method
  4. How do we know what we are testing?
  5. An objection
  6. An historical illustration: Goethe and Newton
  7. Who has dispensed with natures?


  1. Beyond regularity

p.96 #2
괴테는 뉴턴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다른 비판이 여기서 가장 유관한 것은 두 가지 비판이다.
첫 번째는 뉴턴의 이론이 설명해야 하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실패하며, 뉴턴이 환경에 대한 변수의 충분한 범위 안에서 현상을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이는 놀랍지 않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뉴턴이 그의 실험을 통해 한 추론은 타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정적 실험(experimentum crucis)이 적절한 예이다.



 
  2. Historical background
  3. Natures and the analytic method
  4. How do we know what we are testing?
  5. An objection
  6. An historical illustration: Goethe and Newton
  7. Who has dispensed with natures?



(2015.03.24.)
    

2017/01/10

트럼프 당선 이후 한국 출판시장 전망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으니, 트럼프와 관련된 자기계발서가 시중에 곧 나올 것이다.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이 있으니까 『남자라면 트럼프처럼』을 쓰면 짝이 맞겠다. 이지성이 쓴 책은 『스물일곱 이건희처럼』이니까 『남자라면 트럼프처럼』을 써도 된다.

트럼프의 성공 비결이라고 하면서 “남들이 비웃어도 끝까지 밀고 나가라”, “한두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마라”,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 놓아라”, “금기를 깨뜨려라”, “자신감 있게 행동하라”, “설득하지 말고 유혹하라” 같은 소리를 늘어놓으면 된다. 개똥같은 소리지만 원래 한국에서 자기계발서라는 것은 개똥같은 소리를 책이랍시고 모아놓은 것이니까 괜찮다. 한국에는 트럼프처럼 살고 싶은 남자들이 넘쳐나니 쉽게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2016.11.10.)

     

2017/01/09

평론가의 평론은 누가 평론하나

  

   

내가 영화 칼럼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어쨌든 내가 읽은 영화 칼럼들은 거의 다 이상한 글이었다. 내가 영화 칼럼을 이상한 글이라고 하는 이유는, 해당 영화에 대한 필자의 견해가 내 견해와 달라서가 아니다. 나는 뭐가 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견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내가 영화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영화 칼럼을 두고 이상한 글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그런 글에서는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나 잔뜩 늘어놓기 때문이다. 그럴 거면 왜 영화 칼럼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프랑스 철학 이야기만 잔뜩 한다. 일상 언어로도 충분히 설명하거나 비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은 꼭 프랑스 철학의 개념을 인용한다. 감독이 그렇게 철학적으로 할 말이 많아 죽겠으면 논문을 쓸 일이지 왜 영화를 만들었나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런 칼럼 쓰는 사람이 철학을 전공하거나 철학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작 프랑스 철학 전공자들은 프랑스 철학과 무관한 사람들이 프랑스 철학을 욕보인다고 분개한다. 이 정도면 프랑스 철학 자격시험 같은 것을 만들어서 일정 급수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매체에 프랑스 철학 운운하는 글을 쓰지 못하게 해야 할 것 같다. 가령, 프랑스 철학 3급 이상만 칼럼 등에 프랑스 철학의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든지, 프랑스 철학 2급 이상이 되어야만 단행본 낼 때 프랑스 철학을 인용할 수 있다든지 등등.

또 다른 사람들은 자유연상법에 따라 글을 쓴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고 빨간 건 사과니까 오늘은 사과 이야기를 하겠다는 식이다. 사과 이야기를 할 거면 사과 칼럼이라고 해야지 왜 원숭이 엉덩이 칼럼이라고 하고 사과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이야기하겠다고 해놓고 박근혜는 머리가 나쁘고 머리가 나쁜 건 닭이니까 닭 요리법을 설명하겠다고 하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 손가락질 받는다. 그런데 영화 칼럼만은 예외다. 정신 놓고 쓸수록 사람들이 좋아한다.

영화 칼럼이 이상한 글인 것이 왜 문제인가? 글쓰기 수업에서 영화 칼럼을 쓰라고 하면 그런 글을 모방하는 학생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학부 글쓰기 수업에서 영화 칼럼 쓰기 같은 과제를 왜 내주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설명문이나 에세이를 쓸 때는 정상적인 글을 쓰던 학생들이 영화 칼럼을 쓰라고만 하면 정신을 놓고 글을 써서 조교들을 힘들게 만든다. 희한한 수사를 넣지 않나, 이상한 너스레를 떨지 않나, 밑도 끝도 없이 철학 이야기를 꺼내지 않나, 하여간 글에 별 짓을 다 한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영화 잡지에 실린 칼럼을 따라한 것 같아서 나는 첨삭문에 이러한 말을 덧붙인 적이 있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화 칼럼은 대부분 글로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한 칼럼을 참고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다. 애꿎은 선생님은 강의 평가 테러를 당했고 조교가 말을 심하게 한다고 항의가 빗발쳤다. 한 번 난리를 겪은 다음부터는 영화 칼럼 따라하지 말라는 말을 첨삭문에 글로 남기지 않고 대면첨삭 때 말로 한다.

하여간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영화 평론가라는 사람들은 무슨 자격으로 영화를 평론하는가? 평론가의 평론은 왜 평론받지 않는가?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이 ‘평론 평론’이다. 평론을 평론하는 것을 말한다.

평론 평론은 논술업체 같은 데서 노이즈 마케팅으로 해볼 만하다. 글 못 쓰지만 잘 나가는 영화 평론가의 글을 골라서 한 줄 한 줄 문제점을 다 지적하며 빨간 펜으로 첨삭한 후 글을 새로 써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그 칼럼이 왜 망했는지 설명하고 학원 광고를 덧붙이면, 광고 효과가 배가될 것이다. 그런데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2016.11.09.)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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