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4

친구 따라 <기호논리학> 수업을 듣는 학부생



어떤 학부생이 연구실에 찾아왔다. <기호논리학> 수업을 듣는데 조교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조교가 잠시 자리를 비워 학부생은 몇 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그 동안 나는 학부생한테 말을 몇 마디 붙여봤다.

- 나: “철학과예요?”

- 학부생: “아니오, 1학년이라서 아직 전공 배정을 받지 못했어요.”

- 나: “아, 철학과 오려구요?”

- 학부생: “사회과학계열이에요.”

<기호논리학>은 철학과 전공 필수 수업이라서 철학과 학생은 반드시 이수해야 하지만 다른 학과 학생이 굳이 이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다.

- 나: “그러면 <기호논리학>을 왜 들어요?”

- 학부생: “친구가 이 수업 재미있다고 해서요.”

본인은 반수해서 1학년이고 친구는 2학년이라고 했다. 재미있는 수업이라면서 <기호논리학>을 추천하다니 이런 나쁜 친구가 있나. 게다가 <기호논리학> 수업에서 벤슨 메이츠가 쓴 책을 교재로 쓰는 학교는 몇 군데 없다.

- 나: “경제학과에서 <기호논리학> 같은 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 학부생: “그런데 <경제학원론>보다 <기호논리학>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원론에서는 뭔가 짜임이 있어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 학부생의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너도 죽어봐라 하는 식으로 <기호논리학>을 추천한 것이 아니고 정말 본인이 재미있어서 추천한 것이다. 친구한테 소개받아 그 수업을 듣는 그 학부생도 <기호논리학> 수업을 재미있어 한다. 역시 비슷한 사람끼리 친구가 되는 모양이다.

대학원 와서 여기 학부생들을 몇 년째 보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이들은 나하고는 다른 종족인 것 같다.

(2016.10.04.)


2016/12/03

죽다 살아난 새끼 고양이



2주 만에 집에 갔다. 화천이가 지난달에 낳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빽빽 소리를 지르며 현관 앞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화천이는 지난달에 새끼 고양이를 다섯 마리 낳았다. 그 중 한 마리가 유독 시들시들했다. 처음에는 건강했는데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감기에 걸렸는지 몇 번 토하더니 젖도 못 먹고 사료도 못 먹는 상태가 되었다. 눈곱이 심하게 껴서 한 쪽 눈은 반만 뜨고 다른 한 쪽 눈은 아예 못 뜨지 못했다. 화천이는 그런 새끼를 한 번 핥아주지도 않고 나 몰라라 했다.

화천이가 새끼를 돌보지 않자 부모님은 새끼 고양이한테 전기담요를 내주고 우유를 먹였다. 새끼 고양이는 살아나서 지금은 사료도 잘 먹고 온 마당을 뛰어다닌다. 어머니는 주먹만 한 놈이 그렇게 잘 뛰어다닌다고 하신다. 어머니를 그렇게 따라다녀서 어머니가 뒤뜰에 가면 뒤뜰에 따라오고 밭에 가면 밭에까지 따라온다고 한다.

현관문 밖에서 새끼 고양이가 하도 빽빽거려서 나가보니 다른 고양이는 다 어디가고 새끼 고양이 한 마리만 남아 있었다. 내가 현관문 앞에 앉으니 새끼 고양이가 조용히 다가와 앉았다.





(2016.10.03.)


2016/12/02

미모를 잃어가는 화천이



지난 달이었나, 화천이 코가 빨갛게 퉁퉁 부어올랐다. 고양이끼리 싸워서는 그렇게 다치지 않는다. 어머니는 화천이가 뱀한테 물려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하셨다. 며칠 전에도 화천이가 뱀을 물고 대문 안으로 들어오려고 해서 어머니는 소리 지르고 빗자루로 때리고 해서 겨우 집 밖으로 쫓았다고 한다. 화천이가 물고 있는 뱀이 몸통으로 화천이의 얼굴이며 목이며 칭칭 감았는데도 화천이는 끝까지 뱀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밥을 안 주는 것도 아니고 주인이 예뻐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화천이는 괜히 밖을 돌아다니면서 두더지를 잡아 오고 뱀하고 싸운다. 화천이 오기 전에 살던 고양이도 안 그랬고 화천이가 낳은 새끼들도 안 그런다. 화천이만 그런다.

화천이가 어렸을 때는 참 예뻤는데 점점 미모가 망가진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시골 살면 미모를 유지하기 어렵다.






(2016.10.02.)


2016/12/01

주입식 교육 때문에 노벨상 못 받는 것인가?

   

  

한국 언론에는 심심하면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죽이는 교육이고 그래서 노벨상을 못 탄다는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20년 전에도 언론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지금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도 항상 똑같다. 외국처럼 토론 수업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장하석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리학을 사랑하고 공부하겠다고 대학에 갔는데 학교에서 받은 물리학의 이미지는 달랐다. 물리학 시간에 알고 싶은 게 있어 질문하면 그건 철학적 문제인데 그런 생각을 안 해도 되고 문제만 풀라고 얘기한다. 미국의 최고 학교인데도 그랬다. 4년 동안 그런 얘기 듣다가 화가 났다. [...] 어떻게 보면 강훈련을 시키는 학교이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칼텍은 과학의 신병훈련소라고 불리는 학교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정통적인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한국 언론은 한국 학생들은 입시 때문에 학습 자체에 관한 흥미가 떨어지는데 외국 학생들은 배우는 것 자체를 재미있어 한다고 보도한다. 그런데 장하석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미국, 영국에서 창의력 기르는 교육 한다고 해도 생각같이 쉽게 되지는 않는다. 외국에서도 과학 교육 지겨워하는 학생 많다. 왜냐면 선생이 아무리 훌륭하고 재미있게 가르친다고 해도 물리학 같으면 공식 배워서 숫자 대입해 문제 푸는 것이 기본이다. 생물학과 화학에서 외울 것은 외워야 하고.”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할 것도 아니다. 언론에서는 중국과 일본은 한국과 교육 문화가 비슷하다고 하는데 이미 노벨상을 여러 번 탔다. 한국 교육이 주입식이라서 노벨상을 못 받는 거면 왜 중국과 일본은 노벨상을 받았겠는가.

노벨상은 연예대상 같은 것이 아니어서 올해 연구 잘 한다고 내년에 받는 상이 아니다. 올해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그건 20-30년 전에 한 연구로 받는 거다. 존 내쉬 같은 사람들은 1950년에 쓴 박사논문으로 199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으니 노벨상 받는 데에 40년 넘게 걸린 셈이다. 한국 언론은 20-30년 전에 한국에서 어떤 연구를 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왜 노벨상을 언제 받느냐고 아우성인가?

한국 학계의 연구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학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당분간은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힘들 것이다. 노벨상을 받을만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올해 내놓아도 그 것으로 노벨상을 받는 것은 20-30년 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국 언론은 앞으로 최소 20-30년 간 기사거리나 방송 소재가 없을 때마다 별다른 분석 없이 “한국은 노벨상을 왜 못 받나. 이게 다 창의성을 갉아먹는 주입식 교육 때문이다”라고 하며 안달복달할 수 있다.

달리 생각해본다면, 주입식 교육이 정말로 비판 능력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매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 기간마다 언론에서 개소리를 내보내도 아무 문제가 안 생기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언론에서 쉽게 분량 때우려고 그러는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고, 그런 뻔한 개소리를 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며 노벨상 타령을 따라하는 것은 비판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 뱀발: 한국 학계의 연구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학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은 철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인문학이 죽어서 20년보다 연구가 퇴보했다고 개뻥친다.

* 링크: [중앙일보] “쓸데없다는 판단 너무 일찍 하지 마라, 누군가엔 쓸 데 있어” / 배영대의 지성과 산책

( http://news.joins.com/article/20645840 )

(201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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