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7

북한 매체의 모국어 감각 - “잠자코 앉아서 뒈질 날이나 기다려라”

     

1994년 북한 측에서 했던 서울 불바다 발언은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송 선생님, 서울이 여기에서 멀지 않습니다. 전쟁이 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 그렇게 되면 송 선생님도 아마 살아남기 어려울 겁니다.” 서울 불바다 발언에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필요한 말만 있다. 글이나 말에서 절제는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협박은 이래야 한다.

그와 달리, 며칠 전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가 한 “잠자코 앉아서 뒈질 날이나 기다려라” 발언은 긴장감보다도 한국어가 보여줄 수 있는 해학이나 리듬감 같은 것을 보여준다. 분명히 북한에서 그러한 문구를 짜는 사람들이 따로 있을 텐데, 애초에 문구 만들 때부터 자기들끼리 피식피식 웃으면서 “솔직히 우리가 봐도 웃긴데?” 하면서 글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하여간 “잠자코 앉아서 뒈질 날이나 기다려라” 같은 표현을 생각해내는 북한 매체를 보면서, 나도 모국어 감각을 갈고 닦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 힙합하는 사람들도 그런 건 배워야 한다. 통일 되고 북한에 힙합이 전파되면 정말 볼만 할 것이다.

* 뱀발: “잠자코 앉아서 뒈질 날이나 기다려라”는 웬만한 상황에 사용해도 어색하지 않은 표현이다.

(1)

이성계의 낙마 소식을 듣고 정몽주가 이성계 병문안을 왔다. 병문안을 하고 돌아가려 하는데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차 한 잔을 권한다.

- 이방원: “포은 선생님, 제가 시를 한 수 지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 정몽주: “들려줘 보게.”

- 이방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 선생님께 답시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정몽주: “잠자코 앉아서 뒈질 날이나 기다려라.”

(2)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는 대군을 이끌고 동래성에 도착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고니시 유키나가는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푯말을 써서 보냈다.

- 고니시 유키나가: “명을 치려하니 길을 빌려 달라.”

- 송상현: “잠자코 앉아서 뒈질 날이나 기다려라.”

(3)

폼페이우스를 지지하던 로마 원로원은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오라는 결정을 내렸다. 군대를 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은 로마에 대한 반역행위다. 결단을 촉구하는 부하들 앞에서 카이사르는 이렇게 말했다. “원로원 역적패당 놈들, 잠자코 앉아서 뒈질 날이나 기다려라.”

* 링크: [조선일보] “잠자코 앉아 뒈질 날이나 기다려라” 北, 김정은 비판한 朴대통령에 막말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11/2016091100335.html )

(2016.09.17.)

2016/11/16

[국문학] 신유한, 『해유록』 요약 정리 (미완성)



[ 신유한, 『해유록, 조선 선비 일본을 만나다』, 김찬순 옮김 (보리, 2006). ]

(2024.12.11.)


2016/11/15

[한국 가요] 연영석 (Youn Young-seok)

     

연영석 - 코리안 드림

( www.youtube.com/watch?v=kg4hHFEZHOM )

연영석 - 간절히

( www.youtube.com/watch?v=bpNzEoxaP1o )

연영석 -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나

( www.youtube.com/watch?v=wQgwIyivndM )

연영석 -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나 [광화문 대통령 하야 집회 (2016.11.12)]

( www.youtube.com/watch?v=7MbHzEJ8NUw )

연영석 - 그네는 아니다 [민중 캐럴]

( www.youtube.com/watch?v=ZzX-Sfmzxwk )

(2021.10.15.)

나는 차례를 어떻게 지낼 것인가?



나는 어려서 제사를 많이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장남이고, 할아버지도 장남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둘째인데 형이 양자로 다른 집 가는 바람에 장남이 되었고, 고조할아버지도 둘째인데 증조할아버지와 같은 이유로 장남이 되어 종가도 아닌데 제사를 많이 지냈다. 어릴 적 나는 어른이 되면 당연히 제사를 많이 지내야 하는 줄 알았다. 나도 장남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래도 우리집 같은 집에서 제사를 많이 지내는 것은 법도에 맞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양반은 세습 귀족이 아니다. 족보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고 하더라도 지금 변변치 않게 살면서 우리 집안이 양반 후손입네 어쩌네 하는 건 무의미하다. 4대 봉사는 당상관 이상이나 하는 것이다. 우리집은 쥐뿔도 없는 주제에 제사를 너무 많이 지낸다. 제사의 원래 취지를 고려한다면 제사 주관자가 대면한 사람까지 제사 지내는 게 이치에 맞다. 제사 횟수를 확 줄여야 하는 이유는 이렇듯 확실하다.

옛날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면 조상의 혼이 와서 음식 냄새를 맡는 방식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믿었다고 한다. 말 같지도 않는 소리다. 그렇게 따지면 제사 지내다 누가 방귀를 뀌면 조상 유령은 후각으로 똥을 섭취한다는 것인가? 죽은 사람은 음식을 못 먹는다. 제사 음식은 결국 산 사람이 먹는 것인데 만들기는 번거롭고 내 입맛에도 안 맞는다. 제사 음식도 확 줄여야 한다.

제사 횟수를 줄이고 제사 음식도 확 줄이고 절차도 간소하게 할 것이니, 차례 음식을 간소화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있었는데, 무적핑크의 <조선왕조실톡>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20세기 식 가정의례처럼 근본 없는 것은 다 없애버리고 조선시대 방식대로 술 한 잔, 송편, 과일, 고기 정도만 놓고 차례를 지낼 생각이다. 장남인 내가 그러겠다는 게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당장은 그렇게 못 하겠지만 20년쯤 뒤에는 내 방식대로 차례를 지내게 될 것이다.

 
 
 
 

* 링크: [조선왕조실톡] 170. 딸도 차례를 지냈다

( https://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42598&no=175 )

(2016.09.15.)


2016/11/13

고교 동창의 페이스북을 보고 한 오해

   

숙소에 가던 중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동창은 그 근처에 산다고 했다. 이 근처면 회사에서 꽤 멀 텐데 왜 여기에 사는 것인가? 나는 물었다. “그런데 너 왜 여기(고시촌) 사냐? 고시 보게?” 동창은 답했다. “감정평가사 시험 보려고. 나 회사 그만 두었잖아. 힘들어서 못 다니겠더라고. 페이스북에 사진 올린 거 안 봤어?”

그러고 보니 최근에 그 동창은 페이스북에 해외여행 사진을 자주 올렸다. 회사 그만 두고 퇴직금 털어서 한 달 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역시 좋은 회사 다니고 돈도 많이 버니까 저렇게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는 구나. 아, 좋겠다. 나는 언제 직장 잡고 가난뱅이에서 벗어나지?’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렇게 멍청하다.

(2016.09.13.)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