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14

인문학 대중화에 대한 부당한 비판들



최진기가 케이블에서 강의를 잘못해서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다. 사실 자체를 틀리게 말했으니 욕먹어 마땅하기는 하다. 그런데 인문학에 대해 뭔가 단단히 잘못 아는 사람들이 틀린 근거를 들어 최진기를 비판하기도 하는 것 같다. 심지어 인문학을 단순명료하게 강의했다는 것으로 욕하기도 한다.


“인문학이 학원 강의와 다른 점은 그것이 명쾌함과 단순함을 거부한다는 데 있다. [...]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철학이든, 인문학 분야의 지식은 공부하면 할수록 명쾌해지는 게 아니라 더 모호해지고 더 복잡해지기만 한다. 인문학이 탐구하는 대상인 ‘인간’ 자체가 바로 그런 존재이고, 그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바로 그런 공간이기 때문이다. [...] 대중인문학은 이 혼돈을 제거한 채로 춤추는 별에만 집중하는 엔터테인먼트이다. 인문학은 혼돈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사유 행위일 때만 의미가 있다.”(문강형준, <광대의 인문학>)


“소위 인문학적 소양이란 치열한 ‘왜’로부터 출발한다. ‘왜’를 묻는다는 것은 비판적 사유와 분석을 필요로 한다. 근대를 지난 현대 인문학의 다양한 분야들을 아우르는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질문은 해답보다 심오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문학적 사유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간결함과 명쾌함이 아닌, 불확실성과 모호성이다. 인문학적 사유는 이전의 익숙한 이해세계를 뒤흔드는 내면적 불편함을 경험하게 한다. 한국의 대중매체에서 소비되고 있는 인문학의 상품화가 결정적으로 놓치고 있는 점이다.”(강남순, <인문학의 상품화, 그 위험한 유혹>)


공부할수록 더 어렵고 복잡해지는 것은 모든 학문의 특성이지 인문학이 인간을 다루어서가 그런 것이 아니다. 입문이나 개론 때는 최소한만 배우지만 갈수록 고려해야 할 요소가 증가한다. <경제학원론>에서 수요-공급 곡선만 배운 신입생은 최저임금제가 실업률을 높이니 없애야 한다고 믿지만 <노동경제학>을 배우면서 경제 현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과대나 공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들었다.

“인문학은 혼돈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사유 행위일 때만 의미가 있다”느니 “인문학적 사유는 이전의 익숙한 이해세계를 뒤흔드는 내면적 불편함을 경험하게 한다”느니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학문은 뒤섞이고 모호한 것을 명료하고 정돈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혼돈이나 내면의 불편함이 어떤 학문의 가치라면 그딴 학문은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혼돈을 즐기고 싶으면 왜 굳이 어렵게 학문을 하는가? 자취방을 답 안 나오게 어질러 놓고 침대에 앉아 아무 것도 손대지 말고 천천히 방을 응시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학부 때를 돌이켜보면 본인이 뒤죽박죽으로 가르치는 것을 오히려 자랑삼아 말하는 교수도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들한테 아무 설명 없이 원전 번역서만 읽혀놓고 “읽어왔으면 질문을 해라. 왜 질문을 안 하냐?”고 닦달하던 교수도 있었고, “나는 매년 같은 텍스트를 읽으면서 일부러 텍스트의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교수도 있었다. 그 분들한테 미안한 말이지만 교육의 측면에서만 보면 최악의 방식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모호하고 혼란스럽게 가르치면 그 수업은 망한다.

모든 것을 한 번에 가르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교육과정에서 교육 내용을 어쩔 수 없이 왜곡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사칙연산도 못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한테 음수 개념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5 빼기 7”의 답은 –2가 아니라 “없다”고 가르친다. 수학적으로는 틀리지만 그렇게 해야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중학교에서 이차방정식 가르칠 때 판별식이 0보다 작으면 근이 허수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근이 없다”고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중등교육의 문제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인문학만은 초보자가 혼돈과 불편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어디 화끈하게 인문정신을 맛보라면서 혼돈과 모호의 구렁텅이에 초심자를 밀어 넣으면, 대부분은 그 다음 단계로 못 넘어가고 그 수렁텅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책을 덮는다. 요행히 책을 안 덮어 봐야 개멋이나 부리고 헛소리나 하는 무식쟁이가 된다. 처음에 단순명료하게 가르치고 수준을 높여가며 약간씩 교정하는 것이 더 낫다.

대안은 교양 강의를 보급형과 고급형으로 나눠서 제공하는 것이다. 시청률에 민감한 지상파나 케이블에서는 사교육 강사를 쓰고 시청률 상관없는 교육방송 같은 데는 훌륭한 연구자를 쓰면 된다. 이러면 시청자들은 자기 수준에 맞게 방송을 찾아서 볼 수 있다. 단, 후자의 경우 몇 번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작정하고 장기 편성해야 한다. <노자와 21세기>도 20회 정도까지는 사람들이 방송이 있는 줄도 모르다가 이후에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로마사 천년을 100회 분량으로 하든지 춘추전국시대를 200회 분량으로 하는 편성도 괜찮을 것 같다. 아재 개그도 계속 듣다 보면 정신 놓고 실실 웃게 되듯, 노잼 강의도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고정 시청자가 생길 수 있다.

사교육 업자들의 강의 질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전문가들의 감수를 받으면 된다. 사실, 나는 최진기가 전문가 감수를 안 받은 게 더 신기하다. 방송국에 전문가 감수를 요구했다면 방송국은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해당 분야 교수에게 접근했을 것이다. 업자는 전문가와 쉽게 교류하고 그 비용은 방송국이 부담한다. 사업할 때 아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던데 교수들은 다들 출신이 좋으니 사업에 필요한 다른 사람한테 접근할 때도 도움이 될 거다. 그런데 최진기는 왜 그렇게 안 했을까? 사업이 잘 되어서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나?

* 링크(1): [한겨레] 광대의 인문학 / 문강형준

( www.hani.co.kr/arti/opinion/column/747690.html )

* 링크(2): [경향신문] 인문학의 상품화, 그 위험한 유혹 / 강남순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132106005 )

(2016.06.14.)


2016/08/09

현실화되는 허경영의 산삼 뉴딜

   

  

최혜원 팔당산삼수목원 원장이 <동아일보>와 인터뷰했다. 인터뷰 내용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다. 자연을 전혀 해치지 않으면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사업이 산양 산삼 재배다. 숲이 우거진 산에 씨를 뿌리기만 한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만큼 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산양 산삼을 키울 수 있도록 조금만 도와주면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

 

최근 중국은 한반도의 절반 정도의 땅에 1년에 9t이나 되는 씨를 비행기로 살포하고 있단다. 이 대표는 “그 씨의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간다. 효능은 우리나라 산삼을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산삼 씨 가격이 2-3배로 뛰었는데 중국에서 싹쓸이해 가서 그렇다. 우리도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허경영이 산삼 뉴딜로 1천만 명을 고용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을 때, 한 라디오 방송에서 김용민과 김어준은 “사람이 키우면 그게 인삼이지 산삼이냐”면서 목이 터져라 웃었다. 나도 웃으면서 그 방송을 들으면서, 그 동안 중국은 허경영이 한 말을 현실화하고 있었다.

참고로, 장뇌삼은 사람이 산삼의 씨를 받아 키우는 것으로 산삼으로 분류된다.

* 링크: [동아일보] 팔당산삼수목원 최혜원 원장 / 토요일에 만난 사람

( http://news.donga.com/BestClickIlbo/3/all/20140830/66105823/1 )

(2016.06.09.)

2016/08/08

한국은 어쩌다 헬조선이 되었나 - 이지성의 『생각하는 인문학』

   

학부 때 ㅅ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국의 보통 사람은 미국의 보통 사람보다 훨씬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다. 그런데 왜 미국이 한국보다 잘 살까? 석유가 나서? 산유국 중에 미국 같은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군사력이 강해서? 그러면 소련은 지금도 잘 살아야지. 한국보다 미국이 잘 사는 건 한국을 이끄는 사람들보다 미국을 이끄는 사람들이 훨씬 똑똑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수준은 그 나라 사람들의 수준이 아니라 그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의 수준과 비례한다.”

도서관에 가서 이지성의 『생각하는 인문학』을 훑어보니, 학부 수업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책에는 어떤 재벌 회장의 어머니가 이지성의 열혈 팬이고, 재벌 회장은 어머니의 권유로 이지성을 불러서 친구가 되자고 하고, 그 회장이 자기 자녀를 비롯한 재벌가 자녀들의 교육을 이지성에게 부탁하는 내용이 나온다. 놀라운 내용이지만 실제로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우리나라 10대 그룹 중 한 곳의 오너이자 CEO였다. 비서실장의 인도를 받아 5층에 내리자 그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 그는 내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직접 받아 적었다.

[...] 어떻게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가 시원스럽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모친이 평소 다큐멘터리와 강의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한 작가의 네 시간짜리 인문학 강의를 접하고는 깊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재벌 3세들에게도 해당 강의 동영상을 담은 USB와 그 작가의 책을 선물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강의 감상문과 독후감까지 쓰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아들인 자신에게는 무조건 그를 만나서 좋은 친구가 되고, 그에게 인문학 지도를 받을 것을 명했다고 한다. [...]

약 두 시간 정도 그에게 인문학과 경영의 교차점에 대해 심도 있게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그가 갑자기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자신의 자녀들은 물론이고 자신과 친분이 깊은 재벌가의 자녀들에게 인문학을 지도해주면 어떻겠냐고. 만일 수락하면 파격적인 보상을 해주겠다고. 순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담담한 표정으로 ‘한번 생각해보겠다. 그런데 아마도 응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대답했다. (36-37쪽)

한국을 쥐락펴락하는 재벌 일가의 지적 수준이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 한국이 헬조선이 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 링크: [경향신문] ‘리딩으로 리드하라’ 쓴 베스트셀러 작가 이지성 / 이종탁이 만난 사람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3282123372 )

(2016.06.08.)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