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sok Chang (2004), Inventing Temperature: Measurement and Scientific Progress (Oxford University Press), pp. 57-.
장하석, 「제2장. 온도계의 고정점 고정하기」, 『온도계의 철학: 측정 그리고 과학의 진보』, 오철우 옮김 (동아시아, 2013), 129-212쪽. ]
I. 역사: 온도의 ‘실재적’ 척도를 찾아서
(Narrative: The Search for the “Real” Scale of Temperature)
1. 규준적 측정 문제 (The Problem of Nomic Measurement)
2. 드 뤽과 혼합법 (De Luc and the Method of Mixtures)
3. 혼합법에 배치되는 칼로릭 이론
(Caloric Theories against the Method of Mixtures)
4. 칼로릭 학설의 신기루, 기체의 선형성
(The Calorist Mirage of Gaseous Linearity)
5. 르뇨: 간소함과 비교동등성 (Regnault: Austerity and Comparability)
6. 판정: 수은보다 공기 (The Verdict: Air over Mercury)
II. 분석: 경험주의의 맥락에서 보는 측정과 이론
(Analysis: Measurement and Theory in the Context of Empiricism)
1. 관찰가능성의 단계별 성취
(The Achievement of Observability, by Stages)
2. 비교동등성, 그리고 단일값의 존재론적 원리
(Comparability and the Ontological Principle of Single Value)
3. 뒤엠 식 전체론에 반대하는 최소주의
(Minimalism against Duhemian Holism)
4. 르뇨, 그리고 라플라스 이후의 경험주의
(Regnault and Post-Laplacian Empiricism)
I. 역사: 온도의 ‘실재적’ 척도를 찾아서
(Narrative: The Search for the “Real” Scale of Temperature)
[p. 57, 129쪽]
일단 고정점들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확립되자, 이제 고정점들 사이의 구간과 그 바깥에 있는 열의 등급들에 숫자를 매기는 절차를 찾아냄으로써 수치 온도계가 만들어질 수 있었음.
이는 사소한 문제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거기에는 깊은 철학적 난제가 놓여 있었으며, 그것은 한 세기 넘게 논쟁과 실험을 거친 뒤에야 극복됨.
1. 규준적 측정 문제 (The Problem of Nomic Measurement)
[p. 59, 132-133쪽]
우리는 얾 0도일 때 온도 측정용 액체의 높이, 그리고 끓음 100도 일 때 그 액체의 높이를 표시함.
그러고는 그 사이 구간을 균등하게 나눔.
따라서 중간 값은 50도인 식임.
이런 절차는 액체가 온도에 대해 균일하게 (즉 선형적으로) 팽창하고, 따라서 온도의 균등한 증가가 부피의 균등한 증가를 일으킨다는 가정에서 작동함.
[p. 60, 134쪽]
알려진 온도 측정용 유체 중 진정한 온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할 만한 주요 경쟁 후보
(1) 대기의 공기
(2) 수은 또는 퀵실버(quicksilver)
(3) 에틸알코올
2. 드 뤽과 혼합법 (De Luc and the Method of Mixtures)
[p. 61, 136쪽]
논쟁을 잠재울 만한 설득력 있는 추론과 실험의 한 가지 전통은 혼합법(method of mixtures)
어는 물(당연히 백분위 0도)과 끓는 물(역시 당연하게 백분위 100도)의 같은 양을 단열 용기 안에 섞음.
그 혼합물에 꽂은 온도계가 50도를 가리킨다면, 이는 진정한 온도임을 보여주는 것.
그런 혼합물을 갖가지 비율로 만들어서 (끓는 물과 어는 물을 1:9의 비율로 섞으면 물은 백분위 10도를 가리켜야 한다 등등), 두 고정점 사이에 척도 어디에서나 온도계가 정확한지 검증할 수 있음.
[pp. 61-62, 136-137쪽]
온도계 검증을 위한 혼합버을 도입한 사람은 브루크 테일러(Brook Taylor)
테일러 급수로 유명한 영국 수학자
[p. 62, 137-139쪽]
장 앙드레 드 뤽
제네바의 기상학자, 지질학자, 물리학자
드 뤽은 자신의 1772년 저술에서 온도 측정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측면을 다루었으며, 그중에서 유체의 선택 문제는 주요한 관심사의 하나였음.
그는 온도 측정용 유체의 선택은 바로 그것, 즉 선택의 문제라고 함.
“근본 원리”(fundamental pinciple)는 유체가 “부피의 균등한 변이에 의거하여 열의 균등한 변이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드 뤽의 탐구는 결국 수은이 가장 만족스러운 온도 측정용 액체라는 결론으로 나아감.
[pp. 63-64, 139-140쪽]
수은을 옹호하는 드 뤽의 실험과 논증은 널리 받아들여졌고, 전 유럽에서 물리학과 화학 분야의 지도적인 여러 권위자들 사이에서 인정 받음.
1800년 무렵 드 뤽은 연구는 주요한 학문, 국가,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 퍼져 나감.
3. 혼합법에 배치되는 칼로릭 이론
(Caloric Theories against the Method of Mixtures)
[pp. 64-65, 140-141쪽]
그러나 수은에 대한 이런 합의는 자리를 잡자마자 무너지기 시작함.
분란은 일정량의 물을 가열하는데 필요한 열의 양이 그 온도 변화량에 단순 비례한다는 드 뤽의 결정적인 전제를 둘러싸고 벌어짐.
드 뤽은 일정량의 물 온도를 5도씩 올릴 때마다 같은 양의 열이 들어간다고 가정함.
일반화해서 적용할 때 그것은 물의 비열이 불변이며 온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는 가정에 도달함.
이는 편리한 가정이었고 당시에 드 뤽이 이를 의심할 특별한 이유도 없었음.
그러나 1800년 전후 몇십 년 동안 열의 화학과 물리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주요 특징인 칼로릭 이론이 점차 정교해지고 적용가능성(readiness)과 자신감도 커지면서 드 뤽의 전제는 도전을 받음.
[p. 65, 141쪽]
칼로릭 이론의 핵심은 칼로릭의 존재를 가정한다는 것이었는데, 칼로릭은 당시에 열의 원인, 심지어 열 자체로도 인식되던 물질적 실체였음.
앞으로, 로버트 폭스(Robert Fox)의 구분법을 따라 “어빈주의 그룹”(Irvinist)과 화학적 관점 그룹“(chemical)으로 부를 것
[p. 66, 142-143쪽]
돌턴에 따르면, 혼합법의 타당성을 반박하는 데는 쉬운 논증이 있었음.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섞으면 결과적으로 전체 부피가 약간 감소하는 것으로 관찰됨.
칼로릭 이론에 대한 돌턴 식의 해석으로 보면, 부피의 감소는 말 그대로 칼로릭이 들어갈 공간이 적어지고, 따라서 열용량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함.
어빈주의의 기본 추론에 의하면, 이는 온도가 상승함을 의미함.
그래서 돌턴은 일반적으로 혼합물은 드 뤽이 단순 계산을 통해 제시한 것보다 더 높은 온도를 띤다고 생각함.
[p. 67, 145쪽]
아위가 지적한 대로 결정적으로 복잡한 문제는, 더 낮은 온도에서는 분자 간의 거리가 더 좁아 분자간의 인력이 더 세기 때문에 저온에서 물이 팽창하려면 더 많은 칼로릭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음.
이런 이유에서 아위는 혼합물의 실재 온도는 드 뤽의 단순한 계산으로 얻어진 수치보다 언제나 더 낮을 것이라고 주장함.
[p. 68, 145쪽]
요약하면, 당시에 무르익은 이론적 성찰들은 물의 비열의 불변성 또는 변이를 완전히 열린 물음의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혼합법에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가하는 흐름으로 나아갔던 것으로 보임.
심지어 드 뤽도 실제로 돌턴과 아위의 비판이 출판되기 전에 이런 불확실성의 지점을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도 있음.
4. 칼로릭 학설의 신기루, 기체의 선형성
(The Calorist Mirage of Gaseous Linearity)
[pp. 69-70, 147-148쪽]
기체의 열적 거동의 단순함에 대한 믿음은 조셉-루이 게이-뤼삭과 돌턴이 각각 발표한 관찰 결과에 의해 엄청나게 강화됨.
모든 기체는 그 온도가 균등한 양씩 증가할 때 초기 부피의 균등한 일정량만큼씩만 팽창한다는 것.
이는 기체의 열적 거동이 눈에 띌 정도로 단순성(simplicity)과 균일성(uniformity)을 지닌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처럼 보였고, 이로써 많은 칼로릭 연구자들은 기체가 온도에 따라 균일하게 팽창한다고 가정하게 됨.
[pp. 70-71, 149-150쪽]
그나마 수은 온도계에 유일하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일반의 견해로 볼 때 수은 온도계가 공기 온도계보다 쓰기에 편하고, 게이-뤼삭도 매우 명료하게 보여주었듯이 그 온도 기록이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 사이의 구간에서는 공기 온도계의 기록과 충분히 가깝게 일치한다는 점
[p. 73, 152-153쪽]
- 칼로릭 기본 이론이 그리는 기체의 그림에 덧붙여서 라플라스는 다음과 같이 가정함. 기체는 열적 평형에 있으며 밀도는 균일할 것임.
기체 분자는 둥글고 변화하지 않으며 서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을 것임.
각 분자는 정확히 같은 양의 칼로릭을 담고 있을 것임.
칼로릭 입자 간의 힘은 거리의 함수이며 그렇기 때문에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때 그런 힘은 무시할 수 있을 것임.
공간 자유 칼로릭 입자들은 눈에 띌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일 것임. 등등.
[pp. 73-74, 153-154쪽]
이런 전제들은 이론적으로 방어할 수 없었고 경험적으로도 검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대부분의 프랑스 이론가들조차도 칼로릭에 관한 라플라스 식의 계산에서 먼 거리를 유지했음.
...
라플라스의 논법은 1840년대와 1850년대에 사디 카르노의 연구가 부흥하고 심화해 발전하기 전까지는 유일하게 가능성있는 열물리학의 이론적 설명으로 남음.
5. 르뇨: 간소함과 비교동등성 (Regnault: Austerity and Comparability)
[p. 74, 154-155쪽]
앞에서 논한 라플라스 연구 이후의 20년에는 열의 이론들 전반에 대한 자신감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던 시기라는 대체적인 특징을 부여할 수 있을 것임.
그 후속으로, 정직한 관측을 넘어서는 모든 학설에 대해 회의론과 불가지론이 폭넓게 퍼져 나타남.
자신감의 상실은 또한 이론적 관심과 이론 정교화의 상실을 초래했으며, 이와 동시에 교육적이고도 전문직업적인 논법은 더 단순한 이론적 개념으로 되돌아감.
[p. 75, 156-157쪽]
이렇게 포기한 상태에서 등장한 인물이 앙리 빅토르 르뇨였으며, 그는 라플라스 이후 경험주의라는 매우 간소한 판본(version)으로 주조한 해법을 들고 나왔음.
[pp. 76-77, 158-159쪽]
르뇨는 모든 전제들을 측정으로 검증하고자 했음.
이는 측정이 어떤 이론적 전제에도 의존하지 않은 채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
“물리학의 기본 데이터를 확립할 때에는 누구나 될수록 직접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르뇨는 모든 기본 측정 방법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이론적 전제들을 엄정하게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함.
[p. 77, 159쪽]
르뇨의 비결은 “비교동등성”(comparability)이라는 인식에 있었음.
만일 온도계가 우리에게 진정한 온도를 제시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동일 조건에서는 언제나 동일한 기록을 보여 주어야 함.
마찬가지로 어떤 유형의 온도계가 정확한 장비라면, 이런 유형의 온도계는 모두 적어도 온도 기록에서 서로 일치해야 함.
르뇨는 이것을 ”모든 측정 장치들이 충족해야 하는 본질적 조건“이라고 생각했음.
...
어떤 장비가 한 가지 상황에서 여러 값을 보여준다면, 그 표시된 값에는 적어도 일부는 분명히 부정확한 것이기에 그런 장비는 신뢰할 수 없었음.
단일값의 원리(principle of single value)
[p. 77, 160쪽]
비교동등성이라는 일반적 인식은 르뇨가 처음 발명한 것은 아님.
사실상 그것은 온도 측정 분야에서 오랫동안 장비 신뢰성(reliability)을 높이기 위한 기본 필수 사항으로 폭넓게 인식되었고 거의 상식적인 용어가 되어왔음.
[p. 77, 160-161쪽]
르뇨는 비교동등성의 이런 낡은 개념을 각 유형의 온도계가 지닌 장단점을 검증하는 강력한 도구로 탈바꿈해놓음.
르뇨가 도입한 독창성은 더 높은 수준의 회의론.
이전의 시기에는 온도에 눈금을 매기는 엄격한 방법이 정착되자마자 사람들은 그런 방법으로 만든 모든 장비는 정확하게 서로 동등하게 비교될 수 있다고 가정했음.
르뇨가 보기에 이는 경솔한 것.
당시에 눈금을 매기는 표준의 방법은 대체로 서로 다른 온도계들이 고작 몇 가지 온도점에서만 서로 일치하게 하면 될 뿐이었음.
그것이 다른 모든 지점에서 온도계들이 서로 일치하리라는 것을 보증하지는 못했음.
다른 온도점에서 일치한다는 것은 경험적 검증을 해봐야 알 수 있는 열린 가설이었고, 그것은 동일한 유체를 쓰는 온도계라 해도 또 다른 방식으로는 차이가 난다면 마찬가지의 검증 대상이었음.
6. 판정: 수은보다 공기 (The Verdict: Air over Mercury)
[p. 79, 162쪽]
르뇨의 주요한 관심은 공기 온도계와 수은 온도계 사이에서 판단을 내리는 일
[p. 79, 162-164쪽]
르뇨는 서로 다른 네 가지 유형의 유리로 만든 열한 가지의 수은 온도계를 대상으로 각고의 실험을 벌인 끝에 수은 온도계의 비교동등성이라는 가정을 폐기함.
[표 2.4]에서 보듯, 가장 나쁜 경우에는 섭씨 5도를 넘는 현저한 차이가 나타남.
[pp. 79-80, 164쪽]
여기에서 유리의 물질 거동 차이에서 기인하는 비교동등성의 실패는 단지 실용적 난제일 뿐이며 수은 자체의 열적 팽창과는 무관하지 않은가 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음.
특정한 유형의 유리를 수은 온도계 제작에 쓰는 표준 유리로 지정하면 충분히 쉽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유리의 열적 거동은 복잡했고 아주 충분히 이해되지 못했음.
표준의 수은 온도계에서 비교동등성을 성취하려면 유리의 정확한 화학 조성, 제조과정, 그리고 사용 조건에 대한 세세한 요건들이 지정되어 있어야 했음.
[p. 80, 164-165쪽]
르뇨는 공기 온도계, 그리고 일반적인 기체 온도계도 다른 모든 온도계와 마찬가지로 비교동등성의 경험적 검증을 엄격하게 받아야 한다고 요구함.
[pp. 81-82, 167쪽]
“공기온도계는 높은 온도를 확정할 때에 자신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측정 장비이다. 그것은 온도가 100도를 넘을 때 우리가 이래에 채용하게 될 유일한 온도계이다.”
[p. 82, 167-168쪽]
이런 결론을 두고서는 두 가지 질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 가능한 질문(1): 다른 기체들도 많은데 왜 유독 공기가 선호되었는가?
르뇨의 저술에서 이런 쟁점에 관한 명시적인 논의를 찾을 수 없기에, 여기에서는 그저 추정해볼 뿐
실용적인 측면, 즉 공기 온도계는 가장 쉽고도 가장 싸게 얻을수 있고 보존할 수 있고 제어할 수 있었다는 점이 충분히 이런 문제의 결론은 냈을 수 있음.
[pp. 82-83, 168쪽]
- 가능한 질문(2): 르뇨가 공기 온도계의 비교동등성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그에게 있었느냐 하는 것
빅토르 르뇨조차 잠재적 변이를 시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원칙에 반하더라도 어느 지점에선가 멈춰 설 수밖에 없는 것이 실용적인 태도였을 것
어떤 경우이건 칼 포퍼라도 권고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아직 반증되지 않은 것이면 어떤 것이든 당분간 채택하고 사용하는 것
[p. 83, 169쪽]
이런 남은 물음들 때문이었던지, 공기를 옹호하는 르뇨의 최종 선언은 없었음.
“열의 절대적인 양을 측정하는 수단을 손에 넣는 일에서 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지식의 현재 상태에서는, 이런 양에 좌우되는 현상에서 단순 법칙들을 실험에 의해 발견하리라는 희망은 거의 없다.” (1842넌 르뇨의 논문)
II. 분석: 경험주의의 맥락에서 보는 측정과 이론
(Analysis: Measurement and Theory in the Context of Empiricism)
1. 관찰가능성의 단계별 성취
(The Achievement of Observability, by Stages)
[pp. 84-85, 172쪽]
경험주의자에게 던져진 과제는 궁극적으로 감각 형태에 토대를 두고서 그런 식의 지식의 개선을 이루는 일
마지막에 장하석은 엄격한 경험주의만으로는 과학 지식을 구축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논증할 생각이지만, 그것이 우리를 얼마나 멀리 나아가게 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
르뇨는 그 길에서 우리가 맞이하고 싶은 최고의 길잡이
그의 경험주의는 매우 엄밀해서, 경험적 데이터는 관찰로 증명되지 않은 가설에 의존하는 측정 절차를 거쳐 얻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까지 폄.
[p. 85, 172-173쪽]
장하석: 여기서 핵심 물음은 우리가 건전한 의식에서, 과학 지식의 경험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서 얼마나 우리 자신을 스스로 도울 수 있느냐 하는 것
경험주의의 표준적 답변은 우리가 관찰 가능한 것만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관찰 가능한”이 어떤 의미인지 더 자세히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런 답변에서 아주 많은 것을 얻기 어려움.
반 프라센이 말한 “관찰 가능성”은 외부 도움 없이 인간의 감각기관에 의한 원칙상의 지각가능성(in-principle perceivability)을 의미함.
[p. 85, 173-174쪽]
그러버 맥스웰(Grover Mawell)
그의 논증이 이전 세대의 반-실재론자, 즉 논리실증주의자를 겨냥한 것이기는 하지만, 맥스웰은 관찰가능한 것과 관찰불가능한 것 사이에 있는 선은 과학의 진보를 거치면서 이동할 수 있다고 주장함.
이런 논지를 펴기 위해서 제시한 허구의 사례
존스는 감염 메커니즘으로서 관찰불가능한 “벌레”(bug)가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그것을 “미생”(crobe)이라고 부름.
그 이론 덕분에 매우 효과적인 살균과 격리 수단이 생겨나면서 그의 이론은 크게 인정받았으나 미생이 실재하는지에 관한 합리적 의심은 남음.
운이 좋게도 존스는 복합현미경이 발명될 때도 살아 있었고 미생은 매우 자세하게 ‘관찰되었고’ 각 질환에 원인이 되는 미생물(microbe)의 특정 종을 식별해내는 것이 가능해짐.
[p. 86, 175-176쪽]
장하석이 제안하는 관찰가능성의 새로운 개념은 “관찰가능성은 성취물이다”(observability is an achievement)
이와 관련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추상적 범주에 따른 관찰 가능한 것과 관찰 불가능한 것의 구분이 아니라 우리가 잘 관찰할 수 있는 것과 잘 관찰할 수 없는 것의 구분
...
모든 관찰은 감각에 바탕을 두는 것이 틀림없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감각에서 무엇을 안전하게 추론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 관찰 내용이 얼마나 순수하게, 또 얼마나 직접적으로 감각에서 나오는가 하는 것은 아님.
간단히 말하면, 장하석은 관찰을 감각에서 나오는 신뢰할 만한 결정(reliable determination from sensation)이라고 정의하고자 함.
[pp. 86-87, 176쪽]
온도 측정 분야에서 르뇨가 기여한 바는 온도의 관찰가능성을 정량적으로 향상시켰다는 점이며, 이론에 의거하지 않으면서 그런 일을 해냈다는 점
[p. 87, 176-177쪽]
관찰가능성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완전하게 연속적인 것도 아님.
그것은 진보하며 여러 방식으로 향상하며, 또한 서로 별개의 표준들이 연속 확립되는 서로 다른 단계에 놓여있음.
[p. 87, 177-178쪽]
르뇨는 신뢰성을 평가하는 이론 이외의 잣대로 비교동등성을 사용함.
2. 비교동등성, 그리고 단일값의 존재론적 원리
(Comparability and the Ontological Principle of Single Value)
[p. 90, 181쪽]
르뇨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2단계 표준은 3단계 표준의 선정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 것이며 다른 어떤 신뢰할 만한 표준도 사용할 수 없었음을 잘 알았기 때문
결론은 제안된 3단계 표준 하나하나를 각자의 우수함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
비교동등성은 르뇨가 판단의 잣대로 선택한 인식적 덕목(virtue)이었음
[p. 90, 182쪽]
비교동등성이 왜 덕목이 되는가?
비교동등성이라는 필수 요건은 자기 정합성을 요구하는 데로 나아감.
그것은 논리적 정합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말하는 물리적 정합성의 문제
이런 요구의 바탕에는 내가 다른 곳에서 이름 붙인 단일 값의 원리, 즉 실제의 물리적 속성은 어느 주어진 상황에서 단 하나의 값만을 지닌다는 원리가 놓여 있음.
[pp. 90-91, 182-183쪽]
일정량의 기체가 동시에 섭씨 15도이며 35도인 균일한 온도를 지닌다고 말하면 난센스가 되겠지만, 그런 난센스에도 여전히 그 온도가 섭씨 15도이며 또한 15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식의 논리적 모순은 없음.
어떤 물체의 온도가 동시에 두 값을 지닌다는 것은 논리 때문이 아니라 온도의 물리적 속성 때문에 불합리한 것
[p. 91, 183-184쪽]
단일값의 원리는 논리로도 경험으로도 정당화되지 않는, 내가 이름 붙인 존재론적 원리(ontological principles)의 으뜸 사례에 해당함.
존재론의 원리는 특정 인식적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실재의 본질적 특성으로 여겨지며, 실재를 설명하는 모든 과정에서 이해가능성(intelligibility)의 토대가 되는 전제들임.
아마도 가장 가까운 것은 칸트의 선험적 종합(synthetic a priori)일 것임.
존재론적 원리가 늘 타당한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침해하는 것이면 무엇이건 실재의 요소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임.
그렇지만 존재론적 원리와 칸트의 선험적 종합 사이에는 두드러진 차이가 하나 있는데, 장하석은 우리가 견지하는 존재론적 원리의 올바름에 관하여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영원한 확실성을 주장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 다른 점임.
우리 존재론적 원리는 틀릴 수도 있음.
[p. 92, 185-186쪽]
우리가 르뇨의 연구를 자세히 살펴볼 때, 애초에 가장 순수하고 가능성 있는 경험주의의 한 부분처럼 여겨진 것은 이제 존재론적 원리에 결정적으로 바탕을 두고 있음이 드러남.
...
존재론적 원리를 고수한다면 분명한 목표, 즉 이해가능성과 이해라는 목표가 충족될 수 있음.
비교동등성은 엄격하게 말해 실용적인 이유에서 요구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음.
그렇지만 장하석은 우리가 종종 정합성 그 자체를 위해,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해가능성을 위해, 정합성을 원한다고 믿음.
3. 뒤엠 식 전체론에 반대하는 최소주의
(Minimalism against Duhemian Holism)
[pp. 92-93, 186-187쪽]
르뇨에 대한 또 다른 평가는, 그의 업적을 “전체론(holism)”의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바라보는 것
[p. 93, 187-188쪽]
“중첩결정 시도”(attempted overdetermination) 또는 “중첩결정”
그것은 가설 검증의 방법으로서, 어떤 전제들의 집합에 바탕을 두고서 하나의 양을 여러 차례에 걸쳐 결정하는 것을 말함.
만일 여러 개의 결정값이 서로 일치한다면, 그것은 사용된 전제 집합의 올바름 또는 유용함을 옹호하는 것이 됨.
만일 불일치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전제 집합을 반박하는 것이 됨.
중첩결정은 물리적 정합성에 대한 검증이며, 실재하는 물리적인 양은 어느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 이상의 값을 가질 수 없다는 ‘단일값의 원리’에 바탕을 둠.
[p. 94, 189-190쪽]
르뇨의 연구는 장하석이 “최소주의적 중첩결정”(minimalist overdetermination)이라고 이름붙인 전략의 예를 잘 보여줌.
최소주의의 핵심은 관련이 없는 비-관찰적 가설을 될 수록 모두 다 없애는 것
이는 비-관찰적 가설 일반을 다 없애자는 실증주의적 열망과는 다름.
최소주의는 명료하게 검증할 수 있는 비-관찰적 가설들만의 탄탄한 체계를 세우거나 따로 골라내자는 실재론의 전략임.
4. 르뇨, 그리고 라플라스 이후의 경험주의
(Regnault and Post-Laplacian Empiricism)
[p. 96, 193쪽]
라플라스 이후의 국면에서 해야 할 두 가지
(1) 이론에서의 현상론적 분석
(2) 실험에서의 정밀 측정
[p. 99, 198-199쪽]
르뇨에게 진리를 탐색한다는 것은 “이론가들이 말하는 자명한 공리(axioms)를 정확한 데이터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했다. 199p
[pp. 99-100, 199-200쪽]
르뇨의 본래 의도는 이론을 씻어낸 관찰로 시작하고, 이어 논란의 여지가 없는 데이터에 바탕을 두어 면밀한 이론화를 이루는 데로 나아가자는 것으로 보임
그렇지만 논란의 여지가 없는 데이터를 획득하는 과업은 끝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이는 이론적인 작업은 무한히 늦춰져야 함을 의미했음.
르뇨도 자기 연구 활동의 이런 측면에 대해 어떤 좌절을 느꼈던 것으로 보임.
[p. 102, 203쪽]
이론에서 완전 독립한다는 것이 어느 시점까지는 확실히 장점이었지만, 나중에 어느 시점에선 열 이론과 연결하는 가치 있는 일을 했어야 했음.
(2022.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