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3

자고 있는데 흙냄새가 나서

자고 있는데 흙냄새가 나서, 나는 내가 죽은 줄 알았다. 온 방 안에서 흙냄새가 났다. 간밤에 황사가 몰려오는 줄도 모르고 창문을 열고 잤다가 그렇게 된 것이었다. 학부 선배의 전화를 받고서야 잠에서 깼다. 선배는 원래 주말에 산에 오르려고 했는데 황사가 너무 심하니 등산은 건너뛰고 오후에 삼겹살을 먹자고 말했다.

잊을 만 할 때마다 화성 이주 계획 같은 야심찬 기획이 언론에 등장한다. 화성에 사람이 거주하려면 몇 년이 걸린다고 하고, 그러려면 얼마나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게 계획대로 가능한지도 확실하지 않고, 가능하다고 해도 그 비용대로 될지도 의문이고, 도대체 화성에 가서 뭐 하려고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드는 것보다 이미 사람이 사는 곳에서 더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쪽이 비용이 적게 들 것이다. 인간이 화성에 정착하기 위해 얼마나 들지는 가끔씩 언론에 나오지만, 황사를 해결하기 얼마나 필요한지는 언론에서 거의 못 본 것 같다. 황사 관련 테마주가 뜬다는 뉴스는 매년 나온다.

(2016.04.24.)

2016/06/22

온 지구가 내 연애 걱정

나는 만 30세다. 30년 간 연애를 못했다.

눈도 높지 않고 취향도 까다롭지 않은데 연애를 못했다.

멀쩡한 사람도 연애하고 안 멀쩡한 사람도 연애하는데 연애를 못했다.

무생물도 아니고 자웅동체도 아닌데 연애를 못했다.


내가 30대가 되자 내 연애를 걱정하는 분들이 점점 늘어난다.


철학박사도 내 연애를 걱정한다.

사회운동가도 내 연애를 걱정한다.

정당인도 내 연애를 걱정한다.

노무사도 내 연애를 걱정한다.

군무원도 내 연애를 걱정한다.

언론인도 내 연애를 걱정한다.

엔지니어도 내 연애를 걱정한다.

농업인도 내 연애를 걱정한다.

자영업자도 내 연애를 걱정한다.

종교인도 내 연애를 걱정한다.


이러다 온 지구가 하나 되어 내 연애를 걱정하게 되나 싶다.



(2016.04.23.)


2016/06/21

토마스 쿤은 그리스어로 사색했는가?



이지성은 인문고전을 원전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전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근거가 너무 황당하다. 『생각하는 인문학』에서 이지성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인문고전을 왜 원전으로 읽어야 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원어로 사색하기 위해서다. 원어로 사색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 원전 독서는 무의미하다. [...] 예를 들면 그리스 고전을 읽고 사색할 때 ‘형상’ 대신 ‘이데아’, ‘탁월함’ 대신 ‘아레테’, ‘억견’ 대신 ‘독사’, ‘이성’ 대신 ‘누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색의 깊이와 밀도가 달라진다. 당신이 이 경험을 꼭 해봤으면 좋겠다.(318쪽)


도대체 이지성은 어떤 경험을 했길래 사색의 깊이와 밀도가 달라졌다는 것인가? ‘형상’ 대신 ‘이데아’라고 단어만 바꾸어 쓰는 정도로 사색의 깊이와 밀도가 달라질 정도라면, 고대 그리스어로 된 문장을 자유롭게 읽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플라톤 대화편을 고대 그리스어로 읽는 고대철학 전공자들에게는 신비롭고 기적적인 일이 벌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고대철학 전공자들 중에 그러한 신비로운 현상을 체험했다고 증언하는 사람은 없다.


『과학 혁명의 구조』라는 책으로 20세기 과학철학의 역사를 새롭게 쓴 토머스 쿤의 사례를 보면 인문고전 저자의 관점에서 원어로 사색하는 일은, 세계 최고의 인문학 교육을 받은 아이비리그 출신들의 두뇌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 같다. 토머스 쿤은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유럽에서 군사 관련 기술 연구를 하다가 다시 하버드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이때 보다 더 훌륭한 강의를 위해 인문고전을 원전으로 읽는 것을 넘어서 인문고전 저자의 관점에서 원어로 사색하기를 실천하다가 황홀한 깨달음을 얻었고, 후일 전 세계의 과학철학계가 혁명으로 평가하게 될 이론을 정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320쪽)


토마스 쿤이 “인문고전 저자의 관점에서 원어로 사색하기를 실천하다가 황홀한 깨달음을 얻었”다니! 이지성이 고대 그리스어 단어 몇 개를 읊조리고 나서 사색의 깊이와 밀도가 달라지든 말든 그건 이지성 개인의 경험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토마스 쿤은 어디에서 그런 체험을 했다고 증언하는가? 당연히 이지성의 책에는 그런 출처나 원문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토마스 쿤이 고대 그리스어로 된 책을 읽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간단하다. 쿤의 저작에 나오는 참고문헌을 확인하면 된다. 『과학 혁명의 구조』는 3판이든 4판이든 주석만 있지 별도로 참고문헌란이 없다. 이지성의 말이 개소리임을 입증하기 위해 굳이 『과학 혁명의 구조』의 주석을 모두 살펴볼 필요는 없다. 『코페르니쿠스 혁명』(The Copernican Revolution)의 참고문헌란에는 고대 그리스어 원전은 없고 『The Works of Aristotle Translated into English』 같은 번역서만 있다. 토마스 쿤은 영어로 번역된 원전을 읽고 영어로 사고했던 것이다.

* 참고 문헌

이지성, 『생각하는 인문학』, 차이, 2015.

(2016.04.22.)


2016/06/20

정신적 미성숙도 자랑하는 일부 사교육 업자들

   

사교육 업자가 고객인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일일 수도 있다. 10대 시절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고 나름대로 착실히 살도록 이끄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10대를 대상으로 이야기한다고 해도, 학창시절에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좋은 대학을 다니면 어떤 점이 좋은지를 꼭 그렇게 천박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일부 사교육 업자는 대학교 4학년씩이나 되어서도 초등학교 1학년 같은 소리나 하고 예쁜 여자한테 앞뒤 안 가리고 덤비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생들 앞에서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한다. 어떻게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것이 자랑이 되는가?

  

어차피 사교육 업자의 강의를 듣던 고등학생들도 어른이 될 것이고 세상물정을 알게 될 것이다. 명문대학을 다닌다고 해서 죄다 몸만 큰 아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기는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사교육 업자들이 자기가 나온 학교에 좋은 영향을 주는가? 그건 아니다. 명문대학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면 흠집을 냈지 결코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알고 지내는 서울대 사람들은 사교육 업자들이 고등학생들한테 서울대 간판 팔아먹으며 허튼 소리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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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KY 와서, 서울대 와서 제일 무서웠던 게 뭔지 알아? 나는 중고등학교 때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이 아니라 못 하는 친구들이 많았을 거 아니야? 두 그룹이 만나서 술을 먹잖아? 그러면 그 이질감이, 소름이 돋을 정도인 거야.”

    

  

“들어봐, 너희가. 어떤 학생의 꿈이야. 

‘저는요,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되어서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지금까지 역사에 없던 대한민국을 만들어보고 싶고 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리고 싶습니다.’”

    

  

“이게 몇 학년의 꿈같니? 초등학교 1학년 일기장 같지? 내가 서울대학교에서 만난 4학년 정치외교학과 선배의 꿈이야. 대학교 4학년 먹은 사람이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이게 서울대 애들이야.”

    

  

“그런데 내 지방대 친구들이랑 술을 먹잖아. 어떤지 알아? 오직 그 이야기밖에 안 해.

‘ㅆ발, 돈은 벌 수 있을까?’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먹고 산다가 비유가 아니라 ‘진짜 먹을 수 있을까?’ 이 이야기야. 

‘우리 아버지 은퇴하시면 퇴직금이 얼마인데...’ 이런 이야기만 하는 거야.”

    

  

“다시! PC방을 한다고 천한 삶이 아니야. 대통령이 된다고 위대한 삶이 아니라고. 내 말은. 인생을 바라보는 크기가 너무 다르지 않니? 그런데 그게 왜 그럴까? 서울대 나오면 장땡이라서? 미적분을 잘 한다고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뭐냐? 얘네들은 10대 때 그 인생관을 가지고 태어나는 거야.”

    

  

“이렇게 말해줄게. 이렇게 비유하면 와 닿을까? 예쁜 여자애가 있잖아. 절대 말을 못 걸어.

‘내가 이야기해봤자 쟤가 나를 만나줄까?’

소심쟁이. 그런데 서울대 왔을 때 달라진 게 뭔지 알아? 진짜 말도 안 되는 여자애들한테 ‘나랑 사귈래? 싫어? 싫음 말고.’ 이렇게 되는 거야.”

    

  

“이게 무슨 변화인 줄 알아? 서울대 애들은, 나는, 시험에 붙은 순간 이 feel을 받은 거야.

‘ㅆ발, 내가 하면 되는 구나. 하면 끝까지 갈 수 있구나.’

이걸 가지고 어른이 되니까 연애든 꿈이든 뭐든 제한, limit가 없는 거야. 알았지? 대학교 4학년생이 ‘까짓 거 대통령이 되자’라고 꿈꾸는 거야. 웃긴 게 아직도 내가 만나는 서울대 동기들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 얼마 전 만난 친구도 걔 꿈이 대통령이야.”

  

  

(2016.04.20.)

     

2016/06/19

10년 동안 기른 선인장의 죽음

     

10년 동안 기른 선인장이 죽었다.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는 모르겠다. 지난 겨울에 유독 집에서 난방을 안 했는데 그때 얼어 죽은 건지, 겨울에 선인장 화분을 옮겼는데 햇볕을 제대로 못 받아 죽은 건지 모르겠다.
  
학부 때 나는 경기도 장학관에서 지냈다. 당시 경기도 장학관은 성년의 날에 성년이 된 학생들에게 선인장을 선물했다. 성년의 날에는 장미를 준다고 하는데 왜 선인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 선인장을 경기도 장학관을 떠날 때까지 키웠고 경기도 장학관을 나와서는 집에 옮겨두고 키웠다. 군 생활을 하면서도 선인장을 길렀고(상근예비역이라 집에서 부대를 출퇴근했다), 대학원에 입학한 뒤에도 선인장을 길렀다. 손가락 길이만한 선인장이 자라 손바닥 길이만큼 자라서 분갈이도 했다.
  
꽃도 안 피고 향도 안 나는 선인장이라, 나는 선인장을 보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물 준 지 한 달 정도 되면 줄기가 약간 가늘어지고 다시 물을 주면 줄기가 약간 통통해지는 것 정도는 눈에 보였다. 그런 것을 보면서 별다른 느낌 없이, 그냥 선인장이 살아있나 보다, 조금씩 자라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막상 선인장이 죽으니 마음이 안 좋다. 가시만 뾰족뾰족 난 멋대가리 없는 선인장인데 그 선인장이 죽으니 마음이 안 좋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올 무렵에 선인장 색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은 알았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때 조치를 취했으면 선인장이 죽지 않았을까. 선인장이 죽어 시커멓게 색이 변했는데도 화분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2016.04.19.)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