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4

아이들의 말하기



교회에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집사님이 네 살인 손녀에게 사별한 남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 집사님: “이 사람 누구인지 알아?”

- 손녀: “누구야?”

- 집사님: “할머니 신랑이야.”

- 손녀: “아, 이상하다.”

- 집사님: “뭐가 이상해?”

- 손녀: “엄마 신랑은 매일 집에 오는데 할머니 신랑은 왜 집에 안 와?”


집사님은 한참 웃고 손녀에게 “할머니 신랑은 천국에서 편히 쉬고 있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모님은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 일을 하신다. 엄마가 아이의 정서적인 측면에 섬세하게 신경 쓴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표현력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엄마가 신경을 많이 쓴 어떤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아이: “선생님, 하늘에서 눈이 내려와요.”

- 사모님: “어, 하늘에서 눈이 오네?”

- 아이: “선생님, 눈이 어디에서 내려오는지 아세요?”

- 사모님: “어디에서 내려오는데?”

- 아이: “우주에서요.”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참 신기하다. 어떤 아이도 어른처럼 말하지 않는다.

(2016.01.24.)


2016/03/21

인지과학캠프 뒤풀이 자리에서 들은 선생님들의 과거



<인지과학캠프>를 운영한 업체에서 캠프에 참여한 강사들한테 이메일을 보냈다. <인지과학캠프> 끝나고 며칠 뒤 협회에서 하는 세미나가 있으니 관심 있으면 가서 보고 관심 없어도 저녁만 먹고 가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린다. 그런데 저녁 먹는 장소가 고기집이다. 낯을 많이 가리지만 고기를 먹고 싶다. 고기를 먹고 싶지만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데 오늘 따라 연구실에 사람이 없다. 학생식당에서 혼자 밥 먹으나 고기집에서 혼자 밥 먹으나 그게 그거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고기집에 혼자 가는 게 별 일 아닌 것처럼 보였다.


강사 중에 원래 아는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둘 다 멀리 살아서 고기집에 혼자 갔다. 캠프 강사가 열네 명인데 고기집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상관없다. 나는 밥 먹고 가면 되니까. 다시 안 볼 사람이면 다시 안 볼 거니까 내가 눈치 볼 필요가 없고 어쩌다 계속 볼 사람이면 계속 볼 거니까 오늘 처음 보면 된다. 그러니 나는 그냥 먹고 싶은 거 먹으면 된다.


고기집에 갔다. 내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자리에 앉으려는데 어떤 아저씨가 내 정체를 물어봤다. “캠프에서 강사했습니다.” 이 한 마디에 아저씨들이 갑자기 반가운 척을 하기 시작했다. “아-아-, 캠프 잘 됐어요? 아-아- 수고하셨네. 나 그거 한다고 이야기만 듣고 어떻게 됐는지 몰랐는데, 아-아- 반가워요.”


철학 전공이라고 하니까 유형화된 질문이 들어왔다. 내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에 철학에 관한 답변을 하려니 민망했지만, 어쨌거나 이 사람들은 아예 모르니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뻔뻔하게 이야기했다. 고기를 한참 먹고 있는데, 그제서야 업체 직원이 왔다.


저녁 먹는 자리에서 어떤 아저씨는 나한테 지도교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ㅈㅇㄹ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자기는 서양사학과 89학번이라면서 철학과 이야기를 했다. 그 분은 학부를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ㄱ 선생님이 만든 인지과학협동과정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 수료를 했다고 한다.


“아, ㅈㅇㄹ 선생님! 내가 그분 수업 듣다가 포기했잖아. 왜 그런 줄 알아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내용이 뭔지를 떠나서 도저히 무슨 말씀인지 아예 발음을 못 알아듣겠는 거야! 아하하하하!”


그랬다. 내 지도교수님의 발음은 20년보다 훨씬 좋아진 것이었다. 정말 다행이다. 그 아저씨는 철학과의 다른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원래 철학과 사람들은 한 번 꽂히면 완전히 푹 빠져요. 그때(1990년대 초반)는 철학과에 바둑이 유행이었어요. 시간만 나면 죄다 바둑을 두는 거야. 그때 학과장이 ㄱㄴㄷ 선생님인데 과 사무실에 갔더니 사람들이 죄다 바둑을 두고 있는 걸 본 거예요. 열이 확 나잖아. 그래서 그 선생님이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바둑판을 운동장에 내다 던졌어요. 아하하하하하!”



(2016.01.21.)


2016/03/20

고등학생들도 아는 <클레멘타인>



어느 외고에서 한 인지과학 캠프에서 강사를 했다. 내가 맡은 건 인지과학 서론-방법론과 철학이었다. 인지과학 방법론 내용 중에는 인간이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할 때 직관적으로 어림잡아 추정하는 방법을 쓰는데 그 방법이 왜 믿을만하지 못한지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다.





우선 사람 이름 스물네 개가 적힌 표를 화면에 띄우고 10초 동안 외우도록 한다. 10초 후 화면에서 표를 치운 후 학생들에게 묻는다. “남자 이름이 많았나요, 여자 이름이 많았나요?” 대부분은 여자 이름이 많았다고 답한다. 실제로는 남자 이름이 열네 개, 여자 이름이 열한 개였다. 실제와 달리 여자 이름이 많다고 응답한 이유는 남자 이름은 낯선 정보이고 여자 이름이 익숙한 정보(유명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름을 짚으면서 누구인지 설명했다.

“자, 맨 처음에 ‘구태훈’ 있죠? 누구죠? (침묵) 아무도 모르죠? 이 분은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예요.”

사실, 그 표에 내가 이름을 넣은 건 아니라서 원작자가 생각한 ‘구태훈’이 구태훈 교수인지 다른 사람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명단에 나온 남자가 여자보다 안 유명하면 되고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면 된다. 나는 내가 아는 대로 말했다.

“여기 ‘강소라’ 있고 ‘김연아’ 있죠. 이 둘은 다 알 거고 옆에 ‘김진만’ 누구죠? MBC PD죠. 그 옆에 ‘김학철’은요? KBS 사극에 자주 나오는 아저씨 있어요.”

내가 명단에 나온 남자를 (내 마음대로) 설명하자 아이들이 조금씩 웃었다. ‘신민아’, ‘손연재’를 지나서 나는 ‘이동준’을 가리켰다.

“‘이동준’ 누구죠? 몰라요? 불멸의 역작 <클레멘타인>의 주연배우이자 제작자죠.”

대부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누구지?’ 하는 표정을 짓는데 몇몇 학생들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분간이 안 가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주변 친구들한테 말을 하기 시작했다. “<클레멘타인> 몰라? 네이버 평점 1위, ‘이 영화를 보고 암이 나았습니다’ 몰라? ‘이 영화를 보고 암이 나았어요. 암세포가 암이 걸려 암이 나았습니다’ 몰라?”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모두 웃기 시작했다. 모두들 배를 잡으며 “아, 클레멘타인! 클레멘타인!”을 연호했고 일부는 “아빠 일어나!”를 외쳤다.





다른 강사들 이야기를 들으니, 심신 문제 다룰 때 도입부에 영화 <매트릭스> 이야기를 하는데 학생들 중 <매트릭스>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 1999년에 태어난 학생들은 1999년에 개봉한 <매트릭스>를 몰랐다. 그런데 <매트릭스>를 모르는 학생들도 2004년에 나온 <클레멘타인>은 알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교실을 나오려는데 한 학생이 내 앞에 왔다. “선생님은 <클레멘타인>을 어떻게 아세요?” 나는 대답했다. “대학교 1학년 때 <클레멘타인>이 나왔죠. 내 컴퓨터 하드에는 지금도 <클레멘타인> 파일이 있어요.”

* 뱀발(1): 내가 가수를 잘 몰라서 강의 때 대충 넘어갔는데, 신재평과 이장원은 <페퍼톤스>의 멤버이고 구태훈과 김진만은 <자우림>의 멤버라고 한다. 이동준은 이적의 본명이라고 한다. 강의 자료를 만든 사람이 표에 이동준을 넣을 때 <클레멘타인>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 뱀발(2): <클레멘타인>을 재개봉하면 극장에서 볼 생각이다.

(201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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