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13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 - “공부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죽어서 저승에 갔다. 저승사자는 그 사람에게 지옥을 보여주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팔 길이보다 긴 젓가락을 가지고 밥을 먹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쌀 한 톨 먹지 못해서 굶주림에 시달렸다. 모두 자기 젓가락을 가지고 자기 입에 밥을 넣으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저승사자는 그 사람에게 지옥을 보여준 후 천국으로 데려갔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지옥에 있는 사람들과 달리, 모두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들은 젓가락을 내던지고 손으로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야성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를 보다가 지은 것이다. 최진석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자율적 주체는 무엇을 배우더라도 그것을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긴장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날 때 짐승으로 태어났듯이 죽을 때도 짐승의 눈빛으로 죽으리라, 죽기 전까지 야수의 눈빛을 한순간도 잃지 않으리라 하는 느낌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 링크: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현대철학자, 노자> 9강_#6

( www.youtube.com/watch?v=ZgwgomHYdrk )

(2015.01.21.)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배운 것이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가 인기라고 하는데, 내가 건넌 강은 레테의 강인가?
  
  
  
  

* 레테의 강: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강으로, 망자가 하데스가 지배하는 명계로 가면서 건너야 하는 강 중 하나이다. 망자는 명계로 가면서 레테의 강물을 한 모금씩 마시게 되는데, 강물을 마신 망자는 과거의 모든 기억이 지워진다. 망각의 강이라고 불린다. 시비가 붙었을 때 요단강과 혼동하여 “너 이 새끼 레테의 강 건너고 싶냐?”라고 하면 주위의 비웃음과 동반하여 전투력이 낮아질 수도 있다.

(2015.01.13.)

2015/04/12

주인의 애정이 애완동물 서열에 미치는 영향

  
  

동물의 세계에서 물리력이 강한 놈이 권력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고양이들의 세계에서도 그러한 것이 당연한 것 같고, 내가 집에서 고양이들을 몇 년 간 관찰한 바로도 그러하다. 그런데 최근 우리집 고양이들의 관계가 달라졌다.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하는 동생에게서 새끼 고양이를 받아온 이후의 일이다. 군부대의 잔반을 먹던 고양이가 낳은 새끼 고양이였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우리집에는 고양이들이 살았다. 할머니께 밥을 얻어먹은 누런 고양이가 눌러앉아 새끼를 낳고 약한 놈이 떠나며 집에 사는 고양이들의 개체수가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고양이들은 어머니의 미움을 받았지만 그래도 밥을 얻어먹으면서 집에 붙어 있었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고양이를 안 좋아했고 고양이털 알레르기까지 있다. 동생은 그런 어머니에게 강원도에 면회하러 와서 새끼 고양이를 받아가라고 했다. 어머니는, 집에 있는 고양이도 지겨운데 강원도까지 가서 고양이를 받아와야 하느냐며 불만이 가득했다. 그런 어머니가 동생 면회 가서 새끼 고양이를 받아와 며칠이나 집 안에서 키운 것은, 그 고양이가 예뻤기 때문이다. 우리집에 몇 년 전부터 산 고양이들은 죄다 누런 빛깔인데, 동생이 보낸 고양이는 눈처럼 하얀 색이었다. 아는 사람한테 고양이 사진을 찍어 보내니 페르시안 뭐에 뭐가 섞인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는 고양이가 원래 있던 고양이들과 달리 예쁘다며 “화천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화천에서 왔다고 붙인 이름이다. 우리집에 산 고양이 중 이름이 붙은 건 화천이가 처음이다. 그 이전부터 살던 고양이들은 죄다 ‘이놈’, ‘저놈’, ‘누런놈’, ‘검은놈’, ‘못 생긴놈’이라고 불리었다. 못 생긴놈은 못 생겼다는 이유로 어머니께 미움을 받았다. 지금도 다른 고양이는 이름이 없다.

동생이 보낸 고양이는 당시는 젖도 완전히 떼지 않은 상태였다. 집 안에서 며칠 간 우유를 먹이며 키웠다. 고양이를 문 밖에 내놓았을 때 어머니는 원래 있던 고양이들이 새끼 고양이한테 해코지를 할까봐 걱정하셨다. 그래서 수시로 현관문 앞에 나가 새끼 고양이를 지켜보셨고 원래부터 살던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한테 접근하려고 하면 “야, 이 새끼들아, 화천이 건들면 건강원에 다 팔아버릴 줄 알아 이 주책없는 것들아!”라고 소리 치셨다. 평소에도 어머니를 무서워하던 고양이들은 어머니만 보면 금방 어디론가 달아났다. 어머니의 비호 아래 새끼 고양이는 조금씩 자랐고 언젠가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앞발로 어른 고양이들의 얼굴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새끼 고양이의 앞발에 맞은 어른 고양이들은 그냥 슬금슬금 새끼 고양이를 피했다.

화천이는 먹성이 좋았다. 아침에 밥을 먹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밥을 달라고 현관문 앞에서 울었다. 틈틈이 그렇게 울 때마다 어머니는 사료를 주셨고 그렇게 다른 고양이의 식사 시간도 늘어났다. 원래 어머니는 화천이 밥만 주고 화천이 밥그릇에 다른 고양이가 접근하면 소리를 쳤는데, 결국 다른 고양이에게도 밥을 약간씩 주었다. 아침 한 번이었던 고양이들의 식사시간은 화천이가 들어온 후 하루 두세 번으로 들어났다.

화천이가 들어오기 전에는, 고양이들이 현관문 앞에서 배고프다고 울면 어머니는 문을 열고 나와 고양이들한테 신발을 던지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미친 고양이 새끼들아, 사람도 밥을 안 먹었는데 너네가 왜 밥을 먹니? 이 주책없는 것들아!”라고 하셨다. 그래서 집 안에서 아침에 내 목소리나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면 고양이들이 울고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면 고양이들이 울음을 멈추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화천이만 울고 다른 고양이들은 울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 집에 갔을 때, 어머니는 신기한 것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셨다. 어머지는 화천이가 사람 말을 알아듣고 심지어 악수도 한다고 주장했다. 마당에서 어머니는 “화천아 화천아” 하고 화천이를 불렀다. 화천이는 물끄러미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화천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한 손을 내밀며 “화천이 악수~”라고 하자, 화천이는 어머니를 멀건이 쳐다만 보았다. 여러 번 악수를 제안했지만 화천이는 응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화천이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렇다”면서 바닥을 디딘 화천이 앞발을 손으로 붙잡고 “화천이 악수~”라고 하면서 강제로 악수를 했다.

그 다음날 어머니는 나한테 진짜 화천이가 악수하는 걸 보여주겠다고 하시며 또 화천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악수를 청하셨다. 역시나 화천이는 멀건이 보기만 했다. 어제처럼 강제로 악수를 하자 화천이는 어머니 손에서 앞발을 쏙 빼서는 어디론가 갔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유, 화천이가 일주일 내내 기분이 안 좋네”라고 하시며 웃으셨다.

어느덧 고양이 세계의 주도권은 박힌 돌(누런 고양이)에서 굴러온 돌(화천이)로 넘어갔다. 이미 화천이가 청소년 고양이일 때부터 그런 변화가 나타났다. 이전에는 덩치 크고 힘 센 놈이 권력을 잡았는데, 화천이가 오고부터는 화천이가 크게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고도 권력을 잡게 되었다.

이제 화천이는 어른 고양이가 되었고 확고부동한 대장 고양이가 되었다. 화천이는 다른 고양이들을 끌고 다니며, 어디 갈 때도 항상 화천이가 앞장서고 화천이 밥그릇에 있는 밥은 어떤 고양이도 건들지 않는다. 어쩌다 밥을 세 그릇에 나누어주지 않고 한 그릇에만 주면 화천이는 당당하게 밥을 먹고 다른 두 마리는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

  
   
  
  

(2015.01.11.)

   

한국에 스티브 잡스가 나와 봤자 소용없다

아산서원과 소하서원 등 몇몇 서원에서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는 고전 교육과정을 진행한다고 한다. 서원에서 어떻게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일이다. 그런데 기사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가 주축이 돼 내년 3월 문을 여는 건명원은 내일을 준비하면서 뛰어노는 울타리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학교나 스펙을 보지 않고 면접만으로 선발한다.

배 교수는 “모두가 스티브 잡스를 원하지만 우리나라 구조상 어렵다”며 “재능은 있으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을 한 명이라도 발견하면 9명의 교수가 1년 동안 가르쳐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대학에서 다양한 것을 가르치지 않아서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가 나오지 않는 것인가?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가 나오려면 자신의 전공 이외의 여러 분야의 교양이나 고전에 관심을 가지게 해야 하고 이것이 창의성이나 통찰력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 한국에서 스티브 잡스를 떠받드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인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맞나?

일본 소니 공장을 방문한 스티브 잡스는 소니 직원들이 단체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소니 창업주가 “직원들이 단체복을 입으면 직원들이 화합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하자 스티브 잡스는 소니 단체복을 제작한 디자이너에게 애플 단체복을 주문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애플 직원들에게 단체복을 보여주자 직원들은 야유를 보냈고, 결국 스티브 잡스는 검정색 목티 몇백 벌을 받아와 죽을 때까지 그 옷을 입었다.

한국에서 재벌 회장이 스티브 잡스 같은 결정을 내린다면 누가 회장에게 야유를 보낼 것인가? 이건희가 검정색 목티를 좋아했다면 삼성맨들은 모두 검정색 목티를 입고 다녔을 것이고, 삼성 본사에서 모두가 검정색 목티를 입고 다녀서 그 근처는 마치 미래 도시처럼 보였을 것이다. 검정색 목티가 삼성맨의 상징이 되면서, 한국 사회에 검정색 목티 열풍이 불었을지도 모르겠다.

삼성 신입사원은 이건희 자서전을 읽고 카드섹션을 하며, 현대 신입사원은 해병대 캠프를 간다고 한다. 이는 조직에 순응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조직에서는 직원이 상사의 잘못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 어렵다. 스티브 잡스는 독선적이고 지랄 맞기로 유명하지만 애플은 직원들에게 그런 짓을 시키지 않았다.

어떤 천재라도 항상 올바른 판단만 할 수는 없다. 의사결정권자가 잘못된 판단을 할 때 그를 돕는 사람은 그에게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직원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뿐 아니라 의사결정권자의 올바른 판단을 이끄는 것도 조직의 역량이다. 애플 직원들은 스티브 잡스의 소소한 잘못된 결정(검정색 단체복)을 막을 수 있었지만, 삼성경제연구소는 이건희의 중대한 잘못된 결정(자동차 산업)도 막지 못했다. 이건희는 자동차를 매우 좋아했고 결국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어 4조 원을 날렸다.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 태어나면 그 재능을 얼마나 쓸 수 있을까? 어쩌면 한국의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스티브 잡스들이 조직의 하층부에서 별 볼일 없이 지내거나, 조직의 상층부에서 이상한 결정이나 하며 조직의 경쟁력을 깎아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키우겠다고 하기 전에 이 점부터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링크: [경향신문] 다시 서원이 뜬다

( 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1411282143025 )

(2015.01.06.)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