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04

중앙대에 철학과가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후 중앙대를 명문대로 만들겠다면서 여러 학과를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을 했다. 이에 항의했던 학생이 무기정학을 당했고, 이 학생이 학생회 선거에 나가자 학교는 선거에 개입을 했다. 결국 이 학생은 자퇴서를 냈다. 대학에는 연구 기능과 교육 기능이 있는데, 두산 재단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목 하에 중앙대의 연구기능을 일정 부분 포기했다.
  
내가 이번 학기에 듣는 <과학적 추론의 이해> 수업에 과학사-과학철학 협동과정 학생들 외에도 경제학과와 심리학과의 석사과정생도 들어온다. 이들이 들어오는 이유는 모델링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연구에서 모델링이 잘 안 되어서 이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사회과학에서 모델링에 대한 이론적인 기반을 연구하기 위해 이 수업을 듣는다.
  
어떤 학문이든지 연구 수준이 높아지면 메타적인 연구를 할 필요가 생긴다. 철학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메타적인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사카린 섭취가 방광암 발생의 원인이 된다는 가설이 있다고 하자. 생물학이나 의학 같은 분과학문에서는 둘 사이에 정말 인과관계가 있는지 실험설계를 하고 임의표집을 하고 등등의 과정을 거쳐 결과를 내놓을 것이다. 이 때 메타적인 연구라는 것은 이러한 연구에서 ‘인과적 추론’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묻는 것이다. 그래서 물리학에도 물리학의 철학이 있고, 생물학에도 생물학의 철학이 있고, 경제학에도 경제학의 철학이 있다.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의 연구가 물리학의 주제면서 동시에 철학과 관련된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중앙대에서 철학과를 없앤다는 말은, 이러한 분과학문들의 메타적인 연구를 일정 부분 포기함을 의미한다. 물론 굳이 그런 연구를 안 해도 논문 써서 실적 올리는 데에 큰 지장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앙대에서 자신이 하는 연구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사람은 그러한 연구를 할 때 다른 학교 학생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연구기능을 포기한 명문대는 없다. 연구기능을 포기하고 학부생들의 취업률로만 명문대가 될 수 있을까. 두산 재단이 바라는 중앙대가 그러한 학교인지 모르겠다. 두산 재단은 대학교와 직업학교의 차이를 모르는 모양이다.
  
  
(2014.05.08.)
  

천재는 불행한가

  
내가 이번 학기에 수강하거나 청강하는 수업이 다섯인데, 데이비드 루이스는 <한국철학사>를 제외한 내가 듣는 모든 수업에서 언급된다. <과학철학통론1>에서도 나오고, <심리철학연습>에서도 나오고, <물리학의 철학>에서도 나오고, 학부 <언어철학>에서도 나온다. 크립키는 말할 것도 없다.
  
천재를 시샘하는 동료 대학원생은 “천재들은 불행할 것”이라고 하며 위안을 삼는다. 실제로 몇몇 천재들은 불행했다. 루이스는 당뇨로 고생하다 죽었고, 크립키는 부모와 대화가 안 된다면서 의절했고, 소크라테스는 대머리였다.(불쌍한 소크라테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천재도 아니면서 천재들이 겪는 불행을 똑같이 겪는다. 천재 아닌 당뇨 환자, 천재도 아니면서 부모와 의절한 사람, 그냥 대머리도 많다. 천재들은 웬만큼 불행해도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 아참, 그래도 난 천재지?” 하면서 위안을 받을 수 있는데, 천재가 아닌 사람이 불행하면 그냥 불행할 뿐이다. 천재라고 일반인보다 딱히 더 불행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천재의 불행에 주목하는 것뿐이다.
  
  
(2013.06.05.)
  

한국철학사 - 서경덕, 이황, 이이, 조식 편

  
<한국철학사> 수업에 따르면, 조선 시대 학파는 크게 넷으로 나뉜다. 서경덕, 이이, 이황, 조식인데 각각 개성이 독특하다.
  
서경덕은 인생에 별 굴곡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냥 개성에서 태어나서 책 읽고 공부하다 죽는다. 저작도 별로 없다. 황진이를 비롯한 여러 기생들과 친했다.
  
이이는 실제로는 위인전기에 나올 만한 위인이 못 된다. 천재인 건 맞는 것 같은데 그 머리를 공부 쪽으로 안 쓰고 권력 쪽으로 쓴다. 붕당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다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방조하거나 조장했다고 보는 게 맞다. 그의 인생에서 대부분의 기간을 (관료가 아닌) 정치가로 보냈고 학문을 한 기간은 비교적 짧다. 그렇지만 그의 학설은 서인의 이론적인 기반이 된다.
  
이황은 기록상으로 보면 똑똑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평생 꾸준히 공부해서 60대에 자기 입장을 가진 학자가 된다. 그가 이룬 학문적인 업적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 것이며, 조선 후기가 되면 상대 당파에서도 이황의 도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주희에서 이황까지 이어지고 이황에서 이이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물론 이건 다 뻥이다.) 이황은 어떻게 공부했느냐. 그는 열심히 옮겨 적고 요약했다. 자기 관리의 달인이며, 특히 건강 관리와 재산 관리 부문에서 돋보인다.
  
조식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식은 성인 집중력 장애가 아니었을까 싶다. 젊어서 왕한테 상소를 과격하게 써서 죽을 뻔했는데 대신들이 만류해서 겨우 목숨을 건진다. 상소 내용이 이런 식이다. “나라가 이미 망했다. 똑바로 헤리. 네가 왕인 건 맞지만 너네 엄마는 그냥 과부인데 왜 설치냐. 너도 따지고 보면 그냥 고아잖아.” 이거 실제 상소에 있는 내용이다.
  
조식은 늙어서도 이 버릇을 못 고친다. 옆 동네 과부가 음녀라는 소문을 듣고는 사실 확인도 안 하고 제자들을 데리고 가서는 과부의 집을 허물어버린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소문이 과부의 오빠가 과부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퍼뜨린 헛소문이었다. 하마터면 귀향 갈 뻔 했는데 가까스로 귀향을 면한다.
  
조식에 대한 ㅈ선생님의 평은 이렇다: “조식의 글을 보면 남은 게 악 밖에 없는 사람이 쓴 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조식의 글은 논의가 꼼꼼하지 않다. 어쨌든 16세기 영남에서 이황과 함께 양대 축을 이룬다.
  
이 네 명 중 청나라가 편찬한 <사고전서>에 들어간 글은 서경덕의 것뿐이다. 서경덕이 글을 많이 남기지도 않았는데 왜 그의 글만 <사고전서>에 실렸을까. 조선에서 거의 유일하게 독자적인 연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물론 소옹과 비슷하다는 단서가 붙는다)
  
다른 세 사람과 달리, 서경덕은 개념 자체를 붙들고 혼자서 씨름을 했다. 죽을 때 서경덕은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내가 스승이 없어서 젊어서 너무 많이 고생했다. 너희들은 절대로 그러지 마라.”
  
  
(2013.05.21.)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올해 서울대 봄축제 제목은 <지겹지 아니한가 청춘노릇>이다. 축제 행사 중에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면서 만보기를 차고 천 번 흔드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축제 홍보하는 유인물에는 김난도 교수와 혜민 스님을 대놓고 조롱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비꼬는 내용이 있다. 혜민 스님은 멀리 있지만, 김난도 교수는 서울대에 다닌다. 김난도 교수는 그런 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참고로 어제는 스승의 날.
  
  
(2013.05.16.)
  

이빨이 암탉에게 그러하듯 둥지는 무엇에게 그러한가?


“이빨이 암탉에게 그러하듯 둥지는 무엇에게 그러한가?”
  
뭔 개소리인가 싶겠지만,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 따르면 이것은 슈퍼 아이큐 테스트에 나오는 문제라고 한다. 일반적인 지능검사는 150 만점이라 그 이상의 지능을 측정하지 못한다. 슈퍼 아이큐 테스트는 일반 지능검사에서 만점을 받는 사람들의 지능을 측정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얼마 전 겪은 일 때문에 이것이 생각났다.
  
동료 대학원생에게 나는 호두를 심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호두가 뿌리식물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진지하게 내 지식을 의심했다. 나는 호두가 나무에서 열린다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호두나무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해서 동료 대학원생에게 그 지식의 출처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동료 대학원생은 엉뚱한 답변을 했다. “호두와 땅콩은 맛이 비슷하니 비슷한 식물 아닌가요?” 추론에 의한 지식이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치면, 뱀고기 맛은 닭고기와 비슷하다고 하니 뱀은 조류이어야 한다. 그런데 호두맛은 땅콩맛보다 잣맛에 더 비슷하지 않은가? 동료 대학원생은 미각이 비교적 둔한 사람인 것 같다.
  
그는 왜 그런 식으로 생각했을까. 그의 지능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실제로 그는 고등학교에서 한 지능검사애서 최고 상위등급이 나왔다고 한다. 슈퍼 아이큐 테스트의 질문이 정말 신빙성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뿌리가 땅콩에게 그러한 것처럼 호두에게도 그러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던 것이다.
  
지능이 높은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다른 패턴 찾는 방식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양적 차이가 아니라 질적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호두는 나무에서 자란다.
  
  
(2013.03.06.)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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