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04

공부는 내 인생에 대한 예의다

   
서점에서 갔다. 『공부는 내 인생에 대한 예의다』라고 하는, 제목부터 재수 없는 책이 있었다. 목차를 살펴보았다. 목차는 제목보다 더 재수 없었다. 몇 개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전미(全美) 최고의 고교생이라고?
      나의 경쟁자는 오로지 ‘어제의 나’ 뿐이다
      “그때 너는 분명히 네 한계를 뛰어넘었어!”
      모든 처음은 다 두렵다, 하지만 처음이 없으면 지금도 없다
      일리노이 주를 주름잡은 ‘스타 논객’의 탄생
      배움에 있어 우린 무엇도 두렵지 않다, 예일대 정신
      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소설’이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을 것 같기는 한데, 이렇게 책까지 쓰는 것이 적절한 일인가 모르겠다. 하버드만 해도 1년에 1,600명 정도 입학한다고 하는데 그런 학생들이 죄다 책을 쓴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크립키나 퍼트남, 폰 노이만 같은 사람도 20대 초반에 그런 책을 안 썼는데, 대학을 잘 갔다고 자랑하는 책을 쓰는 것이 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책을 쓰는 학생은 그렇다고 치자. 그 학생은 태어나서 최고의 성취를 얻었고, 자기가 속한 집단(고등학교)에서 어느 누구도 자기와 같은 성취를 얻은 사람도 없고, 대학에 들어가서 자기만큼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휩싸여 좌절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얼마나 기쁘겠는가. 하지만 부모는 미성년자인 자기 자식이 그런 책을 쓰려는 것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 얄팍한 책을 써서 돈을 챙기려는 출판사가 접근해도 부모가 막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런데 제일 비판받아야 하는 곳은 따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이다. 그런 책표지에는 예외 없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추천도서>라는 딱지가 붙고, 그 책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뭐 하는 곳이길래 그런 책을 청소년들한테 추천하는가.
  
  
(2013.01.22.)
   

은퇴

  
대학원생들을 보면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선생님들도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철학과에서 제일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은퇴한 ㅎ선생님이다. 얼굴에 ‘나 행복함’, 또는 ‘행복함이라는 속성을 예화하고 있음’이라고 써있다. 그 다음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정년이 얼마 안 남은 선생님이다. 정년이 꽤 많이 남은 선생님들은 별로 안 행복해 보인다.
  
파이어아벤트가 어렸을 때 주위 어른들이 “너는 커서 뭐가 될 거니?”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은퇴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하는 사람들은 바쁘고 행복해보이지 않는데 은퇴한 사람들은 여유롭고 행복해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파어이아벤트가 네댓 살 때 한 말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행복해지려면 은퇴해야 한다. 은퇴하려면 데뷔해야 한다. 그러니 빨리 석학이 되자.
  
  
* 참고: 『킬링 타임: 파울 파이어아벤트의 철학적 자서전』, 파울 파이어아벤트 지음, 정병훈 옮김, 한겨레출판사, 2009년 04월, 44쪽.
  
  
(2012.12.14.)
  

   
어머니께서 작년 가을에 얼려놓은 감을 드시다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옛날이야기 보면 병든 어머니가 한겨울에 딸기가 먹고 싶다고 아들한테 말하잖냐. 그거 노인네 치매 증상이 아니냐? 치매 걸린 노인네들이 꼭 뭐 먹고 싶다고 하잖냐. 무슨 한겨울에 딸기를 먹고 싶다고 아들을 괴롭히냐? 제정신이 아닌 거지.”
  
원래 그 이야기는 자식의 효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는데.
  
  
(2012.08.27.)
    

지금의 한국 정부가 100년 전 유럽 국가들의 정부보다 나을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니, ‘전쟁 나면 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재난과 전쟁은 다를 수도 있다. 전쟁은 예상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도 있을 것이고 그에 따른 매뉴얼도 있을 것이다. 군대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타 행정부처는 어떨까. 매뉴얼대로 행동할 수 있을까. 매뉴얼이 있다는 것과 매뉴얼대로 행동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매뉴얼대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매뉴얼을 해석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할까. 매뉴얼을 해석할 능력이 있다는 것과 별개로, 매뉴얼대로 행동할 능력이 있을까.

얼마 전 본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영국 정부는 2차 대전이 터지기 2년 전인 1937년에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에는 영국이 독일과 전쟁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전쟁이 발발할 경우 런던이 폭격당할 것이며, 이 경우 사상자가 얼마일지, 런던 시민들을 어디로 대피시킬지에 대한 계획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인상적인 것은, 폭격 이후 정신질환에 시달릴 사람들이 얼마나 될 지도 계산해서 그에 맞게 런던 인근에 정신병원을 지었다는 점이다.(실제로는 영국 정부의 예상보다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이 적어서, 정신병원을 군사 목적으로 활용한다.)

과연 지금의 한국 정부가 100년 전 유럽 국가들의 정부보다 나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2014.04.23)

학교에서 대자보판을 없애면

   
학교에서 미관상의 이유로 화장실을 없앤다고 하자. 학생들이 항의하니까 학교에서 “화장실 철거 문제는 학생회와 협의할 사안이 아니고 본교 퇴계인문관의 관리책임을 지고 있는 학생지원팀과 문과대 행정실장의 소관이다”라고 말한다고 하자. 학교와 더 이상 대화가 안 될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학교가 화장실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만들면 된다. 금잔디에서 똥 싸놓는다던지, 틈틈이 오줌을 페트병에 모았다가 밤에 몰래 600주년 기념관 1층 대리석에 흘려놓는다든지 등등. 꾸준히 학교 곳곳에 똥을 설치하면 미관이고 뭐고 간에 화장실을 다시 설치하게 되어 있다.
  
대자보를 똥에 비유해서 좀 그렇기는 하지만, 대자보판의 해법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대자보판을 다시 만들 때까지 학교 여기저기에 게시물을 붙이는 것이다. 큰 종이도 필요 없다. 종이가 크면 만들 때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늘어난다. A4나 A3 크기의 인쇄물을 천 명 정도 돌아가면서 심심할 때마다 몰래 붙이면 된다.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게릴라식으로 돌아가면서 벽에 몰래 붙이고 몇 명 잡혀도 계속 붙이면 어떻게 될까?
  
퇴계인문관 외벽에 대자보판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학교가 생겼을 때부터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학교가 대자보판을 설치한 이유는 학생들의 대자보 부착을 장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 측의 필요 때문이었을 텐데, 학교가 그 이유를 잊어버린 것 같다. 그렇다면 그러한 필요성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2014.02.12.)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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