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5

[과학철학] Morrison (2008), “Models as Representational Structures” 요약 정리 (미완성)

     

[ Margaret Morrison (2008), Ch 4 “Models as Representational Structures”, in S. Hartmann et al. (eds.)(2008), Nancy Cartwright’s Philosophy of Science (Routledge), pp. 67-88. ]
 
 
  1. Cartwright on How Models Represent
  2. On the Priority of Representative Models
  3. The Evolution of an Idea
  4. From Representative Model to Quantative Theory
     : Constructing the BCS Ground State
  5. Philosophical Conclusions



p.67 #1
- a model that represents a physical system and its role as a mediator
- There are many different way that models can function as a mediator.

p.67 #3
- 모리스가 카트라이트에 반대하는 점
the function of interpretive models가 아니라 representative models의 중요한 역할이 빠져 있다는 점


  1. Cartwright on How Models Represent
  2. On the Priority of Representative Models
  3. The Evolution of an Idea
  4. From Representative Model to Quantative Theory
     : Constructing the BCS Ground State
  5. Philosophical Conclusions


  Reply to Margaret Morrison

p. 89


(2021.11.28.)
    

2018/07/24

학술대회를 자식 대학 입시에 이용하려 한 학부모



어제 오후, 어떤 아주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자기 아들이 고3인데 과학철학에 매우 관심이 많다면서 학교신문에 기사를 쓰고자 하니 올해 여름에 열릴 학술대회에 관련된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다. 딱 봐도 내신용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임을 알 수 있었으나 어머니 마음이 오죽하겠나 싶어서, 나는 해당 자료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오늘 보내주면 좋겠다고 했다. 자료가 필요하면 미리 요청을 할 것이지 왜 당일에 보내달라는 것인가? 약간 짜증이 났지만 알았다고 하고 곧바로 자료를 보내주었다.

오늘 아침 7시 47분, 그 아주머니에게서 또 문자가 왔다.

“어제 저녁에 저희 아들이 확인하여 신문만들기란에 인터뷰란에 소식으로 편집잡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문자확인후 전화주시길 바랍니다. 문의가 있어서요. 보내주신 내용에 언제 처음 시작되었는지가 알 수 없다네요.”

그 아주머니는 어제도 학술대회가 몇 회째냐고 물었다. 학교신문 기사에 학술대회가 몇 회인지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학회 공문에도 학술대회 개최년도만 나오지 회차는 나오지 않고 학회 선생님들도 회차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회 단독으로 학술대회를 하기도 하고 다른 학회와 연합 학술대회도 하기 때문에 몇 회인지 구분하기 애매해서 아예 학술대회 회차 자체를 별도로 표시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주머니는 자기 아이가 학교 신문에 기사를 써야 하니 이번 학술대회가 몇 회째인지 알아봐달라는 것이다. 대학신문도 아무도 안 보는데 그까짓 고등학교에서 애들끼리 만드는 신문에 이번 학술대회가 몇 회째인지 적는 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이라고 나를 괴롭히는가? 나는 자료를 찾아본 다음에 연락하겠다고만 하고 연락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아침에 나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다. 나에게 언제 연락하면 되는지 묻는 것도 아니고 나보고 자기한테 전화를 하란다. 나는 연락하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아침 9시가 되었다. 기어코 그 아주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주머니는 또 학술대회가 몇 회냐고 물었고 나는 자료를 못 찾았으니 자료를 찾는 대로 연락하겠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왜 자료가 없는 것이냐, 자료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고, 나는 몇 회인지는 선생님들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나중에 자료를 찾으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통화를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저희 아이가요 학술대회에 꼭 가고 싶어 하는데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하면 좋은데 수요일하고 목요일에 학술대회에 가면 학교에서 결석처리가 되어서요 결석처리가 안 되게 학회에서 발표를 한다거나 원고를 낸다거나 하는 할 수 있을까요?”

그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고3 아들이 과학철학에 기울이는 관심의 수준이라는 게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보고 칼럼을 쓰는 것 정도인데, 그런 글을 과학철학 학술대회에 낼 수 있냐고 묻는 것이다. 차라리 외교관이 꿈이라면서 북미 정상회담에 참석하게 해달라고 그러지 왜 저러나 싶었는데 꾹 참고 간단히 답했다. “원고 접수 기한이 지나서 안 됩니다.”

당시 나는 잠도 제대로 못 잤고 아침밥도 못 먹었고, 아홉 시간 전에 냈어야 하는 기말보고서 기획서를 제출하지 못했고, 한 시간 뒤에 제출해야 하는 발제문도 다 작성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나는 내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내 인내심을 시험했다.

“아니요, 결석처리가 되면 안 되니까요 명분이 필요하다니까요....”

“원고 접수 기한이 이미 지나서 안 됩니다.”

“그래도 그런 방법을 검토할 수 있잖아요.”

“저한테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연구이사님이 결정하는 건데 원고 접수 기한이 이미 지났어요.”

“그러니까 해달라는 게 아니구요 알아봐 주실 수 있느냐는 거죠.”

“그런 전례가 없습니다.”

“전례라는 건 핑계구요, 전례라는 건 깰 수 있는 거잖아요.”

나는 참다 참다 화를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아니, 지금 그게 말이 되는 겁니까? 학술대회에 발표하는 대학원생도 잘 할까 말까 해요. 그런데 학부생도 아니고 고등학생이 영화보고 글 쓴 거 가지고 학술대회에 원고를 내겠다는 거예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무리 대학이 중요해도 정도껏 하셔야죠.”

내 말을 듣더니 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벌렁벌렁거린다고 했다. 나는 약간 목소리를 높이기는 했으나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비속어도 쓰지 않았고 협박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아주머니의 심장이 벌렁거리겠는가. 얄팍한 수작으로 자식을 대학에 입학시키려는 속셈이 나에게 들켰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머니는 말했다.

“아니, 제가 그렇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물어본 거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하세요?”

내가 그 아주머니에게 황당한 것을 물어본다면, 가령, 그 아주머니의 집을 허락도 받지 않고 1년 간 무상으로 임대해도 되는지 묻거나 고3 아들을 원양어선에 팔아도 되는지 묻는다면, 설사 정중하게 묻는다고 해도 그 아주머니는 나에게 화를 낼 것이다. 임대해달라고 하거나 원양어선에 팔겠다고 하지 않고 그렇게 해줄 수 있는지만 물어도 화를 낼 것이다. 그 정도로 상식도 없고 예의도 없는 아주머니였지만, 나는 그런 아주머니하고 싸우고 싶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참았다.

아주머니의 말은 이어졌다.

“저희 아들은 이과도 아니고 문과구요 소프트웨어 특기생으로 대학을 가요. 대학 가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나는 몇 분 전에 분명히 내신 때문에 시간이 없으니 학술대회가 몇 회인지 빨리 알려달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대학에 붙었으면 그까짓 결석처리가 뭐 그리 무서운가. 그리고 꼭 올해 학술대회에 참가해야 하나? 올해는 고등학교를 잘 다니고 내년 학술대회를 보면 안 되나?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이라도 받아서 내년 학술대회는 못 보나? 그런데 정말 시한부라면 학술대회 같은 데는 오지 말고 더 재미있는 것을 해야할 것이다. 나는 그 아주머니와 싸우고 싶지 않아서 “아, 그렇습니까. 제가 오해를 했네요. 죄송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신문이나 뉴스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는데, 내가 직접 겪을 줄은 몰랐다. 나는 고등학교 학생부에 온갖 짜잔한 것들을 왜 기록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국제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받았다든지 하는 것은 학생의 능력을 보여주니까 기록할 가치가 있고 대학에서도 참고할 만하다. 그런데 학생이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며 학교에서 무슨 소꿉놀이를 하는지를 고등학교는 왜 기록을 해야 하며 대학은 그딴 것에 왜 신경을 써야 하는가? 그까짓 동아리 활동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딴 게 그렇게 중요하면 “운동장 구석에서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다오 3회 함” 같은 것은 왜 학생부에 기록하지 않는가?

어떤 사람들은 학생들의 전인적 발달을 위해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학교 특성화 프로그램 등을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학교에서 얼마나 프로그램을 잘 짜고 잘 집행하길래 그런 프로그램들이 학생들의 전인적 발달을 돕는다는 건지 궁금하다. 물론, 학생들이 그런 프로그램을 반-강제로 집행한다면 문제풀이 시간이 줄게 되어 학생들의 노동 강도가 약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공격적 성향도 줄어들 것이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프로그램에 스트레스 감소 효과 말고 교육적인 효과가 있기나 한 것인가. 전인적 발달과는 무관하고 말이나 번지르르하게 하고 남 속이는 법이나 몸에 익히는 것은 아닌가. 인공지능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는 문과 고등학생이 학술대회에 구경 오는 것은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으면 될 일이다.

아무리 봐도 수학-과학 점수가 더 높은 학생을 뽑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은데, 실제 대학 입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아르바이트 게시판을 보니 학부를 갓 졸업한 사람도 입학사정관으로 뽑는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개판으로 돌아간다는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 내 후배 중에 교사가 있는데, 어느 대학 입학설명회에 가서 입학사정관으로 나온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나에게 말했다. 내 후배는 그 입학사정관과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녀서 그 사람이 멍청하면서도 사기꾼 기질이 있음을 알고 있었는데, 그런 사람이 입학사정관이 된 것을 보고 저래도 되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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