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아닌 어떤 집단이 차별받거나 불평등한 환경에 놓여있음을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개인은 자기가 어떤 점에서 억울한지, 무엇이 불리한지, 어떤 놈이 나쁜 놈인지 지목하면 해당 사안의 공개 여부를 떠나서 입증할 수는 있다. 그런데 어떤 집단이 차별받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대략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중 하나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1) 개인의 경우 (민형사상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사례를 명시적으로 제시하기 어려울 수 있다.
(2) 개별 사례를 들면 그것은 개별 사례에 불과하지 그게 사회 일반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
(3) 개별 사례를 많이 모아와도 제도적인 차별이나 불평등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
(4) 제도 자체가 잘못되었을 경우에는 그 제도에 문제가 없다는 사람들이 사회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상황이라서 말이 안 먹힌다.
(5) 통계 자료를 가져와도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해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6) 차별이나 불평등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통계를 잘못 가져와서 역공을 받는다.
이외에도 해당 집단의 구성원 중 일부가 자기는 차별이나 불평등을 당하지 않았다면서 문제제기 하는 다른 구성원을 이상하거나 예민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경우도 있다. (1)-(6)의 경우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부족한 경우라서 처리하기 곤란하지만, 한 집단의 구성원끼리 의견이 갈리는 경우는 비교적 판단을 내리기 쉽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은 여성으로서 차별받았다고 주장하고 다른 여성은 요즈음 세상에 남녀 차별이 어디 있냐고 주장한다고 해보자.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진술자의 신뢰도와 진술의 신뢰도를 구분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령, 진술자의 신뢰도를 A부터 F까지 여섯 단계로 나누고 진술의 신뢰도를 1부터 6까지 나누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진술자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A1이라고 하고,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진술자의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F6이라고 하자. 그런 다음 어떤 사람의 어떤 진술이 어디에 해당되는지 따진다면 누구의 말에 가중치를 부여해야 하는지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차별이라고 하면 보통은 같은 능력을 지니거나 같은 성과를 냈는데도 그에 걸맞은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아들한테는 고기 반찬을 주고 딸한테는 김치를 주는 그런 식의 유치한 차별이 아닌 이상, 일반적으로 사회 문제가 되는 차별은 능력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우는 일단 능력자는 차별받을 수도 있고 안 받을 수도 있지만, 무능력자는 공정하게 경쟁해도 기회를 못 얻으니까 차별도 못 받게 된다.
진술자의 해당 분야에서의 능력에 따라 A부터 F까지 나누고, 진술의 정확도나 구체성에 따라 1부터 6까지 나누어 보자. 능력에 따른 차별에 관한 신뢰도는 능력과 비례 관계일 것이므로 해당 분야에 능력이 있으면 A이고 전혀 능력이 없으면 F라고 하자. 누가 봐도 차별받은 게 맞고 시간, 장소, 상황, 인물 등을 명확하게 진술했거나 진술할 수 있으면 1, 적어도 이 사례는 차별은 아닌 것 같다 싶으면 6, 진술이 막연하다 싶으면 그 중간 어딘가의 값을 매긴다고 해보자.
내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내가 직접 들은 것이든 매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이든, 여성으로서 차별받았다는 진술은 A1부터 F6까지 골고루 퍼진 것 같은데, 여성으로서 차별받지 않았다는 진술은 A보다는 F 쪽에 몰려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겠는가? 나는 여성 차별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2024.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