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과학철학 선생님이 다른 학회 가서 했던 논평과 관련된 목격담을 들었다. 동료 대학원생에 따르면, 그 학회에서는 말도 안 되는 것을 연구라고 발표하여 그 대학원생이 보고 화가 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걸 보고서도 과학철학 선생님은 매우 정중하게 논평하여 대학원생은 선생님의 인격에 내심 놀랐다고 한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발표자가 논평에 “그러면 연구를 하지 말라는 말입니까?”라고 하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 선생님의 학문적 깊이나 식견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해당 분야의 필요 이상의 포용성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해당 발표는 연구로써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어떤 분야의 정상적인 연구에 대하여 다른 분야 전공자가 비판한다면, 웬만큼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해당 분야의 전공자가 다른 분야 전공자의 비판을 가볍게 받아치는 것이 정상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정식으로 전공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휙 훑어보는 정도로는 해당 분야의 전공자를 이기기 힘들다. 전공자가 지나가는 아저씨의 논평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화를 낼 정도라면 해당 작업은 정말로 연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혹시라도 그 정도의 것이 연구로 인정받을 정도라면 해당 분야는 유사 학문과 비슷한 상태일 것이다.
발표자가 논평에 화를 내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연구 같지도 않은 것을 연구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연구자가 아니므로 발표자가 연구자의 소양을 갖추든 말든 그건 알 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학철학 선생님은 발표자가 화가 날 정도로 발표 내용의 결함을 분명하게 전달하면서도 제3자가 듣기에 거북하지 않게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의사를 전달했다는 점이다.
건너 건너로 듣기로, 분석철학 선생님들 중에는 어떤 내용을 비판할 때 인신 비방만 안 했지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표현을 쓰는 분들이 가끔씩 있다고 한다. 어떤 경우는 험한 표현을 학술대회 때 공방을 주고받을 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논문에 명시적으로 남기기도 한다. 철학 이외의 다른 분야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중에는 기존 논문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논문이 게재되었다는 것이 해당 학계의 비극이며 수치라는 식의 표현을 명시적으로 사용한 경우도 있다. 상대방이 말을 아예 못 알아듣는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직접적인 표현을 써야 할까?
글쓰기 강사 이강룡의 강의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강룡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쓴이 혼자 붕 떠서 글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여기저기 쓴다면 사랑에 대해 피상적으로 전달할 뿐이다. 독자가 글을 다 읽었을 때 그 글이 전하고자 한 것이 사랑이라고 떠올릴 수 있어야 글쓴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독자에게 더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다.
비판도 마찬가지다. 이 글은 연구가 아니라고 직접 쓰면 읽는이는 얕은 분노를 느낄 뿐이다. 정중하면서도 꼼꼼하고 건조하게 해당 내용을 비판해서 읽는이가 비평을 다 읽고 나서 ‘아, 이것은 연구도 아니구나’ 하는 깊은 좌절을 저절로 느낄 수 있어야 좋은 비판이 아닐까? 아마도 과학철학 선생님이 다른 학회에서 했던 논평이 그러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철학과 학생들의 글쓰기 교육에는 상대방의 논증을 비판하는 것 이외에도 비판 내용을 모나지 않게 표현하기도 포함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2024.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