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4

석사학위 논문에 관한 논평을 하다 든 생각



전공자들끼리 발표하는 모임에서 발표 내용에 대해 비평할 때, 다른 사람들이 비평하는 것과 내가 비평한 것을 비교해 보면,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거칠게 말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거칠게 말한다는 것은, 같은 내용인데 강한 표현을 쓴다는 것도 아니고 인신 비방 같은 것을 한다는 것도 아니다. 논평하는 범위가 다른 사람보다 넓고 논리적인 수준이 약간 떨어진다는 것이다. 가령, 다른 사람들이 어느 부분의 논리적인 연결이나 흐름에 대해 논할 때, 나는 그보다는 큰 단위에서 어느 부분부터 어느 부분까지 버리라고 한다든지, 어느 부분은 떼어놓고 석사학위 받은 다음에 생각하라고 말하는 식이다.

나는 왜 이렇게 거칠게 말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내가 대학원에 오래 다니기는 했지만 딱히 추상적인 사고를 하는 데 소질이 없어서다. 안 배워도 되는 게 있고 배워도 안 되는 게 있는데, 나는 추상적이거나 논리적인 사고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하려고 노력하는 데 잘 안 된다. 다른 하나는 어차피 큰 틀에서 다 뜯어고쳐야 하는 판이라 지엽적인 부분의 논리적인 오류를 잡는다고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인 경우다. 3분의 2쯤은 떼어내고 3분의 1을 가지고 잘 추슬러야 하는 경우라면, 굳이 떼어낼 부분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해봐야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뭘 몰라서 따로 떼어버릴 부분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나보다 똑똑하거나 적어도 석사학위를 순탄하게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논평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순조롭게 석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남들도 그러리라 생각하고 어떻게든 그 사람이 가져온 것의 원형을 그대로 두면서 그 상태에서 뭔가 미세하게 조정하여 결과물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나처럼 전혀 순조롭지 않게 석사학위를 받은 지난 사람은, 그 못지않게 험한 과정을 겪을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일을 겪을지 안다. 그러니 포기할 부분은 빨리 포기하고 남은 부분을 추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게 일종의 생존 편향일 수 있다. 전투기든 폭격기든 비행기를 잘 다루는 사람들이 무사히 비행장에 도착했다고 치자. 회피 기동도 잘 하고 하여간 임무 수행을 잘 하고 돌아온 사람들보고 정비사한테 원하는 바에 대해 말하라고 한다면, 꼬리 날개가 어떠니 하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치명적인 부위를 피격당하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나처럼 격추될 뻔하다가 가까스로 비행장에 돌아온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엔진 쪽 장갑은 무조건 두껍게 해주세요. 네? 힘들다구요? 안 돼요! 안 그러면 죽어요!”

노벨상 수상자들은 그들의 지도교수도 노벨상 수상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노벨상 받은 사람이 잘 가르쳐서 학생도 노벨상을 받는 건지, 아니면 노벨상 받을 정도로 뛰어난 학생이라 노벨상 수상자의 지도 학생이 되는 건지는 모른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그런데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건 그들 세계의 일일 뿐이다. 석사학위를 받는 것도 어려운 학생을 돕는 일은 그 못지 않게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이 해야 한다. 문제는 그런 학생은 학위 과정을 거치며 학문적으로 다 죽어버리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을 도울 사람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좋은 석사학위논문을 쓸 학생이 더 좋은 논문을 쓰게 할 능력은 아직 나에게는 없는 것 같지만, 석사학위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을 학생이 덜 고생하고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지침 정도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통해 유추해 볼 때, 내가 어떻게든 가까스로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면, 내가 그러한 경험을 살려서 위기에 처한 박사과정생이 숨통을 트이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자면 일단 내가 박사학위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든 박사학위를 받아야겠다.

(2024.01.04.)


2024/03/03

이런 무당이 있다면



내가 개신교 신자이기는 하지만, 이런 무당이 있다면 찾아가 보고 싶다.

언젠가 무당이 자기 뜻과는 달리 교회에 호의를 베푼 적도 있다. 어떤 가족이 세례명이 요한인 부친이 죽자 배교를 하고 말았다. 그런데 가족 중에 한 명이 병들자 멀리서 용한 무당을 불렀다. 무당이 황홀 상태에 빠져 말하길, “나는 요한의 영인데, 너희들이 신앙을 버리고 나를 위하여 기도를 도무지 하지 않기에 편히 쉴 수가 없구나. 즉시 회개하라"고 했다. 그래서 지체 없이 귀신을 섬기는 제구(祭具)들과 위패를 내던지고 묻거나 태웠고, 아내는 참회자로 교회에 돌아오고 아들들은 다시 세례준비자가 되었다.

세실 허지스 외, 『영국성공회 선교사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신앙과 풍속』

(2024.01.03.)

2024/02/29

남자의 언어



12월 29일(금)로 아르바이트하는 회사와의 계약이 끝났다. 내가 들어갔던 프로젝트가 12월 초에 엎어졌기 때문에 계약은 연장되지 않았다. 내가 속한 팀의 업무는 수학 교재 만드는 일로 전면 전환되었다.

내가 회사에서 할 일 자체가 없어졌지만 그래도 계약 기간이 남아서 3주 동안은 사무실로 출근하기는 해야 했다.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회사에서는 나보고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오전이든 오후든 아무도 나를 부르지도 않고 찾지도 않고 일을 시키지도 않았다. 점심만 같이 먹었다. 프로젝트 취소 이후 나는 회사에서 개인적인 일을 했다. 아르바이트 들어온 일도 하고, 시청에 민원도 넣고, 학부 수업 채점도 했다. 시간은 금방 갔다. 출근해서 커피 마시면서 메일 확인하고 뉴스 몇 개 보고 내 일을 하다가 점심 먹고 다시 내 일 하고 중간 중간에 커피 몇 잔 마시면 퇴근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16회 근무 중 6회는 내가 알아서 시간을 보냈다. 몇몇 대학원생들은 연구원보다 좋은 환경에서 지낸다고 부러워했다. 연구원은 자기가 원치 않는 연구를 해야 할 수도 있는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출근을 한 것은 12월 26일(화)이었다. 원래는 12월 27일(수)이 마지막 근무였는데 내가 속한 팀에서 회장님께 한 중간보고 결과가 잘 나와서 27일 하루는 팀 전원이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재택근무를 하는데 나 혼자 회사에 나오면 이상하니까 나도 재택근무를 하라고 했다. 마침 26일이 회식날이어서 회식을 끝으로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다.

회식 자리에는 윤◯◯ 이사님도 참석했다. 그동안 회사에서 윤 이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간혹 들은 적이 있었다. 회장님이 상당히 아낀다는 것과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 그리고 과장 1년, 부장 1년 하고 이사가 된 고속 승진의 주인공이라는 것 등을 들었다. 회사에 그런 사람이 있는가 보다 하고 별 생각 없이 다니다가 마지막 날에 ‘윤◯◯’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들었나? 석사과정 때 나하고 같은 연구실에 있었던 대학원생 중에 윤◯◯씨가 있었다. 윤◯◯씨는 들뢰즈 전공인데, 직원들에 따르면 윤 이사도 대륙철학 전공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회식 자리에서 만난 윤 이사님은 6동 307호 내 뒷자리에 있었던 윤◯◯씨였다. 윤 이사님은 회식이 있기 며칠 전부터 대학원 같이 다닌 사람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 같다고 다른 직원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속한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도 윤 이사님이 했다고 한다. 당시 나는 초기 기획안을 보고 윤 이사님이 상당히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짐작했다. 기획안에는 1년차부터 3년차 계획이 담겨 있었다. 2년차 계획과 3년차 계획은 실현가능성이 없는 일인데 이 정도로 그럴듯하게 기획안을 낸 것을 보고 내심 놀랐었다. 회식 자리에서 윤 이사님에게 물었다. “저희 프로젝트 초기 기획을 윤 이사님이 했다고 들었는데…….” 내 말이 끝나기 전에 윤 이사님은 유쾌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거 실행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건 아니에요.” 그 기획 덕으로 윤 이사님을 회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윤 이사님은 옆에 있던 상무님에게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제가 이 분하고 같이 대학원을 다녔는데 이 분이 작가로 활동하는 건 아닌데 거의 작가예요.” 그러면서 대학원 다니던 시절 기숙사 삼거리까지 함께 가면서 나하고 대화했었는데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쑥스러웠다. 나는 상무님께 웃으면서 말했다. “작가까지는 아닌데, 사실 그래서 이◯◯ 과장이 저를 회사로 부른 거죠.”

나는 회사를 다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회사의 직급 체계를 잘 몰랐다. 상무 다음이 뭐냐고 조용히 물으니 다른 팀의 차장님이 상무 다음이 전무라고 알려주었다. 차장님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언제까지 회사에 나오세요?”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에요.”

“회사에서 언제 또 부른대요?”

“그런 이야기는 아직 없던데요.”

그러자 차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내가 볼 때 또 부를 것 같은데. 옆에 상무님한테 ‘저 한 번 더 불러주시면 제가 전무님으로 만들어 드릴게요’라고 해보세요.” 나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면 너무 건방져 보여서 안 된다고 답했다. 차장님도 웃으면서 “아니에요. 한 번 해보세요” 라고 했다.

마침 상무님은 옆에 있던 여자 과장님한테 한 소리를 듣고 있었다. 상무님은 최근에 연애를 다시 하면서 회사 안에 사랑꾼이라고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 맥락을 모르기는 했는데 아마도 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과장님은

“아, 상무님! 여자 언어를 너무 모르시네!”

라고 했고 그 말에 상무님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아, 그런가?”라고 했다. 그걸 보고 상무님한테 할 말이 떠올랐다. 나는 상무님한테

“여기 과장님이 ‘여자 언어’라고 하셨는데 제가 남자 언어가 무엇인지 한 번 보여드릴까요?”

라고 말했다. 회식 자리에 있던 여러 팀의 부장, 차장, 과장, 대리, 직원의 시선이 느껴졌다. 평상시 같았으면 부끄러웠겠지만 그 때 나는 전혀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술을 마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무님이 이사님일 때 저를 한 번 부르고 상무 되시고 나서 이번에 저를 한 번 더 불렀거든요? 그렇다면 남자의 언어란 무엇이냐? ‘상무님, 이사 때 한 번 부르시고 상무 때 한 번 부르셨으니, 전무 되시면 그 때 저 한 번 더 불러주십시오.’ 이게 남자의 언어입니다.”

그 말에 상무님은 손뼉을 치면서 아이처럼 좋아했고 주위에서는 “우와!” 하는 탄성 비슷한 게 터졌다. 윤 이사님이 상무님한테 이렇게 말했다. “제 말 맞죠? 작가라니까요!”

나는 옆에 있던 여자 부장님한테 이 말은 여자 언어로 뭐라고 하느냐고 물었고 부장님은 몇 초 간 생각하더니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웃고 대화하다가 술을 몇 잔 더 마셨다. 부장님은 나보고 회사 다닐 생각은 안 해보았냐고 물었다. 나는 부장님께 어떤 대답을 했고 부장님은 웃었다.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평소보다 술을 약간 더 마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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